창1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창1:29)

 

※ 29절 속뜻

 

천적 인간은 천적 양식을, 영적 인간은 영적 양식을, 자연적 인간은 자연적인 것들을 기뻐하며, 각각 자신의 양식으로 삼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생명과 맞기 때문입니다. ‘씨 맺는 모든 채소’는 쓰임새와 관련된 모든 진리이며,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는 신앙의 선으로,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아직 영적 인간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56.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천적인 것들로만 아주 기뻐합니다. 그것들이 그의 생명에 맞기(in agreement with) 때문이며, 부르기를 천적 양식이라고 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delighted with celestial things alone, which being in agreement with his life are called celestial food.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영적인 것들로 아주 기뻐합니다. 그 이유 역시 그것들이 그의 생명과 맞기 때문이며, 이번엔 영적 양식이라고 합니다. The spiritual man is delighted with spiritual things, and as these are in agreement with his life they are called spiritual food.

 

마찬가지로, 자연적(自然的, natural) 인간은 자연적인 것들을 아주 기뻐합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맞기 때문이며, 부르기를 양식이라고 합니다. 이 양식은 주로 기억-지식으로 구성됩니다. The natural man in like manner is delighted with natural things, which, being of his life, are called food, and consist chiefly of memory-knowledges.

 

※ 기억-지식은 그 출처가 세상인 지식으로, 학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지식입니다.

 

여기는 영적 인간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의 영적 양식을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보통은 ‘씨 가진 나무’라고 하는, 이런 표상들(表象, representatives)을 가지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As the spiritual man is here treated of, his spiritual food is described by representatives, as by the “herb bearing seed,” and by the “tree in which is fruit,” which are called, in general, the “tree yielding seed.”

 

그의 자연적 양식은 다음 절에서 설명합니다. His natural food is described in the following verse.

 

※ 사람은 영과 육의 존재이므로 영적 양식과 자연적 양식, 둘 다 필요합니다.

 

 

57. ‘씨 맺는 채소’는 쓰임새(use)와 관련된 모든 진리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는 신앙의 선이며, 여기 ‘열매’는 주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씨 가진 나무’는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씨 가진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하시는 겁니다. The “herb bearing seed” is every truth which regards use; the “tree in which is fruit” is the good of faith; “fruit” is what the Lord gives to the celestial man, but “seed producing fruit” is what he gives to the spiritual man; and therefore it is said,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나무의 열매를 천적 양식이라 하는 건 다음 장을 보면 분명한데요, 다음 장은 천적 인간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That celestial food is called fruit from a tree, is evident from the following chapter, where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이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에스겔에서 하신 말씀들만 인용하는데요, In confirmation of this we will here cite only these words of the Lord from Ezekiel: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겔47:12)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th up every tree of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는 ‘성소’(the sanctuary)이신 주님의 생명과 자비를, Waters issuing out of the sanctuary,” signify the life and mercy of the Lord, who is the “sanctuary.”

 

열매’는 그들의 양식이 될 지혜(wisdom)를, ‘’은 그 쓰임새(use), 곧 ‘약재료’(medicine)로 쓰임 받게 될 지성(intelligence)을 각각 의미합니다. Fruit” is wisdom, which shall be food for them; the “leaf” is intelligence, which shall be for their use, and this use is called “medicine.”

 

한편, 영적 양식을 ‘’(herb)이라고 하는 건 시편을 보면 나옵니다. But that spiritual food is called “herb,” appears from David: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23:1-2)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thou makest me to lie down in pastures of herb. (Ps. 23:1–2)

 

※ 다음은 ‘쓰임새’(use)와 관련된, 책, ‘천국과 지옥’ 402번 글입니다.

 

‘천국의 모든 기쁨(delights)은 쓰임새로 다 모이며(are brought together), 거기에 다 있습니다(are present). 쓰임새는 천사들의(in which angels are) 사랑과 체어리티(charity)의 선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모든 천사는 그의 쓰임새에 맞는 만큼(in accord with his uses), 그리고 쓰임새에 대한 애정 만큼(in the degree of his affection) 기쁨을 누립니다. In uses all the delights of heaven are brought together and are present, because uses are the goods of love and charity in which angels are; therefore everyone has delights that are in accord with his uses, and in the degree of his affection for use.’(HH.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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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sbyun 2022.02.28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께 쓰임 받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https://youtu.be/TgUcGWVs2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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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7(D1)-제10권9호통444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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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창1:28)

 

※ 28절 속뜻

 

태고인들은 이해와 의지, 신앙과 사랑의 결합을 일종의 결혼이라 여겼고, 그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을 ‘생육’, 모든 진리를 ‘번성’으로 이해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이를 가리켜 ‘결혼한 땅’이라 하였고, 이때 생기는 진리를 ‘아들’, 선을 ‘딸’로 이해했습니다. 주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그를 돌보실 때, 그의 안에는 어마어마한 선과 진리가 부어져 ‘충만’한 상태가 되며, 주님의 이런 사역으로 ‘겨자씨 한 알’에 지나지 않았던 인생이 변화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큰 나무가 됩니다. 사람이 이런 영적 인간이 동안, 그의 안에서는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데, 그래서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신 것입니다.

 

 

55. 태고인들(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은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 또는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을 일종의 결혼(a marriage)이라고 했는데요,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은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는 ‘번성’(multiplications)이라고 한 것입니다. As the most ancient people called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of faith and love, a marriage, everything of good produced from that marriage they called “fruitfulness,” and everything of truth, “multiplications.”

 

※ 실제로 천국 역시 남녀의 결혼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상처럼 무슨 ‘아이를 낳는’ 그런 결혼이 아닌,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전혀 다른 결혼입니다.

 

그래서 선지서, 예를 들면, 에스겔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Hence they are so called in the prophets, as for instance in Ezekiel: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겔36:11-12)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multiply and be fruitful,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and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yea,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even my people Israel. (Ezek. 36:11–12)

 

여기 ‘사람’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 인간을, ‘전 지위’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By “man” is here meant the spiritual man who is called Israel; by “ancient times,”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 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multiplication,” which is of truth, is first mentioned, and “fruitfulness,” which is of good, afterwards, is that the passage treats of one who is to become regenerated, and not of one who is already regenerated.

 

[2] 이해가 의지와, 또는 신앙이 사랑과 하나가 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결혼한 땅’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When the understanding is united with the will, or faith with love, the man is called by the Lord “a married land,” as in Isaiah: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62:4) Thy land shall be no more termed waste, but thou shalt be called Hephzibah [my delight is in her], and thy land Beulah [married], for Jehovah delighteth in thee, and thy land shall be married. (Isa. 62:4)

 

이때 열리는 열매들, 이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The fruits thence issuing, which are of truth, are called “sons,” and those which are of good are called “daughters,” and this very frequently in the Word.

 

※ 그래서 저는 제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와 손녀, 더 나아가 형제와 처가, 사돈 및 친구, 친지 등을 주님의 선과 진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점과 시야의 근본적 조정과 재편이 결코 쉽진 않지만, 이렇게 하니 점점 핏줄에 대한 무슨 집착(?) 같은 것을 내려놓게 되면서, 이들을 주께 맡기기가 한결 쉬워짐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12:50)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이 점점 더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3] 많은 진리와 선이 있게 될 때, 땅은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는, 즉, 사람을 돌보실(works upon)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The earth is “replenished,” or filled, when there are many truths and goods; for when the Lord blesses and speaks to man, that is, works upon him, there is an immense increase of good and truth, as the Lord says in Matthew: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The kingdom of the heavens is like to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sowed in his field, which indeed is the least of all seeds, but when it is grown, it is the greatest among herbs, and becometh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heavens come and build their nests in the branches thereof. (Matt. 13:31–32)

 

‘겨자씨 한 알’은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기 전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그가 자기가 그 선을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A “grain of mustard seed” is man’s good before he becomes spiritual, which is “the least of all seeds,” because he thinks that he does good of himself, and what is of himself is nothing but evil.

 

그러나 그가 거듭남의 어떤 상태 가운데 있게 되면서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생깁니다만, 그러나 아주 작습니다(the least of all). But as he is in a state of regeneration, there is something of good in him, but it is the least of all.

 

[4] 결국 신앙이 사랑과 결합함으로써 점점 자라 ‘풀’(herb)이 되더니, 마침내 결합이 완성되면서(completed)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 혹은 지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든다’는 것은 기억-지식을 각각 의미합니다. At length as faith is joined with love it grows larger, and becomes an “herb”; and lastly, when the conjunction is completed, it becomes a “tree,” and then the “birds of the heavens” (in this passage also denoting truths, or things intellectual) “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which are memory- knowledges.

 

사람이 영적 인간이거나 영적 인간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데, 그래서 이르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는 것입니다. When man is spiritual, as well as during the time of his becoming spiritual, he is in a state of combat, and therefore it is said, “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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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창1:27)

 

※ 27절 속뜻

 

거듭남이 진행 중인 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신앙, 즉 이해에도 주님의 이미지가, 그의 사랑, 즉, 의지에도 주님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가는데, 특히, 태고교회인들은 이를 가리켜 각각 남자와 여자로 부르며,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이는 것을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53. 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신앙은, 이 신앙은 이해(the understanding)에 속하는 건데, ‘자기 형상’(his image)이라 하고, 사랑은, 이 사랑은 의지(the will)에 속하며, 영적 인간한테서는 뒤따라 나오는(comes after) 거지만 천적 인간한테서는 먼저 나오는(precedes) 건데,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image” is here twice mentioned is that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is called “his image”; whereas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and which in the spiritual man comes after, but in the celestial man precedes, is called the “image of God.”

 

 

54.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남자와 여자’의 의미, 그 속뜻(the internal sense)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ior sense)를 잃어버리면서, 이 아케이나(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What is meant by “male and female,” in the internal sense, was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hen the interior sense of the Word was lost among their posterity, this arcanum also perished.

 

그들의 ‘결혼’(結婚, marriage)은 그들 행복과 기쁨(delight)의 최고의 원천(chief sources)이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felicity)을 지각하고자 무엇이든 할 수만 있으면(whatever admitted of the comparison) 다 결혼에 비유했습니다(likened to). Their marriages were their chief sources of happiness and delight, and whatever admitted of the comparison they likened to marriage, in order that in this way they might perceive its felicity.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internal)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것들로만 기뻐했습니다. Being also internal men, they were delighted only with internal things.

 

외적인 것들을 그들은 육안으로는 그저 볼 뿐, 그러나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그 영적, 천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External things they merely saw with the eyes, but thought of what was represented.

 

※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일상의 일들(outward things)은 그들에겐 그들의 관심(thoughts)을 내적 주제(internal things)로 돌리게 하는, 정말 그 정도의 역할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적 주제에서 천적 주제로,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 되신 주님, 그리고 그 결과, 천국의 결혼이라는 주제로까지 갈 수 있었는데요(save as), 그들은 자기들 결혼의 행복이 바로 여기서 온다는 것을 지각했습니다(perceived). So that outward things were nothing to them, save as these could in some measure be the means of causing them to turn their thoughts to internal things, and from these to celestial things, and so to the Lord who was their all, and consequently to the heavenly marriage, from which they perceived the happiness of their marriages to come.

 

그래서 그들은 영적 인간의 이해(The understanding)를 ‘남자’, 의지(the will)를 ‘여자’라 하였고, 이 둘이 하나로(as a one) 움직일 때, 그걸 결혼이라 한 것입니다. The understanding in the spiritual man they therefore called male, and the will female, and when these acted as a one they called it a marriage.

 

※ 즉, 태고교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가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교회에 대한 관용적 표현들이 왔고(the form of speech which became customary), 여기서 교회를 교회에 대한 선한 애정으로, ‘’, ‘처녀’, 가령, ‘시온의 처녀’, ‘예루살렘의 처녀’처럼, 그리고 ‘아내’라 하였습니다. From that church came the form of speech which became customary, whereby the church itself, from its affection of good, was called “daughter” and “virgin”—as the “virgin of Zion,” the “virgin of Jerusalem”—and also “wife.”

 

이들 주제는 다음 장 23절과 3장 15절에서 보시게 됩니다. But on these subjects see the following chapter, at verse 23, and chapter 3, vers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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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창1:26)

 

※ 26절 속뜻

 

형상을 그릇이라면, 모양은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입니다. 즉, 형상은 겉이라면, 모양은 속입니다. 주님은 거듭남의 결과, 사람의 겉과 속이 하나가 되어 주님 닮은 상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천사 둘, 지옥의 영 둘씩 와 있고, 이들을 통해 천국하고도, 지옥하고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연결 자체가 없으면 사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거듭나기 전엔 지옥의 영들이 우위에 있지만, 거듭남이 진행될수록 천사들이 우위에 있게 되고, 이 사람은 천사들을 통해 주님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표현은 주님과 천국의 대리인으로서의 천사들을 통해 사람의 거듭남이 진행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먼저 영적 인간이 되고, 그다음 천적 인간이 됩니다. 영적 인간의 경우는 먼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진행되며, 그것을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이라는 순서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49. 주님은 태고(太古, the most ancient) 교회에 한 사람(a man)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 멤버들과 대면하여(face to face)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많은 것이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In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the members of which the Lord conversed face to face, the Lord appeared as a man; concerning which much might be related, but the time has not yet arrived.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그들은 이 ‘사람들’(men)이라는 표현을 자신들에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가령,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On this account they called no one “man” but the Lord himself, and the things which were of him; neither did they call themselves “men,” but only those things in themselves—as all the good of love and all the truth of faith—which they perceived they had from the Lord.

 

※ 처음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런 것들, 곧 이 모든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를 ‘사람에게 속한 것’(of man)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These they said were “of man,” because they were of the Lord.

 

[2] 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 ‘사람의 아들’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 그 결과,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Hence in the prophets, by “man” and the “son of man,” in the supreme sense, is meant the Lord; and in the internal sense,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everyone who is regenerate.

 

예레미야에서처럼 As in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이사야에서도, ‘사람’은 속뜻으로는 거듭난 사람을, 가장 높은 뜻으로는 한 사람(the one man)이신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In Isaiah, where, in the internal sense, by “man” is meant a regenerate person, and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s the on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사45:11-12) Thus saith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Isa. 45:11–12)

 

[3]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에스겔에서처럼 사람으로(as a man) 나타나셨습니다. The Lord therefore appeared to the prophets as a man, as in Ezekiel:

 

26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1:26) Above the expanse, as the appearance of a sapphire stone, the likeness of a throne, and upon the likeness of the throne was the likeness as the appearance of a man above upon it. (Ezek. 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the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And when seen by Daniel he was called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which is the same thing: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7:13-14) I saw,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him;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 and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that which shall not be destroyed. (Dan. 7:13–14)

 

[4] 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The Lord also frequently calls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and, as in Daniel, foretells his coming in glory:

 

30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0) Then shal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 (Matt. 24:30)

 

구름을 타고’(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 ‘능력과 큰 영광으로’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입니다.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이든, 구체적이든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키는데요,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입니다. The “clouds of heaven” are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power and great glory” are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ich in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has reference solely to the Lord and his kingdom; and it is from this that the internal sense derives its power and glory.

 

 

50. 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image of the Lord)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 of the 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

 

사람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과, 사람마다 최소 영 둘, 천사 둘씩 있다는 사실에 거진 다 무지(無知, ignorant)합니다.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 여기서 말하는 영들은 지옥과 연결된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둘씩 배정(?)되어 있는 이유는, 사람이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의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이 있고, 사람의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 천국이든 지옥이든 수많은 공동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공동체 간 커뮤니케이션은 각 공동체에서 파견(?)된 에이전트들, 대리인들로 이루어집니다. 즉, 이 에이전트 천사들 또는 영들에 의해 두 공동체 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는데요, 이 원리가 사람에게도 적용된 것입니다. 즉, 각 사람에게 와있는 이들 천사들과 영들은 각각 해당 나라 해당 공동체에서 파송된 에이전트들로서, 이들을 통해 각 사람은 자신의 천국과 지옥 내 해당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 거듭, 여기서 말하는 영들은 지옥에서 파견된 영들, 곧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지옥에서 파견되어 천국도, 지옥도 아닌, ‘영들의 세계’라는 곳(상태)에 있게 되는데, 이마저도 이들에겐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태여서 굉장히 기뻐하며, 다시는 자기들이 원래 있던 지옥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고, 천사들을 통해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해 주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으면 사람은 전혀 살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사멸될 것입니다.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 우리가 잠시라도 생존할 수 있으려면 이런 악한 영들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참으로 우리는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이 우리의 태생적 생명이니 말입니다...

 

[2]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은 거듭난 사람과는 전혀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아직 거듭남 가운데 있지 않은 사람은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가운데 살아갑니다. 이때는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가이드만 겨우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사용해서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통해서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 예를 들면, 자살을 하려고 최종 결심, 이제 막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든지, 또는, 탐욕의 끝에 가서 갑자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추하게 느껴진다든지, 그리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 순간, 그런 감각의 충족이 가져다주는 모든 쾌락이 헛것이요,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뭐 이런 경우들을 예로 들 수가 있겠습니다.

 

누기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재산 중 제 몫을 먼저 달라 하여 그걸 가지고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다가 굶어 죽게 되자 정신을 차리게 된 둘째 아들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경우가 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인도하기(rule)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을 단지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됩니다.

 

[3] 그러나 그가 거듭나면, 그는 천사들의 인도를 받으며(rule),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천사들처럼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겉으로는 천사들이 인도하지만(lead)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ministers)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바로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고,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본문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우리는 그동안 삼위 세 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문맥을 잘 살피면, ‘주님과 천사들’을 가리켜 ‘우리’라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곧 주님과 천사들의 협업, 동역을 통해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기 때문이며, 천사들은 절대로 자기의 사사로운 뜻으로 무엇을 하는 법이 없고, 오직 주님의 뜻만 전적으로 받드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천사들이 무엇을 하면, 그건 곧 주님의 뜻으로 알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51. ‘형상’ 관련해서는, 형상(an image)은 모양(a likeness)이 아니고, 모양을 닮은 것(according to the likeness)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신 것입니다. As regards the “image,” 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 it is therefore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혹은 닮음(similitude)이지요. The spiritual man is an “image,” and the celestial man a “likeness,” or similitude.

 

※ 형상, 이미지는 그릇,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입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때문에 선인과 악인으로 나뉘는 걸 보면, 우리가 참으로 주님 닮았다, 주님의 자녀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겉뿐 아니라 속도 주님을 닮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In this chapter the spiritual man i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the celestial.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The spiritual man, who is an “image,” is called by the Lord a “son of light,” as in John: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He that walketh in the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While ye have th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sons of light. (John 12:35–36)

 

그를 일컬어 ‘친구’라고도 하십니다. He is called also a “friend”: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15)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John 15:14–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But the celestial man, who is a “likeness,” is called a “son of God,” in John: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the power to becom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o were born not of bloods,4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John 1:12–13)

 

 

52. 사람이 영적일수록 그의 전반적인 경향(dominion)은 겉 사람에게서 속 사람으로 진행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신 것입니다. So long as man is spiritual, his dominion proceed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as is here sai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면, 그래서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dominion)은 반대로 속 사람에게서 겉 사람으로 진행됩니다. 주님이 시편에서 자신을, 그리고 그렇게 해서, 주님의 모양인 천적 인간을 묘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and does good from love, then his dominion proceeds from the internal man to the external, as the Lord, in David, describes himself, and thereby also the celestial man, who is his likeness: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8:6-8) Thou madest him to have dominion over the works of thy hands; thou hast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the flock and all cattle,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s,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he fish of the sea, and whatsoever passeth through the paths of the seas. (Ps. 8:6–8)

 

그래서 여기 먼저 ‘들짐승’이, 그리고 차례대로 ‘’, ‘바다의 물고기’가 언급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은 의지(the will)에 속한 사랑에서 출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하고는 다른 점이, 영적 인간은, 먼저 이해(the understanding)에 속한 ‘물고기’와 ‘’가 나오고, 이어 ‘들짐승’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Here therefore “beasts” are first mentioned, and then “fowl,” and afterwards the “fish of the sea,” because the celestial man proceeds from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differing herein from the spiritual man, in describing whom “fishes” and “fowl” are first named, which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nd this to faith; and afterwards mention is made of “beasts.”

 

※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그 성향과 속성 등 근본적인 것이 정반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의지에서 출발, 이해로 나아간다면, 영적 인간은 반대로 이해에서 출발, 의지로 나아갑니다. 천적 인간은 가슴이 먼저 움직인다면, 영적 인간은 머리가 먼저 움직입니다. 천적 인간은 선의 사람인 반면, 영적 인간은 진리의 사람입니다. 참 다릅니다. 그래서 천국도 두 나라, 천적 나라, 영적 나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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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창1:24-25)

 

※ 24, 25절 속뜻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이며, 사람의 선한 애정들을 말합니다. ‘땅의 짐승’은 더 낮은, 몸과 더 연결된 애정들입니다. 24절과 25절의 순서가 정반대인 것은, 사람의 거듭남이 겉에서부터 시작, 속을 향해 점점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섯 번째 상태, 곧 주님의 생명으로 살아있는(animate) 상태가 된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사랑으로 선과 진리를 의도할 때, 비로소 그의 모든 행실은 ‘생물’(living soul), ‘가축’(beast)이 되며, 그는 ‘영적 인간’(a spiritual man)이 되고, 이 여섯 번째 상태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라 하는 것입니다.

 

 

44. 사람은, 땅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지식이 심기지 않고는 어떤 선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의,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의 일(the office of)입니다. It is the office of the understanding to hear the Word, and of the will to do it.

 

‘말씀을 듣지만 행하지는 않기’는, 마치 ‘믿음대로 살지 않지만 우리는 믿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이 되며, 주님이 다음 구절들에서 ‘어리석다’ 하신 사람들처럼 되는 겁니다. To hear the Word and not to do it, is like saying that we believe when we do not live according to our belief; in which case we separate hearing and doing, and thus have a divided mind, and become of those whom the Lord calls “foolish” in the following passage: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Whosoever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I will liken un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a rock; but everyone that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not, I liken to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 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re signified—as before shown—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nd also by 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but those which are of the will are signified here by 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and by the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also by the “wild animal of that earth.

 

 

45. 태고(太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련된 것들을 이렇게 나타냈는데, 이런 이유로, 선지서들과 구약 말씀에서도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것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Those who lived in the most ancient times thus signified the things relating to the understanding and to the will;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and constantly in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the like things are represented by different kinds of animals.

 

짐승은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은 ‘악하다’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짐승은 ‘선하다’ 합니다. Beasts are of two kinds; the evil, so called because they are hurtful; and the good, which are harmless.

 

사람 속 악들은 악한 짐승들, 가령, 곰, 늑대, 개 등으로 표현하는 반면,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가령,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합니다. Evils in man are signified by evil beasts, as by bears, wolves, dogs; and the things which are good and gentle, by beasts of a like nature, as by heifers, sheep, and lambs.

 

이 본문에 언급된 ‘짐승들’(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가리킵니다. 이 본문은 거듭나는 중인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The “beasts” here referred to are good and gentle ones, and thus signify affections, because it here treats of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사람 속 더 낮은 것들, 몸(body)과 더 연결된 것들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는데, 탐욕(cupidities)과 쾌락(pleasures)을 말합니다. The lower things in man, which have more connection with the body, are called “wild animals of that earth,” and are cupidities and pleasures.

 

 

46. ‘짐승’이 사람의 애정, 곧, 악과 함께하는 악한 애정과 선과 함께하는 선한 애정을 상징한다는 것은, 에스겔에서와 같이, 말씀 속 많은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는)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에서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또 시편에서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거듭남을 다루는,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땅의 짐승’ 역시 호세아에서처럼, 유사한 의미입니다.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에서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에서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에서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에스겔에서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것은 앗수르에 관한 말씀입니다.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는데, 영적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비유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시편에서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여기 ‘’(whales), ‘과수’(fruit tree), ‘짐승’(wild animal), ‘가축’(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 등이 언급되는데요, 이것들이 사람 속 살아있는 것들(living principles)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자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을 조심스럽게 구분했는데,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그러면서 사람 안의 선들은 ‘가축’이라 하였습니다.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과 계시록 두 곳을 보면 나옵니다.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3 (Rev. 7:11)

 

Critical Notes

 

3. 여기 이 단어는 ‘비스트’(beasts, 짐승, 야수)가 아닌,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처럼 ‘애니멀’(animals, 짐승, 동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 ‘’(ζοόν, z¯oon)과, 라틴과 영어의 ‘애니멀’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며, ‘생물’(a living creature)이라는 의미에 맞기 때문입니다. 원전(the original) 해당 구절들에서 사용된 단어는 준이며, 만일 ‘비스트’ 사용을 의도했을 때 쓸 수 있는 테르(θήρ, th¯er)나 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 아닙니다. 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 living 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19:4)

 

또한 복음을 듣게 될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47. 이들 워딩(words)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앞 구절 말씀을 잘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을 보면,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을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는데,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셨다, 그리고 ‘가축’도... 등등,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리고 나중에 천적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hese words contain arcana relating to regeneration, is evident also from its being said in the foregoing verse that the earth should bring forth “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whereas in the following verse the order is changed, and it said that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likewise “the beast”; for at first, and afterwards until he becomes celestial, man brings forth as of himself; and thus regeneration begins from the external man, and proceeds to the internal; therefore here there is another order, and external things are mentioned first.

 

 

48. 그래서 사람이 다음과 같을 때, 그는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즉, 이해에 속한 어떤 신앙의 원리로 말을 하면서, 자기는 지금 진리 안에 있다, 선 안에 있다 스스로 확신한다면 말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그때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살아있는’(animate) 것이며, 이것을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고 한 것입니다.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그가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선을 행할 때,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으며, 이때 비로소 그의 선과 진리의 행실들을 가리켜 ‘생물’, ‘가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일종의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지금의 주제입니다.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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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xQGWM8Z5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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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0(D1)-제10권8호통443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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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희와미호 2022.02.25 20: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보 다운로드하니 크게 잘 보입니다요.

창1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창1:22-23)

 

※ 22, 23절 속뜻

 

두 큰 광명체, 곧 사랑과 신앙의 빛을 받아 주님을 향한 애정이 시작된 사람의 안에는 주님의 생명이 시작되어, 그의 겉과 속 모든 것, 곧 기억-지식과 이성, 지성이 사랑과 신앙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또 자아를 향해 눈을 돌림으로 저녁이 되고,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곧 아침이 됩니다. 이는 거듭남의 완성인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우상향(右上向), 반복될 것입니다.

 

 

43.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엄청나게 결실하며(fructify), 번성합니다(multiply). 몸 안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내세에서는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Everything that has in itself life from the Lord fructifies and multiplies itself immensely; 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는 사랑에 속한 것들에 관한,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는 신앙에 속한 것들에 관한 서술입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에는 ‘씨’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번성합니다. To “be fruitful,” in the Word, is predicated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and to “multiply,” of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the “fruit” which is of love contains “seed,” by which it so greatly multiplies itself.

 

※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낱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들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도,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

 

※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 스베덴보리(1688-1772)를 통해 주님 알리신 이 아케이나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미미하고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 홍수 후 고대교회 초창기에도,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회 초창기에도, 주님 성육신 이후 기독교회 초창기에도 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저마다 오랜 세월 대하처럼 흐르는 시대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 주님의 새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각 시대 초기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복’(福,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 Lord’s “blessing” also in the Word signifies fruitfulness and multiplication, because they proceed from it.

 

※ 복은 사람 안에 천국이 있는 상태이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 지난번 다룬 것처럼 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르며,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세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 풀코스 가운데서 사람은 비록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동행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하하호호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연약함 때문인데요,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또 어느새 자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천국의 천사들조차 이런 상태변화를 겪는다 하니 우리는 자신의 이런 연약함의 오르락내리락을 결코 이상하게, 또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천사들의 증언처럼, 오히려 이런 굴곡을 통해 더욱 예리해져 가며,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이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반복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 성숙해져 가며, 그래서 어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내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더 성장,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우리가 우리를 포기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고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에 힘쓰고, 그걸 선용(善用, 쓰임새, use), 천적 지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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