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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Verse 2, 3.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 2, 3절 속뜻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육 일간의 일은 주님이 일하신 날이며, 거듭남의 완성, 곧 천적 인간의 상태는 주님이 쉬시는 날, 곧 안식일입니다. 거듭난 당사자는 나 자신이지만 나를 대신하여 싸우신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쉬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성별하사 복되게 하셨습니다. ‘창조하다’, ‘짓다’, ‘만들다’ 하는 표현들은 모두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된 표현들입니다. ‘주님의 일’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84.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일곱째 날’인데요, 주께서 육 일간 일하셨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그의 일’(his work)이라 하며, 이때 모든 전투가 그치기 때문에, 주님을 가리켜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 하는 것입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이런 이유로, 이 일곱째 날은 성별(聖別, sanctif y)되었고, 히브리어로는 싸바쓰(sabbath)라 하며, 그 뜻은 ‘안식’(rest)입니다.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이렇게 사람(man)은 창조(create), 형성(form) 및 만들어(make)졌습니다.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이 모든 것이 말씀들로부터 아주 분명합니다.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그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일이라 하셨다는 사실은 이때까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아케이나(arcana, 秘義)입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천적 인간의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적 인간의 경우는 약간 있었는데, 앞서 81번 글을 보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런 무지의 결과, 그들은 천적 인간 행세를 했습니다.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인 것과 관련하여, 이것은 주님 자신, 안식일이시고,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사실로 분명합니다.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의 의미는 주님이 사람 자체(man himself)이시며, 안식일 자체(the sabbath itself)이시라는 것입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천국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나라를 일컬어 그분으로 말미암은 일종의 안식일, 혹은 영원한 평화와 쉼이라고 합니다.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뤄지고 있는 태고교회는 이후 이 교회를 계승한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가장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주님의 모든 후속(subsequent) 및 가장 내적(inmost) 교회들 역시 일종의 안식일입니다. 모든 거듭나는 사람 역시 그가 천적이 되면 마찬가지인데요, 그것은 그의 모양이 주님을 닮기 때문입니다.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먼저 육 일간의 전투 혹은 수고가 선행합니다.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이런 것들이 유대 교회에서 육 일간의 수고와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도입된 어느 것 하나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대한 표상(representative)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같은 설명이 궤(the ark, 여호와의 법궤)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궤가 나아갈 때와 궤가 쉴 때로 말이지요. 궤가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는 것으로는 싸움과 시험(combats and temptations)을, 그리고 궤가 쉬는 것으로는 일종의 평화(peace)의 상태를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궤가 나아갈 때, 모세는 말하기를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여호와의 산을 떠난 궤를 일컬어서는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라 하였습니다.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쉼을 이사야에서는 안식일을 가지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이것이 천적 인간의 질(質, quality)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 욕구(his own desire)가 아닌,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the good pleasure of the Lord)을 따릅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desire)입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그 결과, 그는 내적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위 말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로 표현된 의미이며, 동시에 그는 겉으로도 평온과 큰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이 바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의 의미입니다.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86. ‘여섯째 날’이 된(has become) 영적 인간이 이제 천적 인간이 되려고 하는(is beginning to be) 상태가 여기서 먼저 다뤄지고 있는데요, 이때가 유대 교회에서 말하는 ‘안식일 저녁’입니다. 안식일의 거룩함을 저녁부터 지키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When the spiritual man, who has become the “sixth day,” is beginning to be celestial, which state is here first treated of, it is the “eve of the sabbath,”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keeping holy of the sabbath from the evening.
천적 인간은 이제 말씀드릴 ‘아침’입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morning” to be spoken of presently.
이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눅23:54)
87. 천적 인간을 가리켜 ‘안식일’ 또는 ‘쉼’이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천적이 될 때, 싸움이 그치기 때문입니다. Another reason why the celestial man is the “sabbath,” or “rest,” is that combat ceases when he becomes celestial.
악한 영들은 물러가고, 선한 영들과 천적 천사들이 다가옵니다. 이들이 있으면 악한 영들은 도저히 머무를 수가 없어 멀리 달아납니다. The evil spirits retire, and good ones approach, as well as celestial angels; and when these are present, evil spirits cannot possibly remain, but flee far away.
전투를 치른 사람이 이 사람 본인이 아니라 홀로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식하시니라’ 하는 것입니다. And since it was not the man himself who carried on the combat, but the Lord alone for the man, it is said that the Lord “rested.”
88.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이 될 때,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일’이라 합니다. 주님 홀로 그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오셨고, 지금까지 그를 창조해 오셨으며, 지으시고 만들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하는 것이며, 한 번 더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는 것입니다. When the spiritual man becomes celestial, he is called the “work of God,” because the Lord alone has fought for him, and has created, formed, and made him; and therefore it is here said, “God finished his work on the seventh day”; and twice, tha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인간은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여호와의 손과 손가락으로 한 일’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에,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By the prophets man is repeatedly called the “work of the hands and of the fingers of Jehovah”; as in Isaiah, speaking of the regenerat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18대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그것을 견고하게 하시되 혼돈하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거주하게 그것을 지으셨으니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1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사45:11-12, 18, 21) Thus hath said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Seek ye signs of me, signs concerning my sons, and concerning the work of my hands command ye me.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For thus hath said Jehovah that createth the heavens, God himself that formeth the earth and maketh it; he establisheth it, he created it not a void, he formed it to be inhabited; I am Jehovah and there is no God else besides me. (Isa. 45:11–12, 18, 21)
이 말씀을 보면 분명히 새 창조, 혹은 거듭남은 오직 주님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new creation, or regeneration, is the work of the Lord alone.
‘창조하다’(create), ‘짓다’(form), ‘만들다’(make)라는 표현들을 다음 두 가지 경우와, 또 창세기 본 장과 앞 장에 아주 특징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 구절 중, ‘하늘을 창조하신 이, 그가 땅을 지으시고 그것을 만드셨으며’ 하는 부분, 그리고 같은 이사야 다른 구절, 예를 들면, The expressions to “create,” to “form,” and to “make,” are employed quite distinctively, both in the above passage—“creating the heavens, forming the earth, and making it”—and in other places in the same prophet, as: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43:7) Everyone that is called by my name, I have created him for my glory, I have formed him, yea, I have made him, (Isa. 43:7)
또 창세기 1장과 지금 2장,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는 부분들입니다. and also in both the preceding and this chapter of Genesis; as in the passage before us: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속뜻을 생각할 때, 이런 용법을 만나면 늘 그 표현을 눈여겨보게 되는데요, 다음 케이스들이 바로 그런 경우들입니다. 주님을 가리켜 ‘창조하시는 분’(creator), ‘빚으시는 분’(former), ‘만드시는 분’(maker)으로 표현하는 경우들이지요. In the internal sense this usage always conveys a distinct idea; and the case is the same where the Lord is called “creator,” “former,” or “m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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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Verse 1.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 1절 속뜻
영적으로 ‘여섯째 날’에 이르게 되었을 정도로 연단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의 속 사람은 ‘천’(天, heaven),그의 겉 사람이 ‘지’(地, earth)이며, 그의 사랑과 신앙 및 관련 모든 지식이 ‘만물’(萬物, the army of them)입니다.
82. 이 구절의 의미는, 사람이 그동안 연단을 받아 이제 ‘여섯째 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상태가 되었다(have become)는 것입니다. ‘천’(天, heaven)은 그의 속 사람, ‘지’(地, earth)는 그의 겉 사람입니다. ‘만물’(萬物, the army of them)은 사랑, 신앙, 그리고 그에 속한 지식이며, 이는 앞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상징된 것입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속 사람을 ‘하늘’, 겉 사람을 ‘땅’이라 하는 것은, 앞서 전 장에서 이미 인용된 말씀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참고로, 그 말씀 중 몇을 다시 인용하면,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이 구절들에 다음 이사야 말씀들을 추가하면,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이들 말씀으로부터, ‘하늘’과 ‘땅’이 사람(man)에 관한 서술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런 표현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고는 있지만, 말씀의 내면들은 다음과 같은 속성, 곧, 교회에 관한 언급은 또한 그 교회의 모든 부분에 관한 언급일 수도 있는, 일단 그 자신, 교회가 아니면 그가 교회의 어떤 부분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한, 마치 자신이 주님의 성전이 아닌 자는 성전, 곧 교회와 천국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 절대 될 수 없는,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 천사들의 모임을 천국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천사 하나하나가 사실은 가장 작은 천국이기 때문이라는 원리와 같습니다. 구성원은 천국이 아닌데, 그걸 다 모으면 천국이 되는 그런 건 불가능하고, 넌센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에 대하여 ‘사람’(man)이라는 단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83.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고 합니다. 이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이렇게 될 때, 사랑 혹은 천적 원칙(the celestial principle)이 주요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나 영적 원칙이 아니고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천적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 즉,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해도 사랑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천적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할 때, 거의 영 순위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성’(聖)은 관례상 붙여 부른 것입니다. 엄두섭 저, ‘성 프란치스코’(은성출판사)를 꼭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 영적 인간은 영생을 추구하다 보니 주님을 만나지만,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다 보니 영생을 얻게 됩니다. 좀 과하게 비유하자면,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와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의 차이와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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