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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6.02.26 HH.7, 2장,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HH.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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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It Is the Divine of the Lord That Makes Heaven

 

HH.7

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heaven)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천국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천국을 만드는 것은, 주님한테서 나와 천사들한테로 흘러드는, 그리고 그들에 의해 수용되는 신성(Divine)입니다. 주님한테서 나오는 신성은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이므로, 천사들은 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만큼만 천사이며, 천국입니다. The angels taken collectively are called heaven, for they constitute heaven; and yet that which makes heaven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i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and flows into the angels and is received by them. And a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is the good of love and the truth of faith, the angels are angels and are heaven in the measure in which they receive good and truth from the Lord.

 

 

해설

 

이 글은 이 책, ‘천국과 지옥’ 전체를 여는 매우 중요한 기초 원리를 제시합니다. 곧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며, 그 상태의 본질은 주님한테서 나오는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첫 문장에서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을 다 합쳐 천국이라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천국이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격적 존재들의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천사들이 모여 천국을 이룹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국을 만드는 것은 천사들 자신이 아니라, 주님한테서 나와 그들 안으로 흘러들어 수용되는 주님의 신성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나아감(go forth)과 ‘흘러듦(flow into), 곧 ‘발출’과 ‘유입’입니다. 주님은 태양처럼 사랑과 진리를 끊임없이 발출하십니다. 이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는 모든 천사에게 흘러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사가 되는 이유는 단지 그 빛과 열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빛이 비추어도 천사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스베덴보리는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는 두 요소를 함께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대원리입니다. 선과 진리는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선은 사랑의 내용이고, 진리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선은 의지에 속하고, 진리는 이해에 속합니다. 천국은 단지 무엇을 ‘아는’ 상태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는’ 상태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사랑의 선과 결합될 때, 비로소 천국이 됩니다.

 

따라서 ‘천사들은 이 주님의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만큼만 천사이며, 천국이다’라는 말은, 천사도 본질상 자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은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존재입니다. 받아들이는 정도, 곧 수용의 정도가 곧 그 존재의 질을 결정합니다.

 

이 원리는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인간 역시 주님으로부터 사랑과 진리를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이 그것을 막으면, 흘러들어와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반대로 겸손과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같은 말씀을 읽어도 그 안에서 빛을 받습니다.

 

결국 이 글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있는가?’ 천국은 먼 곳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과 진리가 내 안에서 받아들여지는 정도만큼 지금 여기서 시작됩니다. 천국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내 것으로 주장하는 대신, 그분께 돌려드리며, 기꺼이 수용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HH.7이 제시하는 천국의 본질입니다. 천국은 천사들의 모임이지만, 그 본질은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가 그들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수용의 정도가 곧 천국의 깊이와 높이를 결정합니다.

 

 

심화

 

1.그들이 천국을 이루기(constitute)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천국을 만드는(make) 것은

 

HH.7에서 스베덴보리가 굳이 ‘constitute’와 ‘make’라는 두 동사를 나누어 쓴 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외형적 구성’과 ‘본질적 원인’을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HH.7 전체의 구조가 선명해집니다.

 

먼저 ‘constitute’라는 말은 ‘구성하다, 이루다, 형성하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떤 집합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도시를 구성한다’고 할 때, 시민들은 도시의 구성원입니다. 같은 의미로, 천사들은 모여서 천국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the angels taken collectively are called heaven, for they constitute heaven’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집합적, 구성적 차원’입니다. 천국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천사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곧이어 스베덴보리는 전환합니다. ‘and yet...’라고 하면서 ‘make’라는 동사를 씁니다. ‘that which makes heaven... is the Divine that goes forth from the Lord.’ 여기서 ‘make’는 단순히 구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하게 하다, 성립하게 하다, 본질을 이루다’에 가깝습니다. 즉, 무엇이 그것을 실제로 그 존재가 되게 하는가 하는 ‘본질적 원인’의 문제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constitute’ → 천사들이 천국의 구성 요소라는 점을 말함 (외형적, 집합적 차원)

make’ → 무엇이 천국을 천국 되게 하는지를 말함 (본질적, 원인적 차원)

 

스베덴보리는 이 두 층위를 의도적으로 구분합니다. 겉으로 보면 천사들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천사들 자체가 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 안에 받아들여진 ‘주님의 신적 사랑과 신적 진리’가 천국을 천국 되게 합니다.

 

만일 여기서 두 동사를 구별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오해가 생깁니다. ‘천국은 천사들이 있으니까 천국이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천사들이 구성하기는 하지만, 천국을 성립시키는 것은 주님의 신성이다.’

 

이 차이는 그의 전체 신학에서 반복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를 ‘구성’하지만, 사랑과 진리가 그들 안에 살아 있지 않으면 교회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더 깊이 보면, 여기에는 존재론적 구별이 있습니다.

 

constitute → 형상(form)의 차원

make → 본질(esse, being)의 차원

 

천사들은 형상을 이루는 주체들이고, 주님의 신성은 존재의 본질입니다. 형상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고, 본질이 빠지면 형상은 껍데기만 남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두 동사를 나눈 것은 단순한 문체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매우 정밀한 신학적, 형이상학적 구분입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천사들은 천국을 구성하지만, 주님의 신성만이 천국을 천국 되게 만든다.’

 

이 차이를 보시면 HH.7 전체가 훨씬 또렷해질 것입니다.  

 

 

2.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in general and in particular)

 

스베덴보리가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예외 없이’라는 뜻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이 표현은 논리적 강조가 아니라 존재론적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먼저 자연적 언어 감각으로 보면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는 ‘전체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라는 뜻이고, 일상적으로는 ‘빠짐없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저작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닙니다. 그는 우주와 천국, 인간, 교회, 말씀까지 모두를 ‘보편과 개별의 상응적 구조’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의 사상에서 ‘보편(general)은 단순히 큰 덩어리를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 개별적인 것들을 함께 묶어 하나로 작용하게 하는 ‘포괄적 질서’입니다. 반면 ‘개별(particular)은 그 보편 안에 들어 있는 각각의 실제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때로 ‘most particular’이라는 표현까지 써서, 가장 미세한 단위까지 포함시킵니다.

 

예를 들어, 천국을 생각해 보면, 전체 천국이라는 보편이 있고, 각 천국(삼층천)이라는 중간 보편이 있으며, 각 천사 사회, 각 천사 개인, 심지어 그 개인의 사랑과 사고의 가장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는 ‘보편’이 따로 있고 ‘개별’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은 개별들 안에서만 존재하며, 개별들은 보편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HH.7에서 ‘천국을 만드는 것은 일반적으로나 개별적으로나 신성이다(the Divine makes heaven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라고 할 때, 이것은 ‘예외 없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런 뜻입니다.

 

천국 전체를 이루는 것도 주님의 신성이며, 각 천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천국 되게 하는 것도 주님의 신성이다.’

 

만약 그가 단순히 ‘without exception’이라고 썼다면, 그것은 논리적 배제의 의미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in general and in particular’은 구조적, 유기적 포함을 말합니다. 천국이라는 전체가 주님의 신성으로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도 동일한 원리로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상응’ 사상과 연결됩니다. 상응에서는 보편과 개별이 서로 반영합니다. 큰 것은 작은 것 안에, 작은 것은 큰 것 안에 질서 있게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천국은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전체 천국은 하나의 거대한 인간 형상(the Grand Man)이고, 각 천사는 그 안의 지체입니다. 이런 사고 안에서는 ‘보편’과 ‘개별’을 항상 함께 말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말하면 구조가 무너집니다.

 

결국 이 표현은 단순히 ‘예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신적 원리가 전체 구조와 각 요소에 동시에 작용한다’는 선언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보편은 개별 안에 있고, 개별은 보편 안에 있으며, 주님의 신성은 그 둘 모두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습관적으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in general and in particular’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이해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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