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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7:10:25 AC.195, 심화 5, ‘렘46:22-24’ 1
  2. 06:15:27 AC.195, 심화 4, ‘암5:19-20’ 1

AC.195.심화

 

5. ‘46:22-24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46:22-24)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Jer. 46:22–24).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렘46:22-24를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애굽’과 ‘’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그는 이 본문을 통해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 지식들(scientifica)에 근거하여 신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상태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애굽’은 단순히 고대 국가가 아닙니다. 상응적으로는 기억 지식, 학문, 경험적 지식의 영역을 뜻합니다. 원래 이것들은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실제로 태고교회 이후의 고대교회에서는 많은 지식과 학문이 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주님과 진리를 섬기는 종의 자리를 떠나, 주님과 진리를 심판하는 자리에 올라설 때입니다. 그때 애굽은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는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라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왜 하필 뱀의 소리일까요? 창3의 뱀이 감각적 인간을 상징하듯이, 여기서도 애굽은 기억 지식과 감각적 증거를 근거로 신적인 것들을 판단하는 상태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뱀의 소리’란 단순한 말소리가 아니라, 감각과 지식을 근거로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도끼를 가지고 와서 수풀을 찍는다’는 표현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도끼는 분석하고 쪼개고 해체하는 지성의 작용을 떠올리게 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기억 지식과 감각적 추론은 모든 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려 합니다. 문제는 그 대상이 영적인 신비일 때입니다. 사랑, 신앙, 천국, 주님의 섭리 같은 것은 본래 해부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인데, 감각적 인간은 그것마저 분석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마치 숲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이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숲은 종종 진리와 지식의 풍성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완전히 조사하고 이해, 장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들은 감각과 기억 지식만으로는 결코 완전히 탐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것은 조사될 수 없다’는 말씀을, 인간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적 진리에 대한 암시로 읽습니다.

 

마지막으로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라는 말씀은 AC.195의 결론과도 연결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북쪽’은 흔히 진리의 빛이 없는 상태, 곧 어둠이나 무지를 뜻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감각과 기억 지식에 가장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더 깊은 어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은 결국 북쪽 백성의 손에 넘겨집니다. 즉, 자신을 지혜롭게 만든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영적 맹목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AC.195에서 예레미야 46장은 단순히 애굽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본문을 통해 창3의 뱀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계속 작동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감각과 기억 지식은 본래 주님께서 주신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신앙의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면, ‘애굽의 소리’는 ‘뱀의 소리’가 됩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해 보자면, 이 본문은 ‘지식질’ 또는 ‘학문질’의 위험성을 보여 주는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식이 주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성이 문제가 아니라, 이성이 주님을 재판하려 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는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감각과 기억 지식으로 신앙의 신비를 판단하려는 인간의 추론이 결국 영적 어둠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95, 심화 4, ‘암5:19-20’

AC.195.심화 4. ‘암5:19-20’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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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심화

 

4. ‘5:19-20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5:19, 20)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Amos 5:19–20)?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암5:19-20을 인용하는 이유는, 감각적 추론에 의지하는 사람이 스스로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영적 어둠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는 AC.195에서 손을 벽에 대는 것’을 자기 자신의 힘(self-derived power)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로 해석합니다. 집 안에 들어왔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벽을 짚었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뱀에게 물립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그림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경험, 지식을 의지할 때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뱀, 곧 감각적 추론의 독이 침투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창3의 뱀도 사람을 노골적인 악으로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판단하라’, ‘직접 확인하라’, ‘네 눈으로 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자유와 지혜의 확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이 실제로는 영적 시력을 잃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아모스의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벽을 짚고 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곳에 손을 올려놓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뱀에게 물린다’는 것은 단순한 공격이 아닙니다. 자기 확신이 낳는 영적 결과를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감각, 기억 지식에 의존할수록 점점 더 확신에 차게 됩니다. 그러나 그 확신이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 확신 자체가 독이 됩니다. AC.195가 계속 말하는 뱀의 독’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어지는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냐’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빛과 구원의 날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어둠의 날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빛은 그 사람의 거짓된 확신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빛이 왔는데도 어둠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빛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상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아모스의 말씀은 AC.194 AC.195 전체를 요약하는 본문처럼 보입니다. 사람은 감각을 신뢰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고, 자신의 지식을 신뢰합니다. 마치 집 안에 들어와 벽을 짚은 것처럼 안심합니다. 그러나 그가 의지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뱀이 숨어 있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물립니다.

 

목사님께서 앞서 말씀하신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다시 사용해 본다면, 이 본문은 이성질의 가장 위험한 특징은 그것이 자신을 지혜롭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둑은 자기가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감각적 추론에 사로잡힌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분별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점이 뱀의 독이 무서운 이유입니다.

 

그래서 AC.195에서 스베덴보리가 아모스를 인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이 말씀을 통해 자기 힘과 감각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영적 독에 물리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빛 없는 어둠’, 곧 진리의 빛을 받아들일 수 없는 영적 맹목 상태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195, 심화 5, ‘렘46:22-24’

AC.195.심화 5. ‘렘46:22-24’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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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95, 심화 3, ‘시58:3-5’

AC.195.심화 3. ‘시58:3-5’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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