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의 속뜻

 

14절,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Behold, thou hast cast me out this day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and from thy faces shall I be hid, and I shall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385

이 지면에서 쫓아내시온즉’은 교회의 모든 진리로부터 분리됨을,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는 사랑의 신앙의 모든 선으로부터 분리됨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는 무엇이 참이요 선인지를 알지 못함을,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는 모든 악과 거짓이 그를 파괴할 것을 의미합니다. To be “cast out from the faces of the ground”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truth of the church; to be “hid from thy faces” signifies to be separated from all the good of faith of love;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is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everyone that findeth me shall slay me” signifies that all evil and falsity would destroy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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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 안에 아직 뭔가 선한 것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보임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384

그런 걸 보면, 가인 안에 아직 뭔가 선한 것이 남아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후 체어리티의 모든 선은 사라졌는데 그건 뒤에 나오는 라멕이 한 말을 보면 분명합니다. 19절하고, 23절, 24절입니다. Hence it appears that something of good still remained in Cain; but that all the good of charity afterwards perished is evident from what is said of Lamech (verses 19, 23–24).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창4:19)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창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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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의 속뜻

 

13절,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And Cain said unto Jehovah,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38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는 자기가 악 가운데 있었다는 어떤 고백을, 이 고백은 무슨 내적 고통으로 나온 것입니다.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는 그로 인한 절망을 의미합니다. Cain said unto Jehovah” signifies a certain confession that he was in evil, induced by some internal pain; “mine iniquity is greater than can be taken away” signifies despair on that ac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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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의 속뜻,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지 못함

 

12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82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지 못함이 분명한 것은 말씀에서 ‘방황함’과 ‘피함’의 상징을 보면 됩니다. 예레미야에서처럼 That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signifies not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wandering” and “fleeing away” in the Word. As in Jeremiah:

 

13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4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그들이 만질 수 없도다 (애4:13-14) The prophets and priests wander blind in the streets, they have been polluted in blood; the things they cannot do they touch with garments, (Lam. 4:13–14)

 

여기서 ‘선지자들’은 가르치는 사람들이며, ‘제사장들’은 그에 맞춰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은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를 알지 못함입니다. where “prophets” are those who teach, and “priests,” those who live accordingly; to “wander blind in the streets” is not to know what is true and good.

 

[2] 아모스에서 In Amos:

 

7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8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암4:7-8) A part of the field was rained upon, and the part of the field whereupon it rained not withered; so two or three cities shall wander unto one city to drink waters, and shall not be satisfied, (Amos 4:7–8)

 

여기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는 체어리티의 신앙의 교리를,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는 체어리티 없는 신앙의 교리를 말합니다.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도 마찬가지로 진리 추구를 가리킵니다. where by the “part of the field on which it rained” is signified the doctrine of faith from charity; and by the “part” or “piece” “of the field on which it did not rain,” the doctrine of faith without charity. To “wander to drink the waters” likewise denotes to seek after truth.

 

[3] 호세아에서 In Hosea:

 

16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9:16, 17) Ephraim is smitten, their root is dried up, they shall bear no fruit; my God will cast them away, because they did not hearken unto him; and they shall be wanderers among the nations. (Hos. 9:16, 17)

 

여기 ‘에브라임’은 진리를 이해함, 혹은 신앙을 가리킵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가 말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체어리티를 가리키며,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는 무엇이 진리요 선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Ephraim” here denotes the understanding of truth, or faith, because he was the firstborn of Joseph; the “root which was dried up” denotes charity that cannot bear fruit; “wanderers among the nations” are those who do not know what is true and good.

 

[4] 예레미야에서 In Jeremiah:

 

28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3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렘49:28, 30) Go ye up against Arabia, and devastate the sons of the east. Flee, wander ye exceedingly; the inhabitants of Hazor have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for a habitation. (Jer. 49:28, 30)

 

게달’과 ‘동방 자손들’은 천적인 부 혹은 사랑에 속한 것들의 소유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황폐해질 때, ‘도망하라’, ‘멀리 가라’, 즉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라 하는 말을 듣는데, 바로 ‘게달’과 ‘동방 자손들’이 선한 일을 전혀 못 하는 때입니다. 하솔 주민’, 혹은 영적인 부를 소유한 사람들, 이 부는 신앙에 속한 건데, 이 부를 소유한 사람들은 하솔 주민아 깊은 곳에 살라’, 즉 그들은 멸망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Arabia” and the “sons of the east,” signify the possession of celestial riches, or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which, when vastated, are said to “flee,” and “wander,” that is, to be “fugitives and wanderers,” when they do nought of what is good. Of the “inhabitants of Hazor,” or those who possess spiritual riches, which are those of faith, it is said that they “let themselves down into the deep,” that is, they perish.

 

[5] 이사야에서 In Isaiah:

 

너의 관원들도 다 함께 도망하였다가 활을 버리고 결박을 당하였고 너의 멀리 도망한 자들도 발견되어 다 함께 결박을 당하였도다 (사22:3) All thy foremost ones wander together, they are bound before the bow, they have fled from far, (Isa. 22:3)

 

환상의 골짜기’, 혹은 체어리티 없는 신앙도 가능하다는 환상을 말하면서, 체어리티와 떨어져 있는 신앙을 주장하는 사람은 일종의 피하며 유리하는 자’, 즉 선과 진리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 하는 이유가 이어지는 구절인 14절에 나옵니다. speaking of the “valley of vision,” or the fantasy that faith is possible without charity. Hence appears the reason why it is said, in a subsequent verse (Isa. 22:14), that he who professes faith that is apart from charity is a “fugitive and a wanderer,” that is, knows nothing of good and truth.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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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을 갈다’,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의 속뜻

 

12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81

밭을 갈다’의 의미가 이런 스키즘이나 이단 경작임은 방금전까지 말한 ‘(ground)의 상징을 보면 거기 나옵니다. ‘효력을 주지 않다’가 그런 노력은 소용없음을 의미함이 분명한 것은 땅에 관한 내용들을 보아도 그렇고, 워딩 그 자체를 보아도, 뿐만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즉 체어리티 없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사실은 전혀 신앙 고백을 하는 게 아니라는 이걸 보아도 분명합니다. That to “till the ground” means to cultivate this schism or heresy appears from the signification of “ground,” of which we have just now spoken; and that its “not yielding its strength” denotes its barrenness, is evident both from what was said concerning ground, and from the words themselves, as well as from this consideration, that those who profess faith without charity, profess no faith, as was said ab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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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다’,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의 속뜻

 

12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When thou tillest the ground, it shall not henceforth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a fugitive and a wanderer shalt thou be in the earth.

 

380

밭을 갈다’는 이런 스키즘(schism)이나 이단 경작(耕作)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는 그래봐야 소용없음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는 무엇이 선이요 진리인지를 알지 못함입니다. To “till the ground” signifies to cultivate this schism or heresy; “it shall not yield unto thee its strength” signifies that it is barren. To be a “fugitive and a wanderer in the earth” is not to know what is good and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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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어리티 없는 신앙... 이런 건 신앙도 아닌 것이, 그저 신앙 관련 무슨 지식에 불과하다

 

11절,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379

위 표현들이 이런 걸 의미함은 앞서 지금까지 다룬 내용들을 보아 분명하고요, 그리고 ‘저주를 받는다’는 건 선을 싫어한다는, 즉 스스로 주님을 외면한다는 의미임은 앞서 245번 글에서 이미 보여드렸습니다. That these thing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what has gone before; and that to be “cursed” is to be averse to good, has been already shown (n. 245).

 

※ 245번 글은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창3:14)라는 말씀에 대한 겁니다. 여기 나오는 ‘저주를 받아’에 대해, 본래 주님은 누구를 외면하시거나 화를 내시거나, 벌하시거나, 시험하시거나, 심지어 죽이시고, 저주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 말씀에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게 마치 주님이 그런 분이신 것처럼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있으며, 어떻게 역사하시고 섭리하시는지, 돌이켜 선이 되게 하시는지를 보고 배울 수 있게 하심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불법과 혐오, 혹은 증오는 사람으로하여금 주님으로부터 시선을 돌려 오직 아랫것, 곧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것들, 그결과 지옥에 속한 것들만 바라보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체어리티가 쫓겨나 사라졌을 때 일어납니다. 이때 주님과 사람 사이 유대가 손상되기 때문인데요, 오직 체어리티, 혹은 사랑과 자비로만 우리는 주님과 결합하며, 체어리티 없는 신앙으로는 절대 결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체어리티 없는 신앙... 이런 건 신앙도 아닌 것이, 그저 신앙 관련 무슨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지옥스런 끔찍한 패거리들이나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걸로 선한 사람들을 아주 교활하게 속일 수도, 자신들을 빛의 천사로 위장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사악한 설교자들이 마음은 전혀 아니면서도 입술로는 아주 그럴듯하게 종종 아주 경건한 척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사람의 말이 무슨 의지나 의도 등 진정성이 없는데도 그런 거하고는 상관없이 그를 존경하거나 그의 말을 찬성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는 걸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험적으로 알지요. 그런데도 그저 머리로만 아는 신앙, 혹은 그런 신앙에서 나오는 생각들을 보고 뭔가 쓸모가 있을 것이다 믿을 정도로 그렇게 판단력이 미약한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들을 기쁘게 하고, 서로를 묶어주는 것이 바로 이것, 곧 의지, 의도, 진정성, 마음 등입니다. 사람의 의지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입니다. 그가 의도하지 않은, 즉 그의 마음이 안 담긴 생각이나 말 같은 거는 말고 말입니다. 사람은 그의 천성과 기질을 이 의지에서 얻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만일 누가 선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면, 신앙의 본질, 이것이 체어리티인데요, 이것이 그 안에 있습니다. 선이라는 것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자기는 선한 것을 생각한다 말은 하면서도 정작 사악하게 산다면, 그는 오직 악한 것밖에는 의도할 수가 없고, 그런 이유로 거기에는 신앙이라는 게 전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For iniquities and abominations, or hatreds, are what avert man, so that he looks downward only, that is, to bodily and earthly things, thus to those which are of hell. This takes place when charity is banished and extinguished, for then the bond which connects the Lord with man is severed, since only charity, or love and mercy, are what conjoin us with him, and never faith without charity, for this is no faith, being mere knowledge, such as the infernal crew themselves may possess, and by which they can craftily deceive the good, and feign themselves angels of light; and as the most wicked preachers are sometimes wont to do, with a zeal like that of piety, although nothing is further from their hearts than that which proceeds from their lips. Can anyone be of judgment so weak as to believe that faith alone in the memory, or the thought thence derived, can be of any avail, when everybody knows from his own experience that no one esteems the words or assenting of another, no matter of what nature, when they do not come from the will or intention? It is this that makes them pleasing, and that conjoins one man with another. The will is the real man, and not the thought or speech which he does not will. A man acquires his nature and disposition from the will, because this affects him. But if anyone thinks what is good, the essence of faith, which is charity, is in the thought, because the will to do what is good is in it. But if he says that he thinks what is good, and yet lives wickedly, he cannot possibly will anything but what is evil, and there is therefore no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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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의 속뜻

 

11절,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And now art thou cursed from the groun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378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는 그런 종교적 입장, 곧 스키즘(schism)을 통해 그가 외면을 자초하게 되었음을, 즉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음을, ‘그 입을 벌려’는 그 이단(heresy)이 그들을 가르쳤음을,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은 그것이 체어리티를 폭행, 사라지게 하였음을 말합니다. Cursed art thou from the ground” signifies that through the schism he had become averted; “which hath opened its mouth” signifies that the heresy taught them; to “receive thy brother’s bloods from thy hand” signifies that it did violence to charity, and extinguishe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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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 속뜻, 전자는 종파나 이단을, 후자는 교리를 의미

 

10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377

여기 ‘(ground)이 종파나 이단을 말한다는 건 ‘(field)이 교리를 가리키며, 그래서 들을 자신의 일부로 하는 ‘’은 일종의 종파라는 사실로 분명합니다. 사람 자체가 이요, 또한 입니다. 이런 것들이 사람 안에서 수정(受精)되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그 안에서 수정되는 게 무엇이냐에 따라 그런 사람이 됩니다. 선과 진리로 수정된 사람은 선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고, 악과 거짓으로 수정된 사람은 악하고 거짓된 사람이 됩니다. 어떤 특별한 교리나 이단 가운데 있는 사람은 나중에 그 이름으로 부르게 되는데요, 그래서 지금 이 본문에 나오는 이라는 용어도 종종 사람의 어떤 종파나 이단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곤 하는 것입니다. That the “ground” here signifies a schism or heresy,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a “field” signifies doctrine, and therefore the “ground,” having the field in it, is a schism. Man himself is the “ground,” and also the “field,” because these things are inseminated in him, for man is man from what is inseminated in him, a good and true man from goods and truths, an evil and false man from evils and falsities. He who is in any particular doctrine or heresy is named from it, and so in the passage before us the term “ground” is used to denote a schism or heresy i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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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호소’, 소리의 속뜻, 유죄 고발

 

10절,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And he said,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s crieth to me from the ground.

 

376

이로부터 ‘피의 호소’는 유죄 고발을 말한다 하는 건데요,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유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서처럼 From this it follows that the “crying of bloods” signifies the accusation of guilt; for those who use violence are held guilty. As in David: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시34:21) Evil shall slay the wicked, and they that hate the righteous shall be guilty. (Ps. 34:21)

 

에스겔에서 In Ezekiel: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겔22:4) Thou city art become guilty by the blood which thou hast shed. (Ezek.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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