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85,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5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이며, 그래서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안식일이라 하셨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밝혀진 적이 없는 아르카나(arcana, 秘義)입니다. 천적 인간의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고, 영적 인간의 경우는 약간 있었는데, 앞서 81번 글을 보면,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이, 실로 엄청난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 이런 무지의 결과, 그들은 천적 인간 행세를 했습니다. That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and that the seventh day was therefore hallowed, and called the sabbath, are arcana which have not hitherto been discovered. For none have been acquainted with the nature of the celestial man, and few with that of the spiritual man, whom in consequence of this ignorance they have made to be the same as the celestial man, notwithstanding the great difference that exists between them, as may be seen in n. 81.

 

※ 성 프란치스코를 비롯, 성 분도 요셉 라브르, 그리고 수많은 아토스 성산 수도사들과 그 많은 성인이라 일컬음 받는 사람들 역시 사실은 영적 인간의 완성 혹은 천적 인간에 아주 근접한 경우들이지 실제로 지상에서 천적 인간이 되어 그 본성을 접해 본 사람은 없었다는 사실에, 성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현주소를 확인하게 됩니다.

 

일곱째 날과 관련하여, 그리고 천적 인간이 ‘일곱째 날’ 혹은 ‘안식일’인 것과 관련하여, 이것은 주님 자신, 안식일이시라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사실로 분명합니다. As regards the seventh day, and as regards the celestial man being the “seventh day” or “sabbath,” this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the Lord himself is the sabbath; and therefore he says: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2:28) The son of man is Lord also of the sabbath, (Mark 2:27)

 

이 말씀에는 주님이 친히 사람이시며, 안식일 자체시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which words imply that the Lord is man himself, and the sabbath itself.

 

※ 49번 글(창1:26)에,

 

...주님은 태고교회에 한 사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 멤버들과 대면하여 대화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그들은 이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자신들에게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가령,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 지각된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통해 참 사람은 오직 홀로 주님 한 분뿐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나라를 일컬어 그분으로 말미암은 안식일, 혹은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라고 합니다. His kingdom in the heavens and on the earth is called, from him, a sabbath, or eternal peace and rest.

 

[2] 여기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는 이후 이 교회를 계승한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도 더 가장 주님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모든 이어지는 내적 교회들 역시 일종의 안식일입니다. 모든 거듭나는 사람 역시 그가 천적이 되면 마찬가지인데요, 그것은 그가 주님의 모양(a likeness of the Lord)이기 때문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here treated of, was the sabbath of the Lord above all that succeeded it. Every subsequent inmost church of the Lord is also a sabbath; and so is every regenerate person when he becomes celestial, because he is a likeness of the Lord.

 

※ 51번 글(창1:26)에,

 

...‘형상(an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a likeness)이 아니고, 모양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혹은 닮음입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 하십니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형상은 모양을 담아내는 그릇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 닮은, 주님의 자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겉뿐 아니라 속도 주님의 형상, 주님의 모양이어야 함을 알 수 있으며, 이때가 바로 천적 인간, 곧, 안식 상태의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육 일간의 전투 혹은 수고가 선행합니다. The six days of combat or labor precede.

 

※ 59번 글(창1:30)에 나오는,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 갈 때, 그는 끊임없이 영적 전투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거듭남 이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요, 사람은 그 자체가 그저 탐욕과 탐욕에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간적으로 폐지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하여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이런 탐욕의 추구에도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지게 마련이며, 그 결과, 결국엔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며, 그러면 이제 이 사람에게 개혁될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라는 내용을 보면, 참으로 주님은 섬세하시며, 사람 일생의 모든 악과 거짓조차 이런 섭리 가운데 허락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이런 모습은 현재 거듭남의 과정 중인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자녀, 성도는 물론, 기타 모든 사람을 향해서도 우리가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하는 근본적인 방향을 제공합니다.

 

이런 것들이 유대교회에서 육 일간의 수고와 일곱째 날 안식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도입된 어느 것 하나 주님과 주님 나라에 대한 표상 아닌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설명이 궤(the ark, 여호와의 법궤)로도 표현되었습니다. 궤가 나아갈 때와 궤가 쉴 때로 말이지요. 궤가 광야를 이리저리 다니는 것으로는 싸움과 시험을, 그리고 궤가 쉬는 것으로는 일종의 평화의 상태를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궤가 나아갈 때, 모세는 말하기를 These things were represented in the Jewish church by the days of labor, and by the seventh day, which was the sabbath; for in that church there was nothing instituted which was not representative of the Lord and of his kingdom. The like was also represented by the ark when it went forward, and when it rested, for by its journeyings in the wilderness were represented combats and temptations, and by its rest a state of peace; and therefore, when it set forward, Moses said: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민10:35-36) Rise up, Jehovah, and let thine enemies be scattered, and let them that hate thee flee before thy faces. And when it rested, he said, Return, Jehovah, unto the ten thousands of the thousands of Israel. (Num. 10:35–36)

 

거기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을 떠나 ‘그들의 쉴 곳을 찾은 것은 바로 여호와의 언약궤라 하였습니다. It is there said of the ark that it went from the Mount of Jehovah “to search out a rest for them” (Num. 10: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민10:33)

 

[3] 천적 인간의 쉼을 이사야에서는 안식일을 가지고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The rest of the celestial man is described by the sabbath in Isaiah:

 

13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4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사58:13-14) If thou bring back thy foot from the sabbath, so that thou doest not thy desire in the day of my holiness, and callest the things of the sabbath delights to the holy of Jehovah, honorable; and shalt honor it, not doing thine own ways, nor finding thine own desire, nor speaking a word; then shalt thou be delightful to Jehovah, and I will cause thee to be borne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 and will feed thee with the heritage of Jacob. (Isa. 58:13–14)

 

이것이 천적 인간의 질(, quality)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 태생적 욕구가 아닌, 주님의 선하신 즐거움을 따릅니다. 이것이 그의 ‘즐거움’입니다. 그 결과, 그는 내적 평화와 행복을 누립니다. 이것이 위 말씀,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로 표현된 의미이며, 동시에 그는 겉으로도 평온과 큰 기쁨을 누리는데, 이것이 바로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의 의미입니다. Such is the quality of the celestial man that he acts not according to his own desire, but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the Lord, which is his “desire. Thus he enjoys internal peace and happiness—here expressed by “being uplifted over the lofty things of the earth”—and at the same time external tranquility and delight, which is signified by “being fed with the heritage of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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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4, 창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AC.84-88)

 

2, 3절,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And on the seventh day God finished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he rested on the seventh day from all his work which he had made. And God blessed the seventh day, and hallowed it; because that in it he rested from all his work which God in making created.

 

84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일곱째 날’인데요, 주께서 육 일간 일하셨기(has worked) 때문에 이 일곱째 날, 곧, 천적 인간을 ‘그의 일(his work)이라 하며, 이때 모든 전투가 그치기 때문에, 주님이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일곱째 날은 성별되었고(聖別, sanctified), 히브리어로 ‘안식(rest)이라는 뜻을 가진 ‘שבת(샤바트, sabbath)라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man)은 창조되었고(created), 형성되었으며(formed), 만들어졌습니다(made). 이 모든 것이 말씀들로부터 아주 분명합니다. The celestial man is the “seventh day,” which, as the Lord has worked during the six days, is called “his work”; and as all combat then ceases, the Lord is said to “rest from all his work. On this account the seventh day was sanctified, and called the sabbath, from a Hebrew word meaning “rest.” And thus was man created, formed, and made. These things are very evident from the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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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3,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AC.82-83)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83

사람이 ‘여섯째 날’이 되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고 합니다. 이때 신앙과 사랑이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사랑, 즉 천적 원칙(the celestial principle)이 주요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합니다. 신앙이나 영적 원칙이 아니고 말이지요.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천적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The “heavens and the earth and all the army of them” are said to be “finished,” when man has become the “sixth day,” for then faith and love make a one. When they do this, love, and not faith, or in other words the celestial principle, and not the spiritual, begins to be the principal, and this is to be a celestial man.

 

※ 즉,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랑으로 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천적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할 때, 거의 영 순위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聖)은 관례상 붙여 부른 것입니다. 엄두섭 저, ‘성 프란치스코’(은성출판사)를 꼭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 영적 인간은 영생을 추구하다 보니 주님을 만나지만, 천적 인간은 주님을 사랑하다 보니 영생을 얻게 됩니다. 좀 과하게 비유하자면,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와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의 차이와 흡사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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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82, 창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AC.82-83)

 

1절,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And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finished, and all the army of them.

 

82

이 구절의 의미는, 사람이 그동안 연단을 받아 이제 ‘여섯째 날’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영적인 상태가 되었다(have become)는 것입니다. ‘(, heaven)은 그의 속 사람, ‘(, earth)는 그의 겉 사람입니다. ‘만물(萬物, the army of them)은 사랑, 신앙, 그리고 그에 속한 지식이며, 이는 앞서 큰 광명체들과 별들로 상징된 것입니다. 속 사람을 ‘하늘’, 겉 사람을 ‘’이라 하는 것은, 앞서 전 장에서 이미 인용된 말씀 구절들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By these words is meant that man is now rendered so far spiritual as to have become the “sixth day”; “heaven” is his internal man, and “earth” his external; “the army of them” are love, faith, and the knowledges thereof, which were previously signified by the great luminaries and the stars. That the internal man is called “heaven,” and the external “earth,”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of the Word already cited in the preceding chapter,

 

※ 참고로, 그 말씀 중 몇을 다시 인용하면,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42:5)

 

이 구절들에 다음 이사야 말씀들을 추가하면, to which may be added the following from Isaiah: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13) I will make a man more rare than solid gold, even a man than the precious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mite the heavens with terror, and the earth shall be shaken out of its place. (Isa. 13:12–13)

 

13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6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사51:13, 16) Thou forgettest Jehovah thy maker, that stretcheth forth the heavens, and layeth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but I will put my words in thy mouth, and I will hide thee in the shadow of my hand, that I may stretch out the heaven, and lay the foundation of the earth. (Isa. 51:13, 16)

 

이들 말씀으로부터, ‘하늘’과 ‘’이 사람(man)에 관한 서술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런 표현들이 주로 태고교회를 가리키고는 있지만, 말씀의 내면들은 다음과 같은 속성, 곧, 교회에 관한 언급은 또한 그 교회의 모든 부분에 관한 언급일 수도 있는, 일단 그 자신, 교회가 아니면 그가 교회의 어떤 부분이 되는 건 절대 불가능한, 마치 자신이 주님의 성전이 아닌 자는 성전, 곧 교회와 천국으로 상징되는 그 무엇이 절대 될 수 없는, 그런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From these words it is evident that both “heaven” and “earth” are predicated of man; for although they refer primarily to the most ancient church, yet the interiors of the Word are of such a nature that whatever is said of the church may also be said of every individual member of it, who, unless he were a church, could not possibly be a part of the church, just as he who is not a temple of the Lord cannot be what is signified by the temple, namely, the church and heaven.

 

※ 천사들의 모임을 천국이라 하는데, 그 이유는, 천사 하나하나가 사실은 가장 작은 천국이기 때문이라는 원리와 같습니다. 구성원은 천국이 아닌데, 그걸 다 모으면 천국이 되는 그런 건 불가능하고, 넌센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태고교회에 대하여 ‘사람(man)이라는 단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It is for this reason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is called “man,” in the singular 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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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천적인 사람에 관한 장입니다. 앞 장에서는 영적인 사람을 다루었지요. 영적인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빚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천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영적인 사람에 대해서나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먼저 저로 하여금 그 각각의 본질들을 간략히 서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차이점들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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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천적인 사람에 관한 장입니다. 앞 장에서는 영적인 사람을 다루었지요. 영적인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빚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천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영적인 사람에 대해서나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먼저 저로 하여금 그 각각의 본질들을 간략히 서술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차이점들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죽은 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 죽은 사람은 진리와 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대신 오직 육체와 세상에 속한 것에 대해서만 잘 아는, 그리고 그런 걸 아주 좋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다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원리로만 알아요. 그의 행위의 기반은 이런 신앙 원리 같은 거거든요. 사랑이 아니고 말입니다. 끝으로, 천적인 사람입니다. 천적인 사람은 영적, 천적 진리와 선을 믿고 지각하는 사람입니다. 천적인 사람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행위가 뒤따르는 신앙 말고 무슨 다른 신앙 같은 것은 모르는 그런 사람입니다. This chapter treats of the celestial man, as the preceding one did of the spiritual, who was formed out of a dead man. But as it is unknown at this day what the celestial man is, and scarcely what the spiritual man is, or a dead man, it is permitted me briefly to state the nature of each, that the difference may be known. First, then, a dead man acknowledges nothing to be true and good but what belongs to the body and the world, and this he adores. A spiritual man acknowledg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but he does so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is likewise the ground of his actions, and not so much from love. A celestial man believes and perceives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 and good, acknowledging no other faith than that which is from love, from which also he acts.

 

[2]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만 목표로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삶이 무엇인지도, 주님이 누구신지도 모릅니다. 혹시 알게 되어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들의 경우는 영원한 삶입니다. 그 결과는 곧 주님이시지요. 천적인 사람들은 바로 처음부터 주님입니다. 그 결과는 주님의 나라와 영원한 삶이지요. Second: The ends which influence a dead man regard only corporeal and worldly life, nor does he know what eternal life is, or what the Lord is; or should he know, he does not believe. The ends which influence a spiritual man regard eternal life, and thereby the Lord. The ends which influence a celestial man regard the Lord, and thereby his kingdom and eternal life.

 

[3] 죽은 상태의 사람들은 삶 가운데 전투가 있을 때, 즉 선악 간 싸움이나 진리, 거짓 간 싸움으로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면 거진 다 매번 집니다. 그렇지 않을 때, 즉 전투가 없을 때, 그때는 악과 거짓이 그를 지배하며, 그래서 그는 그들의 종이 됩니다. 그의 묶임은 겉으로 드러나는데, 예를 들면, 법, 목숨, 부, 소득, 명성 등 소위 안전한 삶을 위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영적인 사람은 전투가 있어도 늘 승리합니다. 영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묶임은 내적 묶임이며, 양심의 묶임, 속박이 있겠습니다. 천적인 사람에게는 전투가 없습니다. 악과 거짓의 무슨 난폭한 공격이 있어도 그는 그것들을 경멸, 무시해 버리며, 그래서 그는 정복자, 이긴자라 불립니다. 그는 정말 그 무엇도 그를 속박하지 못합니다. 그는 자유하며, 그에게 있어 굳이 속박이라 하면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지각능력이지 싶습니다. Third: A dead man when in combat almost always yields, and when not in combat, evils and falsities have dominion over him, and he is a slave. His bonds are external, such as the fear of the law, of the loss of life, of wealth, of gain, and of the reputation which he values for their sake. The spiritual man is in combat, but is always victorious; the bonds by which he is restrained are internal, and are called the bonds of conscience. The celestial man is not in combat, and when assaulted by evils and falsities, he despises them, and is therefore called a conqueror. He is apparently restrained by no bonds, but is free. His bonds, which are not apparent, are perceptions of good an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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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그는 주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퍼셉션을 가지고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반면 자기 자신과 세상으로부터 오는 걸 가지고 그러거나, 사람의 감각과 기억-지식들[sensualia et scientifica]을 가지고 신앙의 미스터리들을 탐구하거나 하면 절대 안 됩니다. 그런 짓들은 그의 천적 본성의 죽음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16-17절) He is also permitted to acquire a 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from the Lord, but he must not do so from himself and the world, nor search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which would cause the death of his celestial nature (verses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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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인 사람은 그런 동산입니다. 이 동산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동산 안 모든 것은 사람들이 엔조이하도록은 허락되었으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는 못 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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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인 사람은 그런 동산입니다. 이 동산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동산 안 모든 것은 사람들이 엔조이하도록은 허락되었으나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는 못 하게 하셨습니다. (15절) The celestial man is such a garden. But as the garden is the Lord’s, it is permitted this man to enjoy all these things, and ye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vers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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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78, 창2:1-17, '본문, 개요, 배경'(AC.73-81)

 

78

동산을 적시는 강’은 지혜를 가리킵니다. 네 개의 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과 진리를, 두 번째는 모든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에 관한 지식[cognitio]을 가리킵니다. 이 둘은 속 사람에게 속합니다. 세 번째는 이성을, 네 번째는 기억-지식[scientia]을 가리키며, 이 둘은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모든 것이 지혜로부터 나오며, 지혜는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10-14절) Wisdom is meant by the river in the garden. From thence were four rivers, the first of which is good and truth; the second i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of good and truth, or of love and faith. These are of the internal man. The third is reason, and the fourth is memory-knowledge [scientia], which are of the external man. All are from wisdom, and this is from love and faith in the Lord (verses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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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77, 창2:1-17, '본문, 개요, 배경'(AC.73-81)

 

77

그 다음, ‘동방 에덴동산’은 그의 지성을,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perceptions, 知覺)을, ‘먹기에 좋은 나무’는 선에 관한 퍼셉션을 말합니다. 생명 나무’는 사랑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곧 지식의 나무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8-9절) Afterwards his intelligence is described by the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which the trees pleasant to the sight are perceptions of truth, and the trees good for food are perceptions of good. Love is meant by the tree of lives, faith by the tree of knowledge [scientiae] (verses 8–9).

 

※ 퍼셉션(perception)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어서 현 인류인 우리는 그 어떤 설명으로도 도저히 이해 불가한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태고교회인들에게만 허락된 특성이었는데, 그들은 후대로 갈수록 타락, 이 퍼셉션을 점점 잃어버리다가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가 되어 멸망하게 되었고, 그 모든 일련의 상황을 노아의 홍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인류는 주님과 계속 결합할 수가 있는데, 이게 사라지는 바람에 주님은 그 대용으로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것을 허락, 비록 선대가 누리던 퍼셉션에 비하면 아주 탁하고 저급한 것이지만 이것과 말씀(the Word)으로 인류로 하여금 계속 주님과 결합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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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76, 창2:1-17, '본문, 개요, 배경'(AC.7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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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는 그의 생명을 말합니다. (7절) His life is described by the breathing into him of the breath of lives (verse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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