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105,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5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입니다. ‘동산 가운데에는(in the midst of the garden)은 속 사람의 의지 안(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입니다. 의지라는 것은, 말씀에서는 ‘마음(the heart)이라고 하는데, 사람과 천사와 함께 주님의 주된 소유(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입니다. 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사람의 것인 양 여기저기 기술되고는 있지만, 사실 사람이란 아무도 스스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 의지, 즉 마음이라는 것은 사실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탐욕(cupidity), 사람들은 이걸 의지라고 하는데요, 이 탐욕이야말로 사람의 것입니다.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가 있는 데지요, 여기가 의지이며, 그리고 인간한테는 의지는 전혀, 대신 탐욕만 있을 뿐이므로, ‘생명나무’는 참으로 주님의 자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랑과 신앙, 결과적으로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분입니다. The “tree of lives” i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in the midst of the garden” is in the will of the internal man. The will, which in the Word is called the “heart,” is the primary possession of the Lord with man and angel. But as no one can do good of himself, the will or heart is not man’s, although it is predicated of man; cupidity, which he calls will, is man’s. Since then the will is the “midst of the garden,” where the tree of lives is placed, and man has no will, but mere cupidity, the “tree of lives” is the mercy of the Lord, from whom comes all love and faith, consequently al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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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04,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4

오늘날에는 퍼셉션(perception)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만 오는 어떤 내적 감각(a certain internal sensation)인데요, 어떤 것의 참되고 선한 여부를 아는 것(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입니다. 이는 태고교회에는 아주 잘 알려져 있던 것입니다. 천사들한테는 이 퍼셉션이 매우 완벽한데요, 그들은 이 퍼셉션으로 참되고 선한 것, 주님에게서 오는 것,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서 오는 것, 그리고 또한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퀄리티(the quality of anyone)를 그의 단순한 접근과 그가 가진 생각 하나만으로도 알아차리고 또한 알았습니다. 영적 인간한테는 이 퍼셉션은 전혀 없고, 대신 양심(conscience)이라는 게 있습니다. 죽은 상태에 있는 인간은 이 양심조차 없지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양심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요, 그러니 하물며 퍼셉션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At this day it is unknown what perception is. It is a certain internal sensation, from the Lord alone, as to whether a thing is true and good; and it was very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This perception is so perfect with the angels, that by it they are aware and have knowledge of what is true and good; of what is from the Lord, and what from themselves; and also of the quality of anyone who comes to them, merely from his approach, and from a single one of his ideas. The spiritual man has no perception, but has conscience. A dead man has not even conscience; and very many do not know what conscience is, and still less what perception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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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03,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3

여기서 ‘나무’가 퍼셉션을 상징하는 이유는 천적 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 인간이 주제라면 그때는 달라지는데요, 주제에 따라 서술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The reason why “trees” here signify perceptions is that the celestial man is treated of, but it is otherwise when the subject is the spiritual man, for on the nature of the subject depends that of the pre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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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02,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AC.102-106)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And out of the ground made Jehovah God to grow every tree desirable to behold,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ves also,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102

나무(A tree)는 퍼셉션(perception)을 상징합니다.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a tree desirable to behold)는 진리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truth)을, ‘먹기에 좋은 나무(a tree good for food)는 선에 관한 퍼셉션(the perception of good)을, ‘생명나무(the tree of lives)는 사랑과 이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감각적인 것, 즉 단순한 기억-지식에서 나오는 신앙(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을 상징합니다. A “tree” signifies perception; a “tree desirable to behold,” the perception of truth; a “tree good for food,” the perception of good; the “tree of lives,” love and the faith thence derive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faith derived from what is sensuous, that is, from mere memory-knowledge.

 

※ 영어 'perception'(知覺)을 '지각'이라 번역하지 않고, 저는 그냥 발음 그대로 '퍼셉션'으로 적습니다. 이런 단어들이 여럿 나올 텐데요, 'affection'(애정), 'charity'(인애, 이웃사랑) 등이 그 예들입니다. 이들 단어들은 각각 '어펙션', '체어리티'로 적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 단어들은 그 의미와 뉘앙스가 다양해 어느 한 단어로 픽스할 경우, 나머지 다른 의미와 뉘앙스들을 다 놓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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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01,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AC.98-101)

 

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101

주님이 ‘동쪽(the east)이심은 말씀 에스겔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That the Lord is the “east” also appears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43:1-2, 4) He brought me to the gate, even the gate that looketh the way of the east, and behold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came from the way of the east; and his voice was as the voice of many waters, and the earth shone with his glory. (Ezek. 43:1–2, 4)

 

성전 건축 전, 표상교회인 유대교회(表象, the representative Jewish church)의 기도 관습, 곧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던 거룩한 지배적 관습이 있었던 것은 바로 주님이 ‘(, the east)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It was in consequence of the Lord’s being the “east” that a holy custom prevailed in the representative Jewish church, before the building of the temple, of turning their faces toward the east when they pray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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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100,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AC.98-101)

 

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100

동산(a garden)은 지성(intelligence)을, ‘에덴(Eden)은 사랑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이사야에도 나옵니다. That a “garden” signifies intelligence, and “Eden” love, appears also from Isaiah: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사51:3) Jehovah will comfort Zion, he will comfort all her waste places, and he will make her wilderness like Eden, and her desert like the garden of Jehovah; joy and gladness shall be found therein, confession and the voice of singing. (Isa. 51:3)

 

이 구절에서 ‘사막(wilderness), ‘기뻐함(joy) 및 ‘감사함(confession)은 신앙의 천적인 것들, 즉 사랑 관련된 것들에 대한 표현이지만, ‘광야(desert), ‘즐거워함(gladness) 및 ‘창화하는 소리(唱和, the voice of singing)는 신앙의 영적인 것들, 즉 이해에 속한 것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전자는 ‘에덴’에, 후자는 ‘동산’과 관계가 있는데요, 이 선지자의 경우, 동일한 것에 관한 두 가지 표현, 즉 하나는 천적인 것,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에 대한 표현이 늘 따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the garden in Eden)의 더욱 깊은 의미는 10절의 이어지는 내용을 보시면 됩니다. In this passage, “wilderness,” “joy,” and “confession” are terms expressive of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relate to love; but “desert,” “gladness,” and “the voice of singing,” of the spiritual things of faith, or such as belong to the understanding. The former have relation to “Eden,” the latter to “garden”; for with this prophet two expressions constantly occur concerning the same thing, one of which signifies celestial, and the other spiritual things. What is further signified by the “garden in Eden,” may be seen in what follows at verse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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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9,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AC.98-101)

 

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99

영적 인간의  생명, 혹은 생명의 질서(Life, or the order of life)는 다음과 같은데요, 비록 주님이 그의 신앙을 통해(through faith) 그의 이해, 이성 및 기억(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가운데로 유입 중이심에도 불구, 아직 그의 겉 사람은 속 사람과 싸우고 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지성이 주님으로부터가 아닌, 마치 그 자신으로부터 기억과 이성(memory and reason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에 속한 것들을 통해 유입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천적 인간의 생명, 혹은 생명의 질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은 사랑과 사랑의 신앙을 통해(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그의 이해, 이성, 기억 안으로 유입하시며, 이 경우, 그의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간 아무 분쟁이 없는데, 그는 이것이 정말 그렇다는 걸 지각합니다. 그래서 영적 인간의 경우에는 바로 이 순간까지 그 순서가 거꾸로였던 질서가 이제 이 천적 인간과 더불어서는 회복되었다 하는 것이며, 이때 이 질서, 곧 올바른 순서로 회복된 이 천적 인간을 가리켜 '동방의 에덴 동산'(a garden in Eden in the east)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 자신을, 가장 내적인 뜻으로는, 이는 또한 범우주적인 뜻인데요, 주님의 나라와 천국, 곧 그가 천적 인간이 되었을 때 있게 될 천국을 말합니다. 이때 그의 상태는 그 자신 천국 천사들하고 같이 있는 상태이며, 마치 그들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은 세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천국에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상태, 곧 천적 인간의 상태에서는 그의 모든 사고와 관념들(ideas of thoughts), 그리고 그의 말과 행동들까지 모두 열려 있되 심지어 주님으로부터 열려 있으며, 그 모든 것 안에 천적이고 영적인 것이 들어 있는데요, 그 이유는 그 하나하나 다 그 안에 주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생명이 그로 하여금 퍼셉션(perception)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Life, or the order of life, with the spiritual man, is such that although the Lord flows in, through faith,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in ejus intellectualia, rationalia, et scientifica], yet as his external man fights against his internal man, it appears as if intelligence did not flow in from the Lord, but from the man himself, through the things of memory and reason [per scientifica et rationalia]. But the life, or order of life, of the celestial man, is such that the Lord flows in through love and the faith of love into the things of his understanding, reason, and memory, and as there is no combat between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he perceives that this is really so. Thus the order which up to this point had been inverted with the spiritual man is now described as restored with the celestial man, and this order, or man, is called a “garden in Eden in the east.” In the supreme sense, the “garden planted by Jehovah God in Eden in the east” is the Lord himself. In the inmost sense, which is also the universal sense, it is the Lord’s kingdom, and the heaven in which man is placed when he has become celestial. His state then is such that he is with the angels in heaven, and is as it were one among them; for man has been so created that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may at the same time be in heaven. In this state all his thoughts and ideas of thoughts, and even his words and actions, are open, even from the Lord, and contain within the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for each one [of these] has the Lord’s life within it, which enables him to have per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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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8,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AC.98-101)

 

8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And Jehovah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and there he put the man whom he had formed.

 

98

동산(a garden)은 지성(intelligence)을, ‘에덴(Eden)은 사랑을, ‘동방(the east)은 주님에 대한 상징이며, 그 결과 ‘동방의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 eastward)은 천적 인간의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즉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지성을 말합니다. By a “garden” is signified intelligence; by “Eden,” love; by the “east,” the Lord; consequently by the “garden of Eden eastward” is signified the intelligence of the celestial man, which flows in from the Lord throug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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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7,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AC.94-97)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97

생명을 ‘호흡(breathing)과 ‘(breath)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태고교회 사람들이 호흡(respiration)의 상태를 가지고 사랑과 신앙의 상태를 지각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들의 후손들 가운데로 계속해서 이어지며 변화했습니다. The reason why life is described by “breathing” and by “breath” is also that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perceived states of love and of faith by states of respiration, which were successively changed in their posterity.

 

※ 여기 우리말로는 다 같이 ‘호흡’으로 번역할 수 있는 영어 표현들, ‘breathing’, ‘breath’ 및 ‘respiration’이 나오는데요, 그 차이를 찾아보면서 제가 이해한 바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앞의 둘은 호흡, 숨에 관한 동사적, 명사적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겠고요, 다만 들숨과 날숨, 폐 및 산소, 이산화탄소 등을 염두에 두면 되겠습니다. 맨 끝의 ‘respiration’은 온 몸 전체 세포의 호흡, 세포 단위의 숨이라는 뉘앙스가 느껴지네요. 그러니까 ‘온몸으로 호흡하다, 느끼다’ 같은 그런 겁니다.

 

이런 종류의 호흡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오늘날에는 이런 류의 호흡에 대해서 거의 알려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태곳적 사람들은 이에 대해 매우 친숙했고, 저세상 사람들, 곧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분들 역시도 그런데요, 이것이 바로 왜 그들이 영이나 생명을 ‘바람(wind)에 비유했나 하는 이유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이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말씀을 하시면서 바로 이런 식으로 비유하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1) Of this respiration nothing can as yet be said, because at this day such things are altogether unknown. The most ancient people were well acquainted with it, and so are those who are in the other life, but no longer anyone on this earth, and this was the reason why they likened spirit or life to “wind.” The Lord also does this when speaking of the regeneration of man, in John:1

 

(주1). 원전을 보면, '바람', '', '' 모두 동일 단어, 한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In the original languages, “wind,” “spirit,” and “breath” are all expressed by the same word. [Reviser]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요3:8) The wind bloweth where it listeth, and thou hearest the voice thereof, and knowest not whence it cometh, or whither it goeth; so is everyone that is born of the spirit. (John 3:8)

 

시편도 그런데요. So in David: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33:6) By the word of Jehovah were the heavens made, and all the army of them by the breath of his mouth. (Ps. 33:6)

 

29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30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104:29-30) Thou gatherest their breath, they expire, and return to their dust; thou sendest forth thy spirit, they are created, and thou renewest the faces of the ground. (Ps. 104:29–30)

 

숨결, 기운(the breath, [spiraculum])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신앙과 사랑의 생명을 가리키고 있음이 욥기를 보면 나옵니다. That the “breath” [spiraculum] is used for the life of faith and of love, appears from Job: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32:8) He is the spirit in man, and the breath of Shaddai giveth them understanding. (Job 32:8)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욥33:4) The spirit of God hath made me, and the breath of Shaddai hath given me life. (Job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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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96,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AC.94-97)

 

7절,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And Jehovah God formed man, dust from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9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이 표현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고대(ancient times)에는, 그리고 말씀에서는 ‘(nostrils, 콧구멍) 하면 그 향기의 결과, 뭔가 정말 좋은 걸로 이해했는데요, 이게 바로 퍼셉션(perception)입니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복적 표현, 곧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he smelled an odor of rest)라는 표현을 번제물들 및 여호와와 그의 나라를 표상하는 것들 가운데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As to its being said that “Jehovah Go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case is this: In ancient times, and in the Word, by “nostrils” was understood whatever was grateful in consequence of its odor, which signifies perception. On this account it is repeatedly written of Jehovah, that he “smelled an odor of rest” from the burnt offerings, and from those things which represented him and his kingdom;

 

※ 예를 들면,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29:18)

 

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29:25)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출29:41)

 

등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신앙에 관련된 것들이야말로 여호와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들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하시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여호와, 곧 주님의 기름 부으신 자(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를 가리켜 ‘콧김(the breath of the nostrils)이라고 한 것입니다. and as the things relating to love and faith are most grateful to him, it is said that “he breathed through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ves.” Hence the anointed of Jehovah, that is, of the Lord, is called the “breath of the nostrils” (Lam. 4: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애4:20)

 

그리고 요한복음에 기록된 대로, 주님 친히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breathing on his disciples)라는 표현을 통해 같은 걸 상징하셨습니다. And the Lord himself signified the same by “breathing on his disciples,” as written in John: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20:22)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ye the Holy Spirit. (John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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