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인들(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은 이해와 의지, 또는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을 결혼이라고 했는데요,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을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를 ‘번성(multiplications)이라고 하였습니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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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인들(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은 이해와 의지, 또는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을 결혼이라고 했는데요,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을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를 ‘번성(multiplications)이라고 하였습니다. As the most ancient people called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of faith and love, a marriage, everything of good produced from that marriage they called “fruitfulness,” and everything of truth, “multiplications.

 

※ 실제로 천국 역시 남녀의 결혼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상처럼 무슨 ‘아이를 낳는’ 그런 결혼이 아닌,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전혀 다른 결혼입니다.

 

그래서 선지서들에서도 그렇게 부르는데요, 예를 들면, 에스겔입니다. Hence they are so called in the prophets, as for instance in Ezekiel: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겔36:11-12)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multiply and be fruitful,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and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ye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yea,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even my people Israel. (Ezek. 36:11–12)

 

여기 ‘사람(man)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 인간을, ‘전 지위(ancient times)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beginnings)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 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나게 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By “man” is here meant the spiritual man who is called Israel; by “ancient times,”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The reason why “multiplication,” which is of truth, is first mentioned, and “fruitfulness,” which is of good, afterwards, is that the passage treats of one who is to become regenerated, and not of one who is already regenerated.  

 

[2] 이해가 의지와, 또는 신앙이 사랑과 연합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결혼한 땅(a married land)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When the understanding is united with the will, or faith with love, the man is called by the Lord “a married land,” as in Isaiah: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사62:4) Thy land shall be no more termed waste, but thou shalt be called Hephzibah [my delight is in her], and thy land Beulah [married], for Jehovah delighteth in thee, and thy land shall be married. (Isa. 62:4)

 

이때 열리는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sons)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daughters)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The fruits thence issuing, which are of truth, are called “sons,” and those which are of good are called “daughters,” and this very frequently in the Word.  

 

※ 그래서 저는 제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와 손녀, 더 나아가 형제와 처가, 사돈 및 친구, 친지 등을 주님의 선과 진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점점 핏줄에 대한 무슨 집착(?) 같은 것을 내려놓게 되면서, 이들을 주께 맡기기가 한결 쉬워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마12:50)

 

하신 주님의 이 말씀이 점점 더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3] 진리와 선이 많아졌을 때, 땅은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 즉 사람을 돌보실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The earth is “replenished,” or filled, when there are many truths and goods; for when the Lord blesses and speaks to man, that is, works upon him, there is an immense increase of good and truth, as the Lord says in Matthew: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13:31-32) The kingdom of the heavens is like to a grain of mustard seed, which a man took and sowed in his field, which indeed is the least of all seeds, but when it is grown, it is the greatest among herbs, and becometh a tree, so that the birds of the heavens come and build their nests in the branches thereof. (Matt. 13:31–32)

 

겨자씨 한 알(A grain of mustard seed)은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the least of all seeds)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그가 자기 스스로 그 선을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거듭남의 어떤 상태 가운데 있게 되면서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A “grain of mustard seed” is man’s good before he becomes spiritual, which is “the least of all seeds,” because he thinks that he does good of himself, and what is of himself is nothing but evil. But as he is in a state of regeneration, there is something of good in him, but it is the least of all.  

 

[4] 결국 신앙이 사랑과 결합함으로써 점점 자라 ‘(herb)이 되더니, 마침내 결합이 완성되면서 ‘나무(a tree)가 되어, ‘공중의 새들(the birds of the heavens)이 ‘그 가지에 깃들게(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들이나 지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들게’는 기억-지식들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영적일 때뿐 아니라 영적인 사람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하신 것입니다. At length as faith is joined with love it grows larger, and becomes an “herb”; and lastly, when the conjunction is completed, it becomes a “tree,” and then the “birds of the heavens” (in this passage also denoting truths, or things intellectual) “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which are memory-knowledges. When man is spiritual, as well as during the time of his becoming spiritual, he is in a state of combat, and therefore it is said, “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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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의미하는 것, 그 속뜻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ior sense of the Word)를 잃어버리면서, 이 비의(秘義, 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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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남자와 여자(male and female)가 의미하는 것, 그 속뜻(the internal sense)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the interior sense of the Word)를 잃어버리면서, 이 비의(秘義, 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그들 행복과 기쁨의 최고의 원천이었으며,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지각하고자 그들은 무엇이든 할 수만 있으면 모두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What is meant by “male and female,” in the internal sense, was well known to the most ancient church, but when the interior sense of the Word was lost among their posterity, this arcanum also perished. Their marriages were their chief sources of happiness and delight, and whatever admitted of the comparison they likened to marriage, in order that in this way they might perceive its felicity.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內的, internal)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것들로만 기뻐했습니다.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육안으로는 그저 볼 뿐, 그러나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그 영적, 천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Being also internal men, they were delighted only with internal things. External things they merely saw with the eyes, but thought of what was represented.

 

※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외적인 것들은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내적인 것들로 돌리게 하는,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내적인 것들에서 천적인 것들로, 그렇게 그들의 모든 것 되신 주님께로,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자기들 결혼의 행복의 근원일 것이라고 지각한 천국의 결혼에까지 연결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인간의 이해(The understanding)를 남자(male), 의지(the will)를 여자(female)라 하였고,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일 때, 그걸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So that outward things were nothing to them, save as these could in some measure be the means of causing them to turn their thoughts to internal things, and from these to celestial things, and so to the Lord who was their all, and consequently to the heavenly marriage, from which they perceived the happiness of their marriages to come. The understanding in the spiritual man they therefore called male, and the will female, and when these acted as a one they called it a marriage.

 

※ 즉, 태고교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는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관습이 된 말들이 나왔는데요, 선에 관한 교회의 애정으로부터 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daughter), ‘처녀(virgin), 이 경우, ‘시온의 처녀(the virgin of Zion), ‘예루살렘의 처녀(the virgin of Jerusalem) 등으로 묘사했지요, 그리고 또한 ‘아내(wife)라 하였습니다. 이들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장 23절과 3장 15절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From that church came the form of speech which became customary, whereby the church itself, from its affection of good, was called “daughter” and “virgin”—as the “virgin of Zion,” the “virgin of Jerusalem”—and also “wife.” But on these subjects see the following chapter, at verse 23, and chapter 3, verse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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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자기 형상(his image)은 신앙을,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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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자기 형상(his image)은 신앙을,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인 신앙은 이해(the understanding)에 속하는 반면, 후자인 사랑은 의지(the will)에 속하는데요,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뒤따라 나오는 거지만, 천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The reason why “image” is here twice mentioned is that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is called “his image”; whereas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and which in the spiritual man comes after, but in the celestial man precedes, is called the “imag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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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영적인 한,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반대로 속 사람에게서 겉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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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영적인 한,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에,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하신 것입니다.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반대로 속 사람에게서 겉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이 시편에서 자신을,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모양인 천적 인간을 묘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So long as man is spiritual, his dominion proceed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as is here sai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But when he becomes celestial, and does good from love, then his dominion proceeds from the internal man to the external, as the Lord, in David, describes himself, and thereby also the celestial man, who is his likeness: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8:6-8) Thou madest him to have dominion over the works of thy hands; thou hast put all things under his feet, the flock and all cattle, and also the beasts of the fields,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he fish of the sea, and whatsoever passeth through the paths of the seas. (Ps. 8:6–8)

 

그래서 여기 먼저 ‘들짐승(beasts)이, 그리고 차례대로 ‘(fowl), ‘바다의 물고기(the fish of the sea)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의지(the will)에 속한 사랑, 즉 무엇을 의도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하고는 다른 점이, 영적 인간은 먼저 ‘물고기(fishes)와 ‘(fowl)가 나오고, 나중에 ‘들짐승(beasts)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 물고기와 새는 이해(the understanding)에 속하며, 이 이해는 곧 신앙에 속합니다. Here therefore “beasts” are first mentioned, and then “fowl,” and afterwards the “fish of the sea,” because the celestial man proceeds from love, which belongs to the will, differing herein from the spiritual man, in describing whom “fishes” and “fowl” are first named, which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nd this to faith; and afterwards mention is made of “beasts.

 

※ 천적 인간과 영적 인간은 그 성향과 속성 등 근본적인 것이 정반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천적 인간은 의지에서 출발, 이해로 나아간다면, 영적 인간은 반대로 이해에서 출발, 의지로 나아갑니다. 천적 인간은 가슴이 먼저 움직인다면, 영적 인간은 머리가 먼저 움직입니다. 천적 인간은 선의 사람인 반면, 영적 인간은 진리의 사람입니다. 참 다릅니다. 그래서 천국도 두 나라, 천적 나라, 영적 나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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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the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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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the 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이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즉 닮음, 유사함(similitude)입니다. As regards the “image,” an image is not a likeness, but is according to the likeness; it is therefore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The spiritual man is an “image,” and the celestial man a “likeness,” or similitude.

 

※ 형상, 이미지를 그릇으로 보면,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얼핏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등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을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an image)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a 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In this chapter the spiritual man i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the celestial. The spiritual man, who is an “image,” is called by the Lord a “son of light,” as in John: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He that walketh in the darkness knoweth not whither he goeth. While ye have the light, believe in the light, that ye may be sons of light. (John 12:35–36)

 

그를 일컬어 ‘친구(a friend)라고도 하시지요. He is called also a “friend”: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15) Ye are my friends if ye do whatsoever I command you. (John 15:14–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a likeness)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a 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But the celestial man, who is a “likeness,” is called a “son of God,” in John: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4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As many as received him, to them gave he the power to become sons of God, even to them that believe on his name; who were born not of bloods,4 nor of the will of the flesh, nor of the will of man, but of God. (John 1:12–13)

 

4, 헬라어는 ἐξ αἱμάτων입니다. 아래 374번 글 [3] 단락을 보세요. [편집자] The Greek is ex haimat¯on. See below, at n. 374[3]. [Rev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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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50,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AC.49-52)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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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the imag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한테는 영과 천사들이 최소한 둘씩 와 있다는 사실들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 of the 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 이 사실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영들을 통한 영들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한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없이는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 우리가 잠시라도 생존할 수 있으려면 이런 악한 영들하고도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참으로 우리는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이 우리의 태생적 생명이니 말입니다...

 

[2] 아직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매사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이때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겨우 가이드만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가지고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 예를 들면, 자살하려고 최종 결심, 이제 막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든지 또는, 탐욕의 끝에 가서 갑자기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추하게 느껴진다든지, 그리고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던 중 어느 순간, 그런 감각의 충족이 가져다주는 모든 쾌락이 헛것이요,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뭐 이런 경우들을 예로 들 수 있겠으며,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재산 중 제 몫을 먼저 달라 하여 그걸 가지고 먼 나라에 가 허랑방탕하다가 굶어 죽게 되자 정신을 차리게 된 둘째 아들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경우가 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니까 설령 내가 뭘 잘못해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착각이요, 무지의 소치, 그리고 아주 위험한 생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그가 거듭남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다스림(rule)과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겉으로는 천사들이 다스리는(lead)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며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하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는, 본문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저는 그동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삼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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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한 사람(a man)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멤버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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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한 사람(a man)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멤버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나눌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이 ‘사람들(me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In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the members of which the Lord conversed face to face, the Lord appeared as a man; concerning which much might be related, but the time has not yet arrived. On this account they called no one “man” but the Lord himself, and the things which were of him; neither did they call themselves “men,” but only those things in themselves—as all the good of love and all the truth of faith—which they perceived they had from the Lord.

 

※ 처음에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속한 것(of man)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These they said were “of man,” because they were of the Lord.  

 

[2] 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man),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을, 즉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Hence in the prophets, by “man” and the “son of man,” in the supreme sense, is meant the Lord; and in the internal sense, wisdom and intelligence; thus everyone who is regenerate. As in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void and emptiness,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there was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이사야에서 ‘사람’은 속뜻으로는 거듭난 사람을, 가장 높은 뜻으로는 한 사람(the one man)이신 주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In Isaiah, where, in the internal sense, by “man” is meant a regenerate person, and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s the one man:

 

11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12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사45:11-12) Thus saith Jehovah the holy one of Israel, and his former, I have made the earth, and created man upon it; I, even my hands, have stretched out the heavens, and all their army have I commanded. (Isa. 45:11–12)  

 

[3]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사람으로(as a man)나타나셨습니다. 에스겔입니다. The Lord therefore appeared to the prophets as a man, as in Ezekiel: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1:26) Above the expanse, as the appearance of a sapphire stone, the likeness of a throne, and upon the likeness of the throne was the likeness as the appearance of a man above upon it. (Ezek. 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And when seen by Daniel he was called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which is the same thing: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7:13-14) I saw, and behold, one like the son of man came with the clouds of heaven, and came to the ancient of days, and they brought him near before him; and there was given him dominion, and glory, and a kingdom, that all people, and nations, and languages should serve him. His dominion is an everlasting dominion, which shall not pass away, and his kingdom that which shall not be destroyed. (Dan. 7:13–14)  

 

[4] 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the son of man),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The Lord also frequently calls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man, and, as in Daniel, foretells his coming in glory: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0) Then shall they see the son of man coming in the clouds of heaven with power and great glory. (Matt. 24:30)

 

구름을 타고(The 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인 반면, ‘능력과 큰 영광으로(power and great glory)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인데요,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지요. The “clouds of heaven” are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power and great glory” are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which in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has reference solely to the Lord and his kingdom; and it is from this that the internal sense derives its power and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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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요, 이때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신앙과 관련된, 이해에 속한 어떤 원리로(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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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요, 이때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신앙과 관련된, 이해에 속한 어떤 원리로(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animate) 것이며,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the fishes of the sea), ‘하늘의 새’(the fowl of the heavens)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의지에 속한 사랑으로(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진리를 말하며 선을 행할 때,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으며, 이때 그로 말미암는 것들을 가리켜 ‘생물(the living soul), ‘가축(the beast)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라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Hence then it appears that man is in the fifth state of regeneration when he speaks from a principle of faith, which belongs to the understanding,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he true and in the good. The things then brought forth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 “fishes of the sea,” and the “fowl of the heavens.” He is in the sixth state, when from faith, which is of the understanding, and from love thence derived, which is of the will, he speaks truths, and does goods; what he then brings forth being called the “living soul,” and the “beast.” And as he then begins to act from love, as well as from faith,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 “image of God,” which is the subject now treate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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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the beast)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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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말씀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또한 앞 구절 말씀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the beast)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리고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the external)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the internal)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That these words contain arcana relating to regeneration, is evident also from its being said in the foregoing verse that the earth should bring forth “the living soul,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whereas in the following verse the order is changed, and it said that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likewise “the beast”; for at first, and afterwards until he becomes celestial, man brings forth as of himself; and thus regeneration begins from the external man, and proceeds to the internal; therefore here there is another order, and external things are mentioned f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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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beasts), 사람의 애정들,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들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들을 의미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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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beasts)이 사람의 애정들,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들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요, 먼저 에스겔입니다. That “beasts” signify man’s affectionsevil affections with the evil, and good affections with the goodis evident from numerous passages in the Word, as in Ezekiel:

 

9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겔36:9, 11 거듭남을 다루면서) Behold, I am for you, and I will look back to you, that ye may be tilled and sown, and I will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and they shall be multiplied and bring forth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s in your ancient times. (Ezek. 36:9, 11, treating of regeneration)

 

요엘에서는 In Joel: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욜2:22) Be not afraid ye beasts of my field, for the dwelling places of the wilderness are become grassy. (Joel 2:22)

 

시편에서도 In David also: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시73:22) So foolish was I, I was as a beast before thee. (Ps. 73:22)

 

예레미야에서는, 거듭남을 다루면서 In Jeremiah, treating of regeneration: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31:27-28) Behold the days come, saith Jehovah,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and I will watch over them to build and to plant. (Jer. 31:27–28)

 

[2] ‘땅의 짐승들(Wild animals)도 유사한 의미인데요, 호세아입니다. Wild animals” have a similar signification, as in Hosea:

그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호2:18) In that day will I make a covenant for them with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and with the fowl of the heavens, and with the creeping thing of the earth. (Hos. 2:18)

 

욥기에서 In Job:

 

22너는 멸망과 기근을 비웃으며 들짐승을 두려워하지 말라 23들에 있는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목하게 살 것이니라 (욥5:22-23) Thou shalt not be afraid of the wild animals of the earth, for thy covenant is with the stones of the field, and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be at peace with thee. (Job 5:22–23)

 

에스겔에서는 In Ezekiel: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에서 잘지라 (겔34:25) I will make with you a covenant of peace, and will cause the evil wild animal to cease out of the land, that they may dwell confidently in the wilderness. (Ezek. 34:25)

 

이사야에서 In Isaiah: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20)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shall honor me, because I have given waters in the wilderness. (Isa. 43:20)

 

에스겔에서 In Ezekiel:

 

공중의 모든 새가 그 큰 가지에 깃들이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는 가지 밑에 새끼를 낳으며 모든 큰 나라가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였느니라 (겔31:6) All the fowls of the heavens made their nests in his boughs, and under his branches did all the wild animals of the field bring forth their young, and under his shadow dwelt all great nations. (Ezek. 31:6)

 

이것은 앗수르(the Assyrian)에 관한 말씀인데요, 앗수르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며, 영적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비유됩니다. This is said of the Assyrian, by whom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and who is compared to the garden of Eden.

 

시편입니다. In David:

 

2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7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9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10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시148:2, 7, 9-10) Glorify ye him, all his angels, glorify Jehovah from the earth, ye whales, fruit trees, wild animal, and every beast, creeping thing, and flying fowl. (Ps. 148:2, 7, 9–10)

 

여기서도 같은 것들이 언급되는데요, 바로 ‘용들(whales), ‘과수(the fruit tree), ‘짐승(wild animal), ‘모든 가축(the beasts), ‘기는 것(creeping thing), ‘나는 새(fowl)입니다. 이것들이 사람 안에 있는 살아있는 원리들(living principles)을 가리킨 게 아니라면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도록 호명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Here mention is made of the same things—as “whales,” the “fruit tree,” “wild animal,” the “beast,” “creeping thing,” and “fowl,” which, unless they had signified living principles in man, could never have been called upon to glorify Jehovah.

 

[3] 선지서들은 ‘가축(beasts)과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beasts)과 ‘들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데요,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선들을 ‘가축(beasts)이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과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들(animals)이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The prophets carefully distinguish between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earth,” and “beasts” and “wild animals of the field.” Nevertheless goods in man are called “beasts,” just as those who are nearest the Lord in heaven are called “animals,” both in Ezekiel and in John: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주3)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All the angels stood round about the throne, and the elders, and the four animals,3) (Rev. 7:11)

 

※ 주3. 여기 이 단어는 ‘비스트(beasts, 짐승, 야수)가 아닌, 흠정역(the authorized version)처럼 ‘애니멀(animals, 짐승, 동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습니다. 헬라어의 ‘(ζοόν, z¯oon)과, 라틴과 영어의 ‘애니멀’은 서로 정확히 대응하며, ‘생물(a living creature)이라는 의미에 맞기 때문입니다. 원전(the original) 해당 구절들에서 사용된 단어는 준이며, 만일 ‘비스트’ 사용을 의도했다면 썼을 법한 테르(θήρ, th¯er)나 테리온(θηρίον, th¯erion)이 아닙니다. This word is here correctly translated “animals” and not “beasts,” as in the authorized version, for z¯oon in Greek, and animal in Latin and English, precisely correspond to each other, and properly signify “a living creature.” Z¯oon is the word used in these passages in the original, and not th¯er or th¯erion, as would be the case if “beast” had been intended.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계19:4) and fell before the throne on their faces, and worshiped the lamb. (Rev. 19:4)

 

또한 복음을 듣게 될 사람들을 가리켜 ‘만민(creatures)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롭게 창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Those also who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are called “creatures,” because they are to be created anew: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Go ye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every creature. (Mark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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