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 설명, 천국은 '만큼의 나라' (2024/5/24)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거의 모든 것에 다 해당되는 말이지만, 천국, 특히 주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의 천국은 무척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천국은 ‘만큼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만 누릴 수 있는 나라라는 것이지요. 아는 만큼만, 나의 내면이 열린 만큼만 허락되는 나라...

 

천국의 ‘’ 개념이 여기서 출발하며, ‘능력’도, ‘형통’도 다 여기서 출발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만, 주님을 아는 만큼만 말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영적 역량을 넘어서는 영적 경험은 오히려 그에게 큰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량만큼만 허락하시되 그러나 그 안에서는 넘치도록 허락하시는 주님! 그래서 우리 모두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 말씀에 대한 태도 또한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만큼만 결정됩니다.

 

주님을 세상 가장 존귀한 분으로, 주님을 온 우주, 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여호와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한테는 이 기록된 말씀 하나하나에 대한 태도가 마치 천국 천사들이 말씀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뵈옵고는 어쩔 줄 몰라 하듯 그렇게 말씀 앞에 감동, 감격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한테는 주님의 허락으로 영안이 열려 말씀 안에 계신 주님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AC.2,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2그러나 기독교계는 아직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것은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일반적이든 아니든 아니, 가장 작은 일점일획에 이르기까지(一點一劃, the very

arcanacoelestia.tistory.com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 설명, '말씀의 속뜻과 겉뜻' (2024/5/23)

 

창세기 속뜻 주석을 시작하면서 중요한 건, 그렇다고 창세기 겉뜻이 틀렸다, 쓸데없다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속뜻을 모르고도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가 천국 갈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현재의 천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며,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고, 육이란, 영이 이 세상에서 옷처럼 입고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무척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겉뜻과 속뜻의 관계는 겉뜻, 곧 겉 글자는 속뜻을 담는 그릇이며, 주님의 거룩한 신적 진리(Divine Truth)이신 속뜻을 보호하는 장치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창세기 말씀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3:24)

 

여기 ‘그룹’의 속뜻이 바로 보호장치이며, ‘생명나무의 길’은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두루 도는 불 칼’은 겉뜻 안에 있는 이런저런 신적 진리를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깊이 다루겠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속뜻을 살핀다 하여 겉뜻을 소홀히 여기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와있는 천사들은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육안을 통해 말씀의 속뜻, 곧 아르카나를 읽는데요, 우리는 말씀을 읽으면서 보통은 그저 그냥저냥 하고 있어도, 이때 천사들은 아르카나에 담긴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을 뵈오며,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으로 온몸을 떤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내면, 자신의 영이 열릴수록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놀라운 광경을 더욱 느끼시며, 또 주께서 허락하시면 목격하실 수 있습니다.

 

아울러 말씀을 지나치게 무슨 원어 공부니 무슨 주석이니 하며 세상 지식 일변도의 접근을 하시지 말 것과, 속뜻을 안다고 겉뜻 가운데 있는 분들을 하찮게 여기신다거나, 겉뜻에 목숨을 거신다고, 속뜻에 힘쓰시는 분들을 이단, 삼단 정죄를 일삼거나 하시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럴 시간에 전자는 실제 실천에 힘쓰시고, 후자는 사랑에 뿌리내리시는 일에 힘쓰시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AC.1, 창1, AC.서문, 'Arcana Coelestia, 창, 출 속뜻 주석'(AC.1-5)

1구약 말씀을 단순히 그 겉 글자로만(the mere letter of the Word), 즉 기록된 글자 그대로만 읽어서는 아무도 다음과 같은 사실들, 곧 말씀의 이면(裏面, this part of the Word)에는 천국의 깊은 비밀들(deep se

arcanacoelestia.tistory.com

 

Posted by bygracetistory
,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라는 표현은, 그들이 남겨진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of faith), 신앙의 흔적들(traces)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575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라는 표현은, 그들이 남겨진 신앙의 리메인스(remains of faith), 신앙의 흔적들(traces)을 가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전 장 3절과 4절에서, ‘날들(days)과 ‘해들(years)은 그들의 때(times)와 상태(states)를 상징한다(AC.482, 487-488)는 것과, 태고인들은 그 교회의 상태와 상태 변화들(AC.487:2)을 상징하기 위해 숫자들의 서로 다른 조합들을 사용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지금은 그들이 그 교회와 관련된 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숫자 조합 방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That by the days of man being a hundred and twenty years is signified that he ought to have remains of faith, appears from what has been said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5:3–4), concerning “days” and “years” signifying times and states; and also from the circumstance of the most ancient people from numbers variously compounded signifying states and changes of states in the church; but the nature of their ecclesiastical computation is now totally lost.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3-4)

 

본 절 이 ‘백이십 년’이라는 표현에 나오는 숫자 역시 같은 방식이며, 그래서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one, 1)에서 ‘열둘(twelve, 12) 및 기타 등등 그 각각의 숫자에 감춰진 의미들부터 먼저 알지 않고서는 말입니다. 분명한 건, 그 안에 뭔가 비밀스러운 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백이십 년’이라는 인간의 수명과 선행절들하고는 맞지가 않기 때문이며, 홍수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봐도 사람들이 딱 백이십 년만 산 게 아닙니다. 창세기 11장을 보면, 셈의 경우,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되어 있고,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셀라는 에벨을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에벨은 벨렉을 낳은 후, ‘사백삼십 년’을, 그리고 노아는 홍수 후, ‘삼백오십 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숫자 ‘백이십(one hundred and twenty, 120) 안에 들어있는 의미는 ‘(ten, 10)과 ‘열둘(twelve, 12)의 의미로만 나타나는데, 이 둘이 곱해져서 백이십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들 숫자를 이루는 숫자 성분들의 상징으로부터, ‘백이십 년’은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숫자 ‘’은 ‘십분의 일(tenths, tithes 십일조)과 함께 리메인스를 상징하고 표현합니다. 이 리메인스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 안에 보관되는데, 이것은 오직 주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한편, 숫자 ‘열둘’은 신앙, 혹은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전체적으로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숫자 ‘백이십’이 이들 숫자 성분들의 조합으로 신앙의 리메인스를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Here in like manner numbers of years are mentioned, whose signification it is impossible for anyone to understand, unless he be first acquainted with the hidden meaning of each particular number from “one” to “twelve,” and so on. It plainly appears that they contain within them something else that is secret, for that men were to live a “hundred and twenty years” has no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part of the verse, nor did they live one hundred and twenty years, as is evident from the people after the flood (chapter 11), where it is said of Shem that “he lived after he begat Arphaxad five hundred years”; and that Arphaxad lived after be begat Selah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Selah lived after he begat Eber “four hundred and three years”; and that Eber lived after he begat Peleg “four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that Noah lived after the flood “three hundred and fifty years” (Gen. 9:28), and so on. But what is involved in the number “one hundred and twenty,” appears only from the meaning of “ten” and “twelve,” which being multiplied together make one hundred and twen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these component numbers it may be seen that “one hundred and twenty”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 The number “ten” in the Word, as also “tenths,” signify and represent remains, which are preserved by the Lord in the internal man, and which are holy, because they are of the Lord alone; and the number “twelve” signifies faith, or all things relating to faith in one complex; the number therefore that is compounded of these, signifies the remains of faith.

Posted by bygracetistory
,

(, flesh, )은 사람이 육-중심(body-centered)이 된 것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말씀에서 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거기 보면, 두 가지, 곧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육-중심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My spirit shall not reprove man forever, for that he is flesh; and his days shall be a hundred and twenty years.

 

574

(, flesh, )은 사람이 육-중심(body-centered)이 된 것을 상징하는데요, 이것은 말씀에서 ‘’이 상징하는 것을 보면 됩니다. 거기 보면, 두 가지, 곧 일반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는 육-중심의 사람을 상징합니다. 요엘서에서, 모든 사람을 넌지시 나타내기 위해 쓰였습니다. That “flesh” signifies that man had become corporeal, appears from the signification of “flesh” in the Word, where it is used to signify both every man in general, and also,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It is used to signify every man, in Joel: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2:28) 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flesh, and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shall prophesy, (Joel 2:28)

 

만민(flesh)은 사람들을, ‘’은 주님에게서 나와 사람 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선과 진리, 곧 인플럭스를 나타냅니다. 다윗의 글입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spirit” the influx of truth and good from the Lord. In David: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시65:2) Thou that hearest prayers, unto thee shall all flesh come, (Ps. 65:2)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In Jeremiah: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렘17:5) Cursed is the man that trusteth in man, and maketh flesh his arm, (Jer. 17:5)

 

육신’은 사람을, ‘’은 파워를 상징합니다. 에스겔입니다. where “flesh” signifies man, and “arm” power. In Ezekiel:

 

4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겔21:4-5) That all flesh may know. (Ezek. 21:4–5)

 

스가랴입니다. In Zechariah: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슥2:13) Be silent, all flesh, before Jehovah, (Zech. 2:13)

 

여기 ‘육체’는 모든 사람을 상징합니다. where “flesh” denotes every man.

 

[2] 육(flesh)은 특별히 육-중심적인 사람을 상징한다는 것이 이사야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it signifies specifically the corporeal man, is evident from Isaiah: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31:3) The Egyptian is man and not God, and his horses are flesh and not spirit, (Isa. 31:3)

 

그들의 지식은 육-중심 수준임을 상징합니다. 여기 및 말씀 어디에서나 ‘말들’은 합리적 수준, 이성적 수준을 나타냅니다. 계속해서 signifying that their memory-knowledge is corporeal; “horses” here and elsewhere in the Word denoting the rational. Again:

 

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사9:20) He shall withdraw to the right hand, and shall be hungry; and he shall devour on the left hand, and they shall not be satisfied; they shall eat everyone the flesh of his own arm, (Isa. 9:20)

 

‘고기’는 사람의 고유한 것들, 곧 육-중심의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같은 이사야입니다. signifying such things as are man’s own, which are all corporeal. In the same:

 

그의 숲과 기름진 밭의 영광이 전부 소멸되리니 병자가 점점 쇠약하여 감 같을 것이라 (사10:18) He shall consume from the soul, and even the flesh, (Isa. 10:18)

 

여기 ‘몸’은 그를 온통 사로잡고 있는 육-중심의 모든 걸 상징합니다. 계속해서 where “flesh” signifies corporeal things. Again: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사40:5-6) The glory of Jehovah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e voice said, Cry; and he said, What shall I cry? All flesh is grass, (Isa. 40:5–6)

 

여기 ‘육체’는 모든 육-중심, 몸-오리엔티드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flesh” here signifies every man who is corporeal.

 

[3] 같은 이사야입니다. In the same: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사66:16) In fire will Jehovah dispute, and with his sword with all flesh, and the slain of Jehovah shall be multiplied, (Isa. 66:16)

 

‘불’은 왜곡된 욕망에 가해지는 형벌을, ‘칼’은 거짓에 가해지는 형벌을, 그리고 ‘혈육’(flesh)은 육-중심, 몸 관련 일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각각 상징합니다. 다윗의 글입니다. where “fire” signifies the punishment of yearnings; the “sword,” the punishment of falsities; and “flesh” the corporeal things of man. In David: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시78:39) God remembered that they were flesh, a breath that passeth away, and cometh not again, (Ps. 78:39)

 

이 말씀은 광야에서 살(flesh)과 고기(meat)를 탐했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몸-중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육(flesh)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그들은 그저 육-중심, 몸 수준 보상만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speaking of the people in the wilderness desiring flesh, because they were corporeal; their desiring flesh represented that they desired only things corporeal (Num. 11:32–34).

 

32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민11:32-34)

Posted by bygracetistory
,

천국의 해는 주님이시다. 그곳 빛은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이며, 열은 신적 선(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이다. 이 두 가지는 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이 근원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이 형성되고 나타난다.

 

14

천국에 있는 해

The Sun in Heaven

 

117

천국에서는 이 세상 해가 보이지 않고, 그 해에 의해 생겨난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지만, 그러나 천국에도 해가 있고, 빛과 열,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외 무수히 많은 다른 것이 있다. 다만 근원이 다를 뿐이다. 천국에 있는 것은 영적이고, 세상에 있는 것은 자연적이기 때문이다. 천국의 해는 주님이시다. 그곳 빛은 신적 진리(the Divine truth)이며, 열은 신적 선(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이다. 이 두 가지는 해이신 주님으로부터 나온다. 이 근원으로부터 천국의 모든 것이 형성되고 나타난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천국의 해에 대해서만 설명하겠다. 천국에서 주님이 해처럼 보이시는 이유는, 마치 이 세상 해에 의해 모든 자연 존재가 생기듯이 주님이 모든 영적 존재의 근원이신 신적 사랑(Divine love, from which all spiritual things)이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해같이 빛나는 것이다. Although the sun of the world is not seen in heaven, nor anything from that sun, there is nevertheless a sun there, and light and heat, and all things that are in the world, with innumerable others, but not from a like origin; since the things in heaven are spiritual, and those in the world are natural. The sun of heaven is the Lord; the light there is the Divine truth and the heat the Divine good that go forth from the Lord as a sun. From this origin are all things that spring forth and are seen in the heavens. This light and heat and things existing therefrom in heaven will be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s; in this chapter we will speak only of the sun there. In heaven the Lord is seen as a sun, for the reason that he is Divine love, from which all spiritual things, and by means of the sun of the world all natural things, have their existence. That love is what shines as a sun.

Posted by bygracetistory
,

이 세상 해나 그 해로 인해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자연적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이 세상 해에서 시작되므로 해에 의해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자연적(natural)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천국을 포함한 영계는 자연계를 초월해(above nature) 존재하고, 자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상응에 의하지 않고는 두 세계 사이의 교류도 있을 수 없다.

 

14

천국에 있는 해

The Sun in Heaven

 

116

이 세상 해나 그 해로 인해 생겨난 것은 전적으로 자연적이기 때문에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자연은 이 세상 해에서 시작되므로 해에 의해 생성되는 모든 것은 자연적(natural)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천국을 포함한 영계는 자연계를 초월해(above nature) 존재하고, 자연적인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상응에 의하지 않고는 두 세계 사이의 교류도 있을 수 없다. 두 세계의 차이에 대해서는 단계를 설명할 때 (38번 글), 또 그 교류에 대해서는 앞의 두 장에서 상응을 설명할 때 이미 밝힌 바 있다. In heaven neither the sun of the world, nor anything from that sun, is seen, because it is wholly natural. For nature has its beginning from that sun, and whatever is produced by means of it is called natural. But the spiritual, to which heaven belongs, is above nature and wholly distinct from what is natural; and there is no communication between the two except by correspondences. What the distinction between them is may be understood from what has been already said about degrees (n. 38), and what the communication is from what has been said in the two preceding chapters about correspondences.

 

 

HH.38, '5장, 세 천국이 있다'(HH.29-40)

※ 단계(degrees, gradus)라는 것이 어떻게 신적 질서와 관계되는가를 모르면, 세 천국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사람의 내면과 외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5세 천국이 있다There Are Three

bygrace.kr

 

Posted by bygracetistory
,

상응에 의하면, 금은 태고인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천적 선을, 은은 그 다음 고대인들이 지녔던 영적 선을, 구리는 그 후예들의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은 가장 나중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며, 선에서 떠난 진리를 의미한다.

 

13

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115

내가 천국에서 알게 된 것은, 지구 최초의 사람들은 천적인 사람들이었으며, 상응 자체로 생각했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자연적인 것은 상응에 따라 생각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 특성 때문에 그들은 천사와 교류하고 대화했고, 따라서 그들을 통해 천국은 세상과 결합되었다. 이런 까닭에 그 시대를 황금(黃金) 시대(the Golden Age)라고 불렀으며, 수많은 고대 문인들이 ‘그때는 하늘에 사는 이들이 사람과 함께 지냈고, 친구처럼 서로 사귀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은 사람들은 상응 자체를 가지고 생각하지 않고, 상응에 관한 지식에 의해 생각했다. 이 시대에도 천국과 세상이 결합은 되어 있었지만, 그리 직접적이지 못했다. 이 시기를 은(銀) 시대(the Silver Age)라고 한다. 그 후대 사람들은 상응 지식은 어느 정도 있었으나 그 지식에 의해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대 사람들은 영적 선 안에 있었지만, 이들은 자연적 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동(銅) 시대(the Copper Age)라고 부른다. 그 후 사람은 점차 외면적이 되어가다가 끝내 육체적(corporeal)이 되어 상응에 관한 지식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와 함께 천국에 대한 참된 개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위의 시대들을 금, 은, 동으로 이름한 것도 상응에 따른 것이다.주86 상응에 의하면, 금은 태고인들이 지녔던 것과 같은 천적 선을, 은은 그 다음 고대인들이 지녔던 영적 선을, 구리는 그 후예들의 자연적 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철은 가장 나중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며, 선에서 떠난 진리를 의미한다. I have been taught from heaven that the most ancient men on our earth, who were celestial men, thought from correspondences themselves, the natural things of the world before their eyes serving them as means of thinking in this way; and that they could be in fellowship with angels and talk with them because they so thought, and that thus through them heaven was conjoined to the world. For this reason that period was called the Golden Age, of which it is said by ancient writers that the inhabitants of heaven dwelt with men and associated with them as friends with friends. But after this there followed a period when men thought, not from correspondences themselves, but from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and there was then also a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 but less intimate. This period was called the Silver Age. After this there followed men who ha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but did not think from that knowledge, because they were in natural good, and not, like those before them, in spiritual good. This period was called the Copper Age. After this man gradually became external, and finally corporeal, and then the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was wholly lost, and with it a knowledge of heaven and of the many things pertaining to heaven. It was from correspondence that these ages were named from gold, silver, and copper,86 and for the reason that from correspondence gold signifies celestial good in which were the most ancient people, silver spiritual good in which were the ancient people that followed, and copper natural good in which were the next posterity; while iron, from which the last age takes its name, signifies hard truth apart from good.

 

 

86. 상응으로 금은 천적 선을 의미한다. Gold from correspondence signifies celestial good (n. 113, 1551, 1552, 5658, 6914, 6917, 9510, 9874, 9881). 은은 영적 선, 즉 그 근원이 천적인 진리를 의미한다. Silver signifies spiritual good, that is, truth from a celestial origin (n. 1551, 1552, 2954, 5658). 동은 자연적 선을 의미한다. Copper signifies natural good (n. 425, 1551). 철은 순서상 가장 바깥쪽 진리를 의미한다. Iron signifies truth in the outmost of order (n. 425, 426).

Posted by bygracetistory
,

사람은 상응 지식이 있으면 그 마음속 생각은 천사들과 함께할(to be associated with)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속(영적) 사람은 천사와 연합할(to be conjoined with) 수 있다.

 

13

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114

상응 지식과 그 용도에 대해 한 가지 언급할 것이 있다. 앞에서 밝혔듯, 영계, 즉 천국은 상응에 의해 자연계와 결합한다. 그러므로 상응을 통해서 사람은 천국과 교류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다. 천국의 천사는 사람이 하듯 자연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은 상응 지식이 있으면 그 마음속 생각은 천사들과 함께할(to be associated with)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속(영적) 사람은 천사와 연합할(to be conjoined with) 수 있다. 천국과 사람이 결합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은 순전히 상응으로 기록되었다. 즉 성경 안의 모든 말씀은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상응인 것이다.주84 따라서 만약 사람이 상응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성경 말씀의 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결과, 문자적 의미로는 알 수 없었던 비의(秘義)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문자의 의미와 영적 의미가 있다. 문자의 의미는 세상에 속한 것으로, 영적 의미는 천국에 속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국과 세상의 결합이 상응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한 획에 이르기까지(down to the least jot) 세밀하게 상응으로 이루어진 성경 말씀이 주어진 것이다.주85 Something shall now be said about the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and its use. It has been said above that the spiritual world, which is heaven, is conjoined with the natural world by means of correspondences; therefore by means of correspondences communication with heaven is granted to man. For the angels of heaven do not think from natural things, as man does; but when man has acquire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he is able, in respect to the thoughts of his mind, to be associated with the angels, and thus in respect to his spiritual or internal man to be conjoined with them. That there might be such a conjunction of heaven with man the Word was written wholly by correspondences,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it being correspondent.84 If man, therefore, had a knowledge of correspondences he would understand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and from that it would be given him to know arcana of which he sees nothing in the sense of the letter. For there is a literal sense and there is a spiritual sense in the Word, the literal sense made up of such things as are in the world, and the spiritual sense of such things as are in heaven. And such a Word, in which everything down to the least jot is a correspondence, was given to men because 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world is effected by means of correspondences.85

 

 

84. 말씀은 순전히 상응으로만 기록되었다. The Word was written wholly by correspondences (n. 8615). 말씀으로 사람은 천국과 결합한다. By means of the Word man has conjunction with heaven (n. 2899, 6943, 9396, 9400, 9401, 10375, 10452).

 

 

85. 말씀의 속뜻과 관련, 작은 책자, ‘백마(White Horse)(계시록에 나오는)를 보라 Concerning the spiritual sense of the Word see the little work White Horse referred to in Revelation.

Posted by bygracetistory
,

신적 질서에 따르는 모든 것이 천국에 상응하듯, 신적 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지옥에 상응한다.

 

13

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113

신적 질서에 따르는 모든 것이 천국에 상응하듯, 신적 질서에 어긋나는 모든 것은 지옥에 상응한다. 천국에 상응하는 것은 선과 진리에 관련하고, 지옥에 상응하는 것은 악과 거짓에 관련한다. As all things that are in accord with Divine order correspond to heaven, so all things contrary to Divine order correspond to hell. All things that correspond to heaven have relation to good and truth; but those that correspond to hell have relation to evil and falsity.

Posted by bygracetistory
,

주의 나라는 목적의 나라(a kingdom of ends)이고, 그 목적은 쓰임새(uses)다. 쓰임새의 나라(a kingdom of uses)이고, 그 쓰임새가 목적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서나 쓰임새가 물질의 옷을 입고 행동, 또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이다(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13

천국과 지상의 모든 것 간에 어떤 상응이 존재한다

There Is a Correspondence of Heaven with All Things of the Earth

 

112

천국과 세상이 상응에 의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몇 마디 언급하겠다. 주의 나라는 목적의 나라(a kingdom of ends)이고, 그 목적은 쓰임새(uses)다. 쓰임새의 나라(a kingdom of uses)이고, 그 쓰임새가 목적이라고 해도 같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어디에서나 쓰임새가 물질의 옷을 입고 행동, 또는 결과로 나타나도록 만드신 것이다(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이것은 먼저 천국에, 그 다음엔 이 세상에, 단계적이고 연속적으로 내려와 자연계의 최종단계(the outmost things of nature)에 이른다. 따라서 쓰임새를 통해 자연계와 영계, 즉 세상과 천국이 상응하고 결합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쓰임새가 입고 있는 형상(the form in which uses are clothed)은 그것이 쓰임새의 형상인 정도만큼만(just to the extent that they are forms of uses) 상응이 되고, 결합의 수단이 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 중 질서에 맞는 것은 모두 쓰임새의 형태이고, 쓰이기 위해 그 용도대로 형성된 결과물(forms of uses, or effects formed from use for use)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계의 존재들이 상응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가 신적 질서에 따라(in accordance with Divine order) 살아감으로써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만큼만 그의 행위는 쓰임새의 형상이 되고, 또 그를 천국과 연결시켜 주는 상응물이 된다(are his acts uses in form, and correspondences). 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to perform uses).주83 나아가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은 자연계를 영계에 연결하는 수단, 즉 결합의 매개체(the medium of conjunction)라는 사실이다.(위 57번 글 참조) 그러므로 사람이 영적인 정도에 따라 그만큼 결합의 매체가 되고, 반면 자연적이기만 하고, 영적이지 않은 사람은 결합의 매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을 통하지 않아도 따로 신성의 입류(a Divine influx)가 계속 세상으로 흘러들며, 이 입류는 사람의 물질적 측면 안으로는 유입되지만, 사람의 합리적 기능(man’s rational faculty) 안으로는 유입되지 않는다. How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world is effected by means of correspondences shall also be told in a few words. The Lord’s kingdom is a kingdom of ends, which are uses; or what is the same thing, a kingdom of uses which are ends. For this reason the universe has been so created and formed by the Divine that uses may be everywhere clothed in such a way as to be presented in act, or in effect, first in heaven and afterwards in the world, thus by degrees and successively, down to the outmost things of nature. Evidently, then, the correspondence of natural things with spiritual things, or of the world with heaven, is through uses, and uses are what conjoin; and the form in which uses are clothed are correspondences and are conjunctions just to the extent that they are forms of uses. In the nature of the world in its threefold kingdom, all things that exist in accordance with order are forms of uses, or effects formed from use for use, and this is why the things in nature are correspondences. But in the case of man, so far as he is in accordance with Divine order, that is, so far as he is in love to the Lord and in charity toward the neighbor, are his acts uses in form, and correspondences, and through these he is conjoined to heaven. To love the Lord and the neighbor means in general to perform uses.83 Furthermore, it must be understood that man is the means by which the natural world and the spiritual world are conjoined, that is, man is the medium of conjunction, because in him there is a natural world and there is a spiritual world (see above, n. 57); consequently to the extent that man is spiritual he is the medium of conjunction; but to the extent that a man is natural, and not spiritual, he is not a medium of conjunction. Nevertheless, apart from this mediumship of man, a Divine influx into the world and into the things pertaining to man that are of the world goes on, but not into man’s rational faculty.

 

 

83. 모든 선은 쓰임새로부터, 그리고 쓰임새를 따라 그 즐거움과 퀄러티를 가지는데, 그래서 이런 게 쓰임새이고, 이런 게 선이다. Every good has its delight as well as its quality from use and in accordance with use; therefore such as the use is, such is the good (n. 3049, 4984, 7038). 천사들의 생명은 사랑과 체어리티의 선, 즉 쓰임새 수행으로 이루어진다. Angelic life consists in the goods of love and charity, that is, in performing uses (n. 454). 주님이, 그리고 그 결과 천사들이 사람에 관해 보는 것은 오직 그 목적, 곧 쓰임새다. The Lord, and consequently the angels, look only, in regard to man, to ends, which are uses (n. 1317, 1645, 5854). 주님의 나라는 쓰임새의 나라, 곧 목적의 나라이다. The Lord’s kingdom is a kingdom of uses, that is, of ends (n. 454, 696, 1103, 3645, 4054, 7038).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쓰임새를 수행하는 것이다. Serving the Lord is performing uses (n. 7038). 사람한테 있어 개별적인, 그리고 전체적인 일이란 쓰임새를 수행해 온 일이다. Each thing and all things in man have been formed for use (n. 3626, 4104, 5189, 9297); 또한 쓰임새로부터, 즉 쓰임새는 사람 안의 장기(臟器)들, 바로 쓰임새가 수행되는 장기들보다 우선하는데, 쓰임새란 주님의 흘러들어오심으로부터 천국을 통해서 오기 때문이다. also from use, that is, the use is prior to the organic forms in man through which the use is performed, because use is from the inflowing of the Lord through heaven (n. 4223, 4926). 더욱이 사람의 내면은, 이는 그의 마음으로 구성되는데, 그가 성숙해지면서 쓰임새로 말미암아, 그리고 쓰임새를 위해 형성된다. Moreover man’s interiors, which constitute his mind, when he grows to maturity are formed from use and for use (n. 1964, 6815, 9297). 결론적으로, 사람은 쓰임새와 함께하는 그런 존재이다. Consequently man is such as are the uses with him (n. 1568, 3570, 4054, 6571, 6935, 6938, 10284). 쓰임새란 쓰임새를 위한 목적이다. Uses are the ends for the sake of which (n. 3565, 4054, 4104, 6815). 쓰임새는 처음이자 나중, 곧 사람의 모든 것이다. Use is the first and the last, thus the all of man (n. 1964).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