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말씀의 속뜻 (2023/4/27)

 

※ 오늘 매일예배 본문 일부를 그대로 옮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눅7:28)

 

...여기서 ‘여자’는 지상의 교회를 뜻하며,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는 요한, 즉 지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소유하는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지극히 어둡고 투박한 진리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입니다. 지상의 진리는 아무리 심오한 것이라도 천국 천사들의 것에 비하면 지극히 낮은 진리라는 것이지요...

 

※ 아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편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제가 조금 풀어본 것입니다.

 

천국은 세 천국, 곧 일층천(자연적, natural), 이층천(영적, spiritual) 및 삼층천(천적, celestial)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또한 사람 내면의 구조 세 단계와 상응합니다. 즉 첫 번째 단계만 열린 사람은 일층천으로, 두 번째 단계까지 열린 사람은 이층천, 세 번째까지 다 열린 사람은 삼층천으로 가게 되지요.

 

천국의 이런 차등 구조는 주님의 신성을 수용하는 특성, 곧 주님의 신성 중 선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삼층천, 진리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이층천, 그리고 둘 다 반응하되 천국의 가장 바깥 천국은 일층천 등 그 특성에 따른 것입니다.

 

세 천국은 그 역량 또한 서로 달라 가령, 지혜로 말할 것 같으면, 각 천국 천사들 간 지혜의 차이는 수천수만 배 차이가 나는데요, 즉 삼층천 천사들의 지혜는 이층천 천사들의 지혜보다 그만큼 더 높고 깊으며, 이층천은 일층천과, 그리고 일층천은 이 지상과 그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낮은 천국 천사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높은 천국 천사들에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런 지혜 세계의 웅장한 질서에 대하여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지상에서 자기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배운 게 많아도 주님의 지혜에 관하여는 하다못해 일층천 천사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주님 앞과 사람들 앞에 매사 겸손할 것입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예를 들면, 일층천 천사가 이층천 천국에 들어가면 (사실은 마음대로 갈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이층천에 맞는 내면이 열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사실은 그곳에 수많은 사람과 형용할 수 없는 사물이 가득함에도 그렇습니다. 각 천국은 해당되는 내면이 열린 사람이라야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주님이 허락, 무슨 임시 안전조치를 취해 주신 덕분입니다.

 

방금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다’고 했는데요, 이 말은 천국 간 왕래를 주님이 일반적으로는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각 천국은 사실은 천사 자신의 일종의 정체성이어서인데요, 해당 천국의 정체성을 가진 천사가 다른 천국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그가 가진 정체성에 큰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특정 천국 안 수많은 공동체 간 왕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참고로, 천국 모든 멤버들을 ‘천사’라 하며, 우리 역시 사후 해당 천국으로 배정되면 모두 천사가 됩니다. 주님은 천사 따로, 사람 따로 지으신 게 아닙니다. 주님 자신 ‘참 사람’(Divine Human)이시기 때문이며, 참 사람이신 주님은 결코 사람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별도로 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말씀을 겉 글자, 문자 그대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계21:17)

 

주님을 사랑하오며,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오며...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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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예배(2023/4/27, 눅7:24-28), '세례(침례) 요한 (John the Baptis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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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제사장 기도의 속뜻 (2023/4/26)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6:24-26)

 

지인 중 한 분이, 자기는 이 말씀으로 자녀들을 많이 축복했는데, 아이들이 성장,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며, 경제적으로 쉽지가 않아져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날 이런 축복을 하셨으니 이제 그 책임을 좀 지시라며 이것저것을 요구, 속이 많이 상하시다는... 저로서는 좀 어리둥절한 상담 요청이었는데요...

 

저 역시 지난날 큰 교회 마을사역자로 여러 해 섬기며 마을 내 각종 이사 심방을 다닐 때, 심방 후 밖으로 나와 현관문 위에 교패를 부착, 거기에 손을 얹고 함께한 심방팀과 함께 위 말씀으로 축복기도를 하곤 했기 때문에...

 

겸사 나는 과연 어떤 뜻으로 그동안 이 말씀을 가까이하고, 애용(?)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속뜻을 좀 살펴본 후, 늦은 밤이지만 답신을 드렸고, 감사하다는 회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래는 위 본문에 대한 속뜻 주석 원문입니다.

 

...Jehovah bless thee and keep thee; Jehovah make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be gracious unto thee; and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give thee peace (Num. 6:24-26). Divine truth, from which is all intelligence and wisdom, with which the Lord flows in, is meant by "Jehovah makes His faces to shine upon thee;" and protection thereby from falsities is meant by "be gracious unto thee;" and the Divine good, from which is all love and charity, with which the Lord flows in, is meant by "Jehovah lift up His faces upon thee;" and protection thereby from evils, and thence heaven and eternal happiness, are meant by "give thee peace;" for when evils and falsities are removed and no longer infest, the Lord flows in with peace, in which and from which is heaven and the delight that fills with bliss the interiors of the mind, thus heavenly joy...

(AC.10137:12)

 

본문만 번역하자면...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는 신적 진리(Divine truth)를 의미하는데, 모든 지성과 지혜가 이 신적 진리에서 나오며, 주님의 흘러들어오심 역시 이 신적 진리를 동반하시는, 그런 진리를,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거짓들로부터 보호하심을,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는 신적 선(Divine good)을 의미하는데, 모든 사랑과 인애(charity)가 이 신적 선에서 나오며, 주님의 흘러들어오심 역시 이 신적 선을 동반하시는, 그런 선을,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악들로부터 보호하심을, 그리고 천국과 영원한 행복을 의미한다는...

 

대략 뭐 이런 뜻이 되겠는데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는 주님의 신성이신 신적 선과 신적 진리에 대한 말씀이며,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다른 그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구하며, 이것으로 복을 빌라시는 말씀입니다.

 

즉, ‘’이란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우리 안에 주님의 신성이 갖추어지면, 자연히 천국하고도 통하게 되어 천국의 모든 복이 우리 삶 가운데 흘러들어온다는 그런 것!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 주시는, 하늘의 모든 걸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환경부터 먼저 갖추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속 사람이 있고, 겉 사람이 있듯, ‘’ 역시 내적(內的, internal)인 복이 있고, 외적(외적, external)인 복이 있는데요, 모든 것이 그렇듯 영적인 것은 반드시 자연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출발한 모든 것은 반드시 자연계의 것으로 도착,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즉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그 역순은 없으며, 속, 즉 내면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도 겉, 즉 자연적, 물질적 복을 받는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며, 뭔가 위험한 것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위 민수기 6장 ‘제사장 기도’는 주님의 신성을 구하는 기도, 주님의 신적 성품을 구하는 자에게 하시는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본문의 속뜻을 바로 알고, 일상 가운데 부지런히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찬양, 감사,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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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2023/4/25)

 

그 내면이 죽은 상태인 사람(a dead man)은 영적 전투에서 언제나 지고, 전투 중이 아닐 땐 악과 거짓의 종으로 지냅니다. 악과 거짓이 그를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매임(bonds)은 외적(外的, external)인데, 이를테면 법을 두려워함이라든지, 혹은 생명이나 부, 이익 및 평판 등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혹시 잃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영적인 사람(the spiritual man) 역시 영적 전투 가운데 있으나 전자와는 달리 그는 늘 이기며, 그 역시 무슨 매임이 있지만, 그것은 전자와는 달리 내적(內的, internal)이며, 양심(conscience)이라고 하는 매임입니다. (AC.81)

 

이는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天界秘義,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창세기 2장 도입부에 나오는 내용으로서, 세 종류의 사람에 관한 설명 중 일부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란, 사실은 그 내면에 있어 각각 ‘죽은’(dead) 상태인 사람, ‘영적’(spiritual) 상태에 있는 사람, 그리고 ‘천적’(天的, celestial) 상태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창세기 1장은 앞에 두 사람에 관한 내용이며, 창세기 2장 전반부인 1절로 17절은 세 번째 상태인 천적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죽은 자는 겉으로는 주님의 선과 진리를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과 세상 재물을 믿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영적이며, 그러므로 살아있다 생각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교회 안에도 죽은 자들이 참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자에 대한 말씀입니다...

 

유튜브 : https://youtu.be/33_bAHMP-5M

 

블로그 : https://bygrace.kr/1505

 

매일예배(2023/4/25, 눅7:11-17),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주님'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33_bAHMP-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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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를 빨간 불에 건넜다가...’ (2023/4/20)

 

저희 아파트 맞은편에 로제비앙이 들어서면서 우아한(?) 산책로가 새로 생겨 아침, 저녁 애용하고 있습니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경로로 다니다 보니 로제비앙 경비 아저씨하고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저를 로제비앙 식구로 아시는 듯... ㅋㅋ

 

오봉산 자락 아래라 이른 아침이면 살짝 포근한 산안개를 배경으로 온갖 새 소리가 아직 새벽 미명 저의 내면 저 깊은 심령마저 아주 싱그럽고 청아하게 만듭니다. 새들은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내는 걸까요? 참 신비롭습니다!

 

주변이 다 개발된 후 들어선 아파트라 정문이며, 후문이며... 살짝 좀 엉뚱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는데... 정문은 사람들 거의 안 다니는, 그저 차만 부지런히 다니는, 좀 외진 데로 났습니다. 도로는 참 잘 닦았는데 정작 인적은 무척 드문...

 

며칠 전, 정문 횡단보도 앞에서, 시간도 이르고, 인적이며 차량도 없어 빨간 불에 한 번 건너봤습니다. 여기 신호가 제법 길거든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았고, 그래서 이후 계속 신호와 상관없이 눈치껏 적당히 건너기를 계속했습니다.

 

한편으로, 최근 언제부턴가 제 심령이 평소처럼 맑지가 않고, 무슨 안개가 낀 것처럼 불투명한 상태가 시작되더니 요 며칠 계속되었습니다. 마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슨 방어선이 뚫린 것 마냥... 영 뭔가가 개운치가 않았습니다. 왜 이럴까...?

 

그저께 밤 산책 때 역시 그 정문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혹시... 하는 마음에 이번엔 아무도 없어도 끝까지 기다렸다가 파란 불에 건넜습니다. 오... 느낌이 다르네요! ㅎㅎㅎ 어제 새벽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다시 예전처럼 신호를 지키며 건넜습니다. 그랬더니... ㅎㅎㅎ

 

이거였군요! 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나가, 마치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2:15)처럼 제 일상에 큰 구멍을 내며, 그리고 주님과 천국을 향한 창문이 닫히게 만든 거였군요!

 

아, 개운합니다. 저를 깨닫게 하신 주님, 제게 빛을 비춰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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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눅23:44-49)

 

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은 단순히 그 겉 글자의 뜻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의(秘義, arcana, secret)가 담긴, 천국의 놀라운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상태의 나라인 천국에서는 이 숫자들 역시 그 안에 담긴 상태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처음 몇 장에 나오는 누가 몇백 년을 살았다 하는 표현은 그 속뜻으로는 그 이름으로 부르던 교회, 또는 교리나 신앙이 그만큼의 오랜 세월, 즉 어떤 상태들 가운데 있었다 하는 식입니다.

 

여기 ‘그만큼의 세월’이라 하였지만 꼭 일대일, 그러니까 구백육십구 세라 하여 꼭 969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그 속뜻으로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몇천, 몇만 년,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래서 저는 지질학자들의 지구 나이 45억 년 전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며, 전 세계에서 계속 발견되는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 OOPARTS)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파츠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그 지층, 그 연대에서는 절대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데 발견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1, 2, 3, 4 같은 단순 숫자들조차 아주 깊은 비의들을 담고 있거든 하물며 이 단순 숫자들의 조합인 복합 숫자들은 그 담긴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지 이 지상에서는 형용할 수도 없거니와 한들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러므로 예를 들어,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숫자들 역시, 그것을 그대로 실제 지상의 년 수로 이해하기보다 상태로 이해할 때 비로소 많은 부분, 모든 것이 순적, 평안하게 풀린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주님의, 나무에 달리심과 관련된 숫자들, 삼시, 육시, 구시 역시 그래서 상태, 곧 그 속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물론, 지상의 시간으로 이해하면 아마도 오전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인 것 같지만...

 

숫자 삼(3)의 의미가 다들 아시듯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배수인 육(6) 및 그 세 배수인 구(9)에 이르러는 더욱 완전, ‘완성’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부터는 유전 악을 품은 인성(human), 자아로 탄생하신 주님이 그간의 거듭남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막 그 옛 자아를 벗으시고, 오로지 여호와로 말미암은 새로운 자아, 곧 신성한 인성(Divine Human)이 되시는 것을 표현, 상징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일대기, 특히 우리 평범한 인간들처럼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 곧 그 유전 악 옛 자아를 벗는 과정 중 그 몇 중요한 꼭지들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더 많은 중요한 내용들은 꼭 아래 블로그에 가셔서 그 원고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493

 

매일예배(2023/4/7, 눅23:44-49),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9VWBMSmNEvw 2. 카톡 메시지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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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주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삶, 오직 주님을 섬기며, 당부하신 쓰임새의 삶을 살다 주님 나라 가고 싶습니다. 저를 늘 붙들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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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023/4/6)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4-43)

 

사람이 자신을 살핀 후(after examination) 뒤따라야 할,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의 죄 된 모습을 직시하고 났을 때, 그에게 부여되는 두 가지 의무가 있는데요, 하나는 간구(懇求, supplic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고백(告白, confession)입니다.

 

간구라는 것은, ‘오,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제가 그동안 뉘우쳐 온 악들을 이제는 저항할 수 있도록 힘주시오며, 그리고 저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과 애정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구하는 것이며,

 

고백이라는 것은, ‘오, 주님, 제가 다음과 같은 저의 악들을 보고(see), 인식(recognize), 그리고 시인(acknowledge)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정말 비참한 죄인임을 발견(find)하였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죄라는 것들은, 폐지되는(abolish) 게 아니라 제거되는(remove) 것입니다. 죄라는 것들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이것들을 삼가며(refrain from), 지속적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만큼만 제거됩니다.

 

모든 악이란 악은, 그 안이 온갖 탐욕들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절대로 즉각적으로 옮겨지는(put away) 게 아니고, 오직 점진적으로만, 즉 사람이 자신을 개혁과 거듭남 가운데 있게(to be reformed and regenerated.) 하는 만큼만 옮겨집니다.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21-22)

 

(TCR.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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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023/4/5)

 

...27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6-33)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열과 신앙의 빛, 곧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는 신성(神性, The Divine)이 흘러나와 천국을 비롯한 모든 피조 세계에 생명을 공급, 존재, 존속하게 합니다.

 

이렇듯 천국의 지상 버전인 교회 역시 주님의 신성으로 이루어지며, 존재, 존속합니다.

 

지상 교회가 가장 생명력 넘치고 찬란할 때는 주님의 신성으로 가득 찰 때이고, 반대로 그 생명이 꺼져 가고 어두워질 때는 교회 안에 주님의 선과 진리가 거의 사라질 때입니다.

 

주님의 선과 진리가 사라질 때는 교회가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며, 주님 음성에 귀를 막을 때입니다. 이때가 소위 종말이며, 최후 심판이라는 때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이며, 태고 이후, 지금까지 네 번의 교회 시대가 있었고, 이제 주님의 재림으로 다섯 번째 교회 시대가 시작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다섯 번째로 고정, 영원합니다.

 

지난 네 번의 교회 시대는 각각 태고 교회(홍수 전까지), 고대 교회(노아부터 출애굽까지), 이스라엘 교회(시내산 십계명 선포로 시작), 그리고 현 기독 교회(주님의 초림으로 시작)입니다.

 

각 교회 시대마다 심판과 종말이 있었습니다. 즉 그때마다 교회 안에 주님의 신성, 곧 선과 진리가 거의 소멸, 그때마다 교회는 황폐해져서 그 시대는 마감, 주님은 그때마다 새로운 시대를 여셔야 하셨습니다.

 

주님이 매번 이렇게 꺼져 가는 불씨 살리듯 새 교회를 일으키신 이유는 그때마다 특별한 방법으로 인류가 계속 주님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셨고,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골고다 처형장으로 끌려가시는 주님이 가는 도중 수많은 무리, 특히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하신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여자들’이지만, 그 내적 의미로는 교회, 특히 종말을 앞두고 있는 세 번째 교회인 이스라엘 교회를 말합니다. ‘자녀들’은 교회가 생산해 내는 모든 선하고 진실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는 것’은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시는 것은 앞으로 교회 안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살펴 혹시 내 안에 주님의 신성, 곧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가 거의 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치며 슬피 울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고난주간 말씀으로 계속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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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2023/4/2)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5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눅6:1-5)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십계명, 즉 십성언(十聖言)에 따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가 구전 율법으로 아주 상세하게 규정되어 왔는데요...

 

먼저, ‘안식일’(the Sabbath)의 속뜻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신성 그 자체(the Divine Itself)와 주님의 신적 인성(the Divine Human of the Lord) 간 하나 됨(the union)을, 내적 의미(the internal sense)로는, 신적 인성과 천국들, 즉 천국 간 결합(the conjunction)을, 그래서 그곳 선과 진리 간 결혼(the marriage of good and truth)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쉼과 평화, 천국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이며, 이는 곧 모든 염려, 불안,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 그러므로 복된 상태에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이는 곧 자아로 말미암은 일체의 것들은 금하고, 대신 오직 주님 뜻에 부합, 합당한 것들을 하라는 말씀이지요. 사람이 이 상태에 있을 때가 바로 참 ‘안식일’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뜻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그 수많은 ‘하지 말라’는 규례, 규정들을 지키느라 진정 안식일에도 도무지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지 싶습니다.

 

천국은 시공간의 나라가 아닌, 상태와 그 변화의 나라입니다. 즉 지상의 춘하추동, 그리고 아침, 낮, 오후와 저녁 등 일상의 변화가 있는 것처럼 천국에도 열과 빛의 변화, 즉 주님의 선인 열과, 진리인 빛은 늘 영원불변하시지만, 각 구성원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변화, 즉 주님의 선과 진리에 대한 각 구성원의 변화에 따라 저들 각 개인이 느끼는 상태의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어, 영으로는 천국과 지옥, 육으로는 지상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 ‘천국과 지옥’이라 함은 천국과 지옥에서 각각 파견된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모든 사람에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외적인 것, 곧 세상을 생각하고, 감각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고자 할 때, 그것이 천국에선 어두움이요, 추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아와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주님 향해 시선 고정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부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신 주님 말씀 꼭 기억하고, 주일뿐 아니라 평일에도 늘 ‘안식일’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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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레위(마태)더러 나를 따르라 하신 이유’ (2023/3/30)

 

27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28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29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있는지라... (눅5:27-39)

 

레위’라는 이름의 속뜻은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 이웃 사랑(Charity toward the Neighbor)이고, ‘세리’라는 직업의 속뜻은 이방인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의 신성(神性, The Divine), 곧 주님으로 말미암는 선과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 하여 저절로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사람인 것도, 교회에 속하지 않았다 하여 무조건 자아 사랑, 세상 사랑의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주님이 레위더러 나를 따르라 하신 그 속뜻은 교회 밖 이방인 가운데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셔서 제자를 삼으심입니다.

 

일상의 삶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가령 예를 들면, 자기 직업과 관련된 일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정직하고 성실, 근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보다도 먼저 말입니다.

 

쓰임새’(use)와도 통하는데요, 주님께 쓰임 받는다는 생각, 이 쓰임을 통해 더 큰 어떤 주님의 공공선에 기여한다는 생각, 또 이 쓰임, 이 직업과 관련된 모든 것 안에 주님이 계신다는 생각, 그래서 아주 사소한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으며, 관련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생각 등등...

 

이 모든 것이 주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베드로처럼 레위도 그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어안이 벙벙한 따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레위처럼 자신의 일터에서 주님 눈에 들어 제자로 부르심 받는 큰 축복의 하루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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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침상째 달아 내려진 한 중풍병자’ (2023/3/29)

 

...18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19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눅5:17-26)

 

나병’의 속뜻, 그 영적 의미가 ‘영적 모독’, 즉 마음으로 시인하고 인정한 주님 말씀을 버젓이 범하고 있는 것이라면, ‘중풍병자’는 진리를 따라 살고자 애는 쓰나 살아낼 능력이 없는 사람, 즉 악을 멀리하려 해도 잘 안되고, 선을 행하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상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며, 그래서 좌절하는 경우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주님, 주님은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학습해서 아는 진리와는 달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진리는 그 안에 선이 들어있는 진리, 선을 동반한 진리, 선을 행할 능력이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주님 사이 연결을 가로막는 벽을 오늘 본문에서는 ‘무리’로 표현했습니다.

 

주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그리고 직접적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선일지라도 일단 행하여 습관 들이는 것이 필요하며, 안 하던 걸 하려니 그 쉽지 않음이 마치 지붕을 뜯는 것과 같아 본문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중보기도 하기,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 직장 동료들을 친절하게 대하기,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자식 간에 선한 말, 사랑의 말로 대화하기 등등...

 

선 안에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크고 작은 선을 통해 그 물꼬를 트면, 그때부터 우리 안에 주님의 능력이 흘러들어와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아멘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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