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2)’ (2023/6/6)

 

 

오늘은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온 천국과 지상의 모든 교회, 그리고 모든 종교의 기초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이런 올바른 생각(a just idea of God), 즉 신관(神觀)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결합(conjunction)이 있고, 이 결합을 통해 빛과 지혜, 그리고 영원한 행복(light, wisdom, and eternal happiness)이 있기 때문입니다. (AR.서문) For the whole heaven is founded upon a just idea of God, and the whole church on earth, and in general all religion; since by that idea there is conjunction, and by conjunction light, wisdom, and eternal happiness. (Pref. to A. R)

 

 

※ 위 글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Wherein are disclosed the arcana there foretold which have hitherto remained concealed, 1766) 의 ‘저자 서문’(Author’s Preface)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위 내용은 계시록 속뜻 주석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으로, 계시록이 어떤 책이며, 지난 역사 가운데 사람들이 이 계시록을 어떻게 풀어왔는지, 그리고 1757년에 영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때 형성된 새 하늘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는지, 그리고 이 새 하늘에서 새 예루살렘 교회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을 다음 말씀들, 곧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21:9-10),

 

7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9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19:7, 9),

 

1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21:1-2, 5)

 

를 통해 확인하여 주며, 또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의 천국(The Christian heaven)은 고대인들의 천국(the ancient heavens) 아래 있다는 것과, 이 기독교인들의 천국에는 주님 성육신 이후 주님을 세 인격 아래 한 분 하나님(one God under three persons)으로 예배하면서 동시에 세 신에 대한 생각(an idea of three gods)은 가지지 않은 사람들만 입장이 허용되었다는 것, 그 이유는 기독교계 전체가 이 이 입장, 곧 세 인격의 삼위일체(the trinity of persons)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 하여튼 주님에 관한 이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라는 정확한 신관을 소유해야만 천국에서,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그에 합당한 위치를 배정받는다는 등의 전반적인 배경 가운데 기술된,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서문 전체의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모든 종교의 기초가’,

 

우리 기독교, 특히 개신교인들은 유독 이런 표현에 매우 민감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오직 기독교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즉시 저를 WCC 대하듯 경계들을 하십니다... 나중에 이 문제 역시 깊이 다루겠지만, 지금은 이 한 가지, 곧 그럼,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자녀가 아닌가? 인류 전체의 퍼센티지를 볼 때, 오히려 기독교는 일부에 지나지 않은데... 그러면 나머지 7, 80%의 타종교인들은 무조건 지옥 가는가? 저들이 타종교, 타문화권에서 태어난 게 저들의 죄인가? 주님이 그렇게 불공정하신 분인가? 이런 참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차별, 구별은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는, 구원에 대한 오해, 말씀을 겉 글자로만 이해, 너무 폭력적으로 적용한 데서 오는 부작용입니다. 주님의 시야, 주님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라며, 이 주제가 좀 급하신 분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6장, ‘천국의 비기독교인들’(The Heathen, or Peoples outside of the Church, in Heaven)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틈틈이 탈북자들의 유튜브 채널을 봅니다. 저들의 무슨 드라마 같은, 사선을 넘어 생명의 나라로 넘어오는 그 파란만장한 사연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모두 제가 지상에서 천국을 사모하는 치열한 노력과 상응하기 때문인데요, 저들의,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은 이 땅에 태어나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나태함 가운데 있는 저로 하여금 마음 다잡게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올해 만 62세가 됩니다. 이젠 만나이만 쓴다네요 ^^ 제가 이 지상에서 얼마나 더 머무르게 될까요?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 제가 살아온 지난날, 그리고 선친께서 당부하신 통일되면 꼭 황해도 해주 선산을 찾으라신 당부 말씀 등... 이런 걸 보면 제가 이젠 정말 육학년이 되었다 싶습니다. 저는 수년 전 수도원 공부를 하면서부터 지상 생활의 그 무엇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임종하는 그날까지 주님 의지하며,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하신 주님의 메시지들, 곧 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번역하며 소개하는 삶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저의 사랑하는 모든 구독자님들 또한 저와 이 길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3-06-06(D3)-C.1.1.2,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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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1)’ (2023/6/5)

 

오늘부터는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좀 나누었으면 하는데요,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생각의 중요성(Importance of a just Idea of God)

 

2.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God is One)

 

3. 하나님이 바로 사람이시다(God is very Man)

 

4. 하나님은 공간 안에 계시지 않는다(God is not in Space)

 

5. 신적 본질 그 자체는 바로 사랑과 지혜다(The very Divine Essence is Love and Wisdom)

 

6. 신적 사랑과 신적 지혜는 실체이며, 형체이다(The Divine Love and the Divine Wisdom are Substance and Form)

 

7.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며, 생명 그 자체이시다(God is Love itself and Life itself)

 

8. 신적 사랑의 본성(The Nature of the Divine Love)

 

9.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영원하심(The Infinity and Eternity of God)

 

10. 하나님의 전능하심(The Omnipotence of God)

 

11.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심(The Omniscience of God)

 

12. 하나님의 편재(遍在)하심(The Omnipresence of God)

 

13. 하나님에 관한 건 오직 계시로만 알 수 있음(Knowledge respecting God only possible by Revelation)

 

 

각 제목마다 서너 개씩의 아티클로 진행되지 싶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교회와 종교, 그리고 예배에 관한 모든 것 안으로 들어갑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특히 신학적 주제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윗자리를 차지하는데요, 그중에서도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최상석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것이 거짓이면 그로 말미암은 모든 것 또한 거짓이거나 거짓이 되지요. 이런 지극히 높은 것은 또한 가장 내적이기도 해서 거기서 비롯되는 모든 일련의 것들에 대한 본질이 됩니다. 이 본질은, 일종의 영혼으로도 볼 수 있는데, 일련의 그 이어지는 것들에 대한 어떤 몸, 즉 자기를 닮은 어떤 몸을 형성합니다. 본질은 그 이어지는 것들을 따라 쭈욱 아래로 내려오면서 그 진리들 위에 빛을 비추는데, 만일 이 본질이 잘못되면 심지어 자기가 가진 무슨 흠과 오류들을 가지고 이어지는 그 아래 것들을 감염시키기도 합니다... ...the idea of God enters into all things of the church, religion, and worship; and theological matters have their residence above all others in the human mind, and the idea of God is in the supreme place there; wherefore if this be false, all beneath it, in consequence of the principle from whence they flow, must likewise be false or falsified; for that which is supreme, being also the inmost, constitutes the very essence of all that is derived from it; and the essence, like a soul, forms them into a body, after its own image; and when in its descent it lights upon truths, it even infects them with its own blemish and error... (BE.40)

 

※ 위 글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의 '새 예루살렘'이 의미하는 새 교회 교리에 대한 개략적 설명’(A Brief Exposition of the Doctrine of the New Church, Which Is Meant by “The New Jerusalem” in the Book of Revelation, 1769) 중 ‘새 교회 교리들에 대한 스케치’(A sketch of the doctrinals of the New Church) 6번 ‘그 신학 교리(dogmas)는 인격들(persons)에 관한 어떤 삼위일체(a trinity), 그러니까 세 분 하나님(three Gods)에 대한 생각이 거부된 후, 대신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이신 한 분 하나님(one God)에 대한 생각이 받아들여진 후에야 오류로 보입니다.’(The dogmas of that theology appear to be erroneous after the idea of a trinity of persons, and thence of three Gods, has been rejected, and the idea of one God in whom is the Divine Trinity is received in its stead.)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위 내용은 주님을 세 분 하나님, 곧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및 성령 하나님으로 나누는 입장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면서,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2. 한 분 주님 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주님의 속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의 겉 사람이십니다. 우선은 이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분간 이 일종의 조직신학의 여정 중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비롯, 신적 삼위일체에 관한 보다 깊은 내용을 접하시게 되는데, 그때 좀 더 깊이 말씀드리겠습니다.

 

3. 다음은 성령에 관한 기술입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소중히 간직한 모든 성직자는 영계로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사후 사흘째 되는 날에) 처음에 신적 삼위일체(the Divine trinity), 특히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데요, 성령은 그 자체로 무슨 신(a God)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편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진행되는 신적 활동(the Divine operation proceeding from the one and omnipresent God)을 말하는데 이것이 말씀에서 성령이 의미하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교리는 침대와 같아서 사람들은 교리 안에 있는 것을 편안해한다 했습니다.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 계시하신 모든 것 역시 주님의 어떤 거룩한 질서가 있습니다. 그 거룩한 질서인 교리의 세계, 주님 말씀하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교회의 교리의 세계로 주님의 빛을 구하며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2023-06-05(D2)-C.1.1.1,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신관(神觀, a just idea of God)의 중요성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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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2023-06-04(D1)-주일예배(2480, 눅9,44-48),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자인 이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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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Z0LU5VohLU

 

2. 성찬 원고

성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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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축도 원고

2023-06-04(D1)-주일예배.축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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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5)’ (2023/6/2)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오늘은 마지막 다섯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5

 

 

[5]이들 정말 적은(very few), 무슨 말을 하다 만 것 같은 약간의 진술들이지만, 이 정도로도 유혹이라는 게 어떤 건지(what temptations are), 그리고 가만 보면, 이게 사랑하고도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으며,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건, 주님이 받으신 시험, 유혹의 본질, 본성이 무엇인지(the nature of the Lord’s temptations)하는 것인데요, 그것은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것으로서(the most terrible of all), 주님의 사랑은 모든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the greatness of the love)이기 때문이며, 그만큼 주님이 받으신 유혹의 성격 또한 정말 두려운 것(the fearful character of the temptation)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는 사랑이었으며, 그래서 가장 열정적이었고, 그 결과, 가장 높은 수준의 선에 대한 애정과 진리에 대한 애정(the affection of good and affection of truth)의 총합이었는데, 이에 대항하여, 지옥 전체가 가장 악의적인 농간과 독을 품고(with the most malignant wiles and venom)달려들었지만, 그러나 주님 홀로 저들 모두를 정복하셨습니다. 이런 승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악의적 정령들과 영들(the malignant genii and spirits)은 감히 아무 짓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생명이란 고작해야 파괴할 수 있냐 없냐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들을 맞설 수 있는 사람, 저항할 수 있는 사람(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임을 지각하는 순간, 그들은 그 사람에게서 즉시 달아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들이 천국의 첫 번째 입구 근처에 가까이 갈 때마다 거기서 즉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던지는 그런 모습과 똑같습니다. From these few statements, and they are very few, it may be seen what temptations are, and that they are, in general, such as the loves are, and from this we may see what was the nature of the Lord’s temptations, that they were the most terrible of all, for such as is the greatness of the love, such is the fearful character of the temptation. The Lord’s love was the salvation of the whole human race, and was most ardent; consequently it was the whole sum of the affection of good and affection of truth in the highest degree. Against these, with the most malignant wiles and venom, all the hells waged the combat; but still the Lord conquered them all by his own power. Victories are attended with the result that the malignant genii and spirits afterwards dare not do anything; for their life consists in their being able to destroy, and when they perceive that 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 then at the first onset they flee away, as they are wont to do when they draw near to the first entrance to heaven, for they are at once seized with horror and terror, and hurl themselves backward. (AC.1820.5)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주님의 사랑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는 사랑

 

첫날 말씀드린 내용이 생각나는데요, 곧 악령들은 사람이 무슨 애정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 말고는 절대 무슨 공격도, 심지어 관심 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이 말은 역으로 말하면, 사랑이 클수록 지옥의 공격이 크다는 말이며,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큰 사랑을 하신 주님은 그 결과, 누구보다도 혹독한 지옥의 공격 가운데 늘 계셨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런 차원이 다른 공격을 늘 이기시기 위해서는 또한 아버지이신 여호와와의, 차원이 다른 교제 가운데 늘 머무르셔야만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요, 주님에 관한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 역시 이 세상 삶 가운데 늘 이기기 위해서는, 늘 승리하기 위해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심으로 배우게 됩니다. 우리의 본 되어주신 주님, 그리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2. ‘어떤 사람이 자기들을 맞설 수 있는 사람, 저항할 수 있는 사람(a man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resist)임을 지각하는 순간, 그들은 그 사람에게서 즉시 달아나는데

 

야고보의 권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4:7)가 생각납니다. 모든 유혹 앞에서, 시험 앞에서 눈을 부릅뜹시다. 명예, 권세, 평판, 부, 건강, 외모, 유불리 등 삶의 전방위에서 우리를 흔드는 지옥의 공격 앞에서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여 지옥에 대적, 저항, 맞섭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여 꼭 쥐고 있는 것들을 역시 주님을 사랑하여 하나하나 내려놓읍시다. 지옥이 우리를 건드릴 소지가 충분한 것들, 즉 공격할 빌미, 꺼리들을 제공하지 말자는 겁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저런 것들을 부인, 부정, 무슨 비뚤어진 금욕을 지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저런 것들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어도 우리는 그것을 단지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의 무슨 쓰임새(use) 정도로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쓰임새들의 형상, 체어리티(charity)의 모양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좋은 것을 주님으로부터 아낌없이 받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겠습니다.

 

 

3. ‘그들이 천국의 첫 번째 입구 근처에 가까이 갈 때마다 거기서 즉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던지는 그런 모습

 

실제로 지옥의 영들 중 천국을 원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허락, 천국 초입까지 접근하지만, 그러나 천국의 경계를 넘어 천국 빛에 노출되는 순간, 그들은 무슨 연탄불 위 오징어 오그라들듯 그렇게 사지가 뒤틀리며 고통스러워하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만 도로 지옥으로 점프, 지옥의 빛과 그 기운을 쐬고 나서야 한숨 돌리며, 그렇게 평안해 한다고 하는데요, 이들이 천국 빛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이들은 자기 안의 질서가 모든 면에서 천국과 정반대, 완전 거꾸로 되어 있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의 영(spirit), 곧 사람의 속(internal man, 속 사람)은 자연계에서는 겉인 몸(body)에 가려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후(死後), 그러니까 이 모든 외적인 것이 제거된 후 남는 것인 영으로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사후 세계에서는 이 모든 실체, 정체인 속이 드러납니다. 세상에서는 점잖은 명망가요, 명성 관리를 잘하여 사람들에게 점수를 많이 땄어도 그것이 속으로는 오직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런 사람은 사후엔 그 정체가 드러나 바로 저런 비참한 상태로 전락합니다.

 

문제는, 지옥의 속이는 기술인 이 ‘유혹’이 얼마나 교묘한지, 살아생전 본인은 지금 자기가 속고 있는 줄은 전혀 꿈에도 모른 채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감지, 감별하기 위한 유일한 질문은 바로 ‘나는 지금 주님을 사랑하는가?’,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주님을 사랑해서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유혹의 상황 속에서도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최종 도달점은 바로 천국이 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지난 한 주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제 역량이 이리도 모자라 결국은 이렇게나 어려운, 알쏭달쏭한 말씀이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천국의 일을, 영계의 일을 정말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주님 빛 구하며, 정진하겠습니다. 이런 글이어도 늘 수신하여 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이 글들을 내치지 않으시는 모든 분께 보답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17:21)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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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4)’ (2023/6/1)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오늘은 네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4

 

 

[4] 그들, 곧 이 지옥에서 온 영들은 진리에 관한 애정들(the affections of truth)에 대해 유사한 움직임을 보이는데요, 이 애정들이 사람의 양심(the conscience)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양심에 속한 게 무엇이든, 그리고 그게 어떤 종류든 일단 그걸 지각하게 되면, 그 즉시 이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거짓들과 실패들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애정을 하나 급조하는데요, 이걸 가지고 이들은 진리의 빛 위에 그늘을 드리워 그걸 왜곡하거나 불안을 유도, 그를 고문합니다. 그들은 또 그가 다른 걸 두리번거리지 못하도록 어떤 한 가지만 끈질기게 생각, 그걸 환상으로 채우며, 동시에 그 갈망, 그 욕망에 몰래 환상의 옷을 입힙니다. 이런 식으로 이들, 곧 이 악령들의 수법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인데요, 이런 거 말고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정말 예술 수준의 기술들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는 도저히 어떻게 설명할 수도, 이해시켜 드릴 수도 없는 그런 것들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나마 이런 것들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수많은 수단들 중 극히 일부이며, 이들이 사람의 양심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들 중 가장 일반적인 수준의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들 지옥의 영들은 사람을 파괴하는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They act in a similar way against the affections of truth that make the conscience: as soon as they perceive anything of conscience, of whatever kind, then from the falsities and failings in the man they form to themselves an affection; and by means of this they cast a shade over the light of truth, and so pervert it; or they induce anxiety and torture him. They also hold the thought persistently in one thing, and thus fill it with fantasies; and at the same time they clandestinely clothe the yearnings with the fantasies; besides innumerable other arts, which cannot possibly be described to the apprehension. These are a few of the means, and only the most general, by which they can make their way to man’s conscience, for this above all else they take the greatest delight in destroying. (AC.1820.4)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이 지옥에서 온 영들’, 각 사람에게 와 있는 악령들은 지옥에서 직접 오는 게 아니고, 수많은 지옥 공동체에서 중간영계로 파견 나온 에이전시 영들입니다. 이 중간영계는 천국 상태도, 지옥 상태도 아닌, 중간 상태의 영들이 잠시 머무르는 영계로, 여기는 사람의 사후, 제일 먼저 놓이게 되는 상태이며, 여기엔 지옥뿐 아니라 천국 수많은 공동체에서 파견 나온 에이전시 천사들(또는 선한 영들)도 함께 있습니다.

 

2. ‘진리에 관한 애정들이 사람의 양심을 만든다’,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종교적 원리(the religious principle)를 속으로(inwardly) 받아들임에 따라 형성되는 건데요, 여기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함(what is good)에 대한 양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올바름(what is just), 정의, 공정 등에 대한 양심이 있습니다. 전자는 속 사람의 양심, 후자는 겉 사람의 양심으로서, 전자는 내적 애정(internal affection)을 가지고 신앙의 율례(the precepts of faith)에 따라 행하는 걸로, 후자는 외적 애정에 따라 사회, 도덕적 법에 따라 행하는 걸로 구성됩니다. 전자에는 후자 또한 있지만, 그저 후자뿐인 사람은 전자를 받을 수 있는 그릇이며, 그러나 가르침을 통해서 나중에 전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 저, ‘새 예루살렘과 천적 교리’(New Jerusalem and Its Heavenly Doctrine) 9장 ‘양심’에서 발췌)

 

그러므로 기독교 내 각 교단과 교파, 심지어 타종교에 이르기까지 주님은 저들의 나름의 종교적 양심을 허락하시며, 최종적으로는 선한 양심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 역시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자신의 종교적 양심에서 출발, 결국엔 선한 양심이 되도록 힘쓸지언정 나와 다르다고 타인의 양심을 함부로 대하거나 무례, 심지어 종교적, 신앙적 폭행을 일삼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3. ‘그 즉시 이들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거짓들과 실패들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애정을 하나 급조한다’, 각 사람에게 와 있는 선한 영 둘, 악한 영 둘은 각각 전자는 그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후자는 그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서는 그 기억과 생각들이 마치 자기들 것인 양 사용하는데요, 위 기술(記述)은 바로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요, 위 기술의 뜻은,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회사에서 이중장부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교회 다니는 사람은 ‘아, 그건 좀...’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그 순간, 그의 안에 있는 악령들은 곧바로 ‘아니야, 지난번에도 괜히 양심 어쩌구 하다가 큰 불이익을 받았잖아... 그랬다고 누가 잘했다고 내 편 드는 사람 하나 없었고... 심지어 마누라까지도 당신은 왜 그렇게 남들처럼 안 해? 왜 그렇게 튈려고 그래? 그래서 얻는 게 뭔대? 하며 나를 모욕했잖아... 그래,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눈 감자. 아무개 좀 봐. 회사가 하라는 대로 했더니 얼마 안 있어 승진했잖아...’ 속삭이며, 그에게 비추는 빛을 가리고, 대신 환상의 옷을 입히며, 슬쩍 속이는... 네, 이런 겁니다.

 

5. 영계는 내면의 나라여서 이곳에서 우리가 ‘추상적이다’, ‘개념적이다’ 하는 것들이 그곳에서는 마치 영상을 보듯, 비디오를 보듯 보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우리 안의 악령들의 저 은밀한 짓거리들을 마치 두 눈으로 보듯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계에서 악령들의 온갖 궤휼과 술수에 대해 스베덴보리는 그러나 주님이 그 자세한 기술을 금하셨다고 합니다. 만일 그 방법 하나라도 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 순간 이 세상은 정말 큰일 나기 때문이지요. 비록 지금 우리는 두 눈이 탁하고 어두워 저들의 하는 짓을 실제로 볼 수도, 그리고 이렇게 알려줘도 이해조차 쉽지 않지만... 하여튼 아주 사소한 ‘유혹’조차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겨 한번 두번 허용했다가는 영적으로는 수습 불가 상태로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1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4:1-11)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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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3)’ (2023/5/31)

 

계속해서 ‘유혹’(誘惑, temptation) 세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553

 

 

[3] 또 그들은 선(善, good)이 무엇이고, 진리(眞理, true)는 무엇인지에 관한 단순한 논쟁 같은 건 하지 않는데요,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논쟁에서 자신들이 천 번을 지더라도 자신들은 여전히 집요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 역시 선과 진리에 관한 건 결코 이성으로, 머리로, 말과 논쟁으로 끝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선과 진리를 왜곡(歪曲, pervert), 거기에 욕망(慾望, yearning, appetite)과 망상(妄想, persuasion, delusion)의 불을 확 붙여 그로 하여금 영적 장님이 되어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못 보게, 그리고 모르게 하며, 동시에 그들은 이런 욕망과 망상을 어떤 즐거움으로 불타오르게 하는데, 이 즐거움은 그들이 그에게서 뺏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그를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쪽같이 속이고 감염시키며, 영적 성폭행을 통해 철저히 망가지게 합니다. 이런 일을 그들은 정말 엄청난 스킬로 하는데요, 이런 스킬로 그들은 그를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놀며, 만일 주님이 그를 돕지 않으시면, 그는 실제로 자기가 지금 영적으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악령들의 훼방과 공격은 정말 정말 지독하며, 이런 것이 영계에서 자행되는 ‘유혹’(誘惑, temptation)의 정체, 실체입니다. (AC.1820.3) Nor do they wage the combat simply by reasoning against things good and true, because such combats are of no account, for if they were vanquished a thousand times they would still persist, since reasonings against goods and truths can never be wanting. But they pervert the goods and truths, and inflame with a certain fire of yearning and of persuasion, so that the man does not know otherwise than that he is in the like yearning and persuasion; and at the same time they enkindle these with delight that they snatch from the man’s delight in something else, and in this way they most deceitfully infect and infest him; and this they do with so much skill, by leading him on from one thing to another, that if the Lord did not aid him, the man would never know but that the case was really so.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 및 오늘의 권면들입니다.

 

1. ‘선과 진리를 왜곡, 욕망과 망상의 불을 붙인다’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면 이런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주님을 사랑하여 이 골고다의 길 걸어야지 해 놓고는 그래도 안정된 목회를 하려면 십일조 내는 가정이 몇은 되어야 생활이 되니 어쩌니 하다가, 그 다음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교회가 되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해야 하니 어쩌니, 그것도 스킬이 있어야 하니 어쩌니 하다가... 결국엔 설교꾼, 목회꾼이 되어버리고 마는... 네, 이런 비슷한 많은 것들입니다. 이렇게 망가지는 중에도 계속해서 ‘나는 지금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이 길은 나중에 큰 상급이 약속된 길이야...’ 하는 속삭임에 그만 정신 못 차리고 점점 깊이 빠져드는 것이지요...

 

2.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역사는 참으로 유구합니다. 인류 첫 교회의 종말인 ‘대홍수’(大洪水) 역시 사실은 인류 첫 교회인 태고교회가 타락, 이 ‘yearning’과 ‘persuasion’의 물결에 얼마나 처절하게 잠겼는지 다른 마땅한 표현이 없어 ‘대홍수’, ‘노아의 홍수’로 표현한 것입니다. 참고로, ‘노아’는 당시 이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겨우 명맥만 유지하던 참 신앙의 교회, 곧 신앙과 체어리티를 분리하지 않았던 교회를 일컫는 이름입니다.

 

3. 영계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주님 말씀에 처절하게 시선 고정하지 않으면 정말 눈 뜨고 코 베임을 당하는 그런 세계이며, 그래서 모든 천사는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얼굴을 돌린다고 합니다. 마치 해바라기들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천사들을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4. 아주 사소해 보이는 한 조각 ‘유혹’조차도 철저하게 끊어내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도 그러셨고, 수 많은, 소위 성인’(聖人)이라 추앙받는 사람들도, 이들 중 99.999%는 후세가 자신을 성인으로 추앙한다는 사실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주님 앞에서 쥐구멍을 찾았겠지만..., 이 ‘유혹’의 영적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하여 상상을 초월한 금욕에 힘썼던 것입니다. 금욕 생활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분들은 이 혼탁한 물질과 육욕의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을 사랑하여 더할 수 없이 순결, 정결한 신부로 준비하여 드리고픈 그런, 이미 지상에서 천사의 삶, 천국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몸부림치시는, 혹은 치셨던 분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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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2)’ (2023/5/30)

 

어제에 이어 ‘유혹’ 두 번째 단락 번역 및 설명입니다. 모두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 영역(英譯, 원본은 라틴어)은 아래 링크로 가셔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어떤 경우가 유혹(temptations)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여기서 짧게라도 말씀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이 사랑하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하고도 절대 싸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 무엇을 더욱 열렬히 사랑할수록 이들은 더욱더 치열하게 싸웁니다. 악한 정령들(evil genii)이나 악한 영들(evil spirits)은 모두 애정(affection)에 관한 것들과 싸우는데, 그것들이 선(good)과 관련되었으면 전자, 진리(truth)와 관련되었으면 후자입니다. 이들은 무언가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사람이 그걸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그리고 무언가 사람이 그것을 즐거워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마치 냄새를 맡듯 지각하는데요, 그 순간, 이들은 곧바로 그것에 대한 폭행과 함께 그걸 파괴하려고 힘쓰는데, 그것은 곧 그 사람 전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사실은 그가 사랑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이들을 즐겁게 하는 건 없는데요, 주님이 이들을 쫓아버리시지 않는 한 이들은 심지어 영원히 이 짓을 그만두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들은 악의적이고 교활하여 사람에게 아첨, 사람의 정신을 쏙 빼놓은 후, 사람이 자신들을 사랑하게 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이들은 사람을 자기들 가운데로 끌어들이며, 일단 끌어들인 후에는 이들은 그 사람의 사랑을 파괴하려 하며,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며, 그 하나하나는 도저히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As few know how the case is with temptations, it may here be briefly explained. Evil spirits never fight against other things than those which the man loves; the more ardently he loves them, the more fiercely do they wage the combat. It is evil genii who fight against the things that pertain to the affection of good, and evil spirits that fight against those which pertain to the affection of truth. As soon as they notice even the smallest thing which a man loves, or perceive as it were by scent what is delightful and dear to him, they forthwith assault it and endeavor to destroy it, and thereby the whole man, for man’s life consists in his loves. Nothing is more delightful to them than to destroy a man in this way, nor would they desist, even to eternity, unless they were driven away by the Lord. They who are malignant and crafty insinuate themselves into man’s very loves by flattering them, and thus bring the man among themselves; and presently, when they have brought him in, they attempt to destroy his loves, and thereby murder the man, and this in a thousand ways that cannot be comprehended.

 

 

아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태는 몇 가지 설명입니다.

 

1. 모든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과 선한 영들(혹은 천사들)이 최소 둘 이상씩 와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항상 주님과 연결되어 있게 하시려는 주님의 배려 때문인데요, 이는 사람이 그 본성상 악 가운데 태어나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설명은 따로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번역 가운데 ‘악한 정령들’과 ‘악한 영들’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2. 위 내용은 사람의 내면, 즉 사람의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자연계와 영계, 두 세계에 공존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 관점만으로는, 즉 육체적, 감각적 관점만으로는 자기 안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는 걸 전혀 인지할 수 없습니다.

 

 

오늘 메시지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혹은 누구를 사랑하고 좋아하며, 애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주님의 신성, 곧 주님의 선과 진리에 관련되었으면, 영계에서는 그에 비례, 아니 그 이상의 아주 지독한 훼방과 파괴가 시작된다는 걸 꼭 기억, 그만큼의 댓가를 지불할 결심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즉 모든 종류의 주님 사랑, 이웃 사랑에는 반드시 그에 비례하는 고난과 시험, 유혹이 뒤따르는데, 이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주님의 허락과 배려 때문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짜 사랑, 오직 행복하기만 한 애정의 꽃길 같은 건 없습니다. 주님조차 무슨 금수저의 길을 걸으시다 십자가 한번 지시고 덜컥 구속주가 되신 거, 절대 아닙니다. 주님도 우리처럼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와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을 밟으시되 주님의 속 사람이신 여호와께 초집중,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성취를 아주 어려서부터 이루신 것만 다를 뿐입니다.

 

거듭남은 무슨 영접기도 한 번, 신앙고백 한 번으로 되는 거, 절대 아니며, 이처럼 매 순간 우리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악령들의 훼방과 파괴를 주님 의지하고, 마치 탈북민들, 목숨 걸고 강을 건너 자유의 나라로 넘어오듯 그렇게 절박함으로 싸워 얻는 것입니다. 싸워 얻는다는 건 싸워 이겨나가는 중에 우리의 속 사람이 천국 생활에 적합하게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우리로 이 거듭남을 이루어 천국 들어가도록 끝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며 도우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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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temptation)이란 무엇인가? (1)’ (2023/5/29)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Whereby shall I know that I shall inherit it? (창15:8)

 

위 말씀은 창세기 15장 7절,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시는 말씀에 아브람이 대답하는 말입니다.

 

이는 겉으로는 아브람과 여호와 간 대화이지만, 그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부 사람(the interior man)과 속 사람(the internal) 간 대화입니다.

 

이는 인성을 입으신 주님의 거듭나심에 관한 과정으로서 주님 안에서 일어난 각종 영적 전쟁과 전투, 싸움을 주님은 어떻게 이겨나가셨는지를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일어난 일들을 통해 알려주고 계신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 역시 우리의 거듭남의 과정 및 우리의 영적 싸움을 어떻게 하면 주님처럼 이겨나갈 수 있는지 하는 매우 생생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계시입니다.

 

아래는 주님이 받으신 유혹에 대하여, 스베덴보리를 통해서 밝히신 아르카나이며, 순서대로 오늘은 그 첫 번째 단락을 번역, 소개합니다.

 

 

[1] 이 표현이 주님의 사랑, 곧 온전히 확신할 수 있었으면 하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유혹을 의미한다는 것은 이들 단어 자체에 내포된 의심들을 보고 알 수 있는데요, 시험 중에 있는, 유혹 가운데 있는 사람은 시선의 끝(the end in view), 곧 믿음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선의 끝인 믿음은 곧 사랑인데요, 이는 악한 영들과 정령들(evil genii)의 힘써 싸우는 대상이요, 결국 의심케 하고자 의도하는 것이며, 이 사랑이 크면 클수록 저들 역시 더욱 이를 악물고 그 목적, 곧 그 사랑을 포기, 의심케 하고자 갖은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만일 그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전혀 꿈쩍도 안 하면, 저들은 크게 절망, 결국 그 어떤 유혹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결과에 대한 확신은 승리를 선행, 승리, 이김이라는 것에는 이런 확신도 들어 있습니다. That this signifies a temptation against the Lord’s love, which desired to be fully assured, may be seen from the doubt that is implied in the words themselves. He who is in temptation is in doubt concerning the end in view. The end in view is the love, against which the evil spirits and evil genii fight, and thereby put the end in doubt; and the greater the love is, the more do they put it in doubt. If the end which is loved were not put in doubt, and indeed in despair, there would be no temptation. Assurance respecting the result precedes the victory, and belongs to the victory. (AC.1820.1)

 

 

시험, 유혹은 내 영적 시선의 끝인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내가 무엇을 사랑하면 곧바로 악령들의 훼방이 시작된다는 사실! 그러므로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기로 결심하였으면, 당연히 그에 따른 유혹 역시 비례하여 혹독할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게 되며,

 

그러면 이 세상 온 인류를 사랑하신 주님은 그 시험와 유혹, 훼방과 모욕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심하였을까 생각하며, 거듭거듭 주님 십자가의 길 걸으심 앞에 숙연해집니다...

 

주님, 정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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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셔널(rational, 합리), 주님의 생명과 영적 진리가 속 사람을 통해 겉 사람 안으로 흘러 들어가 삶을 변화시켜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능력’(2023/5/28)

 

 

(오늘 설교문에서 인용)

 

창세기 16장 4절은 주님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리는 순간을 하갈이 이스마엘을 임신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주님의 인성이 거룩하게 되신 과정은 우리 인간이 거듭나는 과정과 흡사하셨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래셔널이 열리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의 거듭남 또는 래셔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16:4)

 

여기서 아브람은 주님의 속 사람을, 그리고 하갈은 선과 진리에 따른 삶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브람과 하갈의 동침은 그 속뜻으로는, 주님께서 선과 진리의 지식을 삶으로 실천하셨을 때, 주님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의 결합이 일어나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 계시던 어린 시절, 먼저 말씀의 문자적 의미를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셨지요. 그때 주님의 겉 사람인 인성과 속 사람인 여호와의 신성이 하나가 되셨고, 그러면서 또한 주님의 첫 번째 래셔널이 열렸는데, 그것이 바로 하갈이 임신한 아들입니다.

 

그러면 임신한 하갈은 왜 사래를 멸시했을까요? 사래는 아브람의 아내입니다. 즉 사래는 주님의 속 사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영적 진리를 의미하지요. 따라서 임신한 하갈이 사래를 멸시하는 것은 그 속뜻으로는, 처음 래셔널이 열리기 시작할 때는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래셔널이 영적 진리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요, 자기 사랑, 세상 사랑은 지옥,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은 천국이라는 진리 앞에서, 처음 래셔널이 생길 때는 그것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있어야 이웃도 있는 거 아냐? 라고 합니다. 이런 태도가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하는 모습입니다. 거듭남의 과정 초기, 래셔널이 처음 생길 때는 이와 같이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처음 생긴 래셔널(rational, 합리, 이성)이라는 게 그렇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래셔널은 자기 여주인(mistress)을 경멸한다는 것, 곧 지적 진리(intellectual truth)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지적 진리가 주(主, manifest)가 되지 못합니다. 인정받지를 못하기 때문인데요, 오류들과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것들이 흩어져 버리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사람이 감각적인 것들을 가지고, 그리고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을 가지고 자기 본위로 진리를 재단하는(reasons)한 흩어져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가 단지 주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것은 진리야라고 순진하게 믿는 순간, 그것은 주가 됩니다. 그 즉시 오류의 그늘들은 흩어져 버리고,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게 됩니다. (AC.1911:6)

 

 

말씀의 글자의 뜻으로부터 무리하게 진리를 추측하는 습관에 젖어있을 때는 주님께서 진리를 보여주셔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적 능력을 믿고 진리를 마음대로 추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아이를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러자 43절,

 

43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래셔널이 건강해지면 속 사람으로부터 래셔널 가운데로 영적 진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래셔널을 통해 다시 겉 사람 속으로 들어가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삶을 사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큰 행복이지만, 그 자체로 주님의 위엄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나는 삶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믿는 진리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는 말로 전하기보다는 삶으로, 인격으로 전해야 합니다. 귀신이 나갔을 때,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는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설교 원고 및 오디오는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

 

https://bygrace.kr/1549

 

주일예배(2023/5/28, 눅9:37-43), '귀신 들린 아들, 내 안에 속 사람을 향한 창문에 문제가 생긴 것'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csKtmnQKn1U 2. 축도 원고

bygra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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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28(D1)-주일예배(2479, 눅9,37-43), '귀신 들린 아들, 내 안에 속 사람을 향한 창문에 문제가 생긴 것'.pdf
0.41MB

https://youtu.be/csKtmnQKn1U

 

 

2. 축도 원고

2023-05-28(D1)-주일예배.축도.pdf
0.20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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