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12(D6)-매일예배(2472, 눅8,49-56), '아이야 일어나라'.pdf
0.39MB

https://youtu.be/mIhYMllxZ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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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방어부대 정치부 조직부 중좌 출신의 탈북 간증’ (2023/5/12)

 

 

1부 : https://youtu.be/sjPKFREbDo8

 

2부 : https://youtu.be/2yp-OUIpspA

 

유튜브 ‘중고차는 유미카’라고, 탈북민 이유미 씨가 운영하는 채널입니다.

 

지난 1998년 3월, 당시 평양을 방어하는 부대 소속 정치부 조직부 중좌(우리로 치면 중령급)로 있었던 심주일 씨의 놀라운 탈북 이야기입니다. 오늘 현재 2부까지 올라왔습니다.

 

친구 통해 건네받은 성경, 이 성경을 읽다가 북조선 주체사상이라는 게 이 성경에서 뽑아낸 것임을 간파, 이후 북을 떠나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치밀한 준비 끝에 신분증과 단검 하나 소지한 채 월경(越境), 여러 위기의 순간마다 참으로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이어 대련에서 호주 국적 목사님을 만나 제주 극동방송 및 국정원으로 연결되는 일련의,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무 정말 그 무엇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여전히 직접 나타나시며 인도하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찬양, 또 찬양합니다. 아멘아멘, 할렐루야!

 

※ 황해도 해주 상산 사시던 저희 선친(邊培根, 1907생, 1988졸)께서는 일정 때 서울 오장동으로 올라오신 후, 6.25 사변으로 이후 끝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셨는데요, 이분의 말투나 분위기에서 생전 아버님 모습이 많이 오버랩되어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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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떨며 나아온 열두 해 혈루 여인을 딸로 호칭하신 이유’ (2023/5/11)

 

 

...43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눅8:40-48)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어떨 땐 매우 치욕적이지만, 주님(the Divine)앞에서는 완전히 다른데요,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건 그 자체로 온전한 예배(total prostration)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람이 생각하기를, 힘과 능력, 지혜에 있어 오직 주님만이 전부이시며, 사람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거나, 모든 선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으며, 사람으로는 전혀, 오히려 악만 말미암는다 할 때 그렇습니다. 사람이 진심으로 이런 사실을 시인, 인정할 때, 그는 마치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같으며, 그래서 그 결과 그의 얼굴에 이런 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될 때, 그는 또한 자신의 본성(the proprium [what is his own])으로부터도 지워지게 되는데, 이 본성이라는 것은 본질상 완전히 악하기만 한 것입니다. (AE.77)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77번 글 인용이며, 이 글은 계시록 1장 17절,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중,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And I fell at his feet)에 관한 속뜻 주석입니다.

 

오늘 메시지의 하이라이트는, 주님의 인성과 신성의 하나 되심, 곧 주님의 신적 인성(Divine Human)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의 겉 글자로 표현된 자연적 진리 안에 속뜻인 내적 진리가 담길 때, 그때에도 역시 무한한 능력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인데요, 그것을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이렇게 묘사, 표현한 것입니다. ‘옷 가’는 말씀의 자연적 진리, ‘손을 대는 것’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감,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는 그 결과, 주님으로부터 무한한 능력이 나와 이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고요, 오늘은 위 제목처럼, 주님이 많은 여인을 고치셨지만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만 ‘’이라 호칭하신 이유를 살짝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예배 메시지에서 이것이 메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https://bygrace.kr/1535

 

매일예배(2023/5/11, 눅8:40-48),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혈루증 여인'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MOKOXVyTYwQ

bygrace.kr

 

...여기서 한 가지, 본문에 나오는 ‘옷 가’는 히브리어로 ‘찌찌트’(ציצית)라 하는 것으로, 다음 민수기 말씀에 나오는 ‘옷단 귀에 만드는 술’을 말합니다.

 

38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민15:38-40)

 

류모세 이스라엘 선교사의 ‘열린다 성경’ 시리즈를 보면, 이 ‘찌찌트’는 그 사람의 정체성, 모든 것, 인격 전체를 나타내며, 그래서 본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마치 지나가는 노인의 백발 수염을 잡아 흔드는 것과 같기 때문인데요, 만일 그랬다가는, 특히 유대 정결법에 저촉되는 사람이 만졌다가는 현장에서 돌에 맞을 수도 있는 것이며, 이 여인이 몹시 두려워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정말 여인은 목숨을 걸고 주님의 ‘찌찌트’에 손을 댄 것인데요...

 

이런 사정을 아시고 주님은 복음서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현장, 이 여인에게만큼은 ‘’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십니다. 아무리 유대 사회 영향력 있는 랍비라 하더라도 자기 피붙이가 자신의 ‘찌찌트’ 만지는 건 괜찮기 때문인데요, 주님의 이 기가 막힌 순간적 배려에 아마도 둘러섰던 모든 무리가 다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했을 것이며, 이 여인은 그래서 온몸을 떨며 주님의 사랑과 애정, 다정하신 따뜻한 배려에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아휴, 이 글을 쓰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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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11(D5)-매일예배(2471, 눅8,40-48), '회당장 야이로와 열두 해 혈루증 여인'.pdf
0.45MB

https://youtu.be/MOKOXVyTY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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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 스웨덴)는 계시록에 관한 두 개의 저작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이고, 다른 하나는 ‘계시록 속뜻(Apocalypse Revealed, 1766)입니다. 전자는 후자보다 훨씬 전부터 써오고 있었으나 사후 출간된 저작이고, 후자는 생전, 익명 출간한 마지막 저작입니다. 이후 저작들은 본인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특별히 계시록 관련 저작이 둘인데요, 이 둘의 차이는, 먼저 ‘계시록 해설’은 창세기, 출애굽기 장, 절별 속뜻 주석인 ‘천국의 비밀(Arcana Coelestia)처럼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장, 절 단위 속뜻으로 주석한 것인 반면, ‘계시록 속뜻’은 살짝 ‘계시록 해설’의 요약판 같은 그런 저작입니다.

 

참고로, 전자의 글 맨 끝 번호는 1232번이고, 후자는 962번입니다. 전자인 ‘계시록 해설’은 계시록 19장 10절에서 갑자기 멈추는데요, 만약 스베덴보리가 이 주석을 완성, 곧 계시록 22장 21절까지 하고 갔더라면 그 글 끝 번호는 더욱 늘어났겠지요. ‘천국의 비밀’은 10837번이고, ‘천국과 지옥’은 603번입니다.

 

계시록 속뜻’ 784번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계시록 18장 15절,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에 관한 속뜻을 밝히면서 ‘연옥’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의 ‘상인들’이 누구인지를 밝히면서 말이지요.

 

본문의 ‘상인들(merchants)은 ‘바벨론’이라는 여자로 말미암아 이익을 본 자들로, 바로 앞 절의,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과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을 교회의 여러 허락과 질서, 하늘의 약속과 법망을 최대한 활용, 치부한 자들을 말하는데, 여기엔 교회 내 높은 자들, 낮은 자들이 다 포함됩니다.

 

이들은 율법을 최대한 범하지 않는 선에서 안전하게 결혼하는 법, 이혼하는 법, 드러나지 않게 악을 행하는 법, 어떻게 하면 법망을 피할 수 있는지, 면죄부라든지, 교회의 묵인하에 적당히 세속적 통치 권력, 행정 권력과 손잡는 문제, 어떻게 하면 교회와 수도원을 부유하게 운영할 수 있는지 하는 일에 밝았고, 특히 부자들이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 때, 별의별 음모를 꾸며 그에게 지옥에 대한 공포를 불어넣으며, 그들의 재산을 갈취할 좋은 기회로 여겨 미사 희생을 약속하고, 연옥이라고 하는 고통의 장소에서 점진적으로 구출,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식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음은 위 784번 글 두 번째 단락에 대한 번역입니다. 관련 영역(※ 스베덴보리의 모든 저작은 라틴어로 되어 있음)은 아래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아래 번역 중 중간중간 참고표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보탠 것입니다.

 

연옥에 관해서는,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바벨론식 허구이며,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고 말이지요. 모든 사람은 사후 맨 먼저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지대이며, 여기서 각자 살아온 세상 삶에 따라 이후 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가 준비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아무에게도 고통없는 곳이지만, 악인들의 경우, 그 준비가 끝나 지옥으로 가게 될 때, 그때 처음으로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곳엔 무수한 사회들(societies)이 있고, 또 각 사회마다 지상과 유사한 기쁨들이 있는데요, 그 이유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또 이들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 주님은 이곳 영들을 통해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하시며, 그래서 지상 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천국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둘씩 배정되어 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영들과 천사들은 사람의 선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오고, 지옥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의 악한 기억과 생각 속으로 들어와서는 그 기억과 생각이 자기들 것인 줄 압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모든 지옥스러운 생각들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것이며, 한편, 우리 안에 떠오르는 모든 천국스러운 생각들 역시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와 있는, 주님의 뜻을 전달하는 선한 영들과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우리 안에 무슨 악하고 어두운, 숨이 막히고 지옥스러운 생각들이 일어나면 얼른 ‘이 생각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악한 영들이 하는 거야!’ 하며, 그 생각들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시고, 즉 얼른 한 발 뒤로 물러나시고, 즉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때부터 천사들이 그 상황을 접수, 우리를 위해 그 상황을 수습합니다. 비록 우리 안에 주님이 보내신 천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도움을 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멀찍이 서서 우리를 위해 아주 최소한의 조치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의 겉 사람, 곧 외면(externals)은 거기에서 연속적으로 벗겨지며, 즉 휴면상태에 들어가며, 그렇게 해서 그들의 속 사람, 곧 내면이 열리는데요, 이 과정은 그들의 주도적 사랑(the ruling love)이 드러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 사랑은 실제로 해당 영의 생명과도 같은 사랑으로, 가장 깊은 것(the inmost)이고, 그들의 외면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면목(real quality)이 나타나는데요, 그는 자기가 가진 이 사랑의 질(質, quality)에 따라 이곳 영들의 세계로부터 드디어 자기에게 맞는 곳으로, 즉 자기가 가진 그 사랑이 선하면 천국으로, 반대이면 지옥으로 보내집니다.

 

※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 육을 겉 사람, 영을 속 사람이라 할 수 있듯, 사후 영과 육이 분리되어 영만 남았을 때, 이 영 또한 겉과 속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영의 겉이 실제로는 우리 몸과 결합, 이렇게 우리의 영이 몸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수 있게, 혹은 육이라는 그릇에 담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하시려고 주님은 오랫동안 저로 하여금 그 세계 사람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곳의 모든 것을 보게 하시며, 그렇게 그 모든 경험을 허락하셨는데요, 이런 지가 벌써 이십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연옥은 픽션, 허구이며, 악마스럽다 힘주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돈을 위해서이고, 사람들, 심지어 죽은 자의 영혼들까지 자기들의 지배하에 두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AR.784:2)

 

아래는 연옥에 대한 천주교 신부의 글인데요, 스베덴보리가 전하는 실상과 많이 다름을 볼 수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아는 만큼 보인다] 95. 마지막 정화 - 연옥

개신교가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 교리 중에 ‘연옥 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

m.catholictimes.org

 

아래는 위 784번 글에 대한 영역을 실은 제 블로그 글입니다. 영어 표현이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783

Verse 15.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who became rich by her, shall stand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signifies the state before damnation, and then their fear and lamentation, who have made gain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y “the merchants of these things,” namely, of the fruits of the soul’s desire, and of fat and splendid things, treated of in the verse next preceding, those are signified who by various dispensations, and promises of heavenly joys, became rich, that is, who made gain. By these “merchants” all are meant, as well the higher and the lower in their ecclesiastical order, who made gain by such things. That the higher are included, is manifest from verse 23 of this chapter, where it is said, “For thy merchants were the great ones of the earth”; that the lower ones also are included, from verse 11; see above (n. 771). By “standing afar off for fear of her torment, weeping and mourning” is signified while they are still in a state remote from damnation, and still at that time in fear of punishments, and in lamentation as above (n. 769), where similar things are said.

 

784

As regards the dispensations by which they make gain, they are various. There are dispensations in regard to contracting matrimony within the degrees prohibited by the laws; relating to divorces; relating to evils, even enormous ones, and then liberation from temporal punishments; then also by indulgences; dispensations relating to administrations without any power or authority of the secular rulers; among which also are confirmations of dukedoms and principalities; likewise by promises of heavenly joys made to those who enrich monasteries, and augment their treasuries, calling their gifts good works, in themselves holy, as also merits; to which they are led by the belief impressed concerning the power and help of their saints, and in the miracles performed by them. Especially do they plot against the rich when they are sick, and likewise infuse at that time a terror of hell, and so extort from them; promising the sacrifice of the mass for their souls according to the value of their legacy, and a gradual delivery thereby from the place of torment, which they call purgatory, and thus admission into heaven.

 

[2] As regards purgatory, I can aver that it is purely a Babylonish fiction for the sake of gains, and that it neither does nor can exist. Every man after death first comes into the world of spirits, which is midway between heaven and hell, and is there prepared either for heaven or for hell, everyone according to his life in the world; and in that world no one has torment; but the evil first come into torment, when after preparation they come into hell. There are innumerable societies in that world, and joys in them similar to those on earth, for the reason that they who are there are conjoined with men on the earth, who are also in the midst between heaven and hell. Their externals are there successively put off, and thus their internals are opened; and this until the ruling love, which is indeed the life’s love, and the inmost, and the one that governs their externals, is revealed; and when this is revealed, the man’s real quality appears; and according to the quality of that love, he is sent forth from the world of spirits to his place, if good into heaven, and if evil, into hell. That it is so has been given to me to know of a certainty, because it has been granted to me by the Lord to be together with those who are in that world, and to see all things, and thus to relate it from experience itself; and this now for twenty years. Therefore I can assert that purgatory is a fiction, which may be called diabolical; because it is for the sake of gains, and for the sake of power over souls, even of the deceased, after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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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사후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 (2023/5/9)

 

 

421

 

‘영들의 세계’(The world of spirits)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 둘 사이 중간 장소(place) 혹은 상태(state)로서, The world of spirits is not heaven, nor is it hell, but it is the intermediate place or state between the two;

 

이곳은 사람의 사후(死後, after death) 맨 먼저 도착하는 장소 혹은 상태이며, for it is the place that man first enters after death;

 

이곳에서 적당한 시간 동안 머물다가 그가 세상에서 보낸 삶에 따라 이후 천국으로 들려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내던져지는 그런 곳입니다. and from which after a suitable time he is either raised up into heaven or cast down into hell in accord with his life in the world. (HH.421)

 

 

422

 

영들의 세계는 천국과 지옥 사이 중간 장소이며, 또한 사람의 사후 중간 상태입니다. The world of spirits is an intermediate place between heaven and hell and also an intermediate state of the man after death.

 

저는 지옥이 그 밑에, 천국은 그 위에 있는 걸 보고 그곳이 중간 장소임을, 그리고 사람이 거기 있는 한, 그는 아직 천국도 지옥도 아닌 상태임을 보고 그곳이 중간 상태임을 알았습니다. It has been shown to me not only that it is an intermediate place, having the hells below it and the heavens above it, but also that it is in an intermediate state, since so long as man is in it he is not yet either in heaven or in hell.

 

사람 안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된(conjunction)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천국이며, 사람 안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된 상태가 바로 그 사람의 지옥입니다. The state of heaven in man is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in him; and the state of hell is the conjunction of evil and falsity in him.

 

사후 영이 된 상태(a man-spirit)에서 선과 진리가 하나 될 때, 그는 천국으로 가는데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그런 하나 됨이 바로 그의 안에 있는 천국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그 상태에서 악과 거짓이 하나 되는 경우, 이번엔 지옥으로 갑니다. 이런 하나 됨이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Whenever good in a man-spirit is conjoined to truth he comes into heaven, because that conjunction, as just said, is heaven in him; but whenever evil in a man-spirit is conjoined with falsity he comes into hell, because that conjunction is hell in him.

 

이런 하나 됨은 영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데, 그때 사람은 중간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That conjunction is effected in the world of spirits, man then being in an intermediate state.

 

이런 하나 됨을 이해(the understanding)와 의지(the will)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되고, 선(good)과 진리(truth)의 하나 됨이라고 해도 됩니다. It is the same thing whether you say the conjunction of the understanding and the will, or the conjunction of good and truth. (HH.422)

 

 

※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 421번, 422번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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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2023-05-10(D4)-매일예배(2470, 눅8,31-39),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을 구원하시는 주님 (2)'.pdf
0.42MB

https://youtu.be/_DZI_En4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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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는 자신의 애정과 상관없는 표정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2023/5/8)

 

천사들의 모든 아름다움은 결혼애(結婚愛, conjugial love)로 말미암는데요, 그렇게 각 천사는 자기가 이 결혼애 안에 있는 만큼만 아름답습니다. 모든 천사는 그들의 애정의 형상이기 때문인데요, 천국에서는 자신의 애정과 상관없는 표정 짓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그래서 그 결과 모든 천사는 그 얼굴을 보면 그들 마음의 타입(types of their minds)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결혼애나 주님 사랑, 서로 사랑, 그리고 선을 사랑함, 진리를 사랑함 및 지혜를 사랑함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이런 사랑들이 나타나고, 이것이 그들 눈에는 생명의 불꽃(vital fires)처럼 보이며, 그들에게 순진함(innocence)과 평화(peace)가 더해지는데, 이 둘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것입니다. (AE.1001) From conjugial love angels have all their beauty; thus each angel has beauty in the measure of that love. For all angels are forms of their affections; for the reason that it is not permitted in heaven to counterfeit with the face things that do not belong to one’s affection; consequently their faces are types of their minds. When, therefore, they have conjugial love, love to the Lord, mutual love, love of good and love of truth, and love of wisdom, these loves in them give form to their faces, and show themselves like vital fires in their eyes; to which innocence and peace add themselves, which complete their beauty. (AE.1001)

 

이 내용은 스베덴보리의 사후 저작(a posthumous work)인 ‘계시록 해설’(Apocalypse Explained) 1001번 글의 일부이며, 이 글은 계시록 16장 14절,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중,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에 관한 속뜻 주석에서 인용했습니다.

 

https://youtu.be/QsZygbo98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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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말씀(the Word)을 속뜻으로 읽는다는 건 이런 겁니다’ (2023/5/1)

 

천사들은 내적 존재, 또는 영적 존재라서 말씀을 내적 의미로밖에는, 즉 속뜻으로밖에는 읽을 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천사들은 우리를 볼 때, 우리 안의 영, 즉 속 사람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등장을 보면서, 그냥 ‘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작이 이랬구나. 속 썩이는 조카 롯을 왜 데리고 왔지? 사라가 참 미인이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한 건 장부답지 못하고 참 비겁하네...’ 하면서 읽습니다.

 

이런 것이 겉 글자로만 읽는 것이지요. 그러나 창세기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엔 속뜻, 곧 ‘아르카나’(arcana, 秘義)가 들어있으며, 천사들은 이것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실제로 아르카나는 그 깊이가 몇 단계나 되며, 첫 단계라 할지라도 사실 지상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하여튼 스베덴보리가 기술한 속뜻 주석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것인데요, 이는 마치 미적분 등 고등수학을 유치원생에게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12장을 자기가 와 있는 사람의 육안을 통해 읽는 천사의 눈엔 지상 인간의 언어로 된 글자는 안 보이고,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만 보이는데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곧 하란을 떠날 때부터를 천사는 거기 담긴 아르카나, 곧 주님의 어린 시절 그 내면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로 읽는 것입니다. 가령 12장의 경우,

 

여기 아브람은 주님의 영유아 시절부터 청년기 사이 주님의 상태를 표상(表象, representative)하는데요, 주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모호한 상태에서 더 명료한 상태로 발전하신 것입니다.

 

하란’(Haran)은 모호했던 첫 번째 상태를, ‘세겜’(Shechem)은 두 번째, ‘모레 상수리나무’(the oak grove Moreh)는 세 번째, ‘벧엘 동쪽 산,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the mountain which had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는 네 번째, 그리고 ‘남방, 애굽으로 옮겨갔더라’(journey thence toward the south into Egypt)는 다섯 번째 상태에 대한 표상입니다. (AC.1401)

 

아브람’(Abram)은 주님을, 특히 인간 본질(human essence)에 관한 주님을, ‘사래’(Sarai)는 아내로서는 천적(天的, the celestial)인 것에 인접한 진리를, 누이로서는 지적(intellectual) 진리를, ‘애굽’(Egypt)은 기억-지식(memory-knowledge, 보통 책을 통해 학습한 지식)을 표상하며,

 

주님도 어린 영유아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기억-지식을 습득, 천적, 천상의 진리로까지 발전하시는, 그런 전 과정이 이 실제 역사(true historicals)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부터의 기록인 것이며, 이는 주님의 마리아로 인한 인간 본질이 그 분 안 신적 본질(Divine essence)과 결합, 동시에 여호와가 되게 하시는 신적 질서(Divine order)에 따른 것입니다. (AC.1402)

 

참고로, ‘’(Lot) 또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주님의, 육체를 입으신 상태(sensuous and corporeal man)의 주님을 표상합니다.

 

뒤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관련, 롯 이야기, 싯딤 골짜기 왕들의 전쟁 이야기 등도 역시 겉으로는 실제 역사이지만,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면에서 일어난 상태들과 그 변화에 대한 기술입니다...

 

이렇게 천사들은 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주목하듯 오직 주님에 관한 아르카나에만 집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후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도 다른 나라 중장기 여행이나 이민 등을 갈 때, 그 나라에 대한 충분한 조사, 가령, 그 나라 역사, 문화, 특히 언어를 힘들여 익히거든 하물며, 우리의 영원을 보내게 될 천국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디 일분일초를 아껴 주님이 그의 종 스베덴보리를 통해 오픈하신 이 ‘천국의 비밀’에 관하여, 그리고 우선은 그의 책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마음을 다하여 가까이하시기를 간절히 권하고 또 권하겠습니다.

 

아, 한 가지, ‘아브람’(Abram)은 주님의 인간 본질의 상태를, ‘아브라함’(Abraham)은 주님의 인간 본질과 신적 본질 간 합일의 상태를 각각 표상하며, ‘사래’(Sarai)와 ‘사라’(Sarah)도 같습니다. 여기, 히브리 묵음 ‘h’가 바로 주님의 ‘여호와이심’, 곧 신성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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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진리 : 세례 요한과 인자’(눅7:33-34) (2023/4/28)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7:29-35)

 

...여기서 ‘세례 요한이 왔다’는 것은 새로운 말씀, 또는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그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는 진리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행하지는 않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은 선을 뜻하고, ‘포도주’는 진리를 뜻하며, ‘먹고 마시는 것’은 진리를 행함으로 진리와 선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의해 새로운 진리가 선포될 때,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진리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들도 진리를 따라 살지를 못합니다. 그 상태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는’ 상태입니다.

 

그때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 새로운 진리를 사이비 진리라 하며 조롱합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을 배척하는 것을 보세요. 그것이 요한에게 ‘귀신이 들렸다’ 하는 것입니다.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세례 요한이 온 것’이 말씀을 처음 받아들인 상태라면, ‘인자가 온 것’은 그 말씀 가운데로 주님이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지식 속으로 선이 있는 진리가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적으로 선을 동반한 진리이시기 때문인데요, 선을 동반한 진리, 즉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진리라야 신앙인들의 삶을 바꾸고 생명을 바꿉니다.

 

생명이 바뀐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가 신앙인의 의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즉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의지가 주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오시는 것’은 진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상태이며, 그렇게 해서 인격이 바뀌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비난을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비난을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표현합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것’은 이를테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과 진리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모든 걸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것은 저들의 진리가 이방인의 진리, 즉 이단적 진리라는 뜻입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선과 진리이신 주님과 결합하는 일인데요,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모두 형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과 진리 사랑하는 것을 선과 진리에 집착한다고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또 교회 밖 사람이라도 선하고 진실한 사람은 구원받는다 하면 이단적 진리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주님, 즉 진리 자체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 https://youtu.be/stlLInzz44Q

 

블로그 : https://bygrace.kr/1508

 

매일예배(2023/4/28, 눅7:29-35), '교회 밖 사람들, 교회 안 사람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stlLInzz4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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