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의 속뜻이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하는 이유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6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선들을 상징함이 분명한 것은 야발이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맨 처음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야발과 같이 자기도 ‘양 치는 자’란 말을 들었던 아벨, 하지만 그는 아담과 하와의 둘째였던 반면, 야발은 가인에서 시작, 일곱 번째였기 때문입니다. That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derivative goods are signified is evident from the fact that Jabal was not the first of those who “dwelt in tents and in folds of cattle,” for it is said likewise of Abel, the second son of Adam and Eve, that he was “a shepherd of the flock,” and Jabal was the seventh in the order of descent from C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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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의 속뜻

 

20절,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And Adah bare Jabal; he was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412

아다’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의 천적(天的, the celestial), 영적인 것들의 어머니를,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cattle)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는 사랑의 거룩한 것들과 그로 말미암는 천적 선들에 관한 교리를 말합니다. By “Adah” is signified, as before, the mother of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by “Jabal, the father of the dweller in tents, and of cattle,” is signified doctrine concerning the holy things of love, and the goods thence derived, which are celes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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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33, 창4:19-22, '창4 개요'(AC.324-337) -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야발’, ‘유발’, ‘두발가인의 속뜻

 

창4 개요

 

333

그 후 새로운 교회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의 의미입니다. 그들의 아들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으로 이 교회를 설명하고 있으며, ‘야발’로는 이 교회의 천적인 것들을, ‘유발’로는 영적인 것들을, 그리고 ‘두발가인’으로는 자연적인 것들을 각각 설명하고 있습니다. (19-22절) A new church then arose, which is meant by “Adah and Zillah,” and is described by their sons “Jabal,” “Jubal,” and “Tubal-Cain”; the celestial things of the church by “Jabal,” the spiritual by “Jubal,” and the natural by “Tubal-Cain.” (verses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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