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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7(D1)-신년주일연합예배(2524, 마5,3-12, 공주농아교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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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속뜻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3-12)

 

 

※ 오늘 설교에는 말씀 본문 인용이 참 많습니다만 평소 다 잘 아는 본문이라고 지루해하시거나 그냥 대충 후루룩 넘어가거나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와있으면서 우리의 눈을 통해 말씀을 읽는 천사들은 본인들이 내적 존재라 역시 말씀의 내적 의미, 곧 속뜻이라고도 하는, 말씀의 영을 보는데요, 그때 그 펼쳐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주님 신성의 이 수백, 수천 천상 오케스트라의 향연과도 같은 감동과 감격에 그들은 어쩔줄을 몰라하거든요. 우리는 외적 존재, 즉 탁하고 흐릿한 물질계에 있으면서 역시 의미 전달에 있어 매우 제한적인, 인간의 언어로된 겉뜻으로만 주님의 이 신성 가득한 말씀을 접하기 때문에 잘 못 느끼지만 말입니다. 우리 안의 천사들을 위해, 그리고 그 즉시 숨는 우리 안의 악령들을 위해(?), 그리고 그 결과, 우리 영의 소생을 위해 모든 성경을 읽을 때는 정성을 다해 예를 갖춰 읽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 성탄절 예배에 이어 오늘 신년 첫 주일예배 역시 공주농아교회 여러분과 함께 드리게 되어 참 좋습니다. 저는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합니다. 아마 우리 서미례 전도사님과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곳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임재 덕분이 아닌가 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할 때, 마음이 편한 집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불편한 집이 있지요. 집주인이 우리를 좋아하면 마음이 편하지만, 우리를 싫어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오래 못 있고, 용건만 간단히 마치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게 되지요. 주님이 이곳 공주농아교회를 편안해하시는 건, 여러분이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싫어하면 주님도 이곳에 오래 계시기가 눈치가 좀 보이실 거에요. 우리, 주님이 우리 곁에 늘 편안히 계시도록 힘써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올 한 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벌써 2024년 1월 7일입니다. 이렇게 해가 바뀔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인사가 바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인데요, 물론 우리는 이게 무슨 뜻인지를 다 잘 알지요. ‘올 한 해 건강하시고, 가정과 회사에 어떤 불행한 일 없이, 손대시는 일마다 크게 성공하여 평안한 한 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뭐 대충 이런 뜻으로 하는 무난한 인사입니다. 이런 인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겠지요.

 

저는 오늘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들 역시 똑같이 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세상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뜻으로 사용했으면 한다는 것과, 그에 따른 새해 권면도 좀 함께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고 해서 ‘’에 대해 뭐 유별나게 다르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 내용처럼 우리도 무병장수하고, 부귀영화 및 자손의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면 좋죠. 구약에도 보면 하나님을 섬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 애굽의 국무총리를 지낸 요셉, 큰 부와 명예, 영광을 누린 다윗과 솔로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나 오히려 큰 재상의 삶을 살았던 다니엘 등 ‘’에 대한 세상 관점에서도 이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을 누리다 간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며, 누가 천국에 가 보니 의외로 세상 살 때, 부유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많이 와 있더라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부자로 사는 것이 좀 더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 부자가 주님이 허락하신 재물을 그저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도구요, 쓰임새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이런 부자는 주님이 허락하신 부유함으로 적당히 좋은 집과 좋은 음식, 좋은 옷과 기타 여러 가지를 누려도 되는데요, 이런 부자는 절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며, 재물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할 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러면 성경에서는 ‘’을 무엇이라 하는가 하여 좀 찾아봤는데요, 참 많은 본문, 아니 성경 전체가 사실은 ‘’에 관한 책이라 할 정도로 많은 본문이 있어 좀 놀랐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마태복음 산상수훈 첫 시작을 주님은 ‘’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하시는 걸 보고, 신년 첫 말씀이기도 하니 우리도 이 팔복 본문으로 해야겠다 마음먹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늘 팔복 강해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단지 오늘 본문 통해 주님은 어떤 걸 ‘’으로 여기시며, 이 산상수훈은 천국 생활을 요약하신 건데, 그러면 혹시 천국 입국 자격을 주님은 이 팔복으로 말씀하신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말씀이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령께서 오늘 이 시간, 이 본당을 환히 비추셔서 오늘 말씀이 충분히 잘 전달되며, 다들 깊이 깨닫는 시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선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재산을 소유하고 부유한 삶을 사는 게 악한 것도, 죄짓는 것도, 잘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우선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법을 지키며,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25:20, 21)

 

하신 본문처럼 말입니다. 또 이런 본문들도 있는데요,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19:21, 22)

 

그리고 이 말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6:24)

 

물론 이 말씀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실제로 부모가 물려준 유산을 다 처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고 자기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의 삶을 살거나 그 밖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제법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우리가 잘 아는 아시시의 성자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열두 제자가 그랬고요, 수도원 공부를 하면 처음 배우게 되는 모든 수도사의 아버지 성 안토니우스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영적 실상을 말씀드리면, 아무리 남들이 쉽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이런 과감한 선행을 하였어도 그걸 자기 공로로 여기는 사람, 곧 속으로 ‘나는 실제로 이렇게 했으니 당연히 천국 갈 자격이 있어’ 하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괜히 재산만 날린 채, 천국도 못 갈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바울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3) 말하고 있음을 봅니다. 즉 그 동기, 숨은 의도가 오직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요.

 

무엇을 소유하는 것에 관해 천국의 천사들은 이런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든 의식주를 온전히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는데, 그것도 그 천사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최대로 받는다고 합니다. 천사들이라고 해서 다 같은 수준은 아닌데요. 그렇다고 뭐 세상에서처럼 내가 크니 네가 크니 하는 그런 건 아니고, 오직 얼마나 더 주님을 사랑하는가, 얼마나 더 주님의 신성을 깊이 받아들이는가 하는 걸 말합니다. 방금 최대로 받는다 했는데요,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한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최대로 받는 곳, 바로 그곳이 천국이니까요. 천사들은 그러나 그렇게 거저 받는 걸 절대 ‘소유’, 즉 ‘내 꺼’라는 생각으로 받지 않고, 대신 ‘이것의 쓰임새가 뭘까?’ 하는 생각으로 받는다고 합니다. 즉, 주님이 뭘 주시면, 그걸 받으면서 ‘주님이 이걸 왜 주실까? 나는 이걸로 무엇을 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걸까? 나한테 저 천사보다 더 주신 걸 보니 주님 보시기에 내가 이걸 가지고 해야 할 일이 더 많은가 보다’ 한다는 것이죠. 천사들은 주님께 모든 좋은 것을 거저 받으면서 늘 이런 태도로 받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 같으면, 이런 사람에게 더욱더 주고 싶지 않으시겠어요?

 

우리도 이 세상 살면서 천사들의 이런 마인드로 살면 우리 역시 반드시 우리 수준에 맞는 그런 복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 각 사람의 수준을 말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우리 각 사람의 분수에 지나는 복, 즉 감당할 수 없는 복을 허락하시지 않는데요, 그렇게 되면 그건 복이 아니라 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더욱 큰 복을 받고 싶으시면, 자신의 영적 역량, 곧 속 사람의 크기를 더욱 키우시기 바라며, 반대로 만일 지금 내 처지가 실망스럽다면 그 이유를 잘 생각해 보시고, ‘아, 지금의 내 영적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어서 주님이 나를 복 주실 수 없는 거구나...’ 하시고, 회개하고 돌이켜 부지런히 영적 성장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하시면, 분명 얼마 안 가,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눅15:22-24)

 

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복은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그래서 얼핏 이 여덟 가지가 제각각 다 다른 복 같지만, 그러나 사실은 천국 입국 조건, 즉 어떻게 하면 천국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을까라는 한 가지를 말씀하시는 건데요, 우리가 아까 성찬 때도 말씀드렸듯, 천국은 주님의 신성(神性)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신다면, ‘아, 그렇다면 내가 그런 나라에 입국하려면 내 안에 주님의 신성이 갖추어져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려면 그 나라에서 요구하는 최소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팔복은 바로 그 조건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 조건이란 바로 세상 살면서 주님의 신성을 부지런히 갖추는 것입니다. 즉 세상 살면서 무엇을 겉으로 ‘해야’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속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말이지요.

 

주님의 신성은 주님의 선과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살면서 주님의 신성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일상생활 가운데 주님의 선과 주님의 진리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오늘 주님은 여덟 가지, 곧 ‘심령의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에 주리고 목말라함’, ‘긍휼히 여김’, ‘마음의 청결함’, ‘화평케 함’,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음’ 등으로 말씀하신 건데요, 이는 곧 우리 속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령 이런 것이지요. 내 안에, 곧 내 속 사람 가운데 주님의 선과 진리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상태를 ‘심령의 가난함’이라 하신 것이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픈데 의지가 약해 그렇게 못 사는 걸 슬퍼하는 상태를 ‘애통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솔직히 나한테 돈이 없고, 이것저것이 없을 때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고 그러지, 이런 거룩한 걸 가지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다른 것들도 그 의미가 비슷비슷한데요, 우리가 ‘아... 내 안에는 이런 천국 입국 조건, 그 자격과 됨됨이가 너무나 많이 부족하구나...’ 하며, 심히 애통해할 때, 주님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바로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라고 말이지요. 이 약속들은 모두 그 속뜻으로는 천국에서 누릴 여러 영원한 행복을 뜻합니다.

 

2주 전 성탄절 예배 때 드린 말씀 또한 이와 비슷합니다. 다음은 그때 말씀인데요,

 

34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34-40)

 

여기서도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 되었을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그리고 ‘옥에 갇혔을 때’는 모두 우리 속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속 사람의 나라이기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 곳곳에서 계속해서 우리의 속 사람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의 속 사람이 사후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엔 주님의 모든것이 충만하기 때문인데요, 탈북자들이 그 목숨을 건 북한 탈출을 감행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정말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천국과도 같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는 ‘’ 또한 그 초점이 우리의 속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으며, 속 사람의 성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겉 사람의 복도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이며, 이 순서, 곧 ‘’이라는 것은 주님한테서 나와서 천국을 통해 속 사람을 거쳐 겉 사람에게 도달하는 것이라는 이 순서를 망각하고, 엉뚱한 순서, 그러니까 정반대의 순서이지요,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의 태도를 가지고 감히 천국의 ‘’을 추구하셨다가는 오히려 큰일 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태도를 보고 주님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하신 것입니다. 그때는 오히려 ‘’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이 우리를 위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다음 주님 말씀을 다들 기억하시지요?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 21)

 

즉 세상 살면서 그 안에 이미 천국이 있는 사람이라야 사후에 그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인데요, 이 말씀은 반대로는 세상 살면서 그 안에 지옥이 있는 사람은 사후 그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씀도 되지요.

 

여러분, ‘인생은 끝이 좋아야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아무리 뭘 야단스럽게 누리고 살았어도 그 끝이 지옥이면 꽝이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네, 고민할 것도 없이, 죽어서 천국 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럴려면, 평소 속 사람의 상태를 천국 상태로 유지하는 일에 모든 걸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중에 가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와 같은 권면을 오해하여 누구나 일단 예수 믿고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고 천국 간다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이 권면은 사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중간중간 생략된 권면입니다. 즉, ‘주 예수를 믿어 변화된 삶을 살아 그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이 되는 그런 사람과 그런 집은 사후에 구원을 받아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 말이지요. 해당 사도행전 본문도 보면 나중에 이 간수와 그 온 집이 정말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속 사람의 변화 없이 교회 다녔다고, 예수 믿었다고 저절로 무조건 천국 가는, 그런 건 없습니다.

 

오늘 ‘’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는데요, 다시 한번 확실하게 드리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은 사실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햇볕을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햇볕이 무슨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던가요? 똑같은 햇볕이 숲을 비추면 생명이 태동하지만, 거름더미를 비추면 부패가 시작되듯, ‘’도 ‘’ 그 자체이신 주님을 사람이 어떤 태도, 곧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된 삶을 살게 되고요, 반대로 주님을 미워하여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 나는 특별히 주님을 미워한 적이 없는데,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고 불행한 거야?’ 하시는 분들이 혹시 계실 텐데요, 주님을 미워하는 것은 마치 우리끼리 하듯 ‘나는 주님이 미워요.’라고 주님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주님 말씀보다 내 생각, 내가 하고픈 대로, 내 맘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걸 말하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무슨 말을 하거나 뭘 하려 할 때 먼저 주님께 여쭤보지 않아요. ‘주님, 제가 지금 이런 말을 해도 될까요? 주님, 제가 지금 이런 걸 해도 될까요?’ 하고 말이지요. 무슨 말을 하거나 뭘 하기 전, 먼저 주님의 뜻을 살피는 사람은 정말 범사에 주님 뜻대로 살기 원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라야 주님이 오셔서 함께하실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음 말씀처럼 말이지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올해가 2024년이지만 그러나 여러분, 천국엔 시간도, 공간도 없습니다. 거기는 이 세상 자연계처럼 태양이 있어 무슨 공전과 자전 같은 걸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거기엔 주님을 향한 우리 속 사람의 상태와 그 변화가 있는데요, 그래서 이 2024년이라는 숫자 역시 천국에서는 어떤 상태를 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해 인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그 속뜻으로는 ‘올 한해 당신의 속 사람이 더욱더 주님으로 채워져 영적으로 더욱더 놀라운 상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의미로 사용했으면 좋겠고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한테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좀 어려우실 수 있으나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을 귀를 주셔서 이 내용이 다들 자기 심령에 잘 들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오늘 2024년 신년 첫 주일을 맞아 마침 두 교회 연합으로 주님 공생애 내내, 아니 성경 전체를 하나로 관통하는 너무나 귀한 말씀인 ‘속 사람’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천국은 속 사람의 나라라는 걸 오늘 말씀 통해 깊이 명심하고, 당장 오늘부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우리의 하루하루, 우리의 모든 언행 통해 주님이 우리 각자 속 사람 안에 오셔서 편히 지내실 수 있는 그런 2024년 올 한 해 될 수 있게 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2024-01-07(D1), 신년

공주농아교회

설교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수화 통역

공주농아교회 서미례 담임전도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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