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3
이어서 나오는 ‘셋’(Seth), ‘에노스’(Enos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렛’(Jared), ‘에녹’(Enoch), ‘므두셀라’(Methuselah), ‘라멕’(Lamech), ‘노아’(Noah)라는 이름들은 그만큼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며, 그 가운데 첫째이자 주된 교회를 ‘사람’(man)이라 하였습니다. 이 교회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퍼셉션’(perception, 지각, 통찰력, 인식)이었으며, 그러므로 그 시대 교회들의 차이는 주로 이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여기서 퍼셉션에 관하여 덧붙이자면, 온 하늘, 천국 전체에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말고는 지배적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퍼셉션은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설명 불가한 것이며, 그 차이는 헤아릴 수 없어 어느 두 천국 공동체도 동일한 퍼셉션을 누리지 않습니다. 그곳에 있는 퍼셉션들은 ‘속’(屬, genera)과 ‘종’(種, species)으로 구분되는데, 그 속은 무수하며, 각 속에 속한 종들 또한 무수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주님의 신적 자비로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By the names which follow: “Seth,” “Enosh,” “Kenan,” “Mahalalel,” “Jared,” “Enoch,” “Methuselah,” “Lamech,” “Noah,” are signified so many churches, of which the first and principal was called “man.”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se churches was perception, wherefore the differences of the churches of that time were chiefly differences of perception. I may here mention concerning perception, that in the universal heaven there reigns nothing but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which is such as cannot be described, with innumerable differences, so that no two societies enjoy similar perception; the perceptions there existing are distinguished into genera and species, and the genera are innumerable, and the species of each genus are likewise innumerable; but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이와 같이 속이 무수하고, 또 각 속 안에 종이 무수하며, 그 종들 안에는 더욱 무수한 변종들이 있으므로, 이런 영계, 천국의 실상을 감안할 때, 오늘날 세상이 이런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가 분명합니다. 곧 그들은 퍼셉션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며, 설령 그것을 설명해 주어도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많은 것들도 이와 같습니다. 태고교회는 퍼셉션의 속과 종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천적 나라를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퍼셉션의 본질이 전혀, 그것도 가장 일반적인 차원에서조차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교회들의 퍼셉션의 속과 종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어둡고 낯설게 들릴 것입니다. 난생처음 듣는 얘기들이니까요! 그들은 그 당시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집과 가족 안에서만 결혼하였는데, 이는 퍼셉션의 속과 종이 존재 및 타고난 성향이 전해지는 것처럼 부모로부터 정확히 계승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태고교회에 속했던 자들은 하늘에서도 함께 거합니다. Since then there are innumerable genera, and innumerable species in each genus, and still more innumerable varieties in the species, it is evident how little—so little that it is almost nothing—the world at this day knows concerning things celestial and spiritual, since they do not know even what perception is, and if they are told, they do not believe that any such thing exists; and so with other things also. The most ancient church represented the celestial kingdom of the Lord, even as to the generic and specific differences of perception; but whereas the nature of perception, even in its most general aspect, is at this day utterly unknown, any account of the genera and species of the perceptions of these churches would necessarily appear dark and strange. They were at that tim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contracted marriage within their houses and families, in order that genera and species of perceptions might exist, and be derived from the parents precisely as are the propagations of native character; wherefore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dwell together in heaven.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83에서 창세기 5장에 나열된 이름들을 다시 한번 분명히 정리합니다. 셋에서 노아에 이르는 모든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각각 하나의 ‘교회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들 가운데 첫째이자 중심이 되는 교회를 ‘사람’이라 했습니다. 이는 앞서 여러 차례 보았듯이, 태고교회가 주님의 모양과 형상을 가장 온전하게 반영했던 교회였기 때문이지요. 이후에 나오는 모든 교회들은 이 ‘사람’의 상태에서 파생된 변형들이었습니다.
이 교회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 특징은 바로 ‘퍼셉션’(perception)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퍼셉션이란,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진리를 즉각적으로 알아보는 내적 지각’을 의미합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선한지를 배워서 알지 않았고, 명령을 통해 분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랑 안에서 곧바로 퍼시브, 곧 지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 교회들 사이의 차이는 교리의 차이나 제도의 차이가 아니라,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 특별히 이 ‘perception’이라는 영어를 ‘인식’이나 ‘지각’ 등으로 번역하지 않고 읽는 그대로 음역하는 이유는 이 단어가 가지는 고유 뉘앙스 때문입니다. 이런 게 몇 가지 있지요. ‘체어리티’(charity)라든지 라틴어 ‘아르카나’(arcana)라든지 등등... 이런 방식은 그냥 저 개인적 취향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퍼셉션의 세계를 천국의 질서와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온 천국에는 선과 진리에 대한 퍼셉션 외에는 아무것도 지배하지 않으며, 이 퍼셉션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고 풍부합니다. 천국의 어떤 두 공동체도 동일한 퍼셉션을 누리지 않으며, 그 차이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이 퍼셉션들은 속과 종으로 나뉘는데, 속 자체가 무수하고, 각 속 안의 종들도 무수합니다. 그리고 그 종들 안에는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변종들이 존재합니다.
※ 스베덴보리가 본인은 이미 동식물의 복잡한 분류체계를 알면서도 굳이 이 두 단계, ‘속’과 ‘종’만 언급하는 이유는, 천국의 질서는 이 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속’으로는 사랑의 방향을, ‘종’으로는 그 퍼셉션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천국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 설명은 오늘날 우리의 영적 무지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스베덴보리는 오늘날 세상이 천적이고 영적인 것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퍼셉션’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것이 존재한다는 설명을 들어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 신앙은 이해와 분석에는 익숙하지만, 퍼셉션이라는 차원에는 매우 낯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태고교회의 세계는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어둡고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내가 모르는 영역은 어둡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고교회는 바로 이 퍼셉션의 속과 종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천적 나라를 땅 위에서 살아 있는 방식으로 대표하고 있었습니다. 천국 수많은 공동체가 서로 다른 퍼셉션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듯이, 태고교회의 교회들도 서로 다른 퍼셉션의 상태를 지니면서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5장에 여러 이름들이 나열되는 이유입니다.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풍성한 차이 속의 하나됨’을 보여 주는 구조입니다.
이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집과 가족과 민족으로 구분되어 살았고, 집과 가족 안에서만 결혼했습니다. 이것은 폐쇄성이나 혈통 순수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퍼셉션의 속과 종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한 섭리적 질서’였습니다. 퍼셉션은 타고난 성향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타고난 성향의 전파’에 비유합니다. 마치 성격과 기질이 유전되듯이, 퍼셉션의 결도 그렇게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태고교회에 속했던 자들은 천국에서도 함께 거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땅에서 이미 퍼셉션의 속과 종에 따라 질서 있게 살았기 때문에, 하늘에서도 자연스럽게 같은 공동체로 모입니다. 하늘의 공동체는 임의로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퍼셉션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땅에서의 삶은 하늘 삶의 예비이며, 태고교회의 삶은 이미 그 예비를 가장 온전하게 살았던 삶이었습니다.
AC.483은 교회의 차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줍니다. 우리는 종종 차이를 분열로 여기지만, 주님의 나라에서는 차이가 곧 질서이며, 다양성이 곧 조화입니다. 문제는 차이가 아니라, 퍼셉션이 사라진 데 있습니다. 퍼셉션이 사라지면, 차이는 곧 충돌이 되지만, 퍼셉션이 살아 있을 때 차이는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가 됩니다.
결국 AC.483은 태고교회를 하나의 이상적인 과거로만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모형’이며, 오늘날 교회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퍼셉션을 잃어버린 시대에, 말씀은 우리를 다시 ‘퍼셉션이 지배하는 세계’로 초대합니다. 비록 태고교회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방향을 바라보는 것은 오늘날 신앙의 깊이를 회복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AC.484, 창5:3, '사람', 곧 '아담'과 '셋'의 차이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4 ‘셋’(Seth)이라는 교회가 태고교회와 매우 유사하였다는 건, 사람, 곧 아담이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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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2, 창5:3, ‘세’(years), ‘년’(numbers of years)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창5:3) AC.482 이 장에 나오는 ‘세’(years, 백삼십 세, 구백삼십 세 같은)와 ‘연수’(numbers of years, 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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