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5:3)

 

AC.486

 

‘아담은 팔백 년을 지내며’(the days of man were eight hundred years)의 영어 표현에 나오는 ‘날들’(days)은 일반적으로 시간(times)과 상태(states)를 의미하고, ‘해들’(years)은 특별한 의미에서 시간과 상태를 의미하며,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인식, 즉 퍼셉션하였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해설

 

스베덴보리는 AC.486에서 창세기 5장의 표현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시간 및 생육과 번성에 관한 언어가 결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아담은 팔백 년을 지내며(the days of man were eight hundred years)의 영어 표현에 나오는 날들(days)과 ‘해들(years), 그리고 ‘자녀들(sons and daughters)은 모두 외적으로는 시간의 흐름과 가족의 확장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교회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상태 안에서 무엇이 인식되고 보존되었는지를 말하는 언어입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5장을 역사로 읽으려는 시도를 단호히 차단하고, 상태의 역사로 읽도록 방향을 고정합니다.

 

먼저 ‘날들’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포괄적입니다. ‘날들’은 어떤 특정한 순간이나 길이를 가리키기보다, ‘하나의 전반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성경에서 하루, 여러 날, 혹은 어떤 날이라는 표현은 언제나 그때의 내적 상태, 곧 사랑과 신앙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창세기 5장에서 말하는 ‘그의 모든 날들(the days of man)은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상태가 어떤 성격으로 존재했는지를 요약하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해들’은 그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날들’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방향을 말한다면, ‘해들’은 그 안에서 드러난 ‘특정한 국면과 변화의 단계’를 뜻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앞서 ‘’가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그 의미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하며, 창세기 5장의 숫자들이 모두 상태의 차이를 표현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므로 ‘몇 해를 살았다’는 표현은, 교회가 어떤 상태를 얼마나 오래 유지했는지를 말하는 언어입니다.

 

이제 ‘아들들과 딸들’, 곧 ‘자녀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자녀들’은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그들이 퍼셉션하였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교회 상태에서 ‘자녀들을 낳았다’는 말은, 그 교회 안에서 새로운 진리의 퍼셉션과 선의 퍼셉션이 계속해서 생겨났음을 뜻합니다. 이는 교회가 살아 있었고, 단순히 유지된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풍성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이 점은 창세기 5장의 족보 전체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됩니다. 족보가 단지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반복’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생물학적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면, 이 족보는 각 교회 상태가 어떤 진리와 선을 퍼셉션했는지, 그리고 그 퍼셉션이 얼마나 풍성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아들들’은 이해력 안에서 형성된 진리의 퍼셉션들이고, ‘딸들’은 의지 안에서 형성된 선의 퍼셉션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진리들과 선들이 ‘배워서 축적된 것’이 아니라, ‘퍼셉션으로 알게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태고교회와 그 계승 교회들의 특징은, 진리와 선이 외부에서 주입된 교리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즉각적으로 퍼셉션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퍼셉션으로 알았던 진리들과 선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퍼셉션이 사라질 때, 교회는 더 이상 ‘아들들과 딸들’을 낳지 못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매우 직접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자녀들’을 낳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활동과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진리의 퍼셉션과 선의 퍼셉션이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생명력을 숫자나 규모로 판단하지 않고, ‘퍼셉션의 출산 여부’로 판단합니다.

 

또한 ‘날들’과 ‘해들’의 구분은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긴 시간의 신앙생활을 자랑하지만, 성경은 묻습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그리고 그 상태 안에서 어떤 진리와 선이 퍼셉션되었는가를 묻습니다. 짧은 날들이라도 깊은 퍼셉션의 상태에 있었다면, 그 교회는 살아 있었던 것이고, 긴 해들이었더라도 퍼셉션이 없었다면, 그것은 공허한 시간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AC.486은 창세기 5장의 언어를 완전히 전환시켜 줍니다. 시간은 연대가 아니라 상태이고, 출산은 생물학이 아니라 퍼셉션이며, 족보는 혈통이 아니라 교회의 생명 기록입니다. 이 관점을 붙들 때, 우리는 창세기 5장을 더 이상 건너뛰고 싶은 장으로 보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이 장은, 교회가 살아 있었던 시절의 ‘가장 섬세한 생명 기록’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됩니다.

 

 

 

AC.487, 창5:4, '날'(day), '해'(year), 단순 숫자, 복합 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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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85, 창5:3, 창4, 창5에 반복되는 '셋', '에녹', '라멕'이라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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