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5:23, 24)

 

AC.522

 

에녹(Enoch)이라 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난 퍼셉션의 상태와 성격 또한 저는 알 수 있었는데요, 그것은 어떤 분명함도 없는, 다소 일반적이고 어두운 퍼셉션의 한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마음이 자기 안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교리적인 것들 쪽으로 그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게 되는 그런 퍼셉션이었습니다. The state and quality of the perception with those who were called “Enoch” have also been made known to me. It was a kind of general obscure perception without any distinctness; for in such a case the mind determines its view outside of itself into the doctrinal things.

 

 

해설

 

이 글은 에녹의 교회가 지녔던 퍼셉션의 ‘질감’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앞선 교회들에서 퍼셉션은 개별적이고 분명했지만, 에녹의 교회에 이르면 그 퍼셉션은 더 이상 또렷한 분별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인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흐릿해져 전체적으로만 느껴지는 상태가 됩니다.

 

스베덴보리가 ‘일반적이고 어두운 퍼셉션(a kind of general obscure perception without any distinctness)이라고 표현한 것은, 선과 진리를 전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즉각적으로 분별해 내는 힘’이 약해졌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대강은 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가 바로 ‘시선의 이동’입니다. 마음이 자기 안에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그 판단의 근거를 ‘자기 밖’에서 찾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깥’이 바로 교리적인 것들입니다. 즉, 살아 있는 퍼셉션 대신, 이미 정리된 교리와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아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 점은 앞선 AC.519–521의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어요. 에녹의 교회는 퍼셉션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교리가 필요해졌고, 그 교리는 이후 세대를 위해 보존되었습니다. AC.522는 그 이유를 ‘인식의 실제 상태’ 차원에서 설명해 주는 글입니다. 퍼셉션이 분명하지 않으니, 마음은 자연스럽게 교리로 향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이 상태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것을 타락이나 실패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섭리 안에서 허락된 전환’입니다. 퍼셉션으로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교리라는 외적 기준이 주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설명은 오늘날 많은 신앙인의 상태를 정확히 짚어 줍니다. 우리는 종종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분명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 교리 문장, 신앙의 원칙을 찾아 확인하려 합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니라, 퍼셉션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다만 이 글은 동시에 하나의 경고도 담고 있어요. 마음의 판단이 완전히 바깥으로만 향하게 될 때, 신앙은 점점 ‘규범 중심’으로 굳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교리는 필요하지만, 교리만으로는 생명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녹의 교회는 교리를 만들어 보존했지만, 그 교리 자체가 퍼셉션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AC.522는 에녹의 교회를 이렇게 규정합니다. 퍼셉션은 남아 있으나 흐릿해졌고, 그 결과 마음은 자기 안의 빛보다 바깥의 교리를 더 의지하게 된 상태라고 말입니다. 이 상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중요한 징후이며, 교회가 더 이상 퍼셉션만으로 유지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글은 교리의 필요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줍니다. 교리는 퍼셉션이 약해진 시대에 꼭 필요한 기준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살아 있는 인식이 회복되어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로 남아야 합니다. 에녹의 교회는 바로 그 전환의 자리에 서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AC.521, 창5:23-24,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3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5:23, 24) AC.521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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