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다닌 사람은 결국 구원 받기 어려워’

 

‘교회 안 다닌 사람은 결국 구원받기 어려워.’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해 온 사람이라면 이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는 신앙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다른 신자들과 교제하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합니다. 혼자서는 알기 어려웠던 성경의 진리를 배우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섬김을 실제로 연습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교회가 구원의 중요한 통로다’라는 말과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다’는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에 가깝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은 지옥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교회를 주님보다 앞세우는 뜻밖의 문제가 생깁니다. 구원하시는 분은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교회 안’과 ‘교회 밖’이라는 외적 경계만으로 사람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대표적입니다(눅10:25-37).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종교 제도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말씀을 알고 예배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지나갔습니다. 반대로 종교적으로는 경계 밖에 있다고 여겨지던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람을 돌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종교적 신분을 들어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실제로 자비를 행한 사람이 ‘이웃이 되어 준 자’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입니다. 교회의 목적이 사람을 단지 ‘교인’으로 만드는 데 있다면 교회 출석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목적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고, 악을 죄로 알고 피하게 하며, 선과 진리를 사랑하고 이웃에게 체어리티(charity)를 행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있다면 교회는 목적 그 자체라기보다 주님께서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렌즈에서 보면 ‘교회’라는 개념은 건물이나 교단 명부보다 훨씬 깊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가 사람 안에 받아들여지는 데 있습니다. 외적 교회가 있고 동시에 사람 안에 형성되는 내적 교회가 있습니다. 사람이 말씀의 진리를 배우고 그것을 삶으로 받아들여 선을 행할 때 그 사람 안에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 형성됩니다. 따라서 일요일마다 예배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 안에 교회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상당히 엄중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50년 동안 한 번도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많이 알고, 찬송가도 잘 부르며, 교회 직분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평생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며, 거짓과 탐욕을 죄라고 여기지 않고, 이웃에게 해야 할 선을 외면한다면 ‘50년 교회 출석’이라는 기록 자체가 그 사람을 천국적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합니다. 교회 안에 오래 있었다는 것과 주님께서 그 사람 안에 교회를 이루셨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사정으로 평생 교회에 제대로 다녀 보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좋은 교회를 만날 기회도 없었으며, 어쩌면 그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때문에 교회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양심을 따라 거짓말과 부정을 피하려 했고, 가족을 책임지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선을 따라 살려고 애썼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단지 ‘교회 출석 기록이 없으므로 당신은 주님에게서 멀리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서 살펴본 ‘평생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모르면 지옥 가’라는 문제와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구원의 근원은 인간의 착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사실을 명시적으로 알고 있지 않더라도 그가 받아들이는 모든 참된 선과 진리의 근원은 주님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교회라는 외적 통로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접근하실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섭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교단과 건물의 경계보다 훨씬 넓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안 다녀도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말일까요? 여기서도 그렇게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착하게 사니까 교회 같은 것은 필요 없어’라는 생각 속에는 또 다른 ‘프로프리움’(proprium)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내가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의 선함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욕망을 선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정의라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넘어서는 진리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필요하고, 가르침이 필요하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비추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귀중함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우리 안에 들어와야 구원받는다’고 사람을 붙잡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자신을 목적지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가리켜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사람이 자신의 악을 보도록 도우며, 회개와 거듭남(regeneration)의 길을 걷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유용한 일을 행하도록 길러 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구원의 주인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섬기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보다 구원받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더 많은 진리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매주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과 말씀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사람을 주님께서 똑같은 외적 잣대로 판단하신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님께서는 각 사람이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무엇을 알 수 있었고, 자신에게 주어진 빛 안에서 무엇을 자유롭게 선택했는지를 보십니다.

 

주님께서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눅12:48).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것은 단순히 구원에 유리한 경력을 많이 쌓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과 말씀과 선과 진리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나는 교회를 몇 년 다녔는가?’보다 ‘그동안 들은 말씀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구분합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교회로 초청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구분이 지나치게 굳어지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나는 이미 안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주님께서 회개를 촉구하신 대상들도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저 사람은 아직 교회를 안 다니니 구원받기 어렵다’고 미리 판단하기보다 주님께서 그 사람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지 인간은 다 알 수 없다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람을 겁주어 교회라는 울타리 안으로 데려오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가 주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만나면서 오히려 주님에게 가까워지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전도이겠습니까!

 

이것은 특히 교회가 상처의 장소가 된 사람들을 생각할 때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모욕을 당했거나, 권위주의적인 목회자를 만났거나,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강요와 정죄를 경험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배당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주님까지 떠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상처 때문에 진리 자체까지 거부하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주님께서는 그 사람이 왜 떠났는지, 무엇을 경험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여전히 찾고 있는지를 우리보다 훨씬 정확하게 아십니다.

 

반대로 교회를 떠난 자신의 선택을 언제나 정당화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 상처받았으니 나는 이제 말씀도 공동체도 필요 없다’고 굳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교회 안인가 밖인가’라는 위치만이 아닙니다. 나는 진리를 원하고 있는가, 악을 죄로 여기고 있는가, 주님에게서 오는 선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리고 이웃을 향하여 체어리티를 행하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입니다.

 

사후세계에서는 교적부도, 출석부도, 직분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장로였는지, 권사였는지, 집사였는지, 어느 교단에 속했는지가 그 자체로 천국의 신분이 되지 않습니다.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었는지가 드러납니다. 교회생활이 참으로 귀한 것은 바로 그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변화시키시고,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 다닌 사람은 결국 구원받기 어려워’라는 말에는 절반의 진리와 상당한 오해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교회와 말씀과 신앙 공동체 없이 혼자 신앙의 길을 걷는 것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참된 교회는 인간에게 엄청난 영적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곧바로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교회 출석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각 사람의 내면에서 이루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합니다. ‘교회를 다녔는가?’보다 더 깊은 질문은 ‘교회를 통하여 주님을 만났는가?’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질문이 더 따라옵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실제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말씀과 선과 진리로 이끄시는 귀중한 통로이며, 교회 출석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교회 밖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구원에서 제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더 짧게 말한다면 이것이겠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에 물으시는 것은 너는 교회에 몇 년 다녔느냐가 아니라, 그 모든 빛을 받으며 너는 어떤 사랑의 사람이 되었느냐입니다.’

 

 

 

SL.18, ‘평생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모르면 지옥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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