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창3:16)
261. 지금 ‘여자’가 상징하는 것은 프로프리움(proprium, 固有本性)에 관한 교회인데, 이 프로프리움을 교회가 사랑한 것입니다. By the “woman” is now signified the church as to proprium, which it loved;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가 상징하는 것은 전투이며,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불안입니다. by “greatly multiplying her sorrow” is signified combat, and the anxiety it occasions;
‘임신’은 모든 생각을, by “conception,” every thought;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는 그래서 그녀가 낳게 될 진리들을, by the “sons whom she would bring forth in sorrow,” the truths which she would thus produce;
‘남편’은 여기서도 앞서 살핀 대로, 그것이 따르게 될, 그리고 다스리게 될 래셔널을 상징합니다. by “man,” here as before, the rational which it will obey, and which will rule.
262. 앞서 교회를 ‘여자’로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보아왔다면, 여기서는 전에는 자기 자신이었던 그 고유본성 때문에 지금은 비뚤어진 교회를 ‘여자’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태고교회의 비뚤어진 후손들을 지금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is signified by the “woman” has been previously shown, but here the church perverted by the own which was itself formerly signified by the “woman,” because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had become perverted, is now treated of.
263. 그러므로, 감각 파트가 자신을 외면하거나, 자신을 향해 욕을 할 때, 그 결과는, 악한 영들은 싸움에서 파워풀해지는 반면, 수행 천사들은 애를 먹게 되고... 그래서 이 전투를 묘사하여 이르기를,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즉, 진리를 생각하고, 생각한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전투라고 할 만큼 쉽지 않은 과정이 됩니다. When therefore the sensuous part averts itself or curses itself, the consequence is that evil spirits begin to fight powerfully, and the attendant angels to labor, and therefore this combat is described by the words,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in relation to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that is, as to the thoughts and productions of truth.
264. 이 말씀에 나오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은 영적인 뜻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임신’이 마음에 품은 생각과 그 방법을, ‘자식’은 진리를 말하는 것임은, 호세아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the “conception and birth of sons,” in the Word, are taken in a spiritual sense—“conception” for the thought and device of the heart, and “sons” for truths—is evident from Hosea:
11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 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As for Ephraim, their glory shall fly away like a bird, from the birth, and from the womb, and from the conception; though they shall have brought up their sons, yet will I bereave them, that they be not man; yea, woe also to them when I depart from them, (호9:11-12)
여기 ‘에브라임’은 지성 혹은 진리에 대한 이해를, where “Ephraim” signifies the intelligent, or the understanding of truth;
그리고 ‘자식’은 진리들 자체를, and “sons,” truths themselves.
‘에브라임’에 관한 어떤 곳이든지, 그가 지성을 가졌든,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든 마찬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It is likewise said elsewhere concerning Ephraim, or one who is intelligent, who has become foolish: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그에게 임하리라 그는 지혜 없는 자식이로다 해산할 때가 되어도 그가 나오지 못하느니라 The sorrows of one in travail have come upon him, he is an unwise son, for at the time he will not stand in the breach of the womb of sons. (호13:13)
이사야입니다. And in Isaiah:
4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하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5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Blush, O Zidon, for the sea hath spoken, the fortress of the sea, saying, I have not travailed, nor brought forth, nor have I brought up young men, nor caused girls to grow up; as at the report concerning Egypt, they shall bring forth according to the report of Tyre, (사23:4-5)
여기 ‘시돈’은, 신앙의 지식들을 가졌었으나 나중에 기억-지식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파괴하여 지금은 척박해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where “Zidon” means those who have been in the knowledges of faith, but have destroyed them by memory-knowledges, and so have become barren.
[2] 다시 같은 선지서인데요, 거듭남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여기서도 신앙의 진리들이 ‘아이’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Again in the same prophet, treating of regeneration, and where likewise the truths of faith are signified by “sons”:
7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8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Before she travailed she bringeth forth; and before her pain came, she was delivered of a man child; who hath heard such a thing? Who hath seen such things? Shall the earth bring forth in one day, and shall I not cause to bring forth? saith Jehovah; shall I cause to bring forth, and close up? saith thy God. (사66:7-9)
천국 결혼을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는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켜, 그래서 ‘아들들’이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 하신 말씀입니다. Goods and truths, being conceived and born of the heavenly marriage, are therefore called “sons” by the Lord in Matthew:
37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He that soweth the good seed is the son of man; the field is the world and the seed are the sons of the kingdom. (마13:37-38)
구원하는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을 가리켜 주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요8:39)이라 하십니다. And the goods and truths of a saving faith he calls “sons of Abraham” (John 8: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They answered and said to Him, Abraham is our father. Jesus says to them, If you were Abraham’s children, you would do the works of Abraham. (요8:39)
‘후손’은 (255번 글에서 다룬 대로) 신앙을 가리키며, 그리고 ‘후손’에 속한 ‘자손’은 신앙의 선들과 진리들이기 때문입니다. for “seed” (as stated n. 255) denotes faith, wherefore “sons,” which are of the “seed,” are the goods and truths of faith.
이런 이유로, 또 주님은 그 자신을 ‘후손’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자신을 가리켜 ‘인자’, 즉, 교회의 신앙이라 하셨습니다. Hence also the Lord, as being himself the “seed,” called himself the “Son of man,” that is, the faith of the church.
265. ‘남편’이 래셔널을 상징한다는 것이 이 장 6절에 보면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즉, 그도 동의했음을 의미합니다. That by “man” [vir] is signified the rational appears from verse 6 of this chapter, in that the woman gave to her man with her, and he did eat, by which is meant his consent;
같은 내용이 158번 글, 아담에 관한 내용을 보아도 분명한데요, 거기 보면, 아담(남자, 사람, vir)은 지혜와 지성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and the same is also evident from what was said of the man in n. 158, where by him is meant one who is wise and intelligent.
하지만 여기 나오는 ‘남편’은 래셔널을 가리킵니다. 지식의 나무를 먹음으로써 지혜와 지성이 파괴되었고, 그 결과, 아무것도 안 남았기 때문이며, 이렇게 된 이유는, 외관상 그럴듯하게 지성을 흉내 내는 것으로 전락한 것이 바로 레셔널이기 때문입니다. Here however “man” denotes the rational, because in consequence of the destruction of wisdom and intelligence by eating of the tree of knowledge, nothing else was left, for the rational is imitative of intelligence, being as it were its semblance.
266. 모든 법과 수칙(守則, precept)은 참된 출발점인 천적, 영적인 것에서 나오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 곧, 이 결혼의 법칙 또한 그렇다는 것이며, 그러려면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사려분별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이성으로 움직이는 남편과 달리 그녀의 고유본성에 속한 디자이어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As every law and precept comes forth from what is celestial and spiritual, as from its true beginning, it follows that this law of marriage does so, which requires that the wife, who acts from desire, which is of what is her own, rather than from reason, like the man, should be subject to his pru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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