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And it repented Jehovah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창6:6)
586a. ‘한탄하사’(후회, repent)는 자비(mercy)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걸 상징합니다. ‘한탄하사’는 지혜와 관련이 있고, ‘마음에 근심하시고’는 사랑과 관련이 있습니다. That he “repented” signifies mercy; that he “grieved at the heart,” has a like signification; to “repent” has reference to wisdom; to “grieve at the heart” to love.
587.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가 자비를 상징하며, ‘마음에 근심하시고’ 역시 같은 상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분명, 곧 결론지을 수 있는데요, 여호와는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만물을 온전히 영원부터 예견(豫見, foresee)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람을 지으셨을 때, 즉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온전하게 하사 천적 인간이 되게 하셨을 때에도 그는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지금 여기서 설명 중인 이런 인종이 될 것을 예견하셨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예견하셨고, 그래서 후회하실 수 없으십니다. That it repented Jehovah that he made man on the earth signifies mercy, and that “he grieved at the heart” has a like signification, is evident from this, that Jehovah never repents, because he foresees all things from eternity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nd when he made man, that is, created him anew, and perfected him till he became celestial, he also foresaw that in process of time he would become such as is here described, and because he foresaw this he could not repent.
사무엘이 한 말을 보면, 이런 사실이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This appears plainly from what Samuel said: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 하니 The invincible one of Israel doth not lie, nor repent, for he is not a man that he should repent. (삼상15:29)
모세의 글에는 And in Moses: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God is not a man that he should lie, or the son of man that he should repent; hath he said, and shall he not do? Or hath he spoken, and shall he not make it good? (민23:19)
오히려 ‘후회하다’라는 것은 자비로워짐, 불쌍히 여김을 상징합니다. But to “repent” signifies to be merciful.
여호와의 자비(mercy), 곧 주님의 자비는 인류를 향하여 주님이 행하신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인류는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상태에 있으며, 주님은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을 저마다의 상태에 따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벌을 받게 되어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며, 선의 즐거움을 누리게(grant) 된 사람 또한 불쌍히 여기십니다. 벌(punishment)은 자비의 한 가지 행위인데, 그 이유는 자비는 벌에 포함된 모든 악을 선으로 구부리기 때문입니다. 선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또한 자비의 한 가지 행위인데, 아무도 어떤 종류의 선도 결코 자기 공로로 얻을(earn)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 전체가 악하며, 모든 사람은 그냥 방치되면 지옥을 향해 거꾸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옥 밖으로 사람을 끌어당기시는 것이 자비이며, 이것이 순수한 자비인 것은, 주님은 이 일에 어떤 사람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The mercy of Jehovah, or of the Lord, includes everything that is done by the Lord toward mankind, who are in such a state that the Lord pities them, each one according to his state; thus he pities the state of him whom he permits to be punished, and pities him also to whom he grants the enjoyment of good; it is of mercy to be punished, because mercy turns all the evil of punishment into good; and it is of mercy to grant the enjoyment of good, because no one merits anything that is good; for all mankind are evil, and of himself everyone would rush into hell, wherefore it is of mercy that he is delivered thence; nor is it anything but mercy, inasmuch as he has need of no man.
자비를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 라틴, 자비)라 합니다. 인간을 지옥의 비참(miseries)(주1)에서 건져주시기 때문이며, 인류가 처한 비참한 상태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자비는 비참 가운데 있는 전 인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의 결과입니다. Mercy has its name from the fact that it delivers man from miseries1 and from hell; thus it is called mercy in respect to mankind, because they are in such a state of misery, and it is the effect of love toward them all, because all are so.
588. 주님에 대하여, ‘후회하신다’, ‘마음에 근심하신다’ 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자비 한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주님의 ‘후회’, ‘근심’이라는 표현은, 말씀 여러 다른 구절처럼 그래 보이는 겉모습을 따른 것입니다. But it is predicated of the Lord that he “repents,” and “is grieved at heart,” because there appears to be such a feeling in all human mercy, so that what is said here of the Lord’s “repenting” and “grieving” is spoken according to the appearance, as in many other passages in the Word.
주님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곧 주님의 자비의 본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인간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것은 인간의 이해를 무한히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자비, 곧 후회하고 근심하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자비에 대한 개념을 잡지 않으면, 그는 결코 자비에 대한 어떤 개념도 가질 수 없으며, 그래서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곧 주님의 속성을 서술할 때, 왜 종종 인간의 속성을 가지고 하는지 하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또는 주님이 벌하신다, 시험하신다, 파괴하신다, 화내신다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주님은 결코 누구를 벌하시지도, 결코 누구를 시험에 빠트리시지도, 결코 누구를 파멸에 이르게 하시지도, 그리고 결코 화를 내시지도 않으시는데 말입니다. What the mercy of the Lord is none can know, because it infinitely transcends the understanding of man; but what the mercy of man is we all know to be to repent and grieve; and unless a man were to form his idea of mercy according to his own apprehension, he could not have any conception of it, and thus he could not be instructed; and this is the reason why human properties are often predicated of the attributes of Jehovah or the Lord, as that Jehovah or the Lord punishes, leads into temptation, destroys, and is angry; when yet he never punishes anyone, never leads any into temptation, never destroys any, and is never a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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