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달팽이에게도 충고하지 말라

 

 

카프만 부인이 자신의 책 ‘광야의 샘’에서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 그녀는 누에고치에서 번데기가 나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바늘구멍만 한 틈새에서 몸 전체가 비집고 나오려고 한나절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안쓰러운 생각에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다. 커진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온 나방은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을 시도하더니 결국 날지 못하고 땅바닥을 맴돌았다. 그녀는 나방이 작은 틈새로 나오려고 애쓰는 시련을 거치면서 날개의 힘이 길러지고 물기가 알맞게 말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고통을 싫어하고, 기쁨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통이 없고 기쁨만 있다면 인간의 내면은 절대 여물 수 없다. 나방처럼 난관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생존의 힘을 기를 수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말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화나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늘의 여러 별자리 가운데서

제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지 말고 참아라.

별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루슬로가 쓴 ‘또 다른 충고들’이란 시이다. 사람들은 자식이나 친구에게 충고하면서 “다 너를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상대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대로 살게 하려는 욕심일 수도 있다. 비록 느린 달팽이일지라도 분명히 자신의 속도와 자신의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의 잣대로 함부로 충고하지 말아야 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이 때론 상대를 돕는 최선의 길일 수 있다.

 

자녀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살라’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부모의 잔소리가 자식을 별천지로 옮겨줄 마법의 양탄자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삶의 주인공인 자기가 애써 얻은 것만이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도 주인공 파우스트는 신비한 약을 먹고 젊어진다. 그는 마법의 도움으로 모든 영화를 누리지만 마법에 의존한 쾌락은 허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온 그는 생의 황혼녘에 이렇게 외친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으려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삶은 휘황찬란한 마법에 있지 않다. 오늘 하루 내 삶을 당당히 살았으면 그것으로 되었다. 달팽이도 자기 속도대로 걸어간다.

 

(배연국 / 세계일보 논설위원)

 

 

정득재목사.2021-04-02(D6), '달팽이에게도 충고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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