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회심

...이 무렵, 어느 날 기도드리고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프란치스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참말로 실행하고자 한다면, 네가 지금까지 육정 안에서 사랑해 온 모든 것을 멸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이것을 실천한다면, 지금까지 달콤하고 사랑스럽게 생각되던 모든 것들은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 되며, 이제까지 네가 꺼리고 회피해 다니던 모든 것이 도리어 지극히 달콤하고 기쁜 것이 되리라.'

 

어느 날 프란치스코는 말을 타고 산책을 떠났다. 이 무렵, 그의 정신에는 새 생활에 대한 감격과, 주님께 절대귀의하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말이 산길 구부러진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돌연히 바로 앞에 나병자 한 사람이 마주 걸어오고 있지 않은가! 평소에 나병자 공포증이 있는 그는 순간 본능적으로 말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통렬하게 자기를 자책했다.

 

'내가 이렇게 놀라운 계획을 품고 있으면서 이처럼 비겁해서야 되겠는가...'

 

모질게 휘몰아치는 양심의 책망! 그는 반사적으로 말 잔등에서 뛰어내려 나병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병자의 손에 자기가 갖고 있던 돈주머니를 다짜고짜로 쥐어 주고는 놀라서 자기를 바라보고 섰는 나병자를 사제처럼 힘껏 가슴에 안고, 썩어 냄새나는 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흥분하여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육체적 기분으로는 구역질이 났으나, 자기 전존재를 황홀 속에 떨게할 만큼 한없는 영혼의 기쁨에 사로잡혔다. 프란치스코가 달콤한 것보다 고난을 선택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고통스런 것을 달게 변화시켜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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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04,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AC.298-304) - '생명, 먹다, 영생'의 속뜻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304

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해지는데요,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는 무엇이든지 사랑과 신앙에 속한 것이면 다 인정하기 위해서 아는 걸 말합니다. ‘생명(lives)이 이렇게 복수로 표기하는 건 사랑과 신앙을 가리키는 것이며, 여기 먹다는 전에도 말씀드렸듯 알다이기 때문입니다. 영생하다는 몸을 가지고 영원히 산다는 뜻이 아니라 사후 지옥 상태로 영원히 산다는 뜻입니다. 죽은(dead)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육체의 생명이 다한 후 죽기 때문이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죽음의 삶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란 지옥 상태의 삶, 곧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살다라는 표현 역시 에스겔을 보면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From all this it is evident what is meant by the words,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To “take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is to know even so as to acknowledge whatever is of love and faith; for “lives” in the plural denote love and faith, and to “eat” signifies here as before, to know. To “live to eternity” is not to live in the body to eternity, but to live after death in eternal damnation. A man who is “dead” is not so called because he is to die after the life of the body, but because he will live a life of death, for “death” is damnation and hell. The expression to “live,” is used with a similar signification by Ezekiel:

 

18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려고 손목마다 부적을 꿰어 매고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수건을 만드는 여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은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는 영혼을 살리려 하느냐 19너희가 두어 움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에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내어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 (겔13:18-19) Ye hunt souls for my people, and save souls alive for yourselves, and ye have profaned me among my people, to slay souls that will not die, and to make souls live that will not live. (Ezek. 1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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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03,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AC.298-304) - 주님 강림의 때에 유대인들의 모습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303

사람은 그가 설득된, 즉 인정하고 믿는 모든 것을 통해 일종의 생명을 얻습니다. 설득되지 않았거나 인정도 믿지도 않는 것으로는 사람의 마음에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래서 인정할 정도로 설득되었고 아직 부인하지는 않고 있는 한, 아무도 거룩한 것들을 모독할 수 없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것처럼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주님 강림의 때에 유대인들의 모습이 저랬습니다. 그래서 말씀에서 저들을 가리켜 황폐해졌다’, 혹은 파괴되어 초토화되었다’, , 더이상 무슨 신앙이라는 게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는, 말씀의 속뜻이 그들에게 오픈된다고 해서 그들이 무슨 해를 받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비록 보고 있으나 아직 못 보며, 듣고 있으나 아직 못 듣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마음은 꽉 막혀 있습니다. 이들에 관하여 주님은 이사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A man acquires a life by all the things he is persuaded of, that is, which he acknowledges and believes. That of which he is not persuaded, or does not acknowledge and believe, does not affect his mind. And therefore no one can profane holy things unless he has been so persuaded of them that he acknowledges them, and yet denies them. Those who do not acknowledge may know, but are as if they did not know, and are like those who know things that have no existence. Such were the Jews abou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therefore they are said in the Word to be “vastated” or “laid waste,” that is, to have no longer any faith. Under these circumstances it does men no injury to have the interior contents of the Word opened to them, for they are as persons seeing, and yet not seeing; hearing, and yet not hearing; whose hearts are stopped up; of whom the Lord says in Isaiah: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6:9-10) Go and tell this people, Hearing hear ye, but understand not, and seeing see ye, but know not.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fat, and make their ears heavy, and smear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so that they be healed. (Isa. 6:9–10)

 

사람들이 그런 상태, 즉 너무나 황폐해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믿는 상태(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이 신앙의 신비들을 모독할 수 없는)가 될 때까지 신앙의 신비들은 밝히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같은 이사야 계속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아주 분명히 선포하고 계십니다. That the mysteries of faith are not revealed until men are in such a state, that is, are so vastated that they no longer believe (in order, as before said, that they may not be able to profane them),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the subsequent verses of the same prophet:

 

11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6:11-12) Then said I, Lord, how long? And he said, Even until the cities are desolated, so that there be no inhabitant; and the houses, so that there be no man, and the ground be utterly desolated, and Jehovah have removed man. (Isa. 6:11, 12)

 

그를 일컬어 지혜로운 혹은 인정하고 믿는 ‘사람’이라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이 오셨을 때 그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탐욕, 특히 욕심으로 말미암아 그런 황폐함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주님에 관해 수천 번을 듣고 있고, 또 그들의 교회 여러 표상들이 그 어느 것 하나 다 예외 없이 주님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으며, 안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노아 이전 고대인들이 에덴동산에서 내쫓기고 황폐해진, 심지어 더이상 어떠한 진리도 인정할 수 없는 지경까지 황폐해진 이유였습니다. He is called a “man” who is wise, or who acknowledges and believes. The Jews were thus vastated, as already said, at the time of the Lord’s advent; and for the same reason they are still kept in such vastation by their cupidities, and especially by their avarice, that although they hear of the Lord a thousand times, and that the representatives of their church are significative of him in every particular, yet they acknowledge and believe nothing. This then was the reason why the antediluvians were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and vastated even until they were no longer capable of acknowledging any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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