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9,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 '두루 도는 불 칼'의 속뜻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309

두루 도는 불 칼(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이 광적 탐욕과 들러붙은 신념, 곧 신앙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기를 무척 원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육적, 세속적인 것들을 향해 휩쓸려 버리고 마는, 그런 자아 사랑을 상징한다는 것은, 말씀에서 페이지들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만큼 많은 인용 구절들을 가지고 확인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에스겔에 나오는 몇 구절 가지고만 하고자 합니다. That by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is signified self-love with its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which are such that they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ut are carried away to corporeal and earthly things, might be confirmed by so many passages from the Word as would fill pages; but we will cite only these from Ezekiel:

 

9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10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14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15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겔21:9-10, 14-15) Prophesy and say, Thus saith Jehovah, Say a sword, a sword, it is sharpened, and also burnished to make a sore slaughter; it is sharpened that it may be as lightning. Let the sword be doubled the third time, the sword of his slain; the sword of a great slaughter, which entereth into their bed chambers, that their heart may melt, and their offenses be multiplied, I have set the terror of the sword in all their gates. Alas! it is made as lightning. (Ezek. 21:9–10, 14–15)

 

여기 ‘(A sword)은 사람의 황폐함, 곧 선과 진리는 전혀 못 보고, 대신 ‘많이 엎드러지게 하다(multiplying offenses)라는 표현이 가리키는 대로, 그저 매사를 거짓과 거꾸로만 볼 뿐인 상태, 황폐함을 상징합니다. 또 나훔에도 보면, 거기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가리켜,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3:3)라 하고 있습니다. A “sword” here signifies the desolation of man such that he sees nothing that is good and true, but mere falsities and things contrary, denoted by “multiplying offenses.” It is also said in Nahum, of those who desire to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The horseman mounting, and the flame of the sword, and the flash of the spear, and a multitude of the slain.” (Nahum 3:3)

 

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훔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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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08,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 '그룹'(cherubim)의 속뜻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308

동쪽(the east)과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에 관한 상징은 위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걸로 오래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그룹(cherubim)이 주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the Lord), 곧 이 섭리가 없으면 사람은 자기 본성을 따라, 그리고 감각과 기억-지식에 속한 것을 따라, 광적으로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들어가서는 그것들을 신성모독(profane),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는, 그런 섭리를 가리킨다는 것은 말씀 가운데 ‘그룹’이 나오는 데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주님의 오심, 유대교회의 표상들, 형식들이 주님을 상징한다는 것, 그리고 사후에도 계속되는 삶, 또한 속 사람과 말씀의 속뜻 등에 관하여 계시가 열려 어떤 지식을 갖게 되면, 그들은 반드시 그것을 모독하려 할 것이고, 결국엔 영원히 소멸되어 버리고 말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님이 그들을 지키심을 궤 위(above) 속죄소 위(on), 성막 휘장들 위(upon), 성전 안 휘장 위(upon)그룹으로 상징하신 것입니다. (25:18-21; 26:1, 31; 왕상6:23-29, 32) 그 안에 증거판이 들어있었던 증거궤가 이 본문의 생명 나무와 같은 것을 상징, 즉 주님과 오직 주님에게 속한 천적인 것들을 상징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또한 주님은 자주 일컬음 받으시기를,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the God of Israel sitting on the cherubim)이라 하셨고, 그래서 주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두 그룹 사이에서(between the cherubim) 말씀하셨습니다. (25:22; 7:89) 이것은 에스겔, 그룹이 언급된 부분을 보면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As the signification of the “east” and of the “garden of Eden” were given above, it is needless to dwell longer on them; but that “cherubim” denote the providence of the Lord lest man should insanely enter into the mysteries of faith from his own, and from what is of the senses and of memory-knowledge, and should thus profane them, and destroy himself, is evident from all the passages in the Word where mention is made of “cherubim.” As the Jews were of such a quality that if they had possessed any clear knowledge concerning the Lord’s coming, concerning the representatives or types of the church as being significative of him, concerning the life after death, concerning the interior man and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they would have profaned it, and would have perished eternally; therefore this was represented by the “cherubim” on the mercy seat over the ark, upon the curtains of the tabernacle, upon the veil, and also in the temple; and it was signified that the Lord had them in keeping. (Exod. 25:18–21; 26:1, 31; 1 Kings 6:23–29, 32) For the ark, in which was the testimony, signified the same as the tree of lives in this passage, namely, the Lord and the celestial things which belong solely to him. Hence also the Lord is so often called the “God of Israel sitting on the cherubim,” and hence he spoke with Moses and Aaron “between the cherubim.” (Exod. 25:22; Num. 7:89)This is plainly described in Ezekiel, where it is said:

 

3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5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6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7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겔9:3-7) The glory of the God of Israel was uplifted from upon the cherub whereon he was, to the threshold of the house. And he called to the man clothed with linen, and said unto him, Go through the midst of the city, through the midst of Jerusalem, and set a mark upon the foreheads of the men who groan and sigh for all the abominations done in the midst thereof. And to the others he said, Go ye after him through the city, and smite; let not your eye spare, neither have ye pity; slay to blotting out the old man, and the young man, and the virgin, the infant, and the women; defile the house, and fill the courts with the slain. (Ezek. 9:3–7)

 

2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7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겔10:2, 7) He said to the man clothed in linen, Go in between the wheel to beneath the cherub, and fill thy palms with coals of fire from between the cherubim, and scatter them over the city; the cherub put forth his hand from between the cherubim unto the fire which was between the cherubim, and took thereof, and put it into the palms of him that was clothed in linen, who took it and went out. (Ezek. 10:2, 7)

 

이 구절들에서 분명한 사실은, ‘그룹’의 상징이 사람들이 신앙의 신비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라는 것이며, 그래서 ‘성읍 위에 흩을 숯불(the fire that was to be scattered over the city) 및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말라(none should be spared)의 상징이 그들은 자기들의 광적 탐욕들 가운데 버려졌다라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the providence of the Lord in preventing men from entering into the mysteries of faith is signified by the “cherubim”; and that therefore they were left to their insane cupidities, here also signified by the “fire that was to be scattered over the city,” and that “none should be spared.”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출25:18-21)

 

1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출26:1, 31)

 

23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 29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2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왕상6:23-29, 3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25:22)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민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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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307,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AC.306-313) -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의 속뜻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307

여기서 다루는 후손들은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입니다. 이들은 홍수로 사라졌고,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즉 진리에 관한 모든 이해에서 박탈, 광적 탐욕(insane cupidities)과 들러붙은 신념(persuasions)만 남은, 그래서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It here treats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which perished by the flood, and were altogether “cast out of the garden of Eden,” that is, from all understanding of truth, and became as it were not men, being left to their insane cupidities and persua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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