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D1)-주일예배(2536, 눅17,28-37),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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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2024-03-24(D1)-주일예배(2536, 눅17,28-37),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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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의 속뜻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없음) 37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눅17:28-37)

 

 

주님이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사신 것은 말세에 진리의 신성, 또는 말씀의 내적 의미가 고대 교회가 이해했던 것과 같은 모습으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사흘째는 말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해서 인자, 즉 진리의 신성이 그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천국의 비밀 2813:3, 이순철 역) The Lord’s rising again on the third day also involves that truth Divine, or the Word as to the internal sense, as it was understood by the ancient church, will be revived in the consummation of the age, which is also the “third day” (n. 1825, 2788); on which account it is said that the son of man (that is, truth Divine) will then appear (Matt. 24:30, 37, 39, 44; Mark 13:26; Luke 17:22, 24–26, 30; 21:27, 36). (AC.2813:2)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누가복음 17장 같은 본문, 지난주에는 전반부를 했다면 오늘은 후반부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자가 나타나는 날’은 내적 의미, 즉 그 속뜻으로는 교회의 마지막 때, 낡고 부패한 교회가 무너지고, 새로운 교회가 열리는 때를 말합니다. 그때를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때 주님께서 새 교회, 곧 인류 다섯 번째, 마지막, 그리고 영원한 교회인 새 교회의 교리로서 말씀의 내적 의미를 열어주시는데, 그 내적 의미, 속뜻이 바로 인자, 곧 진리이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거나 사람의 아들, 즉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실 때는, 주님의 거룩한 인간(Divine Human, 신적 인간) 안에 있는 선을 뜻하고, 인자라고 하실 때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의 속뜻으로 오시는, 교회의 마지막 때를 가리켜 ‘인자가 나타나는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에 대해 본문 28과 29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은 마치 롯이 소돔에서 나오는 때와 같다고 하십니다. 여기 소돔은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 깊이 빠져있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온갖 욕망들을, 유황은 그런 욕망들에서 비롯한 거짓 교리를 뜻합니다. 교회 안에 선과 진리가 사라지고, 대신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가 만연할 때, 신실한 신앙인들은 진리를 찾아 부패한 교회를 떠납니다. 그들이 바로 롯으로 표상되는 선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불과 유황이 하늘에서 쏟아지고, 롯이 소돔에서 나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불과 유황이 쏟아지는 것은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로 말미암아 교회가 스스로 몰락하는 것이고, 롯이 소돔을 떠나는 것은 선한 사람들이 부패한 교회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홍수가 있기 직전, 어떤 사람들은 방주에 올라 구원을 얻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주 밖에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다가 홍수를 만났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교회를 심판하시는 방법입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먹는 것은 삶 가운데서 저지르는 악이 의지라는 생명에 쌓이는 것이고, 마시는 것은 삶 가운데서 저지르는 거짓들이 이성이라는 생명에 쌓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곧 이성과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31절과 32절 말씀입니다.

 

31그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앞의 28절과 29절 말씀이 부패한 교회에 대한 심판에 대한 것이라면, 이 말씀은 새 교회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지붕은 영적으로 가장 높은 것인 사랑의 선을 뜻하고, 집과 세간은 그보다 낮은 차원의 것인 신앙의 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이 집의 세간을 가지러 내려오는 것은, 선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 진리의 상태로 내려가는 것이며,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거듭나기 전 사람과 거듭난 사람의 차이에 대해 '천국의 비밀' 10184번 글 4번 항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진리를 통해 선으로 나아가며, 그러므로 부분적으로는 자기가 자신을 이끈다. 그러나 거듭나게 되면 주님께서 선을 통해 그를 이끄신다. (AC.10184:4, 이순철 역) for in this state man is led by means of truth to good, thus partly by himself; but in the later or posterior state, namely when he has been regenerated, man is led by good, that is, through good by the Lord.

 

그러니까 거듭나기 전 진리의 인도를 받을 때는 주님께 완전히 의지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에 의지하는 상태라는 것이고, 거듭난 후에 선의 인도를 받을 때라야 비로소 주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 거듭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영적으로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만큼 살아나고, 주님보다 자신을 믿는 만큼 영적으로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붕에 있던 사람이 세간을 가지러 집 안으로 내려오는 것이나, 롯의 처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주님만을 믿고 따르던 사람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며,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러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뒷걸음치지 않고, 항상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와 관련해 본문 34절과 3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밤에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림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밤은 교회의 마지막 때의 상태, 즉 교회 안에 악한 욕망과 거짓 교리가 가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자리, 또는 침상은 교회의 교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마지막 때에는 같은 교리 안에 있더라도 삶의 행위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만의 교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따라 진실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만, 새 교회의 신앙 안에 있더라도 믿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두 사람이 한 자리에 누워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른 삶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가는데 하나만 데려감을 얻고, 다른 하나는 버림을 당한다는 것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여기서 여자는 진리에 대한 애정을 뜻하고, 맷돌을 가는 것은 애정을 가지고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깨우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진리에 대한 애정이 같아 보이더라도 애정의 질에 따라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할까요? 자아의 애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애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자아에서 비롯한 애정은 진리를 진리 그 자체로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어떤 이익을 위해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보려고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자아의 욕심이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주님이 주신 애정 안에 있는 사람은 진리 그 자체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은 항상 진리의 깨달음 안에 있게 되고, 그것으로 매일 같이 영적으로 성장합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맷돌을 가는 두 여자 중 구원받는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진리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을까요? 왜 우리는 진리를 그 자체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에 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자기 목숨을 보전하는 것은 주님보다 자신의 자아를 더 사랑하는 것이고,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은 주님을 위해 자아를 버리는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자아를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여깁니다. 굶주림은 견뎌도 모욕을 당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못 견디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이런 자아를 그대로 두면 절대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나아가서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아는 모든 진실과 선의를 왜곡하고, 결국은 주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잃는다는 것일까요? 주님이 주시는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아를 버리는 자는 대신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으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악하고 거짓된 지옥의 영들이 믿지 않는 자는 물론이고, 믿는 사람들까지 유혹해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신앙적으로 뒷걸음질 칠 때가 많습니다. 또 부패한 교회들은 인간의 추론을 앞세워 진리를 왜곡하고, 수많은 거짓 교리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들의 추론의 능력을 주검 위에 날아드는 독수리에 비유했습니다. 주검은 사랑과 믿음을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죽어 있는 교회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마16:25)고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16:24)

 

생명처럼 아끼는 자아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아를 버리기 위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아와의 싸움에서 때로는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가장 아름답고 진실한 교리이신 주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눈먼 자는 눈을 뜰 것이요, 귀머거리는 귀가 열릴 것이며, 앉은뱅이는 일어나 걸을 것입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5:8, 9)

 

아멘

 

 

원본

2021-10-17(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3-2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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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7(D1)-주일예배(2535, 눅17,20-27), ‘인자(人子)의 날, 번개의 번쩍임’의 속뜻.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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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人子)의 날, 번개의 번쩍임’의 속뜻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17:20-27)

 

 

천사들이 이 천국 또는 저 천국에 있는 것은 그들의 내면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면이 주님을 향해 열려 있는 만큼 그들은 보다 내적인 천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과 지옥 33, 이순철 역) with the angels it is the interiors that cause them to be in one heaven or another; for as their interiors are more open to the Lord they are in a more interior heaven. (HH.33)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다 돌아온 이후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언젠가는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하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오셨을 당시는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암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열망은 더욱 컸습니다. 그들이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된 것은 구약의 예언 때문이었는데, 특히 이사야서 11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4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9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사11:1, 4, 9)

 

유대인들은 이 말씀 속에 속뜻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단지 메시아가 오셔서 다윗 왕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고만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곧 메시아의 출현이었던 것입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주님이 메시아이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도 세상 나라들처럼 물질로 만들어지는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세워지는 사랑과 지혜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할까요? 마가복음 4장 26절 이하에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6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막4:26-29)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적인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 세워지는 영적 나라이며,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 사람의 생애 전체를 통해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번에는 제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때가 이른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 안에 더 이상 사랑도 없고 진정한 믿음도 없는 때입니다. 교회들이 영적으로 그렇게 피폐해질 때, 신실한 신앙인들은 진리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닙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진정한 진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하신 것은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즉 참된 진리를 찾아다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에서 ‘인자’는 진리이신 주님을 뜻하고,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는 것은 교회 안에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에 진리가 없는 이유가 뭘까요? 그들이 말씀을 왜곡, 거짓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나무는 진리 또는 믿음을 뜻하고, 열매는 진리에 따른 삶의 행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진리만 있고, 진리에 따른 삶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교회가 그와 다르게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거짓입니다. 거짓된 교리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랑과 진리를 파괴하고, 그렇게 해서 교회를 내적으로 붕괴시킵니다. 교회의 종말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교회의 마지막 때는 진리를 가장한 수많은 거짓과 이설이 나타나 진리에 목마른 신앙인들을 현혹합니다. 그 거짓들은 아주 교묘해서 가끔은 진리를 많이 안다는 사람조차도 빠져듭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신실한 교인들을 향해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하십니다. 진리를 잘 모르는 사람이 거짓에 빠져드는 것은 큰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를 잘 아는 사람이 거짓에 빠지는 것은 큰 죄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더럽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서는 세상의 종말, 즉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24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여기서 ‘인자의 날’은 교회의 마지막 때를 뜻하며, 동시에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의 교리로서 참된 진리를 선포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때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과 저쪽에서 번쩍이는 것은 교회의 거짓들과 맞서 싸우는 신성한 진리를 나타냅니다. 번개는 주님에게서 나오는 신성한 진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신성한 진리를 가지고 어떻게 싸우실까요? 한편으로는, 진리를 찾아 헤매던 신실한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진리를 알면서도 왜곡했던 사람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에게서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빼앗아 버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것이 오히려 큰 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것에 대해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요9:39)

 

주님이 오셔서 참된 진리를 세상에 밝히실 때 거짓 교리 안에 있는 교회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참된 진리이신 주님을 핍박하고 말살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본문 25절에서는,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교회들이 신성한 진리를 모독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유대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섞어 장로의 전통이라는 인간의 교리를 만들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모독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죄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린 양같이 순결하신 주님을 욕하고 폭행하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주님을 폭행하고 죽이는 것은 신성한 진리를 모독하고 말살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그 본질에 있어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며, 이 진리는 선 자체이신 여호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진리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요한복음에서는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9, 10)

 

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항상 교회들에 의해 말씀이 왜곡되고 조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주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새 교회도 이유 없이 박해를 받았고, 교리가 부인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시험을 이기시고, 신성한 인간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새 교회의 진리도 시험을 딛고 이겨냄으로써 보다 완전하고 단단한 진리가 됩니다. 완전한 진리가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진리와 선, 또는 믿음과 인애, 체어리티의 삶이 더욱 긴밀하게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악과 거짓의 위협과 유혹을 이겨냄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 주님이 밝혀 주시는 새로운 진리를 통해 눈이 밝아진 사람들은 그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거짓 진리를 끝까지 붙들고 참된 진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점점 눈이 어두워져 나중에는 진리가 뭔지 거짓이 뭔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 소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린 양 같은 순진함입니다. 그래야 주인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진리의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그냥 가지고만 있는 진리가 아닙니다. 고난의 진리이며, 형제와 이웃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도 있는 진리입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내적 진리로 다시 오신 주님의 손을 잡고, 시험을 이기고 또 이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새 교회의 모든 성도들, 그리고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17:26, 27)

 

아멘

 

원본

2021-09-19(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4-03-17(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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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구원 시스템, 주님의 구원 시스템 (2024/3/16)

 

다음은 교보문고 웹사이트에서 검색한 책, ‘위대한 선물’(스베덴보리 연구회 편역)에 달린 후기들에 대한 통계인데요, 총 48개의 후기 중 부정적인 후기는 전체의 12%인 반면, 나머지 88%가 긍정적이었습니다. 아래는 부정적인 몇 가지 후기입니다.

 

 

ra*****|2009.08.01

종교 1위라니 지금 깜짝 놀랐습니다.

 

베스트셀러라고 무턱되고 보지마세요 검증된거 하나도 없습니다.

 

이책과 관련된 세미나도 있는데요 가지마세요

 

정 은혜 회복 되고 싶으시면 예배생활과 성경을 보세요

 

su*******|2009.06.18

제가 이 서적을 비방하려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장로교에 다니는 일반 성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서적을 보면 우리에 교리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것입니다.

 

10장도 채안되서 그냥 버렸습니다 .새일교인가? 몰몬교인가? 아무튼 외국 이단종파에 서적일뿐입니다.

 

말도 안되는 계시를 받고 어쩌고 저쩌고 보지 맙시다.

 

ch******|2009.11.06

대단히 위험한 책입니다... 왜 기독교 도서부문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종교다원주의와 뉴에이지에 관한 내용인데 말입니다...

 

dm******|2009.10.29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말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사도행전 4장12절)

 

스베덴보리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왔기에 그의 책을 한번 읽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영계를 다녀오고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는 내용과 스베덴보리 연구회에서 한국적 시각에서 일부를 편집한 책이다.

 

이 책을 펴낸 스베덴보리 연구회는 여러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선하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이 책에서 끊임없이 하고 있다. 특히 불교의 인물들을 예로 들며 종교다원주의적인 엉뚱한 결론을 내고 있다. 정작 스베덴보리는 불교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연구회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 독자들을 우롱하고 있는 책이다.

 

종교다원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지만 천국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구절을 적당히 인용해서 자기들 입맛대로 편집한 책은 읽으면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고 마음을 미혹하게 하는 사탄의 앞잡이 노릇만을 하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절대로 읽을 가치가 없는 책입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천국과 지옥을 찾아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yo***|2009.05.02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기독교 신앙에 도움을 받았다는 식으로 글을 쓴다.하지만 포장을 잘 헤치고 내용을 보면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 아니다.오히려 단전호흡 등을 통해 영계로 들어간 사람들의 경험담과 흡사하다. 이 책을 읽고 천국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성실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긍정적이다.하지만 이를 넘어서 기독교 신앙에 접목시키는 것은 머리를 안개속에 담가 놓는 것과 같을 것이다.

 

xf****|2014.02.28

추천해서 읽게 되었지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완전 대실망이다. 사후세계를 말하는 책들이 의례 허무맹랑하지만 한 시대의 저명한 과학자가 저술한 책답게 사후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성격이 말하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사후세계를 지극히 현세적 관점으로 그리고있다.

중간 즘 읽다가 멈췄는데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다음은 제가 위 글들 중 두 군데에 단 댓글들입니다.

 

 

Ca*******|2024.03.16

저는 연구회 사람은 아니지만 위 글 중 '연구회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결론을 내림으로써'라는 부분에 대해 그건 좀... 하며 생각나는 바 있어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6장 '천국의 비기독교인들'(The Heathen, or Peoples outside of the Church, in Heaven)이라는 챕터가 있으니 혹시, 시간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역본이 있으나 '김은경 역'을 추천합니다.

 

Ca*******|2024.03.16

위 내용 중, '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 아니다'라는 부분에 대해 좀 바로잡았으면 하여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라 하면 천주교를 포함, 개신(改新)교 전체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기독’(基督, 중국어로는 ‘기두’로 발음)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에 대한 한자 표기인 ‘基利斯督’(중국어로는 ‘기리스두’로 발음)를 음역(音譯), 그러니까 우리 식대로 축약해서 읽은 건데요, 가령, 프랑스를 ‘佛蘭西’(중국어 발음은 포란시), 즉 우리말 불란서로 읽는 것과 같은 겁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둘 다 그 뿌리가 ‘기독’, 곧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타 종교 입장에서 봤을 땐 다 기독교인 것이지요. 이 외에도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뿌리로 하는 다양한 종파, 예를 들면, 정교회라든지, 콥트라든지 등등 모두 무슨 세계 종교 분포도 같은 통계를 낼 때는 다 합쳐서 기독교로 분류합니다.

 

스베덴보리 역시 그 출발이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기독교인 것이 확실하지요.

 

잠깐 위키백과를 보니 세계 종교에서 기독교가 25억이며, 그 안에서 가톨릭이 12억, 개신교가 6억, 정교회 3억 등으로 나옵니다. 현 전 세계 인구가 대략 80억으로 나오는 걸 보면, 기독교는 30프로 좀 넘네요. 주님의 시야엔 이 나머지 70프로, 55억의 인구 역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자녀라는 사실과, 만일 개신교 6억만 놓고 볼 때도, 주님의 구원은 나머지 74억한테도 중요하지요. 그래서 주님은 현 개신교의 구원 시스템 외에 나머지 74억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공정한 구원 시스템을 준비하셔야만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언짢고 못 마땅하신지요?

 

 

두 번째 댓글 맨 마지막 문장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요, 위 부정적 후기를 올린 분들이 거의 개신교인들인 것 같고, 대부분 몹시 불편해하시는 걸 보면서 요나 생각이 났습니다. 특히 요나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들이 말이지요.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4:10, 11)

 

거듭, 80억 인류 가운데 고작(?) 6억인 개신교인들이 나머지 74억을 위해서도 구원의 방도를 마련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다음은 위 첫 번째 댓글에서 언급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6장 '천국의 비기독교인들'(The Heathen, or Peoples outside of the Church, in Heaven)이라는 챕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김은경 역입니다.

 

318. 일반적 견해에 의하면 교회 밖에서 난 사람들, ‘이교도’, ‘비기독교인’이라 불리는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몰라 주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주님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다음 한 가지만으로도 확실히 알 수 있다. 주의 자비는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을 향한 자비라는 사실이다. 또 비기독교인들은 이들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한 교회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사람으로 태어나며, 또 그들이 주를 모르는 것도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밝은 이성으로 생각한다면, 사람은 단 한 명도 지옥에 가도록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는 사랑 자체이시고, 그분의 사랑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는 모든 사람에게 종교가 있도록 섭리하시고, 그 종교에 의해 신성과 내적 삶을 인식할 수 있게 섭리하셨다. 자기 종교에 따라 사는 것이 곧 내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신성을 바라보게 되며, 사람이 신성을 바라보는 만큼 그는 세상을 보지 않고, 세상에 대한, 즉 외적 삶인 세속적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321. 나는 많은 경우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덕적으로 살고, 자기 종교에 따라 순종과 겸손과 서로 간의 이웃사랑으로 살았으며, 그래서 양심을 지니게 된 비기독교인들이 내세에 가면 천사들이 이들을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선과 신앙적 진리에 대해 세심히 가르쳐준다. 이 사람들은 일단 배우고 나면, 겸손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게 행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흡수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는 신앙적 진리에 위배되는, 뽑아버려야 할 그릇된 관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고, 특히 주님을 보통 사람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주님을 함부로 여기는 관념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비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고, 그렇게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셨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수긍하고, 주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은 천상천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인류는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당신을 온전히 나타내신 것이라고 말한다. 주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는 것은 신적 진리다. 그러나 이 말은 모든 구원은 주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위 글들의 하이라이트는 각각

 

주는 모든 사람에게 종교가 있도록 섭리하시고, 그 종교에 의해 신성과 내적 삶을 인식할 수 있게 섭리하셨다. 자기 종교에 따라 사는 것이 곧 내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신성을 바라보게 되며, 사람이 신성을 바라보는 만큼 그는 세상을 보지 않고, 세상에 대한, 즉 외적 삶인 세속적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살고, 자기 종교에 따라 순종과 겸손과 서로 간의 이웃사랑으로 살았으며, 그래서 양심을 지니게 된 비기독교인들이 내세에 가면 천사들이 이들을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선과 신앙적 진리에 대해 세심히 가르쳐준다. 이 사람들은 일단 배우고 나면, 겸손하고 총명하고 지혜롭게 행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흡수한다.

 

입니다. 이 글들은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글이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은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지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이런 조건(?)들은 천국 생활을 위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기 때문에, 비록 주님의 말씀을 가진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실제 삶이, 그 내면이 이런 기본과 거리가 멀다면 그는 천국에서 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개신교에서 말하는 소위 ‘영접기도’라든지, ‘구원의 확신’이라든지, 그리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의 교리에 정통, 목숨 걸고 그 교리를 지킨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사실 이런 교리들은 다 바울서신에서 뽑아낸 것들이요, 복음서와 계시록, 그리고 창세기를 비롯한 ‘말씀(The Word)에는 나오지 않는 교리입니다. 오히려 복음서에서는 아래와 같이 가르칩니다.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4:35-40)

 

그러므로 확실히 오늘 글 제목처럼 개신교의 구원 시스템과 주님의 구원 시스템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인이지만 그 신앙에서 체어리티(charity, 이웃사랑)를 분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내면이 천국에 합당하게 되어 구원받습니다. 신앙은 체어리티를 담는 그릇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글 제목을 좀 더 정확히 잡는다면, ‘개신교인들 중에서 신앙에서 체어리티를 분리한 사람들의 구원 시스템과 주님의 구원 시스템은 다르다’가 되겠습니다. 사실 개신교인들 뿐이겠습니까? 기독교인들 전체가 그렇겠지요!

 

다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0, 21)

 

즉 그 내면, 그 속 사람의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인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이며, 이런 상태는 오직 ‘주님 사랑, 이웃 사랑(Love to the Lord and Charity toward the Neighbor)의 삶을 산 사람이라야만, 오직 그 신앙에서 체어리티를 분리하지 않은 사람이라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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