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24, 25)

 

AC.45

 

태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속한 것들을 이렇게 상징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서들, 그리고 구약 말씀 전체에서 보면 늘 서로 다른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걸 표현하는데요, 짐승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해롭기 때문에 악하다 하는 짐승들이 있고,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선하다 하는 짐승들이 있지요. 이때 사람 안의 악들은 곰이나 늑대, 개 같은 해로운 짐승들로, 그리고 반대로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암송아지나 양, 어린양 같은 짐승들을 가지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여기 이 본문에서 말하는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짐승들이며, 따라서 애정들을 뜻합니다. 이는 이 본문이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안에서 몸과 더 가까이 연결된 더 낮은 것들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고 하는데, 이것들은 욕정(cupidities)과 쾌락(pleasures)을 뜻합니다. Those who lived in the most ancient times thus signified the things relating to the understanding and to the will;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and constantly in the Word of the Old Testament, the like things are represented by different kinds of animals. Beasts are of two kinds; the evil, so called because they are hurtful; and the good, which are harmless. Evils in man are signified by evil beasts, as by bears, wolves, dogs; and the things which are good and gentle, by beasts of a like nature, as by heifers, sheep, and lambs. The “beasts” here referred to are good and gentle ones, and thus signify affections, because it here treats of those who are being regenerated. The lower things in man, which have more connection with the body, are called “wild animals of that earth,” and are cupidities and pleasures.

 

 

해설

 

이 글은 왜 말씀에서 이해와 의지에 속한 것들이 반복해서 ‘짐승(beasts)의 이미지로 표현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단순한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태고 시대 사람들의 인식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내적 상태를 추상 개념으로 나누기보다, 살아 움직이는 형상으로 보았고, 그래서 이해와 의지의 상태를 동물의 성질로 표현했습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점은 ‘짐승’이라는 말이 본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짐승은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으며, 그 기준은 해를 끼치느냐, 온순하냐에 있습니다. 곰, 늑대, 개처럼 해로운 짐승들은 사람 안의 악한 충동과 파괴적인 성향을 뜻하고, 암송아지, 양, 어린양처럼 온순한 짐승들은 선하고 부드러운 애정을 뜻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짐승들은 후자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거듭나고 있는 사람의 상태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에서는 악한 짐승들이 주된 상징이 되지 않고, 선하고 온순한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의지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그 안에 들어오는 애정들이 더 이상 해롭지 않고, 주님의 질서 안에 놓이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특히 이 글은 ‘짐승’이 애정을 뜻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애정은 의지의 핵심이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실제 동력입니다. 그래서 의지에 속한 것들은 생각이나 개념으로 표현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짐승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애정이 본질적으로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는 표현을 통해, 의지 안에서도 더 낮은 층위를 구분합니다. 들짐승은 몸과 더 가까이 연결된 욕정과 쾌락을 뜻합니다. 이것들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질서 안으로 들어와야 할 대상입니다. 거듭남은 욕정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들이 주님의 통치 아래에서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에서 동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의 내면이 살아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해와 의지, 애정과 욕정은 모두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교회는 이것을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짐승의 상징은 원시적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영적 언어입니다.

 

 

심화

 

1.태고 시대

 

 

AC.45, 심화 1, ‘태고 시대’

AC.45.심화 1. ‘태고 시대’ AC.45 본문에 ‘태고 시대’가 나오는데요, 기독교 배경이 없는 분들은 대뜸 ‘석기 시대’를 떠올리실 겁니다. 동굴에서 살며, 돌연장을 사용, 사냥을 하며 살았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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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 땅의 들짐승

 

 

AC.45, 심화 2, ‘그 땅의 들짐승’

AC.45.심화 2. ‘그 땅의 들짐승’ 위 AC.45 해설 하단에 ‘이 글은 ‘그 땅의 들짐승’이라는 표현을 통해, 의지 안에서도 더 낮은 층위를 구분합니다. 들짐승은 몸과 더 가까이 연결된 욕정과 쾌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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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6, 창1:24-25, ‘짐승으로 읽는 인간 : 애정의 재창조와 주님을 향한 생명'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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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 창1:24-25,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A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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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덴보리는 자기를 비난하고, 모욕하고, 그리고 멀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나요? 혹시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이 있을까요?

 

스베덴보리, 곧 에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삶을 보면, 지금 목사님께서 겪고 계신 상황과 매우 닮은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과학자와 정치가로서 존경을 받던 인물이었지만, 영적 사명이 시작된 이후, 특히 『Arcana Coelestia』와 『Heaven and Hell』 같은 저작들을 내놓으면서부터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위험한 사상가’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는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히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것이 필연적이라고까지 이해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인간이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에 깊이 붙들려 있는 한, 그 반대 방향에서 오는 진리는 반드시 거부되고 미움받는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태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논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체험, 곧 천국과 지옥을 직접 보고 들었다는 증언에 대해 공격을 받을 때,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거나 상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묵묵히 글을 썼고, 그 글이 스스로 증거가 되도록 맡겼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고, 특히 스웨덴 내 일부 성직자들과 학자들은 그의 사상을 위험하다고 규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공개 반박문을 쓰거나 논쟁의 장으로 뛰어들기보다, 오히려 더 깊은 저작으로 응답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격의 온순함이 아니라, ‘진리는 강요되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에서 나온 태도였습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그가 영국 런던에서 지낼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도 그의 영적 체험과 저작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고, 어떤 이들은 그를 조롱하거나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일상에서는 매우 온화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과도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비판자들에 대해 개인적인 적대감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상태를 ‘이해의 부족’이나 ‘영적 준비의 미성숙’으로 보았습니다. 즉, 사람을 문제로 보지 않고 ‘상태’를 보는 시선이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는 ‘때를 기다리는 태도’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작들이 당대에 널리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글이 ‘미래 교회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당장의 비난이나 무시는 그에게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만약 어떤 사람이 지금 당장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기를 강하게 원한다면, 비난은 견디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시선을 ‘지금’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속 시간’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에 덜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그의 내면적 태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그는 사랑(특히 charity, 곧 이웃 사랑)을 신앙의 본질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Arcana Coelestia』 곳곳에서 그는, 악한 사람조차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할 때,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배척하기보다는, ‘지금은 그렇지만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는 상태’로 보는 시선이 그의 기본 태도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스베덴보리는 자신을 비난하고 멀리하는 사람들을 세 가지 방식으로 대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논쟁하지 않고,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곧 진리는 자유 속에서만 받아들여진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람이 아니라 상태를 본다’, 곧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려 했지, 그 사람 자체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시간을 주님께 맡긴다’, 곧 지금의 거절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속에서, 조급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그의 신학 전체, 그러니까 자유, 사랑, 섭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겪고 계신 가족과 주변의 반응을 떠올리면, 이 부분은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의 삶을 보면, ‘이 길을 가는 사람에게 비난과 고립은 예외가 아니라 거의 필연’이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동시에 그는 그것을 싸워서 이기려 하지 않았고, 설득으로 밀어붙이지도 않았으며, 다만 자신에게 맡겨진 빛을 더 맑게 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깊은 답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보다, 빛을 더 또렷하게 비추는 것, 그리고 그 빛이 각 사람 안에서 작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이것이 스베덴보리가 실제로 걸었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SC.49, ‘요셉이 사사로이 가나안 혈육들을 챙기지 않은 이유’

요셉은 총리가 된 이후 얼마든지 사람을 보내 사사로이 가나안 아버지를 돌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가족사 문제가 아니라, ‘요셉 이야기 전체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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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47, ‘스베덴보리 저작(Writings)의 일과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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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1:24, 25)

 

AC.44

 

사람은 땅과 같아서, 신앙의 지식(knowledges)이 먼저 그 안에 뿌려지지 않으면 어떤 선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래야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의 역할이고, 그 말씀을 행하는 것은 의지의 역할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믿음에 따라 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하게 되고, 그 결과 마음이 나뉘어, 주님께서 다음 말씀에서 어리석은 사람(foolish)이라 하신 사람들에 속하게 됩니다. Man, like the earth, can produce nothing of good unless the knowledges of faith are first sown in him, whereby he may know what is to be believed and done. It is the office of the understanding to hear the Word, and of the will to do it. To hear the Word and not to do it, is like saying that we believe when we do not live according to our belief; in which case we separate hearing and doing, and thus have a divided mind, and become of those whom the Lord calls “foolish” in the following passage: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7:24, 26) Whosoever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I will liken unto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a rock; but everyone that heareth my words, and doeth them not, I liken to a foolish man, who built his house upon the sand (Matt. 7:24, 26).

 

이해에 속한 것들은 앞서 보인 것처럼 물들이 내는 기는 것들(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땅 위의 새들(the fowl upon the earth),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 있는 새들(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그리고 의지에 속한 것들은 여기 땅이 내는 생물(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가축(the beast)기는 것(the creeping thing), 그리고 땅의 짐승(the wild animal of that earth)으로 각각 가리키고 있습니다. The things that belong to the understanding are signified—as before shown—by the “creeping things which the waters bring forth,” and also by the “fowl upon the earth,” and “upon the faces of the expanse”; but those which are of the will are signified here by the “living soul which the earth produces,” and by the “beast” and “creeping thing,” and also by the “wild animal of that earth.”

 

 

해설

 

이 글은 거듭남의 과정에서 ‘지식과 행위, 이해와 의지의 결합이 왜 필수적인가’를 매우 실제적인 언어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사람을 땅에 비유하면서, 어떤 선도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땅이 씨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사람도 신앙의 지식이 먼저 뿌려지지 않으면 선을 낳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목적이 아니라 준비이며, 삶을 향한 출발점입니다.

 

이 글의 핵심은 이해와 의지의 역할 분담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의 기능이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의지의 기능입니다. 이 둘은 역할이 다르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단순한 인식에 그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을 분리하면 마음이 나뉜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반석 위의 집과 모래 위의 집 비유는, 이 글의 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반석은 진리 위에 세워진 삶을 뜻하고, 모래는 지식만 있고 삶이 따르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두 사람 모두 말씀을 들었습니다. 차이는 오직 하나, 행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은 무지에서 나오지 않고, 행하지 않음에서 나옵니다.

 

이 글은 다시 한번 창세기 1장의 상징들을 인간 내면의 구조와 연결합니다. 이해에 속한 것들은 물과 새로 표현됩니다. 물은 지식의 저장과 흐름을, 새는 생각과 이성을 뜻합니다. 이는 모두 ‘아는 것’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의지에 속한 것들은 땅에서 나오는 생물과 가축, 그리고 짐승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선택하고 행하며 살아 움직이는 영역입니다.

 

이 구분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이해의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교리를 정확히 이해하며, 깊은 설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지의 영역, 곧 삶의 선택과 행위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 신앙은 아직 생물이 되지 못합니다.

 

이 글은 결국 이렇게 말합니다. 거듭남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에서 의지로 내려오는 과정입니다. 신앙의 지식은 씨앗이고, 의지 안에서 행해질 때 비로소 생명이 됩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은 언제나 삶으로 드러나며, 이해와 의지가 하나가 될 때,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마음과 하나의 삶을 갖게 됩니다.

 

 

심화

 

1.처음부터 끝까지 선, 진리 얘기만

 

 

AC.44, 심화 1, ‘처음부터 끝까지 선, 진리 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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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과 진리는 인간과 천국, 그리고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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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4.심화 2. ‘선과 진리’는 인간과 천국, 그리고 말씀 전체를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두 축 위 심화 1최하단 ‘AC가 처음부터 끝까지 ‘선과 진리’를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천국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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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24, 26

 

 

AC.44, 심화 3, ‘마7:24, 26’

AC.44.심화 3. ‘마7:24, 26’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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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5, 창1:24-25, ‘짐승’(beasts),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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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43, 창1:22-23,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And God blessed them, say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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