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7 심화
1. ‘징조’(signs), ‘계절’(seasons), ‘날’(days), ‘해’(years)
위 AC.37 본문에 ‘이 말 속에는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ded)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현 역량과 상태가, 펼쳐 보여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역량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에도 혹시 한두 가지만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는 말씀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라는 창8:22 말씀을 좀 더 와닿게 이해하고 싶어서입니다.
창1:14에는 ‘징조’(signs), ‘계절’(seasons), ‘날’(days), ‘해’(years)라는 네 표현이 한꺼번에 나옵니다. AC를 읽는 독자라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징조는 무엇을 뜻하고, 계절은 무엇이며, 날과 해는 각각 어떤 영적 상태를 뜻할까?’
그런데 뜻밖에도 AC.37은 이 네 단어를 하나씩 풀어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베덴보리는 여기에 ‘현재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네 단어의 개별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 존재하는 ‘교대’(alternations)와 ‘다양함’(varieties)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AC.37을 읽으면서 ‘징조는 이것, 계절은 이것, 날은 이것, 해는 이것’이라는 네 개의 고정된 정의를 당장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먼저 이 네 표현을 이해하기 위한 더 큰 배경을 보여 줍니다. 영적 생명에는 상태의 변화가 있으며, 그 변화는 자연계에서 날과 해가 변하는 모습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는 아침, 낮, 저녁, 밤이 교대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교대합니다. 그에 따라 빛과 열이 달라지고 자연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천적인 것들에도 이와 같은 ‘교대’가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 상태가 자연계의 하루나 계절과 정확히 같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연의 변화가 영적 상태의 변화를 이해하도록 보여 주는 상응적 모습이라는 뜻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날’과 ‘해’는 각각 짧은 영적 주기와 긴 영적 주기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해를 돕는 하나의 추측이나 비유로는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AC.37이 그렇게 정의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이 직접 말하는 것은 영적·천적 상태의 교대가 ‘날과 해의 교대에 비유된다’는 데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정도의 경계를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계절’ 역시 곧바로 ‘하나의 영적 상태에서 다음 상태로 넘어가는 정해진 시점’이라고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계에서 계절이 변화와 교대를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AC.37은 `seasons`의 속뜻을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아르카나’가 있다고 한 이상, 오히려 독자가 성급하게 하나의 뜻으로 고정하지 않는 것이 본문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징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내가 현재 어느 영적 상태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라고 설명하면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것 역시 AC.37의 직접적인 정의는 아닙니다. 더구나 성경에서 ‘징조’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으므로, 창1:14의 `signs`를 하나의 심리적인 자기진단 표지로 좁혀 버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AC.37은 왜 굳이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언급하면서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서 우리는 AC를 읽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언제나 한 글에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어떤 표현을 먼저 제시하고 그 의미의 큰 틀만 보여 준 뒤, 말씀의 다른 부분에 이르러 다시 돌아와 더 깊이 설명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AC.37 마지막에서 그는 이 주제가 창8:22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지금 AC.37에서 모든 세부를 확정하기보다, 앞으로 말씀의 다른 곳에서 같은 주제가 어떻게 다시 펼쳐지는지를 기다리는 것이 AC를 읽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AC.37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중요한 원리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영적 생명은 하나의 상태에 영원히 고정되어 있는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는 교대와 다양함이 있으며, 스베덴보리는 그런 변화가 없으면 삶은 획일적이 되어 생명이라 할 만한 것이 없고, 선과 진리도 분별되고 구별되거나 퍼셉션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원리를 먼저 붙들면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성급하게 네 개의 공식으로 외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이 네 표현 전체가 우리에게 ‘영적 생명에는 상태와 상태의 변화가 있다’는 더 큰 세계를 열어 주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를 처음 읽을 때 이런 ‘미완성된 설명’을 만나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왜 여기서 정확히 뜻을 말해 주지 않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말씀의 속뜻은 하나의 단어에 하나의 뜻을 붙인 사전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표현들이 말씀의 여러 곳에서 다시 나타나고 서로 연결되면서 점차 더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AC.37에서 ‘징조, 계절, 날, 해’의 뜻을 묻는 가장 안전한 답은 이렇습니다. 이 네 표현에는 많은 아르카나가 들어 있지만 스베덴보리는 아직 그것들을 각각 상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지금 그가 먼저 가르치는 것은 영적·천적 생명에 ‘교대와 다양함’이 있으며, 그것이 자연계의 날과 해의 변화에 비유된다는 사실입니다. 세부적인 뜻을 서둘러 채우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앞으로 그것을 어떻게 펼쳐 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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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창1:14-17, ‘영적 생명의 리듬 : 낮과 밤, 계절처럼 반복되는 거듭남의 질서’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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