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말씀(the Word)을 속뜻으로 읽는다는 건 이런 겁니다’ (2023/5/1)

 

천사들은 내적 존재, 또는 영적 존재라서 말씀을 내적 의미로밖에는, 즉 속뜻으로밖에는 읽을 줄 모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천사들은 우리를 볼 때, 우리 안의 영, 즉 속 사람만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창세기 12장 아브라함의 등장을 보면서, 그냥 ‘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시작이 이랬구나. 속 썩이는 조카 롯을 왜 데리고 왔지? 사라가 참 미인이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한 건 장부답지 못하고 참 비겁하네...’ 하면서 읽습니다.

 

이런 것이 겉 글자로만 읽는 것이지요. 그러나 창세기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엔 속뜻, 곧 ‘아르카나’(arcana, 秘義)가 들어있으며, 천사들은 이것을 읽는 것이고,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실제로 아르카나는 그 깊이가 몇 단계나 되며, 첫 단계라 할지라도 사실 지상의 언어로 옮기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하여튼 스베덴보리가 기술한 속뜻 주석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것인데요, 이는 마치 미적분 등 고등수학을 유치원생에게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창세기 12장을 자기가 와 있는 사람의 육안을 통해 읽는 천사의 눈엔 지상 인간의 언어로 된 글자는 안 보이고,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만 보이는데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브람 시절, 곧 하란을 떠날 때부터를 천사는 거기 담긴 아르카나, 곧 주님의 어린 시절 그 내면 상태와 그 상태의 변화로 읽는 것입니다. 가령 12장의 경우,

 

여기 아브람은 주님의 영유아 시절부터 청년기 사이 주님의 상태를 표상(表象, representative)하는데요, 주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모호한 상태에서 더 명료한 상태로 발전하신 것입니다.

 

하란’(Haran)은 모호했던 첫 번째 상태를, ‘세겜’(Shechem)은 두 번째, ‘모레 상수리나무’(the oak grove Moreh)는 세 번째, ‘벧엘 동쪽 산,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the mountain which had Bethel toward the sea and Ai on the east)는 네 번째, 그리고 ‘남방, 애굽으로 옮겨갔더라’(journey thence toward the south into Egypt)는 다섯 번째 상태에 대한 표상입니다. (AC.1401)

 

아브람’(Abram)은 주님을, 특히 인간 본질(human essence)에 관한 주님을, ‘사래’(Sarai)는 아내로서는 천적(天的, the celestial)인 것에 인접한 진리를, 누이로서는 지적(intellectual) 진리를, ‘애굽’(Egypt)은 기억-지식(memory-knowledge, 보통 책을 통해 학습한 지식)을 표상하며,

 

주님도 어린 영유아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기억-지식을 습득, 천적, 천상의 진리로까지 발전하시는, 그런 전 과정이 이 실제 역사(true historicals)가 시작되는 창세기 12장부터의 기록인 것이며, 이는 주님의 마리아로 인한 인간 본질이 그 분 안 신적 본질(Divine essence)과 결합, 동시에 여호와가 되게 하시는 신적 질서(Divine order)에 따른 것입니다. (AC.1402)

 

참고로, ‘’(Lot) 또한 주님을 표상하는데 특별히 주님의, 육체를 입으신 상태(sensuous and corporeal man)의 주님을 표상합니다.

 

뒤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관련, 롯 이야기, 싯딤 골짜기 왕들의 전쟁 이야기 등도 역시 겉으로는 실제 역사이지만, 속뜻으로는 주님의 내면에서 일어난 상태들과 그 변화에 대한 기술입니다...

 

이렇게 천사들은 그릇에 담긴 내용물에 주목하듯 오직 주님에 관한 아르카나에만 집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사후 천국에 갈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도 다른 나라 중장기 여행이나 이민 등을 갈 때, 그 나라에 대한 충분한 조사, 가령, 그 나라 역사, 문화, 특히 언어를 힘들여 익히거든 하물며, 우리의 영원을 보내게 될 천국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디 일분일초를 아껴 주님이 그의 종 스베덴보리를 통해 오픈하신 이 ‘천국의 비밀’에 관하여, 그리고 우선은 그의 책 ‘천국과 지옥’에 관하여, 마음을 다하여 가까이하시기를 간절히 권하고 또 권하겠습니다.

 

아, 한 가지, ‘아브람’(Abram)은 주님의 인간 본질의 상태를, ‘아브라함’(Abraham)은 주님의 인간 본질과 신적 본질 간 합일의 상태를 각각 표상하며, ‘사래’(Sarai)와 ‘사라’(Sarah)도 같습니다. 여기, 히브리 묵음 ‘h’가 바로 주님의 ‘여호와이심’, 곧 신성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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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진리 : 세례 요한과 인자’(눅7:33-34) (2023/4/28)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눅7:29-35)

 

...여기서 ‘세례 요한이 왔다’는 것은 새로운 말씀, 또는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을, 그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는 진리를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행하지는 않음을 각각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은 선을 뜻하고, ‘포도주’는 진리를 뜻하며, ‘먹고 마시는 것’은 진리를 행함으로 진리와 선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의해 새로운 진리가 선포될 때,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진리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들도 진리를 따라 살지를 못합니다. 그 상태가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는’ 상태입니다.

 

그때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은 이 새로운 진리를 사이비 진리라 하며 조롱합니다.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고 더 나아가 주님을 배척하는 것을 보세요. 그것이 요한에게 ‘귀신이 들렸다’ 하는 것입니다.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세례 요한이 온 것’이 말씀을 처음 받아들인 상태라면, ‘인자가 온 것’은 그 말씀 가운데로 주님이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의 지식 속으로 선이 있는 진리가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질적으로 선을 동반한 진리이시기 때문인데요, 선을 동반한 진리, 즉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진리라야 신앙인들의 삶을 바꾸고 생명을 바꿉니다.

 

생명이 바뀐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인 선과 진리가 신앙인의 의지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에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즉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의지가 주님의 생명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자가 오시는 것’은 진리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상태이며, 그렇게 해서 인격이 바뀌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비난을 멈추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비난을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표현합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것’은 이를테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과 진리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모든 걸 선과 진리, 선과 진리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것은 저들의 진리가 이방인의 진리, 즉 이단적 진리라는 뜻입니다. 거듭남이란 결국 선과 진리이신 주님과 결합하는 일인데요,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선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모두 형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과 진리 사랑하는 것을 선과 진리에 집착한다고 조롱하며 비난합니다. 또 교회 밖 사람이라도 선하고 진실한 사람은 구원받는다 하면 이단적 진리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도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유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주님, 즉 진리 자체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 https://youtu.be/stlLInzz44Q

 

블로그 : https://bygrace.kr/1508

 

매일예배(2023/4/28, 눅7:29-35), '교회 밖 사람들, 교회 안 사람들'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stlLInzz4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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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말씀의 속뜻 (2023/4/27)

 

※ 오늘 매일예배 본문 일부를 그대로 옮깁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눅7:28)

 

...여기서 ‘여자’는 지상의 교회를 뜻하며,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는 요한, 즉 지상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소유하는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비하면 지극히 어둡고 투박한 진리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 하신 말씀은 그런 의미입니다. 지상의 진리는 아무리 심오한 것이라도 천국 천사들의 것에 비하면 지극히 낮은 진리라는 것이지요...

 

※ 아래는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Heaven and Its Wonders and Hell) 30장, ‘천국 천사들의 지혜’(The Wisdom of the Angels of Heaven) 편에 나오는 내용 일부를 제가 조금 풀어본 것입니다.

 

천국은 세 천국, 곧 일층천(자연적, natural), 이층천(영적, spiritual) 및 삼층천(천적, celestial)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또한 사람 내면의 구조 세 단계와 상응합니다. 즉 첫 번째 단계만 열린 사람은 일층천으로, 두 번째 단계까지 열린 사람은 이층천, 세 번째까지 다 열린 사람은 삼층천으로 가게 되지요.

 

천국의 이런 차등 구조는 주님의 신성을 수용하는 특성, 곧 주님의 신성 중 선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삼층천, 진리에 더욱 반응하는 천국은 이층천, 그리고 둘 다 반응하되 천국의 가장 바깥 천국은 일층천 등 그 특성에 따른 것입니다.

 

세 천국은 그 역량 또한 서로 달라 가령, 지혜로 말할 것 같으면, 각 천국 천사들 간 지혜의 차이는 수천수만 배 차이가 나는데요, 즉 삼층천 천사들의 지혜는 이층천 천사들의 지혜보다 그만큼 더 높고 깊으며, 이층천은 일층천과, 그리고 일층천은 이 지상과 그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낮은 천국 천사들은 자기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 높은 천국 천사들에게 묻기까지 합니다. 이런 지혜 세계의 웅장한 질서에 대하여 시인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지상에서 자기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배운 게 많아도 주님의 지혜에 관하여는 하다못해 일층천 천사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주님 앞과 사람들 앞에 매사 겸손할 것입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예를 들면, 일층천 천사가 이층천 천국에 들어가면 (사실은 마음대로 갈 수도 없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이층천에 맞는 내면이 열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인데요, 사실은 그곳에 수많은 사람과 형용할 수 없는 사물이 가득함에도 그렇습니다. 각 천국은 해당되는 내면이 열린 사람이라야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보고 왔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주님이 허락, 무슨 임시 안전조치를 취해 주신 덕분입니다.

 

방금 ‘마음대로 오갈 수도 없다’고 했는데요, 이 말은 천국 간 왕래를 주님이 일반적으로는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각 천국은 사실은 천사 자신의 일종의 정체성이어서인데요, 해당 천국의 정체성을 가진 천사가 다른 천국에 올라가거나 내려가면 그가 가진 정체성에 큰 혼란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특정 천국 안 수많은 공동체 간 왕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참고로, 천국 모든 멤버들을 ‘천사’라 하며, 우리 역시 사후 해당 천국으로 배정되면 모두 천사가 됩니다. 주님은 천사 따로, 사람 따로 지으신 게 아닙니다. 주님 자신 ‘참 사람’(Divine Human)이시기 때문이며, 참 사람이신 주님은 결코 사람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별도로 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은, 말씀을 겉 글자, 문자 그대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계21:17)

 

주님을 사랑하오며,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오며... 아멘, 할렐루야!

 

유튜브 : https://youtu.be/cU887fJU2SQ

 

블로그 : https://bygrace.kr/1507

 

매일예배(2023/4/27, 눅7:24-28), '세례(침례) 요한 (John the Baptist) (2)'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cU887fJU2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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