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God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and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1:6, 7)

 

AC.24

하나님의 , 주님의 자비가 참되고 선한 지식을 낮으로 이끌어 내시고, , 주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시며,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는 선과 진리는 없다는 빛을 주신 , 주님은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시며, 따라서 사람 안에 있는 지식(cognitiones)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scientifica) 구별하십니다. 사람을 궁창(expanse)이라 하고, 사람 안에 있는 지식을 궁창 위의 (the waters above the expanse)이라 하며, 사람의 기억 지식을 궁창 아래의 (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이라 합니다. After the spirit of God, or the Lords mercy, has brought forth into day the knowledges of the true and of the good, and has given the first light, that the Lord is, that he is good itself, and truth itself, and that there is no good and truth but from him, he then makes a distinction between the internal man and the external, consequently between the knowledges [cognitiones] that are in the internal man, and the memory-knowledges [scientifica] that belong to the external man.2 The internal man is called anexpanse; the knowledge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calledthe waters above the expanse; and the memory-knowledges of the external man are calledthe waters beneath the expanse.

 

 

2. 지식(knowledges, cognitiones)이란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들을 뜻하는데, 예를 들면 우리가 나는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다라고 말할 때의 앎입니다. 반면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외적 기억 속에 들어 있는 것들로, 신학적인 것이든 밖의 것이든 온갖 종류가 대량으로 축적되어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용어에 대한 스베덴보리 자신의 정확한 정의는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AC.27, 896, 1486, 2718, 5212 보시고, 또한 개정자의 서문 주해(Revisers Prefatory Notes)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Knowledges [cognitiones] are what we really know, as when we sayI do not merely think so, I know it.Memory-knowledges [scientifica] are what we have in the external memorya vast accumulation of all kinds, theological and otherwise. For precise definitions of these words by Swedenborg himself, see Arcana Coelestia, n. 27, 896, 1486, 2718, 5212. See also the Revisers Prefatory Notes. [Reviser]

 

 

[2] 사람은 거듭남이 시작되기 전에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며, 더욱이 성질과 상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깊이 잠겨 있으면서 사람에 속한 것들까지 안에 잠기게 하여, 서로 구별되는 것들을 혼란스럽고 어두운 하나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 하시고, 그다음에 물과 물로 나뉘라(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후의 구절에서처럼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라(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 하지는 않으십니다. Man, before he is being regenerated, does not even know that any internal man exists, much less is he acquainted with its nature and quality. He supposes the internal and the external man to be not distinct from each other. For, being immersed in bodily and worldly things, he has also immersed in them the things that belong to his internal man, and has made of things that are distinct a confused and obscure unit. Therefore it is first said, Let there be an expanse in the midst of the waters,and then,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in the waters; but not, Let it distinguish between the waters which a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are above the expanse,as is afterwards said in the next verses: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1:7, 8) And God made the expanse, and made a distinction between the waters which were under the expanse, and the waters which were above the expanse, and it was so. And God called the expanse heaven (Gen. 1:78).

 

[3] 따라서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다음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 사람 안에 있는 것들은 오직 주님께 속한 선과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사람은 여전히 자기가 행하는 선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자기가 말하는 진리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러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님에 의해 자기가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도록 인도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궁창 아래의 물들의 구별이 언급되고, 그다음에 궁창 위의 물들이 언급됩니다. 또한 이것은 천국의 아르카나인데,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것들, 감각의 착각이나 욕정에 의해서도 주님에 의해 참되고 선한 것들로 이끌리고 굽혀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거듭남의 모든 움직임과 순간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저녁에서 아침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또는 (earth)에서 하늘(heaven)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궁창, 사람을 하늘(heaven)이라 하는 것입니다. The next thing therefore that man observes in the course of regeneration is that he begins to know that there is an internal man, or that the things which are in the internal man are goods and truths, which are of the Lord alone. Now as the external man, when being regenerated, is of such a nature that he still supposes the goods that he does to be done of himself, and the truths that he speaks to be spoken of himself, and whereas, being such, he is led by them of the Lord, as by things of his own, to do what is good and to speak what is true, therefore mention is first made of a distinction of the waters under the expanse, and afterwards of those above the expanse. It is also an arcanum of heaven, that man, by things of his own, as well by the fallacies of the senses as by cupidities, is led and bent by the Lord to things that are true and good, and thus that every movement and moment of regeneration,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proceeds from evening to morning, thus from the external man to the internal, or fromearthtoheaven. Therefore the expanse, or internal man, is now calledheaven.

 

해설

AC.24는 창세기 1장의 둘째 날에 등장하는 궁창이 인간의 거듭남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본문입니다. 앞선 단계에서 주님의 자비가 참되고 선한 지식을 낮으로 이끌어 내시고, 사람에게 주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체이고 진리 자체이시고 모든 선과 진리는 그분에게서 온다는 첫 빛을 주셨다면, 이제 그 빛 안에서 속 사람과 겉 사람이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궁창의 핵심은 단순한 분리보다 구별입니다. 거듭남 이전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었지만, 이제 주님께서 그것들이 서로 다름을 드러내시고 질서를 세우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속 사람을 궁창(expanse)이라고 하고, 속 사람 안의 지식을 궁창 위의 , 겉 사람에 속한 기억 지식을 궁창 아래의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cognitionesscientifica의 구별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붙은 개정자의 주에 따르면 cognitiones는 사람이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 나는 그것을 안다고 할 때의 앎이며, scientifica는 외적 기억 안에 축적되어 있는 온갖 종류의 기억 지식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곧바로 살아 있는 영적 지식죽은 세속 지식으로 나누어서는 안 됩니다. AC.24에서 우선 강조되는 것은 이들이 속하는 층위가 다르며, 거듭남 가운데 그 차이가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거듭남 이전의 사람은 속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더욱이 그 성질과 상태를 알지 못합니다.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에 속 사람에 속한 것들까지 같은 차원 안에 끌어들여, 본래 구별되어야 할 것들을 혼란스럽고 어두운 하나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표현 순서도 섬세합니다. 처음에는 가운데에 궁창이 있으라고 하고 물과 물로 나뉘라고 할 뿐, 곧바로 궁창 아래의 궁창 위의 이라고 명확히 부르지 않습니다. 이후에야 위와 아래의 물이 분명히 구별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문장 순서에서 거듭남의 질서를 읽습니다. 사람은 먼저 속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 가고, 그다음에야 그 둘에 속한 것들의 질서를 점차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은 속 사람이 있으며, 그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는 오직 주님께 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 중인 사람의 겉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 행하는 선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말하는 진리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앞선 거듭남의 단계들과도 연결됩니다. 사람은 주님에게서 선과 진리를 받으면서도 아직 그것을 완전히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지나갑니다.

 

바로 여기서 AC.24의 매우 중요한 아르카나가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이 아직 자기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통해서도 그를 선을 행하고 진리를 말하도록 인도하십니다. 더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감각의 착각과 욕정과 같은 사람 자신의 것들에 의해서도 주님께서 사람을 참되고 선한 것들로 이끄시고 굽히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감각의 착각이나 욕정을 주님께서 선한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아직 그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도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그의 현재 상태와 자유를 보존하시면서 점차 선과 진리 쪽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거듭남은 이미 완전해진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아직 자기 자신의 것들 속에 있는 사람을 주님께서 차츰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궁창 아래의 물이 먼저 언급되고 궁창 위의 물이 그다음에 언급되는 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의 의식과 경험에서는 겉 사람의 것들이 먼저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을 행한다고 느끼며, 그 뒤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처음부터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진행되면서 자신 안에 겉 사람과 구별되는 속 사람이 있음을 알고, 그 속 사람 안의 선과 진리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다는 사실을 점차 인정하게 됩니다. 궁창은 바로 이러한 구별이 시작되고 질서가 세워지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의 모든 움직임과 순간이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땅에서 하늘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앞의 AC.22-23에서 살핀 저녁과 아침의 질서가 여기에서 다시 거듭남의 실제 과정과 연결됩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속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주님께 속한 것으로 이끄시며, 겉 사람에 머물러 있던 그의 의식은 점차 속 사람의 질서와 연결되어 갑니다. 이 과정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남의 전체와 각각의 부분에서 계속된다는 것이 모든 움직임과 순간이라는 표현의 뜻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궁창, 곧 속 사람을 하늘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사람 안에 별도의 작은 천국이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AC.24의 직접적인 뜻은 속 사람이 으로 표현되는 겉 사람과 구별되며, 그 속 사람 안에 있는 선과 진리가 주님께 속한다는 데 있습니다. 거듭남은 이렇게 혼란스럽게 섞여 있던 속 사람과 겉 사람이 주님에 의해 구별되고, 사람 자신의 것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점차 주님의 선과 진리 아래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1의 궁창은 바로 그 구별과 질서의 시작을 나타냅니다. (AC.24 해설)

 

심화

1.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AC.24 심화 1,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AC.24 심화1.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 scientifica) ‘기억 지식’(memory-knowledges)이라는 표현은 처음 접하면 조금 낯설지만, AC를 읽으면서 자주 만나게 되는 중요한 용어입니다. AC.24의 영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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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 창1:6-7, ‘하늘과 땅을 펴심 : 파괴가 아니라 굽힘으로 이루어지는 거듭남의 질서’

6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1:6, 7) AC.25‘땅을 펼치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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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3, 창1:5, ‘날이 뜻하는 시간과 상태 : 거듭남의 날들을 읽는 원리’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1:5) AC.23말씀에서 ‘날’(day)이 시간 자체를 뜻하는 용례보다 더 흔한 것은 없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da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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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 짐승(beast)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신앙과 사랑 양쪽에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기 시작하므로, 그는 형상(image)이라 하는 영적 인간이 됩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것들이 그의 음식(food) 됩니다. 또한 그의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로부터 싸움이 일어나며,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고, 그는 천적 인간이 됩니다. The sixth state is when, from faith, and thence from love, he speaks what is true, and does what is good: the things which he then brings forth are called theliving souland thebeast.And as he then begins to act at once and together from both faith and love, he becomes a spiritual man, who is called animage.His spiritu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such things as belong to the knowledges of faith, and to works of charity, which are called hisfood; and his natural life is delighted and sustained by those which belong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nce a combat arises, until love gains the dominion, and he becomes a celestial man.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가축을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지면의 맺는 모든 채소와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해설

이 글에서 스베덴보리는 거듭남의 여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는데, 이는 창1의 여섯째 날, 곧 짐승과 사람의 창조에 해당하는 단계입니다. 앞선 다섯 번째 상태에서 신앙은 이미 살아 있는 생명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사람은 신앙으로 말하며 진리와 선 안에서 확고해지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앙만이 아니라 사랑이 함께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람은 신앙으로 말할 뿐 아니라,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매우 중요한 순서를 제시합니다. 그는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단계의 사람이 진리를 통하여 선으로,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는 거듭남의 질서 가운데 있음을 보여 줍니다. 앞선 상태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신앙이 이제 사랑과 함께 작용하면서, 사람이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짐승(beast)이라 한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여기서 짐승은 일상적인 말에서처럼 거칠고 악한 본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여섯째 날에 등장하는 생물들과 짐승들은 거듭나는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들을 표상합니다. 다만 각각의 생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뒤의 해당 절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므로, 여기서는 여섯 번째 상태에서 더욱 충만한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큰 흐름을 붙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상태의 사람을 영적 인간이라고 부르며, 동시에 그를 형상(image)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26-27하나님의 형상과 직접 연결됩니다. 여기서는 형상의 모든 의미를 미리 풀기보다,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 거듭난 사람을 스베덴보리가 영적 인간이며 형상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먼저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형상의 구체적인 속뜻은 이어지는 창조 본문의 해설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의 삶은 두 층위로 유지됩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되는데, 이것들을 그의 음식(food)이라고 합니다. 몸이 음식을 통해 유지되듯이 영적 생명도 그것을 기르고 유지하는 양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지식만이 아니라 체어리티의 행위들이 함께 언급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진리를 알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 진리를 선한 삶으로 살아 내는 것이 함께 영적 생명을 이루어 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연적 생명은 몸과 감각에 속한 것들로 기뻐하고 유지됩니다. 이것은 몸이나 감각 자체가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자연계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며 감각을 통하여 세상을 접합니다. 문제는 영적 생명과 자연적 생명 가운데 무엇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입니다. 바로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싸움이 일어납니다.

 

AC.12는 이 싸움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그 방향과 결과를 짧게 제시합니다. 싸움은 사랑이 지배권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며, 그 후 사람은 천적 인간이 됩니다. 여기서 사랑은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뜻합니다.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던 사람이 마침내 사랑이 지배하는 상태에 이를 때, 스베덴보리는 그를 천적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을 단순히 낮은 단계와 높은 단계의 사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AC.12에서는 아직 이 둘의 차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듭남의 진행 가운데 처음에는 신앙을 통하여 사랑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사랑이 지배적인 원리가 되는 질서입니다. 영적 인간과 천적 인간의 더 깊은 차이는 이후 AC에서 훨씬 정교하게 밝혀집니다.

 

결국 AC.12는 창조의 여섯째 날에 대응하는 거듭남의 여섯 번째 상태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사람은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며, 신앙과 사랑으로부터 함께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는 영적 인간이며 형상이라고 불립니다. 그의 영적 생명은 신앙의 지식들과 체어리티의 행위들로 양육되고, 자연적 생명과의 싸움을 지나 마침내 사랑이 지배하는 질서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AC.12는 여섯 번째 상태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그 너머의 천적 상태를 바라보게 합니다. (AC.12 해설)

 

심화

1. 신앙과 사랑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 구체적인 삶의 예들

 

AC.12 심화 1, ‘신앙과 사랑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 구체적인 삶의 예들’

AC.12 심화1. ‘신앙과 사랑이 함께 행동한다는 것은? : 구체적인 삶의 예들’ AC.12에는 처음 읽으면 조금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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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3, 창1 개요, ‘모두가 같은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 거듭남의 현실’

AC.13거듭남 과정 중인 모든 사람이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상태까지만 이르고, 어떤 이들은 두 번째 상태까지만, 또 다른 이들은 세 번째, 네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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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 창1 개요, ‘신앙으로 말하며 진리와 선 안에서 확고해지는 다섯 번째 상태’

AC.11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산출되는 것들은 생명 있는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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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산출되는 것들은 생명 있는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 하늘의 새들(birds of the heavens)이라 불립니다. The fifth state is when the man discourses from faith, and thereby confirms himself in truth and good: the things then produced by him are animate, and are called thefish of the sea,and thebirds of the heavens.

 

해설

AC.11은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를 설명합니다. AC.10의 네 번째 상태에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으로 밝아지면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상태에서는 그 내적인 생명이 실제로 활동하면서 생명 있는 것들을 산출하기 시작합니다. 창조 이야기에서도 넷째 날까지 빛과 궁창과 땅과 식물과 광명체들이 나타났지만, 다섯째 날에 이르러 처음으로 움직이는 생물들이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순서를 인간의 거듭남 과정과 연결합니다.

 

이 상태에서 사람은 신앙으로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신앙에 관한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선 상태에서도 사람은 이미 경건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AC.9에서는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고 독실하게 말하며 체어리티의 일과 같은 선을 행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것들을 아직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AC.10에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한 뒤, AC.11에서는 이제 신앙이 실제로 그 사람의 말과 생각에서 활동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이어지는 그로써 진리와 안에서 자신을 확증한다는 표현은 조금 주의해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신을 확증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증명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여러 삶의 경험을 통하여 진리와 선이 참임을 검증한다는 구체적인 과정으로 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AC.11 자체가 직접 말하는 것은 사람이 이제 신앙으로 말하며,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점점 확고해지는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밖에서 배워 받아들였던 진리가 이제 그 사람 안에서 신앙으로 활동하며 그의 생각과 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AC.9AC.11을 비교하면 중요한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AC.9에서 사람은 이미 회개하고 선을 행했지만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가 행하는 것들은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AC.11에서는 그에게서 산출되는 것들이 생명 있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두 표현의 대비는 거듭남에서 단순히 어떤 행동을 하느냐만이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떤 내적 생명에서 나오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AC.11에서 사람이 자기 힘으로 영적 생명을 만들어 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AC.7부터 이어지는 전체 과정에서 거듭남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리메인스를 보존하시고, 주님께 속한 것과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 구별되게 하시며, 사람이 회개하고 선을 행하는 과정을 지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 AC.10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AC.11생명 있는 것들 역시 그 생명의 근원을 인간 자신에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생명 있는 산출물들을 바다의 물고기하늘의 새들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창1:20-23의 다섯째 날과 직접 연결됩니다. 그러나 AC.11은 아직 물고기와 새의 세부적인 상응을 밝히는 곳이 아니라 창조의 여섯 날이 거듭남의 여섯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개괄하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물고기와 새가 각각 무엇을 세밀하게 의미하는지를 미리 확정하기보다, 넷째 상태에서 속 사람 안에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로부터 이제 처음으로 생명 있는 것들이 산출되기 시작한다는 큰 흐름을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점에서 창조의 순서도 의미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셋째 날에는 식물이 나타나고, 넷째 날에는 광명체들이 나타나며, 다섯째 날에는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와 새가 등장합니다. 거듭남에서도 진리를 배우고 선을 행하는 외적인 변화가 먼저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모두 동일한 영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사람 안의 것을 차례로 질서 있게 하시면서 신앙과 체어리티에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으로부터 살아 있는 결과들이 산출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다섯 번째 상태 역시 거듭남의 마지막 상태는 아닙니다. 바로 다음 AC.12에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여섯 번째 상태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AC.11에서는 신앙이 살아 움직이며 진리와 선 안에서 사람이 확고해져 가는 것이 중심이라면, 다음 상태에서는 사랑이 더욱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차이를 남겨 두어야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상태의 경계가 흐려지지 않습니다.

 

또한 확증이라는 말 자체를 언제나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다른 문맥에서는 사람이 거짓을 확증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 안에서 확고해지는가입니다. AC.11에서는 그 대상이 분명히 진리와 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확증은 자기주장의 완고함이 아니라, 거듭남 가운데 신앙이 활동하면서 사람이 진리와 선 안에서 점차 확고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AC.11의 다섯 번째 상태는 생명확고해짐이라는 두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더 이상 외부에서 배운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사람에게서 말로 나타날 만큼 활동하기 시작하며, 사람은 그 신앙으로 진리와 선 안에서 점점 확고해집니다. 동시에 그에게서 산출되는 것들이 이제 생명 있는 것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이 변화를 창조의 다섯째 날에 나타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로 표현합니다. 다음 여섯 번째 상태에서는 이 살아 있는 신앙이 사랑과 더욱 깊이 결합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AC.11 해설)

 

심화

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 무슨 뜻인가?

 

AC.11 심화 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는 무슨 뜻인가?

AC.11 심화1.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는 무슨 뜻인가? AC.11을 처음 읽으면 ‘자신을 확증하다’(confirms himself)라는 표현에서 조금 멈추게 됩니다. 우리말의 ‘확증하다’는 보통 어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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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2, 창1 개요, ‘신앙과 사랑이 함께 움직이는 영적 인간의 여섯 번째 상태’

AC.12여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그리고 그 신앙에서 사랑으로 참된 것을 말하고 선한 것을 행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생물’(living soul)과 ‘짐승’(beast)이라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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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0, 창1 개요,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으로 밝아지는 네 번째 상태’

AC.10네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으로 밝아지는 때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들을 행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겪고 있던 시험과 곤경의 결과였으며, 신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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