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1 심화
1. ‘understanding’을 왜 ‘이해’라고 번역하는가?
AC.61에는 앞으로 AC에서 매우 자주 만나게 될 두 단어가 함께 나옵니다. ‘understanding’과 ‘will’입니다. 여기서는 각각 ‘이해’와 ‘의지’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읽는 분에게는 ‘understanding’을 왜 그냥 ‘이해’라고 번역하는지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이해’라고 하면 흔히 ‘그 설명을 이해했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다’처럼 무엇인가를 알아들은 결과를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반면 AC에서 ‘understanding’은 그런 한 번의 이해 행위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에게 속한 하나의 능력을 가리키는 용어로 계속 사용됩니다. AC.61에서도 ‘신앙에 관한 지식에 속하는 모든 것’이 인간의 understanding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번역할 때 ‘이해력’, ‘지성’, ‘사고력’ 같은 표현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각 장점이 있습니다. ‘이해력’은 능력이라는 점을 쉽게 전달하고, ‘지성’은 하나의 정신 능력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각각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해력’은 한국어 문장에서 반복되면 다소 딱딱하고 능력의 정도, 곧 ‘이해력이 좋다, 나쁘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지성’은 철학적이거나 지적 수준을 뜻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고, ‘사고력’은 생각하는 능력 일반으로 범위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AC 전체의 기본 번역어로는 간결하게 ‘이해’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독자는 여기서 말하는 ‘이해’를 ‘무엇인가를 알아들은 결과’만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신앙에 관한 지식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뜻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이해’라는 번역어 자체를 바꾸기보다 처음 등장할 때 그 뜻을 충분히 설명해 두고, 이후에는 계속 ‘이해’라고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번역어의 일관성도 유지하면서 처음 읽는 독자의 혼란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will’과 함께 놓으면 이 선택의 장점이 더 분명해집니다. AC에서는 understanding과 will이 자주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이것을 ‘이해와 의지’라고 하면 간결하면서 두 용어의 대응 관계도 잘 드러납니다.
여기서 ‘의지’ 역시 일상적인 ‘의지력이 강하다’는 뜻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AC.61은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속한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에 속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지는 단순히 어떤 목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정신력보다 훨씬 깊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필요하다면 처음 설명할 때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풀어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정식 번역어로 매번 사용하면 문장이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이해하는 능력에 속한다’보다 ‘인간의 이해에 속한다’가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을 위해 ‘원하고 뜻하는 능력’ 정도로 풀 수는 있지만, 정식 번역어는 ‘의지’로 유지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특히 ‘의도하는 능력’이라고만 하면 의지가 단순히 어떤 행동을 계획하거나 의도하는 기능으로 좁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해와 의지를 흔히 ‘머리와 가슴’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는 비유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understanding과 will은 신체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생명에 관한 용어입니다.
AC.61 자체가 이 두 용어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신앙에 관한 지식에 속하는 것은 이해에 속하고,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속하는 것은 의지에 속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AC에서 ‘이해’라는 말을 만날 때 단순히 ‘알고 있다’는 뜻으로만 읽지 않고, 신앙에 관한 지식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함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의지’를 만날 때에는 단순한 결심이나 의지력이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사랑하는가와 관계된 능력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해’라는 평범한 한국어 단어가 AC 안에서는 점차 하나의 중요한 용어로 자리 잡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더라도 같은 번역어를 일관되게 사용하면서 그 뜻을 차근차근 익혀 가는 편이, 문맥마다 ‘이해력’, ‘지성’, ‘사고력’ 등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보다 AC 전체의 사유 구조를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understanding은 기본적으로 ‘이해’, will은 ‘의지’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만 처음 접하는 독자가 이 말을 일상적인 의미로 너무 좁게 읽지 않도록, 필요한 자리에서는 ‘이해하는 능력’, ‘원하고 사랑하는 데 관계된 의지’라고 풀어 설명하면 충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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