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창1:30)
AC.58
같은 사람의 자연적 음식이 여기서 설명됩니다. 그의 자연적인 것은 ‘땅의 들짐승’(wild animal of the earth)과 ‘하늘의 새’(fowl of the heavens)로 상징되며, 이들에게는 먹을 것으로 채소와 풀의 푸른 것이 주어집니다. 그의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 둘 다 시편에 이렇게 묘사됩니다. The natural meat of the same man is here described. His natural is signified by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by the “fowl of the heavens,” to which there are given for food the vegetable and the green of the herb. Both his natural and his spiritual food are thus described in David: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시104:14) Jehovah causeth the grass to grow for the beast, and herb for the service of man, that he may bring forth bread out of the earth (Ps. 104:14),
여기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은, 같은 시편의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들짐승’과 ‘공중의 새’ 모두를 포함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where the term “beast” is used to express both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he fowl of the heavens which are mentioned in verses 11 and 12 of the same psalm.
11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시104:11, 12)
해설
AC.58은 바로 앞 AC.56-57에서 설명한 ‘음식’이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 갑니다. AC.56에서는 천적 인간에게는 천적 음식이, 영적 인간에게는 영적 음식이, 자연적 인간에게는 자연적 음식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AC.57에서는 영적 인간의 음식이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로 표현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이제 AC.58은 ‘같은 사람의 자연적 음식’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첫 문장의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금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화제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다루고 있는 그 사람에게 영적인 것이 있는 것처럼 자연적인 것도 있으며, 이제 그 자연적인 것에 주어지는 음식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곧바로 ‘인간 안에 자연적·영적·천적 세 층이 동시에 하나의 구조로 존재한다’는 전체 인간론까지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AC.58이 직접 말하는 것은 훨씬 단순합니다. ‘같은 사람의 자연적 음식’이 있으며, 그의 자연적인 것이 ‘땅의 들짐승’과 ‘하늘의 새’로 상징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땅의 들짐승’과 ‘하늘의 새’를 함께 그 사람의 ‘자연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두 표현을 우리가 임의로 더 세분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해설에서는 들짐승을 ‘자연적 애정’, 새를 ‘자연적 사고와 기억 지식’이라고 나누었지만, AC.58 자체는 그렇게 각각의 의미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앞의 AC들에서는 짐승과 새가 각각 애정과 이해·지적인 것들과 관련하여 설명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응은 단순한 고정 사전처럼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AC.58에서는 스베덴보리가 직접 ‘들짐승’과 ‘새’를 묶어 ‘그의 자연적인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 범위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자연적인 것들에게 음식으로 주어지는 것은 ‘채소와 풀의 푸른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글의 직접적인 중심입니다. 앞의 AC.57에서 영적 인간의 음식은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라는 표현으로 설명되었는데, 이번에는 자연적인 것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이 더 단순하게 채소와 풀의 푸른 것으로 표현됩니다.
다만 이것을 곧바로 ‘자연적 인간은 외적 지식과 경험의 결과물만 먹는다’거나 ‘자연적 음식은 생명을 직접 낳지 못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AC.58은 그런 세부적인 성질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자연적 인간에게 이런 음식만 주어지는지는 바로 다음 AC.59에서 더 자세히 설명됩니다. 따라서 그 이유를 미리 완성하기보다 다음 글에 남겨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점은 AC.58과 AC.59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AC.58은 ‘무엇이 자연적 음식인가’를 말하고, AC.59는 ‘왜 그 자연적 인간에게 채소와 풀의 푸른 것만 음식으로 주어지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번 글에서 그 이유를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 넣으면 다음 AC.59의 몫을 앞질러 가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어 시104:14을 인용합니다.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이 말씀 안에서 함께 묘사되는 예로 제시됩니다.
여기서 시104:14을 너무 복잡하게 풀 필요는 없습니다. AC.58이 이 구절을 인용하는 직접적인 목적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라는 표현을 통해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해설에서는 ‘가축을 위한 풀’을 자연적 애정에게 공급되는 기초적 선과 진리, ‘사람을 위한 채소’를 이성적 이해에 공급되는 더 높은 진리라고 자세히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AC.58은 그렇게 해설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시104:14의 모든 표현을 독립적인 상응 체계로 풀려면 다른 AC의 충분한 근거가 더 필요합니다.
또 ‘사람을 위한’이라는 표현을 가지고 ‘자연적 생명은 영적·천적 생명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전체 질서를 바로 끌어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은 스베덴보리의 인간론 전체에서는 관련될 수 있지만, AC.58의 직접 설명은 아닙니다.
시104:14 뒤에 스베덴보리는 한 가지 언어상의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 시편에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이 같은 시편 11절과 12절에 등장하는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함께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도 처음에는 조금 낯설 수 있습니다. 왜 새까지 ‘가축’이라는 말 안에 포함한다고 할까요? 여기서 스베덴보리는 자연과학적 분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시104의 문맥에서 ‘beast’라는 표현이 앞서 언급된 들짐승과 새를 함께 포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짐승과 새는 상응적으로 모두 자연적 생명 영역이므로 하나의 범주다’라고 우리가 더 큰 체계로 확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AC.58이 직접 말하는 만큼만 받아들이면 충분합니다. 같은 시편 11절과 12절에 언급된 들짐승과 새를 14절의 ‘가축’이라는 말이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자연적인 것을 곧바로 악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AC.58은 그 사람의 자연적인 것이 있고, 그것에 맞는 음식이 주어진다고 말할 뿐입니다. 자연적인 것 자체가 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앞의 AC.56에서도 이미 보았습니다. 자연적 인간은 자연적인 것들로 기뻐하며, 그의 음식은 주로 기억 지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자연적인 지식이나 자연적인 삶 자체를 악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적인 것은 인간에게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영역이며, 그것에 맞는 음식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자연적 음식만으로 모든 영적 생명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AC.56-57은 이미 영적 인간에게 영적 음식이 따로 있다고 구별했습니다. 따라서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이번 AC.58은 그 둘을 구별하면서도 같은 사람 안에서 함께 다룹니다.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적인 것은 영적인 것보다 낮고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AC.58만으로 그렇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우열의 평가보다 각 영역에 맞는 음식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또 ‘자연적인 것은 반드시 영적인 것을 섬겨야 한다’는 결론도 이번 글에서는 조금 기다리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 질서는 이후 거듭남 전체를 통해 더 분명히 드러나겠지만, AC.58의 중심은 자연적 음식이 무엇으로 묘사되는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오히려 단순하게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앞에서는 영적 인간의 음식이 설명되었고, 이제 같은 사람의 자연적인 것에 주어지는 음식이 설명됩니다. 그의 자연적인 것은 ‘땅의 들짐승’과 ‘하늘의 새’로 상징되고, 그들에게는 채소와 풀의 푸른 것이 음식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시104:14은 자연적 음식과 영적 음식이 함께 묘사되는 말씀의 예로 인용됩니다.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가 각각의 음식으로 나타납니다. 이어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가축’이라는 말이 같은 시편에 앞서 나오는 들짐승과 새를 함께 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AC.58이 직접 말하는 전부에 가깝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다음 AC.59로 넘어가기 위한 중요한 준비가 됩니다. 왜 자연적 인간에게 ‘채소와 풀의 푸른 것’만 음식으로 주어지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글에서 거듭남의 전투와 연결되어 훨씬 더 깊게 밝혀집니다.
따라서 이번 AC.58은 ‘자연적 음식이 더 높은 생명을 섬기는 질서’를 완성하는 글이라기보다, 다음 설명을 위한 사실을 먼저 제시하는 글로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같은 사람에게 영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있으며, 자연적인 것에도 그에 맞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그 이유는 AC.59에 남겨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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