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3 심화 2,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무슨 뜻인가?

 

AC.63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앞 AC.59에서는 악한 영들이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어 그의 욕정을 자극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에게 계속 관계하는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는 떠난다고 하는가?

 

먼저 AC.63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것을 사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주변에 있으면서 영향력만 약해진다고 바꾸어 번역하듯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떠난다고 했으면 우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동시에 이 한 문장을 가지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제 어떤 악한 영도 전혀 접근할  없으며 악의 영향 가능성 자체가 영원히 사라진다고 확대해서도 안 됩니다. AC.63은 여기서 영들과 인간의 관계 전체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여섯째 날의 끝에서 일어나는 상태 변화를 요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맥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큰 전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AC.59에서는 전투 가운데 악한 영들이 사람의 욕정을 자극하고 있었고, AC.63에서는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면서 그 전투가 그칩니다. 바로 그 뒤에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따라서 악한 영들의 떠남은 적어도 전투가 그치고 새로운 상태로 들어가는 변화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존 설명처럼 이것을 악한 영들이 지배권을 잃는다고 표현하면 이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AC.63의 문장 자체가 정확히 정의한 뜻이라고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떠남이 영계에서 어떤 관계 변화와 정확히 대응하는지, 악한 영들이 이후 사람과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는 뜻인지 아닌지는 관련 AC들의 설명을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특히 사람에게는 언제나 선한 영과 악한 영이 함께 있어 균형이 유지되어야 하는  아닌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인간의 자유와 영적 균형에 관한 더 큰 교리에 속합니다. 그 교리를 AC.63 한 문장 안에 억지로 끌어와 그러므로 떠난다는 것은 사실 밖으로 밀려난다는 뜻이다라고 결론 내리면, 오히려 본문의 표현을 다른 교리에 맞추어 수정하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두 사실을 함께 붙들면 좋겠습니다. 첫째, AC.63은 여섯째 날 끝에 악한 영들이 실제로 떠난다고 말합니다. 둘째, 이 한 문장만으로 인간과 악한 영의 모든 관계가 완전히 끝난다고까지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사이의 세부적인 영적 질서는 스베덴보리가 뒤에서 더 설명하는 내용을 따라가며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무엇보다 본문의 강조점은 악한 영들이 어디로 이동했는가를 추적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날까지 이어진 전투가 그치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면서 사람을 둘러싼 영적 상태에도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라는 말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붙들 것은 악한 영은 완전히 소멸하는가,  미터 밖으로 물러나는가? 같은 공간적인 그림이 아니라, 여섯째 날의 전투가 끝나고 다음 상태가 시작된다는 문맥입니다. 영들의 세계에서 떠남이 정확히 어떤 상태의 변화를 뜻하는지는 충분한 관련 본문을 만나면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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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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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것은 무슨 뜻인가?

 

AC.63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표현은 처음 읽으면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움직이신다고 하면 사람이 자기 생각과 의지를 잃고 외부의 힘에 의해 조종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앞뒤 문맥에서 떼어 내지 않고 읽으면 강조점이 조금 달라집니다. 바로 앞에서는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할  전투가 그친다고 했고, 이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고 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움직이신다보다 그때입니다. 어떤 때인가 하면 사랑이 주된 원리로 작용하고 신앙이 사랑과 결합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사랑과 신앙의 결합이라는 거듭남의 문맥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의지를 잃고 수동적인 도구가 된다는 뜻을 이 문장에 넣을 이유는 없습니다.

 

 자신의 모양으로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바로 앞 AC.62는 사람이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AC.63은 이제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거듭난 인간의 생명이 자기 자신에게서 독립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주님처럼 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에게서 오는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을 받아 살아가는 가운데 주님의 형상과 모양이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만 AC.63 한 문장이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유입에 관한 전체 교리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하나가 된다’, ‘ 상태가 인간에게 가능한 최고의 자유이다 같은 결론까지 이번 글의 직접적인 뜻으로 확정하기보다, 관련 AC들이 자유와 의지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함께 보면서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AC.63은 주님의 역사와 인간의 존재를 서로 없애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움직이십니다.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그 움직임의 근원이 주님에게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을 주님이 전부 하시니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수동주의로 읽는 것도, 반대로 결국 인간이 자기 힘으로 선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읽는 것도 본문의 균형을 놓치게 됩니다.

 

처음 AC를 읽는 독자에게는 일상적인 예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는 진리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움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진리와 사랑이 아직 충분히 결합되어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가운데 진리와 사랑이 결합하고 사랑이 삶의 주된 원리가 된다면, 그가 선을 행하는 생명의 근원은 자기 공로가 아니라 주님에게서 온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다만 이것은 AC.63을 이해하기 위한 예이지,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표현의 모든 의미를 이 한 사례로 정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이 표현이 지키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거듭난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다고 해서 이제 스스로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사랑이 결합하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도 생명의 근원은 여전히 주님입니다. 오히려 거듭남이 깊어질수록 사람은 자기 안의 선이 자기에게서 나온다고 여기기보다 주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더 깊이 인정하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말을 가장 안전하게 이해하면, 신앙과 사랑이 결합한 사람 안에서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 그의 생명을 이끌게 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주님의 유입이 정확히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는 이 한 문장보다 훨씬 큰 주제이므로, 이번에는 AC.63이 말하는 범위 안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AC.63 심화 2,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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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3, 창1:31, 주님이 싸우시는 거듭남의 전투 : 신앙과 사랑의 결합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3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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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31)

 

AC.63

그동안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여러 싸움을 통해 그를 진리와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싸움의 시간은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이며,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서는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리고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게 되면,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very good)라고 합니다. 이는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하며, 인간은 하늘,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 Meanwhile the Lord continually fights for him against evils and falsities, and by combats confirms him in truth and good. The time of combat is the time of the Lords working; and therefore in the prophets the regenerate man is called 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 Nor does he rest until love acts as principal; then the combat ceases. When the work has so far advanced that faith is conjoined with love, it is calledvery good”; because the Lord then actuates him, as his likenes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the evil spirits depart, and good spirits take their place, and the man is introduced into heaven, or into the celestial paradise; concerning which in the following chapter.

 

해설

AC.63은 창1: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거듭남의 전투에서 실제로 누가 일하고 계셨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밝힙니다. 바로 앞 AC.62는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나아가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AC.63은 그 과정의 이면에서 주님은 계속해서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거듭남을 인간 자신의 영적 성취 과정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전투가 있고 그가 그 전투를 실제로 겪지만, 그를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고 그 전투들을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이것은 AC.59와도 직접 연결됩니다. 거기서 스베덴보리는 악한 영들이 사람의 욕정을 자극하도록 허용되지만, 그것들을 선을 향해 기울이시는 분은 주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람을 매 순간, 심지어 매 순간의 가장 작은 부분까지 보호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즉시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AC.63은 이제 그 흐름을 전투의 시간은 주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라고 압축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시험과 전투를 겪는다는 것과 주님께서 그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실제로 전투를 겪지만, 그 전투 가운데 그를 붙드시고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시는 능력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여기서 전투의 시간은 주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 실패, 질병, 갈등을 곧바로 지금 주님께서 특별한 영적 전투를 하고 계신 증거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AC.63의 문맥은 거듭남 가운데 악과 거짓에 맞서는 전투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을 모든 인생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만능 공식으로 확대하기보다, 거듭남의 전투 가운데 주님께서 사람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계속 일하신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에게는 싸움으로 경험되는 그 시간이 동시에 주님께서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시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래서 예언자들 가운데 거듭난 인간을 하나님의 손가락의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서 손가락이라는 단어 자체를 가지고 곧바로 가장 미세하고 정교한 섭리를 뜻한다고 별도의 상응을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AC.63이 이 표현을 사용하는 문맥의 핵심은 의 주체입니다. 거듭난 인간은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의 입니다. 거듭남이 인간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라는 앞 문장을 다시 강조하는 표현으로 읽으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하기 전까지쉬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많아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앞 AC.60-61에서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가 되고, 신앙에 관한 지식에 속하는 것은 이해에,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속한 것은 의지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AC.63은 그 사랑이 주된 원리로 작용할 때까지 주님께서 쉬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원문 자체가 이어서 그때 전투가 그친다고 하므로, 사랑이 주가 되는 것과 전투가 그치는 것이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사랑이 주가 되면 모든 선한 행동이 아무 노력 없이 자동으로 흘러나온다거나 뒤로는 내적 갈등이나 시험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까지 확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AC.63이 직접 말하는 것은 이 여섯째 날의 거듭남의 전투가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할 때 그친다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이후의 모든 영적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속되는지는 뒤의 설명을 더 따라가야 합니다.

 

일이 이만큼 진전되어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그 상태를 심히 좋았더라라고 합니다. 이것은 AC.60의 설명과 정확히 이어집니다. AC.60에서는 앞선 상태들이 좋았더라였던 것과 달리 이 상태가 심히 좋았더라인 이유가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AC.63은 같은 사실을 다시 말하면서 그 이유를 하나 더 덧붙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표현은 처음 읽는 독자에게 상당히 낯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움직이신다고 하면 마치 사람이 자기 의지와 자유를 잃고 주님께 조종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AC.63의 문맥에서 그런 뜻으로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앞에서는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고 사랑이 주된 원리로 작용한다고 했고, 그 상태에서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움직이신다고 합니다. 즉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이 그 사람의 생명에서 주된 것이 된 상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자유와 정확히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는 별도의 큰 주제이므로, 이번 글에서는 움직이신다를 곧 강제나 조종이라고 이해하지 않는 정도로 충분하겠습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양이라는 표현도 앞의 하나님의 형상과 연결됩니다. AC.62는 여섯째 날에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고 했고, AC.63은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목적은 인간이 독립적으로 선해져서 주님 없이도 잘 살아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 사람 안에서 점점 더 생명의 중심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은 여전히 그를움직이신다고 합니다. 주님과 인간을 동일시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거듭난 생명의 근원이 주님에게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AC.63은 여섯째 날의 끝에서 매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선한 영들이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AC.59에서 악한 영들이 오랫동안 사람과 함께 있도록 허락되어 그의 욕정을 자극한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면, 처음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러면 이제 악한 영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다는 뜻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은 본문 이해에 직접 필요한 것이므로 심화에서 따로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메인에서는 원문이 말하는 사실을 그대로 붙들면 됩니다. 여섯째 날의 끝에서 악한 영들이 떠나고 선한 영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악한 영들은 여전히 똑같이 주변에 있지만 영향력만 약해진다는 식으로 바꾸기보다, 스베덴보리가 이후 영들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충분한 근거와 함께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하늘, 천적 낙원으로 인도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즉시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겠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여기서 너무 빨리 답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을 보자마자 사후에 죽어서 천국으로 간다는 뜻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무조건 살아 있는 동안 마음속에 형성되는 천국 상태일 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됩니다. 스베덴보리 자신이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다고 했으므로, 우선 이 표현이 창2의 일곱째 날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의 설명을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점은 앞 AC.62에서 우리가 일곱째 상태에 관한 질문을 서둘러 완성하지 않은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여섯째 날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 되고, AC.63에서는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며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전투가 그칩니다. 악한 영들이 떠나고 선한 영들이 대신하며, 사람은 하늘 또는 천적 낙원으로 인도됩니다. 그러나 그 천적 낙원이 정확히 무엇이며 일곱째 상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이제 다음 장이 설명할 몫입니다. AC가 스스로 다음 장에서라고 한 것을 우리가 이번 해설에서 미리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AC.63의 중심은 인간이 얼마나 열심히 싸워 높은 상태에 도달했느냐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입니다. 주님이 인간을 위하여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십니다. 주님이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 굳게 세우십니다. 사랑이 주된 원리가 되어 작용할 때까지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신앙이 사랑과 결합하면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다음 상태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창1: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말씀에서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주어 역시 하나님입니다. AC.60-63심히 좋았더라의 속뜻을 신앙과 사랑의 결합, 하나님의 형상, 그리고 거듭남의 전투와 연결하여 밝혔지만, 그 모든 과정의 주체를 인간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것입니다. AC.63은 여섯째 날의 마지막에서 바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강하게 밝혀 줍니다. 거듭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의 입니다.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 것은 무슨 뜻인가?

 

AC.63 심화 1, ‘그때에 주님께서 그를 자신의 모양으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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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무슨 뜻인가?

 

AC.63 심화 2,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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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가?

 

AC.63 심화 3,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하늘, 곧 천적 낙원’으로 인도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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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4, 창1, 말씀의 속뜻 :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과 천사들의 지각 (AC.64-66)

AC.64이것이 바로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이며,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입니다. 이는 문자적 의미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는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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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2, 창1:31, 여섯 날의 거듭남 : 조금씩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가는 사람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1:31) AC.62인간의 거듭남에 속한 시간들과 상태들은 일반적으로도, 그리고 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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