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64 심화

3. 스베덴보리는  성경보다 말씀(the Word)이라고 하는가?

AC를 읽다 보면 스베덴보리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성경이라는 말보다 the Word’,  말씀이라는 표현을 매우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한 경건한 표현일까요, 아니면 스베덴보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용어일까요?

 

AC.64 자체에서는 분명히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  말씀의 속뜻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속뜻을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천사들이 말씀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번 문맥에서 the Word는 단순히 책의 일반 명칭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문자 안에 속뜻을 가지고 천사들에게 영적이고 천적인 것으로 지각되는 신적 계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 말씀은 실제 교회생활에서는 상당히 겹쳐 사용됩니다. ‘성경을 읽는다 말씀을 읽는다가 같은 행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말은 낮고 말씀이라는 말만 영적이라고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 단어 자체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스베덴보리가 the Word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문맥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저작 전체로 가면 말씀의 범위에 관한 별도의 설명이 나오고, 우리가 흔히 성경 66이라고 부르는 범위와 그의 엄밀한 의미의 the Word가 어떻게 관계되는가 하는 문제도 생깁니다. 이것은 실제로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AC.64 한 문장만 가지고 그 전체 정경론을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속뜻이 있는 책에는 주님의 생명이 있지만 다른 성경책에는 주님의 생명이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성경 안에 신적인 책과 비신적인 책이 단순히 둘로 갈리고, 후자는 영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가 말씀의 정경과 속뜻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는지는 관련 본문들을 직접 모아서 따로 다루어야 정확합니다.

 

이번 AC.64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말씀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문자적 의미에서 드러나지 않는 속뜻이 있으며, 천사들은 그 말씀을 문자와 이름으로 지각하지 않고 그것들이 의미하는 영적이고 천적인 것으로 지각합니다. 따라서 the Word는 이 글에서 속뜻과 천사의 지각을 함께 품고 있는 매우 중요한 용어입니다.

 

그리고 이 점은 우리가 AC를 읽는 태도에도 중요합니다. ‘말씀의 속뜻이라고 할 때 중심 명사는 속뜻만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속뜻이 말씀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속뜻입니다. 아르카나 역시 AC가 말씀 밖에서 새로 만들어 내는 비밀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밝혀진다고 주장하는 아르카나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의 the Word를 우리말로 말씀이라고 옮기는 것은 자연스럽고 의미도 잘 살아납니다. 한국 교회에서 말씀이라는 말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을 가리키는 익숙하고 권위 있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을 근거로 일상적인 성경이라는 표현을 피해야 한다거나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AC와 성경의 관계를 뒤집지 않는 것입니다. AC.64 말씀의 속뜻을 설명한다고 해서 AC가 말씀보다 높은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의 주장은 자신이 말씀 밖에 새로운 계시 체계를 세웠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말씀 안에 문자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영적이고 천적인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아니라 말씀이라고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습니다. 스베덴보리가 the Word라고 할 때 그는 단순한 종교 문헌의 명칭보다, 주님에게서 온 계시이며 그 문자 안에 내적 의미를 가진 말씀이라는 성격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말씀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확한 범위와 어떤 성경책들이 스베덴보리의 엄밀한 의미에서 말씀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의 관련 본문을 충분히 확인하여 다루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독법에서는 한 가지를 더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AC를 높이기 위해 성경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AC가 끊임없이 독자를 말씀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AC.64가 말하는 속뜻도, 아르카나도, 천사들의 지각도 모두 말씀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AC.64, 창1, 말씀의 속뜻 :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과 천사들의 지각 (AC.64-66)

AC.64이것이 바로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이며,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입니다. 이는 문자적 의미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긴 아르카나는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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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4 심화 2, ‘속 사람’(internal man)은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말인가?

AC.64 심화2. ‘속 사람’(internal man)은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말인가? AC.64는 창세기 1장의 속뜻이 인간의 거듭남을 다루며, 그 거듭남이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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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internal man)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말인가?

AC.64는 창세기 1장의 속뜻이 인간의 거듭남을 다루며, 그 거듭남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처음 AC를 읽는 독자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깁니다. ‘ 사람(internal man)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혼과 같은 것일까요? 아니면 마음이라는 뜻일까요?

 

먼저  사람을 단순히 몸 안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람으로 상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스베덴보리가  사람  사람을 말할 때 이것은 육체의 안쪽과 바깥쪽이라는 공간적 구별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과 의식에 서로 구별되는 내적이고 외적인 차원이 있음을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그렇다고  사람 = 영혼이라고 바로 등식화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영혼이라는 말은 문맥에 따라 인간의 생명 자체나 사후에도 사는 인간을 가리키는 등 여러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  사람과 짝을 이루어 인간 안의 내적 차원을 설명하는 특정한 용어입니다. 따라서 두 말이 관련될 수는 있어도 언제나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동의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 = 마음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면 생각, 감정, 의지 등을 매우 넓게 포함하여 말합니다. 그런데 AC에서는 겉 사람에게도 생각과 욕망과 판단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감정이라고 해서 모두 자동으로  사람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정신 활동 =  사람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너무 넓어집니다.

 

AC.64에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거듭남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나아간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보고 그렇다면 주님의 생명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들어가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질문입니다. AC 다른 곳에서 주님에게서 오는 생명과 선과 진리가 사람 안으로 유입되는 질서를 설명할 때와, 여기서 사람이 거듭남 가운데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간다고 말할 때는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이 먼저 열리고 그다음  사람이 바뀐다 또는 반대로  사람이 먼저 거듭난 다음  사람이 바뀐다는 한 줄짜리 공식으로 AC.64를 정리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이 문장에서 스베덴보리가 직접 말하는 것은 창1에서 다룬 거듭남이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진행과 주님의 유입 질서가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지는 관련 글들을 더 읽으면서 구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현 단계에서 속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가장 안전하게는  사람과 구별되는 인간의 내적 차원이라고 잡아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겉 사람은 자연계와 감각을 통하여 관계하는 인간의 외적 차원이고, 속 사람은 그보다 내적인 인간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이 정의도 앞으로 AC가 속 사람과 겉 사람을 더 자세히 설명하면서 점차 풍성해져야 합니다.

 

이것은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 문장으로  정의해 주면 편한데  이렇게 여지를 남기는가?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AC의 중요한 용어들은 뒤로 갈수록 여러 문맥에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처음 등장한 자리에서 우리가 너무 완성된 정의를 만들어 버리면 오히려 나중의 본문을 그 정의에 억지로 맞추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언제나 선하고 주님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사람은 세상적이고 악하다고 처음부터 단정해 버리면 이후의 설명을 읽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내적이라는 말 자체가 자동으로 선하다를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인간의 내적이고 외적인 모든 것을 어떻게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가입니다.

 

AC.64가 이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거듭남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1장의 여섯 날은 단순히 사람의 외적인 생활 습관 몇 가지가 개선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주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 거듭남이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은 영혼인가, 마음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겠습니다. 속 사람은 영혼이나 마음과 관련될 수 있지만 그 어느 한 단어와 단순히 동일시하기보다, AC에서 겉 사람과 구별하여 인간의 내적 차원을 가리키는 고유한 용어로 익혀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정확한 구조와 기능은 앞으로 관련 AC들이 설명할 때 하나씩 더해 가는 편이 스베덴보리의 글을 가장 안전하게 따라가는 방법입니다.

 

 

 

AC.64 심화 1, ‘아르카나’(arcana)란 무엇인가?

AC.64 심화 1. ‘아르카나’(arcana)란 무엇인가? AC.64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 안에 너무나 많은 ‘아르카나’(arcana)가 있어서 수많은 책으로도 그것들을 모두 펼쳐 내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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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르카나(arcana) 무엇인가?

AC.64에서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속뜻 안에 너무나 많은 아르카나(arcana)가 있어서 수많은 책으로도 그것들을 모두 펼쳐 내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르카나 속뜻과 같은 말일까요?  AC에서 자주 만나는 퍼셉션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단어 자체를 보면 arcana는 라틴어 arcanum의 복수형으로, ‘감추어진 것들’, ‘비밀들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래서 Arcana Coelestia라는 제목도 문자 그대로 생각하면 천적인 비밀들’, ‘천국의 비밀들 정도의 뜻이 됩니다. 다만 여기서 비밀이라고 할 때는 일부 사람만 알고 남에게 숨겨 두는 비밀 정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AC.64의 문맥에서는 말씀의 문자적 의미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은 내용들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아르카나 속뜻은 정확히 같은 말일까요? 완전히 같은 용어라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AC.64는 먼저 이것이 말씀의 속뜻이며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이라고 말한 다음, ‘ 아르카나는 너무 많아서 수많은 책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속뜻이 말씀의 내적 의미 자체를 가리킨다면, ‘아르카나는 그 속뜻 안에서 밝혀지는 수많은 감추어진 내용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너무 기계적으로 속뜻 = 그릇, 아르카나 = 내용이라는 공식으로 고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언제나 그런 철학적 구분표를 제시하면서 두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서로 매우 가까운 의미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르카나가 말씀 밖에 따로 감추어져 있는 비밀 지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AC.64에서 말하는 아르카나는 바로 말씀의 속뜻과 관련하여 밝혀지는 감추어진 것들입니다.

 

창세기 1장이 좋은 예입니다. 문자에서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여섯 날을 읽습니다. 그런데 AC.6부터 AC.63까지 스베덴보리는 그 말씀 안에서 인간의 거듭남에 관한 수많은 내용을 밝혔습니다. 빛과 어둠, 물과 궁창, 식물과 씨,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새와 짐승, 하나님의 형상과 심히 좋았더라 등이 거듭남과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AC.64는 지금까지 제시한 이 모든 것조차 말씀 안의 아르카나 가운데 극히 일부라고 말합니다.

 

이 점에서 아르카나는 단순한 상징의 뜻풀이보다 넓습니다. ‘빛은 이것을 뜻한다’, ‘물은 저것을 뜻한다는 대응 하나를 알아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거듭남의 질서와 상태, 주님의 역사를 밝혀 줍니다. 따라서 아르카나를 재미있는 성경 암호나 숨은 정보처럼 접근하면 AC가 말하려는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면 퍼셉션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퍼셉션은 AC에서 별도로 설명되는 인간의 영적 상태와 인식에 관한 용어입니다. 따라서 아르카나와 퍼셉션을 하나는 내용이고 하나는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이라고 간단히 짝지어 정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관련될 수는 있지만 동일한 범주의 두 용어가 아닙니다. ‘아르카나가 무엇인가를 묻는 이번 심화에서는 퍼셉션의 전체 교리까지 가져오지 않고, 그것이 아르카나의 다른 이름은 아니라는 정도로 구별하면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아르카나라는 말을 들을 때 AC 자체가 성경보다 더 높은 비밀 지식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밝힌다고 주장하는 아르카나는 AC 안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비밀이 아니라 말씀 안에 있는 아르카나입니다. AC.64의 순서도 먼저 말씀의 속뜻을 말하고 그 안의 헤아릴 수 없는 아르카나를 말합니다.

 

따라서 Arcana Coelestia라는 책 제목도 결국 독자의 눈을 이 책 자체에 묶어 두기보다 말씀으로 돌려보냅니다. ‘천국의 비밀은 스베덴보리가 새로 창조한 비밀이 아니라, 그의 주장에 따르면 주님께서 주신 말씀 안에 이미 있으나 문자적 의미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영적이고 천적인 내용들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AC.64에서 아르카나는 말씀의 문자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뜻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감추어진 영적이고 천적인 내용들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창세기 1장을 다 설명한 이 자리에서도 자신이 밝힌 것은 그 가운데 극히 일부라고 말합니다.

 

 

 

AC.64 심화 2, ‘속 사람’(internal man)은 영혼이나 마음과 같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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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64, 창1, 말씀의 속뜻 : 말씀의 가장 참된 생명과 천사들의 지각 (AC.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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