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눅23:44-49)

 

말씀에 나오는 숫자들은 단순히 그 겉 글자의 뜻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의(秘義, arcana, secret)가 담긴, 천국의 놀라운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인데요, 상태의 나라인 천국에서는 이 숫자들 역시 그 안에 담긴 상태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창세기 처음 몇 장에 나오는 누가 몇백 년을 살았다 하는 표현은 그 속뜻으로는 그 이름으로 부르던 교회, 또는 교리나 신앙이 그만큼의 오랜 세월, 즉 어떤 상태들 가운데 있었다 하는 식입니다.

 

여기 ‘그만큼의 세월’이라 하였지만 꼭 일대일, 그러니까 구백육십구 세라 하여 꼭 969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그 속뜻으로는 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몇천, 몇만 년, 아니 그 이상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그래서 저는 지질학자들의 지구 나이 45억 년 전후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며, 전 세계에서 계속 발견되는 오파츠(Out-of-place artifacts, OOPARTS)들 또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파츠란 역사적, 고고학적으로 그 지층, 그 연대에서는 절대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데 발견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1, 2, 3, 4 같은 단순 숫자들조차 아주 깊은 비의들을 담고 있거든 하물며 이 단순 숫자들의 조합인 복합 숫자들은 그 담긴 의미가 얼마나 엄청난지 이 지상에서는 형용할 수도 없거니와 한들 이해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러므로 예를 들어, 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숫자들 역시, 그것을 그대로 실제 지상의 년 수로 이해하기보다 상태로 이해할 때 비로소 많은 부분, 모든 것이 순적, 평안하게 풀린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 주님의, 나무에 달리심과 관련된 숫자들, 삼시, 육시, 구시 역시 그래서 상태, 곧 그 속뜻으로 이해해야 하는데요, 물론, 지상의 시간으로 이해하면 아마도 오전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인 것 같지만...

 

숫자 삼(3)의 의미가 다들 아시듯 ‘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배수인 육(6) 및 그 세 배수인 구(9)에 이르러는 더욱 완전, ‘완성’을 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어머니로부터는 유전 악을 품은 인성(human), 자아로 탄생하신 주님이 그간의 거듭남의 시간들을 거쳐 이제 막 그 옛 자아를 벗으시고, 오로지 여호와로 말미암은 새로운 자아, 곧 신성한 인성(Divine Human)이 되시는 것을 표현, 상징한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일대기, 특히 우리 평범한 인간들처럼 똑같은 거듭남의 과정, 곧 그 유전 악 옛 자아를 벗는 과정 중 그 몇 중요한 꼭지들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더 많은 중요한 내용들은 꼭 아래 블로그에 가셔서 그 원고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bygrace.kr/1493

 

매일예배(2023/4/7, 눅23:44-49),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https://youtu.be/9VWBMSmNEvw 2. 카톡 메시지 ‘예수께서 숨지시니라’ (2023/4/7) 44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성소의 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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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주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남은 삶, 오직 주님을 섬기며, 당부하신 쓰임새의 삶을 살다 주님 나라 가고 싶습니다. 저를 늘 붙들어 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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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2023/4/6)

 

...40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눅23:34-43)

 

사람이 자신을 살핀 후(after examination) 뒤따라야 할, 그러니까 사람이 자신의 죄 된 모습을 직시하고 났을 때, 그에게 부여되는 두 가지 의무가 있는데요, 하나는 간구(懇求, supplication)이고, 다른 하나는 고백(告白, confession)입니다.

 

간구라는 것은, ‘오,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셔서, 제가 그동안 뉘우쳐 온 악들을 이제는 저항할 수 있도록 힘주시오며, 그리고 저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성향과 애정을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구하는 것이며,

 

고백이라는 것은, ‘오, 주님, 제가 다음과 같은 저의 악들을 보고(see), 인식(recognize), 그리고 시인(acknowledge)합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정말 비참한 죄인임을 발견(find)하였습니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15:5)

 

죄라는 것들은, 폐지되는(abolish) 게 아니라 제거되는(remove) 것입니다. 죄라는 것들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이것들을 삼가며(refrain from), 지속적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만큼만 제거됩니다.

 

모든 악이란 악은, 그 안이 온갖 탐욕들로 되어 있는 것이어서 절대로 즉각적으로 옮겨지는(put away) 게 아니고, 오직 점진적으로만, 즉 사람이 자신을 개혁과 거듭남 가운데 있게(to be reformed and regenerated.) 하는 만큼만 옮겨집니다.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21-22)

 

(TCR.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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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023/4/5)

 

...27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6-33)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열과 신앙의 빛, 곧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라는 신성(神性, The Divine)이 흘러나와 천국을 비롯한 모든 피조 세계에 생명을 공급, 존재, 존속하게 합니다.

 

이렇듯 천국의 지상 버전인 교회 역시 주님의 신성으로 이루어지며, 존재, 존속합니다.

 

지상 교회가 가장 생명력 넘치고 찬란할 때는 주님의 신성으로 가득 찰 때이고, 반대로 그 생명이 꺼져 가고 어두워질 때는 교회 안에 주님의 선과 진리가 거의 사라질 때입니다.

 

주님의 선과 진리가 사라질 때는 교회가 주님을 향해 등을 돌리며, 주님 음성에 귀를 막을 때입니다. 이때가 소위 종말이며, 최후 심판이라는 때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이며, 태고 이후, 지금까지 네 번의 교회 시대가 있었고, 이제 주님의 재림으로 다섯 번째 교회 시대가 시작됩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 다섯 번째로 고정, 영원합니다.

 

지난 네 번의 교회 시대는 각각 태고 교회(홍수 전까지), 고대 교회(노아부터 출애굽까지), 이스라엘 교회(시내산 십계명 선포로 시작), 그리고 현 기독 교회(주님의 초림으로 시작)입니다.

 

각 교회 시대마다 심판과 종말이 있었습니다. 즉 그때마다 교회 안에 주님의 신성, 곧 선과 진리가 거의 소멸, 그때마다 교회는 황폐해져서 그 시대는 마감, 주님은 그때마다 새로운 시대를 여셔야 하셨습니다.

 

주님이 매번 이렇게 꺼져 가는 불씨 살리듯 새 교회를 일으키신 이유는 그때마다 특별한 방법으로 인류가 계속 주님과 결합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셨고,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골고다 처형장으로 끌려가시는 주님이 가는 도중 수많은 무리, 특히 ‘예루살렘의 딸들’이라 하신 여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여자들’이지만, 그 내적 의미로는 교회, 특히 종말을 앞두고 있는 세 번째 교회인 이스라엘 교회를 말합니다. ‘자녀들’은 교회가 생산해 내는 모든 선하고 진실한 것들을 말합니다. ‘우는 것’은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시는 것은 앞으로 교회 안에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살펴 혹시 내 안에 주님의 신성, 곧 주님으로 말미암은 선과 진리가 거의 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치며 슬피 울 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고난주간 말씀으로 계속 준비하겠습니다.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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