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0
네 번째 상태는 사람이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는 때입니다. 그는 이전에도 경건하게 말하고 선한 것들을 행했지만, 그것은 그가 겪고 있던 시험과 곤경의 결과였으며,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게 되었으며, 이것들을 두 ‘광명체’(luminaries)라고 합니다. The fourth state is when the man becomes affected with love, and illuminated by faith. He indeed previously discoursed piously, and brought forth goods, but he did so in consequence of the temptation and straitness under which he labored, and not from faith and charity; wherefore faith and charity are now enkindled in his internal man, and are called two “luminaries.”
해설
AC.9의 세 번째 상태에서 사람은 이미 회개하여 속 사람으로부터 경건하게 말하고 체어리티의 행위들과 같은 선들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아직 ‘생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 선들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AC.10의 네 번째 상태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먼저 주목할 것은 세 번째 상태에서도 이미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 상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선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으로 보면 이전에도 상당히 신앙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AC.10은 그 이전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구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것들이 ‘그가 겪고 있던 시험과 곤경의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앞의 AC.8에서 시험, 불행, 슬픔을 통해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잠잠해지고 마치 죽은 것처럼 된다고 했던 설명과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지나면서 AC.9에서는 실제로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나타났지만, 아직 그것들의 생명이 신앙과 체어리티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AC.10의 변화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하던 사람이 좋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변화가 아닙니다. 좋은 말과 행동은 이미 앞 단계에 있었습니다. 이제 달라지는 것은 그것들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시험과 곤경의 결과로 경건하게 말하고 선을 행했다면, 이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합니다.
‘불붙는다’는 표현은 원문의 enkindled를 옮긴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단지 사람에게 알려지거나 기억되는 정도가 아니라 속 사람 안에서 ‘불붙는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AC.10에서 네 번째 상태를 이전 상태와 구별하는 핵심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또한 첫 문장의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는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여기서 사랑과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지식이나 외적인 행위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감동됨’이, 신앙에는 ‘밝아짐’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이것을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다만 AC.10 한 단락에서 ‘사랑에 감동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적 체험을 의미하는지까지 세밀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별한 종교적 감격이나 강렬한 감정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본문을 넘어섭니다. AC.10이 직접 말하는 범위에서는 이전과 달리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살아 있게 되는 변화에 주목하면 충분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신앙과 체어리티를 두 ‘광명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창1:14 이하에서 넷째 날에 등장하는 두 큰 광명체와 연결됩니다. 그러나 AC.10은 아직 두 광명체 각각의 상응을 자세히 설명하는 단락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직접 말하는 것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가 두 광명체라고 불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짧은 개요에서 두 광명체 각각의 의미를 너무 앞서 세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뒤에서 창1의 넷째 날을 본격적으로 해설할 때 스베덴보리는 큰 광명체와 작은 광명체, 낮과 밤, 해와 달 등의 의미를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AC.10에서는 여섯 상태 전체를 개괄하는 흐름 안에서 네 번째 상태의 핵심만 붙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이전에도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있었지만 이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상태는 외적 행동의 변화보다 그 행동의 내적 근원이 달라지는 상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적 근원이 달라진다’는 표현도 조심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AC.10이 사람이 이때 비로소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온다는 교리를 완전히 깨닫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내용을 이 한 단락에 미리 넣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변화는 이전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가 신앙과 체어리티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던 데 비하여, 이제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AC.9의 ‘생기 없는 선’과 AC.10의 차이도 더욱 선명해집니다. 세 번째 상태의 사람은 실제로 선을 행했지만 아직 그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으로 여겼습니다.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거듭남의 진전은 단순히 선행의 양이 많아지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같은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라도 그것을 낳는 내적 상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AC.10은 시험과 곤경 자체를 거듭남의 생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앞 단계에서 그것들은 몸과 세상에 속한 것들이 잠잠해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고, 세 번째 상태의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상태를 특징짓는 것은 더 이상 시험과 곤경이 아니라 속 사람 안에서 불붙은 신앙과 체어리티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거듭남을 ‘고난 때문에 착해지는 과정’으로 이해해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AC.10이 보여 주는 네 번째 상태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 자체가 속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전의 외적인 압박과 곤경에서 나온 반응과 구별되는 새로운 상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두 ‘광명체’라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넷째 날 광명체들이 등장하듯, 거듭남의 네 번째 상태에서도 신앙과 체어리티가 광명체로 나타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이것을 더 세밀하게 나누기보다, 사람의 속 사람 안에 신앙과 체어리티가 불붙는 것이 창1의 두 광명체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AC.7에서 첫 번째 움직임은 주님의 자비였습니다. AC.8에서는 주님의 것과 사람 자신의 것이 구별되고 리메인스가 드러났으며, AC.9에서는 사람이 회개하여 경건하게 말하고 선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AC.10에서는 신앙과 체어리티가 속 사람 안에서 불붙습니다. 이렇게 여섯 상태의 개요는 한 단계씩 앞의 상태와 구별되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네 번째 상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전에도 경건한 말과 선한 행위는 있었지만, 이제 사람은 사랑에 감동되고 신앙의 빛을 받으며, 신앙과 체어리티가 그의 속 사람 안에서 불붙기 시작한다.’ 이것이 AC.10이 말하는 거듭남의 네 번째 상태이며, 바로 이 신앙과 체어리티가 두 ‘광명체’라고 불립니다.
AC.11, 창1 개요, '다섯 번째 상태'
AC.11 다섯 번째 상태는 사람이 신앙으로 말하고, 그로써 진리와 선 안에서 자신을 확증하는 때입니다. 이때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생기를 지닌 것들이며, ‘바다의 물고기’(fish of the sea)와 ‘
bygrace.kr
AC.9, 창1 개요, '세 번째 상태'
AC.9 세 번째 상태는 회개(repentance)의 상태로서, 이때 사람은 속 사람(internal man)으로부터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말과, 체어리티(charity)의 행위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생기가 없
bygrace.kr
'즐겨찾기 > AC 창1' 카테고리의 다른 글
| AC.12, 창1 개요, 신앙과 사랑에서 함께 행동하는 때 : ‘형상’이라 하는 영적 인간 (2) | 2026.03.07 |
|---|---|
| AC.11, 창1 개요, 신앙으로 말하며 진리와 선 안에서 확증되는 때 :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0) | 2026.03.06 |
| AC.9, 창1 개요, 회개의 시작과 아직 생기 없는 선 : 거듭남의 세 번째 상태 (0) | 2026.03.06 |
| AC.8, 창1 개요, 주님의 것과 사람 자신의 것이 구별되는 때 : 리메인스가 드러나는 두 번째 상태 (0) | 2026.03.06 |
| AC.7, 창1 개요, 혼돈과 흑암 위에 먼저 움직이시는 주님의 자비 : 거듭남의 첫 번째 상태 (0) | 2026.03.0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