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스베덴보리 저, 'True Christian Religion'(1770)의 네 번째 주제인 'The Sacred Scripture or Word of the Lord'의 세 번째 소주제인 '3. The sense of the letter of the Word is the basis, container, and support of its spiritual and celestial sense (210–213)'입니다.

 

말씀의 겉 글자의 뜻은 영적, 천적인 뜻의 기본(basis)이요, 컨테이너(container)이고, 서포트(support)이다. The sense of the letter of the Word is the basis, container, and support of its spiritual and celestial sense.

 

 

210

모든 신성한 것 안에는 일종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나중이 있습니다. 처음은 중간을 거쳐 나중, 곧 최종에 이르며, 그렇게 존재하며, 존속합니다. 결국 최종이 기본(basis)입니다. 다시, 처음은 중간 안에 있으며, 중간을 거쳐 최종 안에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최종은 컨테이너(container)입니다. 그리고 최종은 컨테이너요, 기본이기 때문에, 또한 서포트(support)입니다. 배운 분들은 이들 셋을 목적(end), 원인(cause) 및 결과(effect)라, 또는 존재(being [esse]), 생성(becoming [fieri]) 및 성형(standing forth [existere])이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목적은 존재, 원인은 생성, 결과는 성형임을, 그 결과, 모든 완성된 것 안에는 일종의 삼위일체(trine)가, 처음, 중간, 그리고 나중, 또는 목적, 원인 및 결과라 하는 삼위일체가 존재함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내용이 이해가 되면, 모든 신성한 역사(Divine work, 주님의 일)가 그 최종단(最終段)에서 완성되고, 완벽해진다는 사실이, 또 모든 것이 그 최종단 안에 있으며, 그 이유는 그 안에 모든 선행하는(prior) 것이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또한 이해가 되실 겁니다. In everything Divine there is a first, a middle, and a last, the first passing through the middle to the last, and so existing and subsisting; consequently the last is the basis. Again, the first is in the middle, and through the middle in the last; thus the last is the container. And since the last is the container and the basis, it is also the support. The learned can understand that these three may be called end, cause, and effect; also being [esse], becoming [fieri] and standing forth [existere]; and that the end is being, the cause is becoming, and the effect is standing forth; consequently that in every complete thing there is a trine, which is called the first, the middle, and the last, also end, cause, and effect. When this is understood, it can also be understood that every Divine work is complete and perfect in its last; also that the whole is in the last, because in it prior things are together.

 

 

211

 

 

 

212

세 천국, 곧 가장 높은, 중간, 그리고 가장 낮은 세 천국이 있습니다. There are three heavens: a highest, a middle, and a lowest.

 

가장 높은 천국은 주님의 천적(celestial) 나라(kingdom)를, 중간은 영적(spiritual) 나라를, 그리고 가장 낮은 천국은 주님의 자연적(natural) 나라를 각각 형성(form)합니다. The highest heaven forms the Lord’s celestial kingdom, the middle his spiritual kingdom, and the lowest heaven his natural kingdom.

 

세 천국처럼 말씀(the Word)에도 세 뜻, 곧 천적, 영적 및 자연적 뜻이 있습니다. 이는 위(TCR.201)에서 말씀드린 내용과 일치하는데요, 즉, 처음은 중간에, 그리고 중간을 거쳐 최종, 정확히 말씀드리면, 목적은 원인에, 그리고 원인을 통해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As there are three heavens so there are three senses of the Word, a celestial, a spiritual, and a natural; and this agrees with what has been said above (n. 210), namely, that the first is in the middle and through the middle in the last, precisely as the end is in the cause and through the cause in the effect.

 

이걸 알면, 말씀의 본성(nature)을 밝히 알 수 있는데요, 즉, 겉 글자의 뜻 안에, 이게 자연적인 뜻인데, 영적인 뜻, 속뜻이 존재하고, 또 그 안에, 천적인 뜻인 가장 내적 뜻(inmost sense)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자연적 뜻인 가장 외적인 뜻(outmost sense)을 겉 글자의 뜻이라 하고, 컨테이너라 하며, 그렇게 두 내적 뜻들의 기본이요, 서포트가 되는 것입니다. This makes clear the nature of the Word, namely, that in the sense of its letter, which is natural, there is an inner sense which is spiritual, and in this an inmost sense which is celestial; and thus that the outmost sense, which is natural and is called the sense of the letter, is the container, and thus the basis and support of the two interior senses.

 

C.8.9, TCR.210, 212, '말씀의 겉 글자의 뜻은 영적, 천적 의미의 기본(basis)이요, 컨테이너(container)이고, 서포트(support)이다'.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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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D1)-제9권51호통434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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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

 

43. 22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Verse 22. And God blessed them, saying,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waters in the seas, and the fowl shall be multiplied in the earth.

 

자기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은 엄청나게 결실하며(fructify), 번성합니다(multiply). 몸 안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내세에서조차 어리둥절할 정도로 그렇습니다. Everything that has in itself life from the Lord fructifies and multiplies itself immensely; not so much while the man lives in the body, but to an amazing degree in the other life.

 

말씀에서, ‘생육하다’(生育, to be fruitful)라는 건 사랑에 속한 걸, 그리고 ‘번성하다’(繁盛, to multiply)라는 건 신앙에 속한 걸 각각 말하는 겁니다. 사랑에 속한 ‘열매’ 안에는 ‘’가 들어 있는데, 이 씨로 말미암아 놀랍게 배가합니다. To “be fruitful,” in the Word, is predicated of the things that are of love, and to “multiply,” of the things that are of faith; the “fruit” which is of love contains “seed,” by which it so greatly multiplies itself.

 

※ 들의 풀과 나무, 강과 바다의 물고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 가령 해바라기는 그 넓은 둥그런 꽃 한 판에 얼마나 많은 씨가 있으며, 열매, 가령, 옥수수 한 자루엔 얼마나 많은 낱알갱이가, 벼나 보리, 수수 같은 곡식들 한 줄기 줄기엔 또 얼마나 많은 낱알들이 맺히는지... 나무 한 그루도 보면, 가령 은행, 호도, 대추, 밤, 감, 사과 등등... 얼마나 많은 열매, 과일이 열리는지... 물고기는 또 어떤가요? 명란젓 만드는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은, 대구는, 오징어는? 등등... 또한 얼마나 그렇게 어마어마한지... 끝이 없습니다. 참으로 어리둥절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번성합니다 ^^

 

※ 인간과 달리 동, 식물의 경우, 주님의 이 정하신 복, 명령하신 축복이 예외 없이 그대로 시행되는 이유는, 동, 식물의 경우는 본능만 있을 뿐 스스로 무엇이 없어 주님이 정하신 질서를 거역하거나 뒤집거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의 정하신 쓰임새 그대로 존재하며, 존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 판단하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게 최선인 줄을 알면서도 버젓이 악을 행하고, 창조주의 질서를 뒤집어 훼방을 놓고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변수가 많으며, 오히려 주님의 복 받기가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인간의 삶 가운데 화와 불행은 그 스스로가 자초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오늘 본문 동, 식물의 이런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가운데 살기 원한다면... 마찬가지로 주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과 능력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흘러 들어오게 하면 됩니다.

 

※ 스베덴보리(1688-1772)를 통해 주님 알리신 이 아케이나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미미하고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변죽만 울리고 있습니다. 홍수 후 고대교회 초창기에도, 아브라함 이후 유대교회 초창기에도, 주님 성육신 이후 기독교회 초창기에도 늘 시작은 아주 미미했습니다만... 그러나 결국은 저마다 오랜 세월 대하처럼 흐르는 시대별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이 주님의 새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각 시대 초기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도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또한 말씀에서 주님의 ‘’(福, blessing)은 풍성한 결실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이런 ‘생육’과 ‘번성’이 모두 ‘’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The Lord’s “blessing” also in the Word signifies fruitfulness and multiplication, because they proceed from it.

 

※ 이 원리가 동, 식물에게만 적용되겠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 안에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있으면, 마찬가지로 그 하는 모든 일에 형통, 크게 번성, 번창할 줄 믿습니다. 요셉이 주님으로 말미암게 되자 그 안으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흘러 들어가 바로의 애굽 전역은 물론 주변국들까지 구원하는 큰일이 일어남을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 복은 주님이 주시고, 안 주시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중심적으로 볼 때, 태양(해)의 질량은 지구의 약 33만 배, 즉 지구는 그만큼 정말 보잘것없는 행성입니다. 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지구 하나를 비추고 덥히기 위해 그 큰 태양을 태우는 건 정말 큰 낭비가 아닐 수 없지요.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도 언제나 늘 변함없이 그렇게 하십니다. 해는 늘 이 지구를 비추지만 지구의 자전으로 어디는 낮일 때, 어디는 밤이 되고, 또 지구의 공전으로, 어디는 여름일 때, 어디는 겨울이 됩니다.

 

즉, 주님의 빛과 복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주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책임이라는 겁니다. 지구가 해를 바라볼 땐 낮이요, 봄, 여름이듯,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땐 주님의 빛과 복이 내 삶에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그게 바로 복 받는 삶인 것입니다.

 

23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Verse 23.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fifth day.

 

※ 지난번 다룬 것처럼 이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나 다릅니다. 즉, 첫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르며, 두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과 세 번째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이 다릅니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도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거듭남 풀코스 가운데서 사람은 비록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시며 동행하시지만 그렇다고 늘 하하호호한 상태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사람의 연약함 때문인데요, 사람은 주님을 바라보다가도 또 어느새 자아를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피조물의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한데요, 심지어 천국의 천사들조차 이런 상태 변화를 겪는다 하니 우리는 자신의 이런 연약함의 오르락내리락을 결코 이상하게, 또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한 건, 천사들의 증언처럼, 오히려 이런 굴곡을 통해 더욱 예리해져 가며, 더욱 주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거듭남의 과정 가운데 이런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장, 성숙해져 가며, 그래서 어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리고 오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보다 내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만큼 그만큼 우리는 더 성장, 성숙해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1장 22-23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22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속뜻)

주님은 마치 해가 잘 보이지도 않는 지구를 위해 늘 모든 정성을 다하듯 지으신 땅 위 모든 피조물을 위해, 즉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속 사람, 겉 사람을 위해 한결같으십니다. 주님의 질서 아래 있는 모든 동, 식물이 자기들 안에 있는 주님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생육하고 번성하듯, 속 사람, 겉 사람 안에 거듭나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과 이해, 이성과 합리, 지성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또 자아를 향해 눈을 돌림으로 저녁이 됩니다.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밤은 없습니다. 곧 다시 새벽이 오며, 아침이 될 것입니다. 이는 거듭남의 완성, 곧 안식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그러나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우리는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우리가 우리를 포기할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됩니다. 힘을 다해 공부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사고해야 합니다. 힘을 다해 지성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상 지식에 힘쓰고, 그걸 선용(善用, 쓰임새, use), 천적 지혜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창1,22-23, AC.43,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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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crdodWyh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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