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23/5/19)

 

 

18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눅9:18-24)

 

두 개의 질문이 나옵니다. 하나는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다른 하나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여기 ‘무리’는 신앙인들 안에 있는 진리에 관한 지식들을, ‘너희’, 곧 ‘제자들’은 이들을 가르치는 믿음을, 그리고 ‘예수’는 우리 안에 함께 계시면서 믿음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는, 진리 그 자체이신 분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 30번 글을 보면,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창1:14-17)

 

에 대한 주석이 나오는데요, 여기 이 ‘큰 광명체’(great luminaries)를 이해하려면 먼저 신앙의 본질(the essence of faith)이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그 진행 과정(what is its progress with those who are being created anew)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그 이어지는 내용을 번역한 것입니다.

 

...신앙의 참 본질과 생명(the very essence and life of faith)은 주님 자신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주님이 직접 선포하신 게 나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새롭게 창조되는 중인 사람한테서 볼 수 있는 신앙의 전개,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일 먼저, 그들에겐 생명 자체가 전혀 없는데요, 생명이라는 건 오직 선과 진리 안에만 있는 것이며, 그래서 악과 거짓 안에는 절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신앙을 통해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게 되는데요, 이때 이 첫 신앙이라는 건 지식 신앙(faith of the memory), 단지 지식일 뿐인 신앙(a faith of mere knowledge [fides scientifica])을 말합니다.

 

다음은 이해 신앙(faith in the understanding), 즉 지성적, 지적 신앙(an intellectual faith)으로, 그리고 마침내 가슴 신앙(faith in the heart), 즉 사랑 신앙(the faith of love), 구원하는 신앙(saving faith)이 됩니다. 이것이 새롭게 창조되는 중인 사람한테 나타나는 신앙의 진행 과정입니다.

 

이중 첫 두 종류의 신앙을 표상하는 내용이 창세기 1장 3절로 13절 내용이고요, 이때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things inanimate)을 가지고 말이지요, 사랑으로 생기를 띠게 된 신앙은 20절로 25절의 움직이는 것들(animate things)을 가지고 표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두 개의 질문은 바로 이 내용과 연결되는 질문인데요, 다음은 오늘 설교 원고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따라서 무리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님께서 이렇게 차례로 물으신 것은 신앙인들의 믿음의 상태가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주님께서 살피시는 걸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그의 내면으로 생명이 흘러 들어가 그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리시냐면, 그의 내면에 있는 지식적인 것들을 주님의 생명으로 깨우시고, 그렇게 해서 살아있게 만드십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있습니다. 진리인 것도 있고, 진리 아닌 것도 있습니다. 또 같은 진리라 하더라도 행동하는 진리가 있고, 행동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진리인 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진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진리들을 깨워 살아있는 진리, 행동하는 진리로 만드시는 힘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우리의 믿음 가운데로 보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음은 오늘 설교 풀타임 유튜브 오디오이고요, 설교 원고에 대한 링크는 그 안에 있습니다.

 

https://youtu.be/e1jsJop4pgs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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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 (2023/5/17)

 

 

...13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16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17먹고 다 배불렀더라... (눅9:12-17)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속뜻으로는, 여기서 ‘’은 선, ‘물고기’는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 ‘다섯’은 조금, 약간, ‘’은 싸움, 전투를 뜻하므로, 그래서 이를 종합하면,

 

곧 ‘우리의 믿음이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 가운데 선은 조금밖에 없고, 말씀에 관한 지식만 가지고 있는데, 이걸 가지고 우리는 지금 힘겨운 영적 전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라는 뜻인데요,

 

이것만 보아도 말씀 읽는 방식에 있어 우리와 천사들의 방식이 참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앞서 남자만 세어도 한 오천 되는 무리를 떼를 지어 한 오십씩 앉히신 것은 ‘축사하시기’ 앞서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진리를 질서정연하게 정돈하시는 것이며,

 

축사하시는 것’은 그 많은 진리들,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들에게 주님의 선을 더하시며, 그리고 혹시 선은 있으되 참 진리가 없는 선은 주님의 진리를 더하시는 그런 과정, 즉 우리 안의 선과 진리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먹고 다 배불렀더라’는 주님이 온전하게 하신 우리 안 선과 진리들을 통해 삶이 변화되어 우리 생명이 되는 걸 뜻합니다. ‘열둘’은 믿음과 체어리티(charity)에 관한 모든 것을, ‘바구니에 담는 것’은 그것을 자신의 생명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은 실천된 진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진리이기 때문에, 그저 지식일 뿐인 진리를 통해서는 사람들은 주님의 선을 구경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 자세한 풀이는 오늘 말씀을 참고하셔요.

 

https://youtu.be/j5JVQHD07ZQ

 

아멘,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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