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2)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28And God blessed them, and God said unto them,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every liv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9And God said, Behold, I give you every herb bearing seed which is upon the faces of all the earth, and every tree in which is fruit; the tree yielding seed, to you it shall be for food. 30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earth, and to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wherein is a living soul, every green herb for food; and it was so. 31And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And the evening and the morning were the sixth day. (Gen. 1:24-31)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두 번째 내용이며, 이로써 1장을 마감하게 됩니다.

 

※ 제가 이 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Arcana Coelestia) 주석 원본을 가급적 원본 그대로 소개하는, 참 재미없고 고리타분할 수 있는, 어찌 보면 요즘 주일 설교라 할 수 없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쉽게 풀어 전하겠답시고 감히 손댔다가 완전 엉뚱한 소리 하는, 큰 참사가 날까 봐서입니다. 저는 아직은 그냥 살짝살짝 추임새 넣는 정도로도 충분하며, 이마저도 사실 제게 와있는 천사들의 퍼셉션(perception)을 조금 알아듣는 것이어서 안전하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진리는 그걸 수용하는 사람의 영적 역량, 곧 그 사람의 영적 눈높이에 맞춰 그 깊이가 조절되는 놀라운 진리입니다.

 

※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메시지를 겸한 설명, 곧 추임새는 ‘’로 구분합니다.

 

시작합니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AC.55)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해(understanding)와 의지(will), 즉 신앙(faith)과 사랑(love) 간 결합을 일종의 결혼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이 결혼의 결과, 태어나는 모든 선(good)을 ‘생육’(fruitfulness), 모든 진리(truth)를 ‘번성’(multiplications)이라 하였습니다.

 

※ 실제로 천국 역시 남녀의 결혼이 있지만, 천국에서는 지상처럼 무슨 ‘아이를 낳는’ 몸 결혼이 아닌, 선과 진리가 생겨나는 마음의 결혼, 곧 전혀 다른 결혼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40장, ‘천국 안의 결혼(Marriages in Heaven)을 읽어보세요.

 

 

HH.366, 40장, '천국 안의 결혼'(HH.366-386)

40천국의 결혼Marriages in Heaven 366천국은 인류로 구성되고, 따라서 천사들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남자는 여자를 위해 창조되었고 둘은 서로에게 속한다. 이성에 대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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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지서들에서도 그렇게 부르는데 예를 들면, 에스겔입니다.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이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 (36:11-12)

 

※ 위 구절 중 일부만 볼드인 이유는 원본에서는 거기만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람’(man)은 이스라엘이라 하는 영적 인간을, ‘전 지위’(ancient times)는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를, ‘처음’(beginnings)은 홍수 후 고대교회(古代, the ancient church)를 말합니다. 먼저 진리에 속한 ‘수가 많고’(multiplication)가 언급되고, 그다음에 선에 속한 ‘번성하게’(fruitfulness)가 언급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이미 거듭난 사람이 아닌, 앞으로 거듭나게 될 사람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직 거듭나는 중인 사람은 그 최종 목표가 영적 인간이며, 이때는 늘 진리가 먼저입니다. 그렇다는 건 거듭난 후 일곱째 날인 천적 인간이 되면 이때부터는 선이 먼저라는 말이 되겠지요. 일단은 신앙으로 출발, 나중엔 사랑으로라고 해도 같은 말입니다.

 

[2] 이해가 의지와, 즉 신앙이 사랑과 연합할 때, 주님은 이 사람을 일종의 ‘결혼한 땅’(married land)이라 하십니다. 이사야입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62:4)

 

이때 열리는 열매들이 진리에 속하였으면 ‘아들들’이라 하고, 선에 속하였으면 ‘딸들’이라 합니다. 이런 표현은 말씀에 아주 자주 나옵니다.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12:50)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데요, 이렇듯 지상 혈연의 천국 상응을 늘 염두에 두는 태도가 안전합니다. 그러니까 오바(over)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데요, 자기 사랑이라는 욕심에 잠식된 자녀 사랑이 아닌, 오직 주님 사랑 안에 잘 보존된 정말 깨끗하고 순결한 자녀 사랑, 내 자식, 내 손주를 보더라도, 또 내 부모, 내 조부모 등 내 가문을 보더라도 그걸 주님 나라의 선과 진리가 이 세상에 구현된 걸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며, 주님의 열두 제자같이 말입니다. 이건 영적 시야에 관한 문제라, 그리고 혈연이라는 건 평생에 걸친 문제라 정말 중요한 얘깁니다.

 

[3] 진리와 선이 많아졌을 때, 땅은 ‘충만한’(replenished) 상태, 가득 채워진 상태가 됩니다. 주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실 때, 즉 사람을 돌보실 때는 선과 진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31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13:31-32)

 

‘겨자씨 한 알’(A grain of mustard seed)은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선을 말하는데, 이것은 ‘모든 씨보다 작은 것’(the least of all seeds)입니다. 그 이유는, 그때는 그가 자기 스스로 그 선을 행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것은 악 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던 그가 거듭남의 어떤 상태 가운데 있게 되면서 그의 안에 뭔가 선한 게 생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작습니다.

 

[4] 결국 신앙이 사랑과 결합함으로써 점점 자라 ‘풀’(herb)이 되더니, 마침내 결합이 완성되면서 ‘나무’(a tree)가 되어, ‘공중의 새들’(the birds of the heavens)이 ‘그 가지에 깃들게’(build their nests in its branches) 됩니다. ‘공중의 새들’은 진리나 지적인 것들을, ‘그 가지에 깃들게’는 기억-지식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영적일 때뿐 아니라 영적 인간이 되는 동안은 그는 일종의 전투 상태에 있는 것이며, 그래서 이르시기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subdue the earth and have dominion) 하신 것입니다.

(AC.55)

 

 

2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AC.56-57)

 

천적 인간(天的, The celestial man)은 천적인 것들(celestial things)로만 기뻐합니다. 그것들이 그의 생명에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천적 양식(celestial food)이라고 합니다. 영적 인간(靈的, The spiritual man)은 영적인 것들(spiritu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 이유 역시 그것들이 그의 생명과 맞기 때문이며, 이번엔 영적 양식(spiritual food)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자연적 인간(自然的, The natural man)은 자연적인 것들(natural things)로 기뻐합니다. 그에게는 이런 것들이 맞기 때문인데, 이르기를 양식(food)이라고 하며, 주로 기억-지식으로 구성됩니다.

 

※ 그러니까 영적 인간이 자연적 인간더러, 천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자연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이런 거에 관심이 없느냐?’, 혹은 ‘당신은 왜 이런 걸 이해를 못하느냐?’라든지, 반대로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이나 천적 인간더러, 영적 인간이 천적 인간더러 ‘당신은 왜 그렇게 사느냐?’, 혹은 ‘당신은 왜 늘 천국, 천국만 하느냐?’라며 무시, 조롱, 비난, 멸시 같은 걸 하면 안 됩니다. 저마다 자기 음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선과 진리에 관한 거라면 말입니다.

(AC.56)

 

 

‘씨 맺는 채소’(The herb bearing seed)는 쓰임새(use)와 관련된 모든 진리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the tree in which is fruit)는 신앙의 선인데, 여기서 ‘열매’(fruit)는 주께서 천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 ‘씨 가진 나무’(seed producing fruit)는 영적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며, 그래서 ‘씨 가진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천적 양식을 나무의 열매라 하는 것은 다음 장을 보면 분명한데요, 다음 장에서는 천적인 사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여기서는 에스겔에서 하신 주님 말씀들만 인용합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 (47:12)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는 ‘성소’(the sanctuary)이신 주님의 생명과 자비를 의미합니다. ‘열매’는 그들의 양식이 될 지혜이며, ‘잎사귀’는 ‘약재료’(medicine)라는 이름으로 쓰임 받게 될 지성입니다. 한편, 영적 양식을 ‘풀’(herb)이라고 하는 건 시편을 보면 나옵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1-2)

 

※ 다음은 ‘쓰임새(use)와 관련된,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42장, ‘천국의 기쁨과 행복(Heavenly Joy and Happiness, HH.395-414) 402번 글입니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은 쓰임새 안에 모아져 있고 나타나 있다. 그것은 쓰임새가 천사들이 지닌 사랑과 이타심에서 비롯된 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천사는 그의 쓰임새에 맞게 그가 쓰임새를 사랑하는 정도만큼 즐거움을 누린다. 천국의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에서 나온 즐거움임은 사람 몸의 오감에 비해 보면 알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는 각기 그 쓰임에 따른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시각에는 아름다움과 형태가, 청각에는 조화된 소리가, 후각에는 향기가, 미각에는 맛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각각의 감각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고찰에 의해 알 수 있으며, 상응원리를 알면 그 기능을 더 완전하게 알 수 있다. 시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시각이 사고력, 즉 내적 시각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청각에 고유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청각은 주의집중을 통해 사고력과 의지 둘 다에 공헌하기 때문이다. 후각은 뇌와 폐에 작용하고, 미각은 위장을 거쳐 간접적으로 온몸에 영양을 공급하는 기능 때문에 각기 고유한 즐거움이 있다. 촉각의 더 순수하고 정묘한 즐거움인 결혼의 즐거움이 다른 모든 즐거움보다 뛰어난 이유는 그것이 인류의 증가와 그에 따른 천사의 증가에 공헌하는 쓰임새 때문이다. 그런 여러 가지 즐거움이 오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모든 즐거움이 쓰임새 안에 있고, 쓰임새에 달려 있는 곳인 천국이 그 안으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

(AC.57)

 

 

30절,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AC.58-59)

 

동일인, 곧 영적 인간의 자연적 음식을 여기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적 인간의 자연적 속성을 ‘땅의 모든 짐승’(the wild animal of the earth)과 ‘하늘의 모든 새’(the fowl of the heavens)로 상징하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 시편을 보면, 거기 그의 자연적, 영적 양식 둘 다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먹을 것이 나게 하셔서 (104:14)

 

여기서 ‘가축’(beast)이라는 말이 같은 시편 앞 구절들인 11, 12절에서 언급한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둘 다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11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12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104:11-12)

(AC.58)

 

 

여기 자연적 인간의 양식으로 ‘채소와 푸른 풀’(the vegetable and the green of the herb)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연적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거듭나는 중인 사람의 자연적 속성, 면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과정을 보면, 사람이 영적 인간이 되어가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전투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며, 이런 이유로 주님의 교회를 ‘전투적’(militant)이라고 합니다. 거듭나기 전엔 탐욕이 지배적이기 때문인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전반적으로 그저 탐욕과 거기서 나오는 거짓으로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 안에 별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아주 정상이며, 적어도 본인이 목회자라면 교인 하나하나, 성도 하나하나를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모두 안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악과 거짓의 사람이 선과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으로, 태생적으로 지옥에 적합한 사람이 주님의 사랑과 자비로 천국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 사람은 의지와 이해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의지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그리고 이해에 상응하는 천국과 지옥에 각각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연결은 이렇게 천국과 지옥에서 파송된 두 종류의 천사들과 악한 영들로 이루어지며, 그래서 모든 사람은 최소 두 명의 천사와 두 명의 악한 영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와 이해로 매 순간 일평생 천국이나 지옥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일생이며, 사람의 거듭남 전 과정입니다.

 

거듭나는 동안 이들 탐욕과 거짓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존재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인데, 이들 탐욕과 거짓은 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습득한 유일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영들은 오랫동안 그와 함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즉 그들은 일단 그의 탐욕을 자극, 그를 흥분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끊임없이 그러다 보면, 사람은 나중엔 그런 걸 지루해하며, 싫증을 느끼고 느슨해져서 결국은 주님에 의해 선 쪽으로 기울어질 정도가 되고, 그렇게 해서 사람은 개혁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인생 막장,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거기서 회심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이지요. 악한 영들이 아무리 끈질겨도 그들이 우리 주님의 한결같으심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무슨 의로운 습관을 결심했지만 반나절이 못 되어 또 넘어지더라도, 그리고 똑같은 결심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더라도,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나는 나 자신을 정말 못 믿겠다 하더라도 이런 나를 끝까지 붙드시는 주님을 믿고 다시 일어서며, 다시 결심, 다시 정진하는 태도, 자세가 필요합니다.

 

※ 주님은 우리와 달리 우리 안의 악을 한방에 어떻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 악조차 우리의 생명이심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이지요. 주님의 놀라우심은 그 악조차 우리를 돌이키시는 재료로 사용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선하고 진실한 모든 것, 즉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앙에 관한 거라면 뭐든지 - 오직 이런 것들만 선하고 진실한데요, 이것은 그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 아주아주 극도로 증오하는 악한 영들은 사람에게 양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채소와 푸른 풀’에 비교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들과 달리 주님은 그에게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에 비교되는 양식도 주시는데요, 이는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이며, 주님은 이 양식을 일정 간격으로 사람에게 계속 주십니다.

 

※ 여기서 우리는 악한 영들의 정체와 그들이 주는 달콤한 것의 그 숨은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주는 것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이 없는, 결국은 보잘 없는 ‘채소와 푸른 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 곧 그 안에 선과 진리가 있어 우리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시는, 그래서 기쁨, 즐거움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고요와 평화의 상태에 들게 하시는 분임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즉 악한 영들이 주는 것은 짝퉁, 모조품, 가짜인 반면, 오직 주님이 주시는 것만이 진품, 정품, 진짜라는 것입니다.

 

[2] 주님이 사람을 매 순간, 아니 정말 눈 깜빡할 순간이라도 막아주지 않으셨으면, 인간은 즉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영들의 세계에는 주님을 향한 사랑 및 신앙과 관련된 것들을 향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지독한 증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지난 수년간, (저는 분명히 몸 안에 있었음에도) 저세상의 영들, 특히 아주 못된 영들과 본의 아니게 어울려 왔습니다. 주님의 허락하심으로 저는 수천의 영들에 둘러싸이기도 했고, 그들은 저를 향해 독을 뱉기도 했습니다.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들은 저를 향해 우글거렸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 머리카락 한 올조차 건드릴 수 없었는데, 그것은 제가 주님의 보호 아래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해 경험으로, 저는 정말 영들의 세계와 그 본성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현재 거듭남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생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왜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지 하는, 영적 전투에 대하여 정말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주제,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도 전혀 의심 없이 믿기에는 일반적인 설명으로는 도저히 쉽지 않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의 신적 자비(the Lord’s Divine mercy)를 아주 구체적으로 보이셨는데요, 그것은 이어지는 페이지들에서 다루겠습니다.

(AC.59)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AC.60-63)

 

앞의 상태들에 대해서는 단지 ‘좋았더라’(good)라고만 하시는 반면, 이 상태를 가리켜서는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하시는 이유는, 지금은 신앙에 속한 것들과 사랑에 속한 것들이 하나가 되어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이 마치 서로 결혼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AC.60)

 

 

신앙의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과 관련된 모든 것을 영적(靈的, spiritual)이라 하고, 주님 사랑, 이웃 사랑(love to the Lord and our neighbor)에 속한 모든 것을 천적(天的, celestial)이라 합니다. 전자는 사람의 이해에, 후자는 사람의 의지에 속합니다.

 

※ 조금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머리 신앙은 영적이요, 가슴 신앙은 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열의 문제라기보다는 태생적 특성에 가깝지만, 하여튼 주님은 천적 천사들은 가까이, 영적 천사들은 천적 천사들 다음으로 가까이하십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특성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가급적 너무 교리, 교리 하지 마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AC.61)

 

사람의 거듭남과 관련하여 그 시기와 상태를 일반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여섯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를 그의 창조의 날들(the days of his creation)이라 합니다. 전혀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서서히 그는 먼저 뭔가가 되고,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여섯째 날을 향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여섯째 날에 그는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 됩니다.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즉 영적인 사람은 형상, 곧 주님을 담는 그릇이 되는 것이며, 천적인 사람은 그 영적인 사람 안에 담기는 주님이십니다.

(AC.62)

 

 

그를 위해 악과 거짓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우시는 한편, 주님은 이 전투를 통해 그를 진리와 선 안에서 확실하게 하십니다.

 

※ 다음은 이 ‘주님이 나를 위해 대신 악과 거짓에 대항하여 싸우심’에 대한 보충 설명입니다.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김은경 역) 60장, ‘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들(The Malice and Heinous Artifices of Infernal Spirits, HH.576-581) 577번 글입니다.

 

 

HH.576, 60장, '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HH.576-581)

60지옥 영들의 악독함과 입에 담을 수 없는 술책들The Malice and Heinous Artifices of Infernal Spirits 576깊이 생각하는 사람과, 마음의 작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영들이 사람들보다 얼마나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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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지혜와 지성이 있는 것처럼 지옥 영들에게는 그만큼의 악의와 교활함이 있다. 사람의 영은 몸을 벗어나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 안에 있기 때문이다. 천사적 영이 그의 선 안에 있다면, 지옥적 영은 그의 악 안에 있다. 앞에서 자주 설명했듯이 모든 영이 그 자신의 선 아니면 악인 것은 영이 그 자신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적 영은 그의 선에서, 지옥적 영은 그의 악에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악 자체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 악에 포함된 모든 것으로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2] 사람이 몸을 입고 살 동안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모든 사람이 받는 법의 제재와 이득, 명성, 평판을 얻을 희망 또는 그것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의 제재로 그 영의 악이 억눌려 있었고, 따라서 그 악의 참모습이 밖으로 터져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는 사람의 영에 있는 악은 그가 세상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꾸미는 외적인 정직함, 올바름,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 등으로 포장되고 가려져 있다. 이런 가면 뒤에서 그 악은 너무도 단단히 밀폐되고 숨겨져 있어 그 자신도 자기 영이 그렇게 엄청난 악의와 교활함을 숨기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즉 사후에 영이 되면 드러날 자기의 본성이 악마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3] 사후에는 그런 악의가 스스로 드러나는데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악하다. 악은 하나에서 수천 가지 종류가 파생하는데 그중에는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나는 내게 허락된 수많은 경험으로 그 악들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관찰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내게 영으로는 영계에 있으면서 동시에 몸으로는 자연계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악은 너무도 엄청나서 그 천 분의 일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나는 증언한다. 그 악이 너무도 커서, 만일 사람이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결코 지옥에서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 사람에게는 천국에서 온 천사들과 지옥에서 온 영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위 292, 293번 글 참조). 그러나 사람이 신성을 인정하고 신앙과 이웃 사랑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주께서는 그를 보호하실 수 없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은 주님께 등을 돌리고 지옥 영들에게 돌아서며, 그렇게 되면 그의 영은 자기와 동질의 악의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사람을 그가 달라붙는 악에서, 그리고 지옥의 영들과 교류함으로써 스스로 끌어들인다고 할 수 있는 악에서 끊임없이 떼어내신다. 사람이 신성을 부인하면 양심의 내적 제재를 받지 못하는데, 사람이 양심의 내적 제재로 악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외적 제재로 떼어내신다. 외적 제재는 앞에서 말한 대로 법에 대한 두려움과 이득, 명성, 평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의 즐거움을 통해서, 그 즐거움을 잃거나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서 악에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영적 선으로 인도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영적 선을 대하면 그 즉시 남을 꾀고 속이려고 선함과 정직함과 올바름을 가장함으로써 그 선을 술책과 교활함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교활함은 그의 영에 들어있는 악과 결탁하여 그 특성을 주입함으로써 악에 형태를 부여한다. (HH.577) //

 

전투의 때는 주님이 일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선지서에서는 거듭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빚으신 작품(the work of the fingers of God)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그의 모든 행위의 원리가 될 때까지, 이때 전투가 그치는데요, 주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이 일이 아주 순조롭게 되어 드디어 신앙과 사랑 간 결합이 일어날 때가 바로 ‘심히 좋았더라’(very good) 하시는 때입니다. 이때 주님은 그를 주님의 모양대로(as his likeness) 행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 거듭 ‘형상(image)은 그릇, ‘모양(likeness)은 내용입니다. 영적 인간은 그릇, 천적 인간은 내용입니다. 그릇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듯 주님의 목표, 즉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천적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천적 인간의 상태가 바로 안식의 상태요, 안식일입니다.

 

※ 천적 인간은 가슴 신앙이며, 매사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의 동기가 주님 사랑인 상태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의도하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이 여섯째 날 끝에 악한 영들은 떠나고, 선한 영들이 대신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국, 혹은 천적 낙원(the celestial paradise)으로 인도됩니다. 이곳에 관하여는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 우리는 악을 직접 상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본성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악을 상대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와 있는 지옥의 영들을 상대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투는 주님과 악한 영들 간 싸움입니다. 우리가 거듭남의 최종단계에서 이제는 의지로도 주님을 사랑하여 매사에 주님 편에 서면 악한 영들은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만 우리를 포기하고 떠납니다. 우리 안에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게 되어 드디어 싸움이 끝나고 쉼이 찾아오는데, 이 쉼은 주님의 쉼입니다.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싸워오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주님이 쉬시는 걸 표상한 것이며, 그래서 주님은 안식일을 가리켜 ‘내 안식일’이라 하신 것입니다.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9:30) //

(AC.63)

 

 

이상으로 창세기 1장 여섯째 날에 관한 2주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섯째 날 전체 본문을 다시 한번 봉독합니다.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24-31)

 

창조의 육(六) 일, 곧 사람의 거듭남 여섯 단계에 관한 이 전체 이야기 중 특별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한가지는 셋째 날 풀, 채소, 나무 창조에서 다섯째 날 수중 생물과 공중의 새, 그리고 여섯째 날 땅의 짐승 창조로 바로 넘어가지 않고, 중간에 넷째 날 두 큰 광명체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잘난 체하는 신앙에서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애정의 신앙으로 넘어가려면 중간에 사랑과 신앙이라는 불이 켜져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점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설교

2025-08-31(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2025-08-31(D1)-주일예배(2613, 창1,24-31, AC.44-63), ‘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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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8-31, AC.55-63.pdf
0.53MB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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