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날, 땅의 생물과 사람 창조’의 속뜻 (1)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4-27) 24And God said, Let the earth bring forth the living soul after its kind; the beast, and the thing moving itself, and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it was so. 25And God made the wild animal of the earth after its kind, and the beast after its kind, and everything that creepeth on the ground after its kind; and God saw that it was good. 26And God said,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fowl of the heavens, and over the beast,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every creeping thing that creepeth upon the earth. 27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Gen. 1:24-27)
창세기 속뜻 강해, 오늘은 1장, 천지창조 여섯째 날, 곧 거듭남 여섯 번째 상태에 관한 내용입니다. 내용이 길어 부득불 2주에 걸쳐 다루게 되며, 오늘은 먼저 24절로 27절까지이고, 여전히 주석 원본은 볼드체로 구분합니다. 특별히 설명은 ‘※’ 부호로 구분합니다.
24-25절, 24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AC.44-48)
사람은 땅(the earth)처럼 자기 안에 먼저 신앙 지식(the knowledges of faith)이 심기지 않고서는 어떤 선도 생산, 즉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 그걸 가지고 뭘 믿어야 할지, 뭘 행해야 할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말씀을 듣는 것은 이해(understanding)의 일이고, 그것을 행하는 것은 의지(will)의 일입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행하지는 않는 것은 마치 우리는 믿음대로 살지는 않지만 믿고는 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들음과 행함을 분리, 결국 일종의 나뉜 마음을 갖게 되며, 아래 구절에서 주님이 ‘어리석다’(foolish)하신 사람들처럼 됩니다.
24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7:24, 26)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는 앞서(20절) 보여드린 대로 이해에 속한 것들을, 여기 ‘땅은 생물을 내되’, ‘가축과 기는 것’, ‘땅의 짐승’은 의지에 속한 것들을 말합니다.
(AC.44)
태고 시대(太古, the most ancient times)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해와 의지에 관련된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의미, 이해했는데, 그래서 선지서들과 구약 말씀에서도 늘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가지고 같은 걸 표현하고 있습니다. 짐승은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을 해치는 짐승은 악하다 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짐승은 선하다 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악들은 악한 짐승들, 가령, 곰, 늑대, 개 등으로 표현하는 반면, 선하고 온순한 것들은 같은 본성을 가진 짐승들, 가령, 어린 암소, 양, 어린 양 등으로 표현합니다. 여기에 언급된 ‘짐승’(beasts)은 선하고 온순한 것들이며, 그래서 애정(affections)을 의미하는데, 이 본문은 거듭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더 낮은 것들, 즉 몸(body)과 더 연결된 것들은 ‘땅의 짐승’(wild animals of that earth)이라 하는데, 이는 탐욕과 쾌락(cupidities and pleasures)을 말합니다.
(AC.45)
‘짐승’이 사람의 애정, 곧 악을 수반하는 악한 애정과 선을 수반하는 선한 애정을 의미한다는 것은 말씀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을 보면 분명한데, 구체적인 사례들은 첨부하는 주석 원본을 참조하세요.
선지서들은 ‘가축’과 ‘땅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earth), 그리고 ‘가축’과 ‘들의 짐승들’(wild animals of the field)을 조심스럽게 구분하는데, 그러면서 사람에게 있는 선을 ‘가축’이라 하고 있습니다. 에스겔과 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생물’(animals)이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 AE.462에 의하면, 여기 ‘모든 천사’(the angels)는 일층천, 즉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을, ‘장로들’(the elders)은 이층천, 즉 중간 천국 천사들을, ‘네 생물’(the four animals)은 삼층천, 즉 가장 높은 천국 천사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AC.46)
이들 말씀에 거듭남에 관한 비의(秘義, arcana)가 들어 있다는 것은, 또한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는데요, 앞 구절인 24절에서는, 땅은 ‘생물, 가축, 땅의 짐승’ 순으로 내라 하시는 반면, 다음 구절인 25절에서는 그 순서가 바뀌지요, 즉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만드시고, 마찬가지로 ‘가축’도 만드셨다고 말이지요. 바로 이 순서에 비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이 될 때까지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사람의 거듭남은 이렇게 먼저 사람의 겉(the external)에서부터 시작, 차근차근 속(the internal)으로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또 다른 순서가 등장하는 것이며, 겉의 일들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AC.47)
그래서 그때, 즉 겉에서 속으로 진행할 때, 이 사람을 가리켜 거듭남의 다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다 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이 사람은 말을 할 때, 이해에 속한, 신앙 관련 어떤 원리로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진리 안에, 선 안에 있음을 스스로 확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으로 말미암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animate) 것이며, 이를 가리켜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처음엔 이해에 속한 신앙으로 말을 하다가, 드디어 의지에 속한, 거기서 나오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며 선을 행하기 시작하면, 드디어 그는 여섯 번째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며, 이때 그로 말미암는 것들을 가리켜 ‘생물’(the living soul), ‘가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가 신앙뿐만 아니라 사랑으로도 행하기를 시작할 때, 그는 영적 인간이 되며,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형상’(an image of God)이라 하는데, 이것이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 그러니까 ‘머리 신앙’으로 신앙생활 하던 사람이 드디어 ‘가슴 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영적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가슴으로 한다는 건 생활 속 모든 말과 행동을 주님 신앙, 주님 사랑으로 하는 걸 말합니다.
(AC.48)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C.49-52)
주님은 태고교회(太古, the most ancient church)에 사람으로 나타나셔서 그 교회 구성원들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하셨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많은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고요, 이런 이유로, 그들은 아무한테도 ‘사람’(man)이라 하지 않고, 오직 홀로 주님한테만, 그리고 주님에게 속한 것들에만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한테도 이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대신 다만 자기들한테 있는 것들 중 모든 사랑의 선과 모든 신앙의 진리 같은,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지각된(perceived) 것들에 한해서만 사용했습니다.
※ 처음에 주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걸 본 태고교회 사람들은 이후 자신들을 향해 감히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말한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었는데요, 그 이유는, 이런 것들은 오직 주님에게만 속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들에게 있어 ‘사람’은 오직 주님뿐이셨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선지서들에 나오는 ‘사람’(man), ‘사람의 아들’(the son of man)은 가장 높은 뜻(the supreme sense)으로는 주님을,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는 지혜와 지성, 즉 거듭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입니다.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 예레미야 당시 상황,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한 상황에 보니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든 교회든 그 안에 리메인스, 곧 주님의 선과 진리가 남아 있어야 사람이요, 교회인데 당시 유대와 예루살렘은 그런 게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3] 그래서 주님은 선지자들에게 사람으로(as a man) 나타나셨습니다. 에스겔입니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1:26)
다니엘은 두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인자’(人子, the son of man), 즉 같은 말인데, 사람(the man)이라 하였습니다.
13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7:13-14)
[4] 또한 주님은 자주 자신을 가리켜 ‘인자’(the son of man), 즉 사람이라 하시고, 다니엘에서처럼 영광 가운데 오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24:30)
‘구름을 타고’(The clouds of heaven)는 말씀(the Word)의 겉 글자의 뜻(the literal sense)인 반면, ‘능력과 큰 영광으로’(power and great glory)는 말씀의 속뜻(the internal sense)인데요, 말씀의 모든 것은 그 속뜻으로는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가리킵니다. 말씀의 속뜻에서 능력과 영광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 때문이지요.
※ 태고교회가 주님을 경외하여 감히 자기를 가리켜 ‘사람’이라는 표현 사용하는 걸 삼갔다는 설명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이렇게 경외해야 하겠습니다.
(AC.49)
태고교회는 ‘주님의 형상’(the imag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으로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다는 것과, 모든 사람한테는 영들과 천사들이 최소한 둘씩 와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 이 사실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HH.291, 33장, '천국과 인류는 결합되어 있다'(HH.291-302)
33천국과 인류의 결합The Conjunction of Heaven with the Human Race 291모든 선이 주께로부터 오고, 사람에게서 난 선은 하나도 없다는 것, 따라서 아무도 어떤 선이든 자기에게 근원을 돌리면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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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천사들하고는 천국과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영들을 통한 영들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그리고 천사들을 통한 천국과, 그리고 천국을 통한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 없이는 사람은 전혀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적으로 이러한 결합에 달려 있으며, 그래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떠나가 버리면 사람은 즉시 소멸될 것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영’들은 중간 영계의 영들을 말하며, 특별히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 중간 영계의 영들은 모두 천국 아니면 지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2] 아직 거듭남의 여정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과는 사뭇 다른 다스림을 받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그와 함께하는 악한 영들이 매사 천사들보다 더 우위를 점하는 동시에, 이때 천사들은 그가 가장 저급한 악 안으로 거꾸러져 들어가는 대신 어떤 선 쪽으로 구부러지도록 그를 그저 겨우 가이드만 어떻게 해볼 수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사실, 그 사람의 탐욕을 가지고 선으로,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진리로 구부리는 정도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기하고 있는 영들을 통해 영들의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천국하고는 아닙니다. 악한 영들이 그를 다스리기 때문이며, 이 경우, 천사들은 그들의 다스림을 외면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 천사가 뭘 하고 싶어도 사람이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은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힌 나머지, 오직 악하고 거짓된 것만 마음먹기 때문에, 도무지 천사들이 무엇을 할 여지가, 그 결과, 도저히 천국하고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애정이 악한 것을 좋아하여 악한 영들과 호흡이 맞는 한, 천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게 되며, 이때 천사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해야 그가 가장 지독한 지옥에서 덜 지독한 지옥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거밖에 없습니다.
[3] 그러나 그가 거듭남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모든 선과 진리에 대해서는 천사들의 다스림(rule)과 격려를 받지만,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 겉으로는 천사들이 다스리는(lead) 것 같지만, 그들은 단지 사역자들일 뿐입니다. 천사들과 영들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시는(governs)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먼저 복수(the plural number)로 이르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하는 것이며, 그러나 여전히 주님 홀로 다스리시며 다 하시기 때문에, 다음 구절에서는 단수(the singular number)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하시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주님이 이사야에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입니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천사들은 더더욱 스스로 이렇게들 고백합니다. ‘저희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오직 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입니다’
※ 위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끔찍하게 여기게 됩니다’라는 내용 앞에 양심이 찔립니다. 저는 분명 거듭남 가운데 있는 것 같은데도 악과 거짓에 대해 솔직히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에 나오는 ‘우리’라는 표현을 저는 그동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삼위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세 하나님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간 창조에 관한 의논을 하시는 줄 알았지요. 삼신(三神) 사상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삼위일체와 삼신 사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AC.50)
‘형상’(image) 관련해서는, 형상은 모양(likeness)이 아니고, 모양처럼 생긴 것이며,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fter our likeness) 하신 것입니다. 영적(靈的, spiritual) 인간은 형상이고, 천적(天的, celestial) 인간은 모양, 즉 닮음, 유사함(similitude)입니다.
※ 형상, 이미지를 그릇으로 보면, 모양, 닮음은 그 그릇에 담긴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겉모습만 보면 얼핏 주님의 이미지이지만, 실제 그의 행실, 성품, 인성 등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가지고 주님을 닮았다, 안 닮았다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은 영적 인간입니다. 천적 인간은 다음 장에서 다룹니다. 영적 인간은, 일종의 ‘형상’(image)인데, 주님은 그를 가리켜 ‘빛의 아들’(a son of light)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35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요12:35-36)
그를 일컬어 ‘친구’(friend)라고도 하시지요.
14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4-15)
그러나 천적 인간은, 이 사람이 ‘모양’(likeness)인데요, 주님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a son of God)라 하십니다. 요한복음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AC.51)
사람이 영적이면,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겉 사람에서 속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말씀에,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신 것입니다. 반면, 그가 천적인 사람이 되어 사랑으로 선을 행하게 되면, 그때는 그의 전반적인 경향은 반대로 속 사람에서 겉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주님이 시편에서 자신을, 그리고 그렇게 주님의 모양인 천적 인간을 묘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8:6-8)
그래서 여기 먼저 ‘들짐승’이, 그리고 차례대로 ‘새’, ‘바다의 물고기’가 언급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천적 인간은 사랑에서 출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한 사랑, 즉 무엇을 의도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적 인간하고는 다른 점이, 영적 인간은 먼저 ‘물고기’와 ‘새’가 나오고, 나중에 ‘들짐승’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이 물고기와 새는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며, 이 이해는 곧 신앙에 속합니다.
※ 이 ‘영적’, ‘천적’에 대한 더욱 자세한 내용은 아래 스베덴보리 저, '천국과 지옥'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를 읽어보세요.
HH.20, 4장, '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H.20-28)
4천국은 두 나라로 구분되어 있다Heaven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20천국에는 무한한 다양성이 있다. 완전히 동일한 사회는 하나도 없고, 심지어 단 한 천사도 다른 이와 똑같지 않다.주27 As there are in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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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52)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AC.53-54)
여기 ‘형상’(image)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자기 형상’(his image)은 신앙을,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은 사랑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전자인 신앙은 이해(understanding)에 속하는 반면, 후자인 사랑은 의지(will)에 속하는데요, 이 사랑은 영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뒤따라 나오는 거지만, 천적 인간에게 있어서는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AC.53)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남자와 여자’가 의미하는 것, 그 속뜻을 태고교회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이 말씀의 내적 의미를 잃어버리면서, 이 비의(秘義, arcanum, 단수, 복수는 arcana) 역시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그들 행복과 기쁨에 있어 최고의 원천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결혼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지각하고자(perceive)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모두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 가령, 햇볕, 곧 해의 빛과 열의 융합을 결혼으로, 자녀들 및 모든 동식물의 자식 및 열매들을 결혼의 결과로, 사람을 영과 육의 결혼으로, 삼위일체를 결혼으로 등등, 가능한 모든 것을 다 ‘결혼’으로 보고 설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들은 내적(內的, internal)이었기 때문에, 오직 내적인 것들로만 기뻐했습니다. 외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육안으로는 그저 볼 뿐, 그러나 이게 뭘 표현하는 걸까 그 영적 천적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 이는 참 부러운 특성입니다. 오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말이지요. 지금 사람들은 너무나 외적(external)이요, 겉의 사람, 감각의 사람들이어서 영적 천적인 주의 말씀들도 오로지 감각적으로만 이해합니다. 가령, 신령한 사람은 방언도 유창하고 세련되게 해야 하며, 안수 기도를 하면 바로 눈앞에서 병이 척척 낫고, 각종 장애도 바로 나아야 하며, 예언 기도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 받기를 참 좋아하며, ‘복’의 참 의미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고 무지하며, 내적(internal)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를 아예 이해조차 못 하면서도 자기는 믿는 사람이요,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자기는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므로 죽으면 천당 간다고 믿는 그런 현실입니다.
외적인 것들은, 그들에겐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 내적인 것들로 돌리게 하는, 그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내적인 것들에서 천적인 것들로, 그렇게 그들의 모든 것 되신 주님께로,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자기들 결혼의 행복의 근원으로 지각한(perceived) 천국의 결혼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 인간의 이해를 남자(male), 의지를 여자(female)라 하였고, 이 둘이 하나로 움직일 때, 그걸 결혼이라 하였습니다.
※ 태고교회는 어떤 사람의 말과 행실이 일치할 때, 그는 이해와 의지가 결혼한 상태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 교회에서 나중에 관습이 된 말들이 나왔는데요, 선에 관한 교회의 애정으로부터 교회 그 자체를 가리켜 ‘딸’(daughter), ‘처녀’(virgin), 이 경우, ‘시온의 처녀’(the virgin of Zion), ‘예루살렘의 처녀’(the virgin of Jerusalem) 등으로 묘사했지요, 그리고 또한 ‘아내’(wife)라 하였습니다. 이들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장 23절과 3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AC.54)
이상으로 오늘 본문의 전반부인 24절로 27절의 속뜻을 살피며, 중간중간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으로 필요한 메시지를 대신했습니다. 후반부인 28절로 31절은 다음 주인 31일 주일에 다루겠습니다.
거듭남의 최종 목표는 영적 인간, 곧 주님을 사랑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여섯째 날 상태이며, 여기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천적 인간, 곧 일곱째 날, 안식일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난 육일 간의 상태들은 모두 여기까지 오기 위한 단계별 과정들이었으며, 그 하나하나에 있었던 일들은 거듭나는 중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였습니다.
이 창세기 1장 설교 원고를 여러 번 숙독, 충분히 이해하셔서, 저마다 주님이 돕고 계시는 자신의 거듭남 전 과정에 열심히 협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2025-08-24(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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