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20-24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And the man [homo] called his wife’s name Eve, because she was the mother of all living.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And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for his wife coats of skin, and clothed them. 22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And Jehovah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knowing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23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Therefore Jehovah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24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And he cast out the man; and he made to dwell from the east toward the garden of Eden cherubim, and the flame of a sword turning itself,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The Contents

 

280. 태고(太古) 교회와 서서히 줄어든 그 교회 사람들이 여기서 간략하게 다루어집니다. 그 교회의 후손들 또한 다루어지는데, 이들은 끝에 가서 홍수로 사라졌습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and those who fell away, are here summarily treated of; thus also its posterity down to the flood, when it expired.

 

 

281. 20절,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천적(天的, celestial)이었던 태고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님 신앙(faith in the Lord)의 삶을 산 교회이며, ‘하와’(Eve)라, ‘모든 산 자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living)라 일컬음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20절)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was celestial, and from the life of faith in the Lord, called “Eve,” and the “mother of all living” (verse 20).

 

※ 태고(太古) 교회란, 인류 첫 교회로서, 천국 속성(a heavenly nature)을 가졌던 참된 교회(the true church)를 말합니다. 주님을 향한 참된 신앙의 삶을 산 교회였습니다.

 

 

282. 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그 첫 번째 후손에 관한 것으로, 그들에게는 천적 영적 선(celestial spiritual good)이 있었습니다; 이어 그 두 번째와 세 번째 후손에 관해서는, 그들에게는 자연적 선(natural good)이 있었고,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지으신 가죽옷’으로 상징되었습니다. (21절) Of its first posterity, in which there was celestial spiritual good; and of its second and third, in which there was natural good, signified by the “coat of skin which Jehovah God made for the man and his wife” (verse 21).

 

※ ‘천적 영적 선’은 ‘영적 종류의 천적 선’(a spiritual kind of heavenly good)을, ‘자연적 선’은 ‘세속적 수준의 선’(good on the earthly level)을 각각 말합니다. 즉, 크게 두 종류의 선, 곧 영적인 선과 영적이지 않은 선이 있으며, 전자는 천국적 선, 사후 천국에서나 경험하게 될 선, 후자는 세상적, 세속적 선, 우리가 세상 살며 지금도 경험하는 많은 아름다운 선, 체어리티(charity, 慈善)의 선을 각각 말합니다. ‘세속적’이라 하여 꼭 안 좋은 의미로만 이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 위 21절 본문에서 이런 걸 겉 글자의 뜻만으로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지어’, ‘입히시니라’ 및 ‘가죽옷’ 정도로만 살짝 담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정말 깊은 아케이나가 있기 때문이며, 설마 정말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믿으시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자세한 것은 해당 절을 살필 때 보겠습니다.

 

 

283.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네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게서는 자연적 선이 소멸(dissipate)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신앙의 천적인 것들 안에서 새롭게 빚어졌거나 가르침을 받았더라면, 그들은 소멸(perish)되어 버리고 말았을 텐데요, 이것이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의 의미입니다. (22절) Of the fourth posterity, in which natural good began to be dissipated, and which, had they been created anew or instructed in the celestial things of faith, would have perished, which is meant by,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ves, and eat, and live to eternity” (verse 22).

 

※ 자연적 선의 소멸, 곧 일상 체어리티의 선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런 상태에서 만일 천국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가르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걸 받아들이고 뉘우치며 돌이킬까요? 정반대로, 그러면 안 된다, 오히려 소멸된다고 합니다. 만일 그게 가능했으면 주님도 이때 무슨 손을 쓰셨겠지요... 오늘 이 세대에게 아케이나를 전파, 가르치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284. 23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다섯 번째 후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후손에 이르러는 드디어 모든 선과 진리가 박탈(deprive)되었고, 그리고 거듭남 이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이런 내용입니다. (23절) Of the fifth posterity, which was deprived of all good and truth, and was reduced to the state in which they had been previous to regeneration, which is meant by his being “sent forth out of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ich he was taken” (verse 23).

 

※ 선과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즉, ‘혼돈’과 ‘공허’, ‘흑암’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직 거듭남이 시작되지 않은 모든 인생이 다 이런 상태입니다. 그 아름답고 찬란했던 천적 인간, 안식일의 사람이 이렇게 곤두박질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285.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후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후손들은 선과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memory-knowledge)조차 남아 있지를 않았으며, 그들의 본성(own)에는 아주 더러운 사랑들(filthy loves)과 망상들(persuasions)만 남겨졌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이들은 신앙에 관한 거룩한 것들을 모독(profane)했을 것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24절) Of the sixth and seventh posterities, in that they were deprived of all memory-knowledge of what is good and true, and were left to their own filthy loves and persuasions; this being provided lest they should profane the holy things of faith, which is signified by his being “driven out, and cherubim being made to dwell at the garden, with the flame of a sword,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ves” (verse 24).

 

※ 여기 나오는 ‘사람’은 사실은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사람입니다. 사람은 의지(will)와 이해(understanding)가 있어 사람이요, 이 둘이 있어야 주님의 선(good)과 진리(truth), 사랑(love)과 신앙(faith)에 상응할 수 있는데, 이 사람, 곧 이 교회는 이미 이 둘이 사라진,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 ‘그룹’(cherubim, guardian beings)은 이런 사람이 다시 주님 신앙을 기웃거리는 것을 금하시는 주님의 섭리(providence)를 의인화한 것입니다.

 

※ 천적 인간이었던 교회가 거듭남 이전 상태가 되면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이 뭔지도 몰랐던 사람들보다 더 처참한 상태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 그래서 ‘영들의 세계’(사후 모든 사람의 영이 일단 도착하는 곳, 이곳에서 천국 또는 지옥에 갈 준비를 하게 됨) 그 혼잡할 정도로 많은 악한 영들이 거진 다 기독교인들이라는 슬픈 사실에 주목합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차라리 처음부터 기독교를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 그저 순박한 삶, 선한 삶을 살다 죽었더라면 최소한 일층천인 자연적 천국엔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을...

 

 

The Internal Sense

 

286. 이 장과 앞의 장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절들에 이르기까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태고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거듭남에 관한 내용입니다. 먼저, 들짐승처럼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들은 그러나 결국 영적인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다음은, 천적 인간이 된 사람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태고교회를 구성한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그 뒤에, 사라진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 차례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후손들과 이후 홍수 때까지 이른 그들의 계승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This and the preceding chapters, down to the verses now under consideration, treat of the most ancient people and of their regeneration; first, of those who lived like wild animals, but at length became spiritual men; then of those who became celestial men, and constituted the most ancient church; afterwards of those who fell away, and their descendants, in regular order through the first, second, and third posterities and their successors, down to the flood.

 

이 장을 포함, 이어지는 절들을 통해, 태고교회의 사람이 형성된 때부터 홍수 때까지 이 기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개요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것이 앞서 다룬 모든 내용, 곧 창세기 맨 앞 첫 세 장의 결론입니다. In the verses following, which conclude the chapter, we have a recapitulation of what occurred from the period when the man of the most ancient church was formed, until the flood; thus it is a conclusion to all that goes before.

 

※ 창세기 첫 세 장은 말씀 전체를 여는 가장 중요한 관문입니다.

 

https://youtu.be/jACx0K78gMU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3:14-19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And unto the woman he said, I will greatly multiply thy sorrow and thy conception; in sorrow thou shalt bring forth sons, and thine obedience shall be to thy man [vir], and he shall rule over thee.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And unto the man he said, Because thou hast hearkened unto the voice of thy wife, and hast eaten of the tree of which I commanded thee, saying, Thou shalt not eat of it; cursed is the ground for thy sake; in great sorrow shalt thou eat of it all the days of thy life.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And the thorn and the thistle shall it bring forth unto thee, and thou shalt eat the herb of the field.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In the sweat of thy face shalt thou eat bread, till thou return unto the ground; for out of it wast thou taken; for dust thou art, and unto dust shalt thou return.

 

 

THE CONTENTS

 

234. 홍수(the flood)로 이어지는 그 교회의 상태가 여기 기술되고 있으며, 그때 그 교회는 끔찍하게 자기를 파괴하였기 때문에, 주님이 친히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다는 예언이 주어집니다. The subsequent state of the church down to the flood is here described; and as at that time the church utterly destroyed itself, it is foretold that the Lord would come into the world and save the human race.

 

※ ‘홍수’는 노아의 대홍수(大洪水, the Flood)를 말합니다.

 

 

235.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믿기가 좀...’ 하며 내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으로 표현된 감각 파트는 저주를 자초했고, 지옥과 같은 끔찍한 상태(infernal)가 되었습니다. (14절) Being unwilling to believe anything that could not be apprehended by the senses, the sensuous part which is the “serpent”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verse 14).

 

※ ‘내켜 하지 않다’ 점잖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더 이상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은 그들의 감각 능력(their sensory capacity)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사람의 대표적인 감각 다섯 가지를 오감(五感)이라 하며, 각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및 촉각을 말하며, 이 오감으로 파악, 확인할 수 없으면 믿지 않겠다는 태도, 지금 창세기 본문은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236. 이런 이유로, 온 인류가 지옥을 향하여 뛰어드는 걸 막으시기 위해 주님은 친히 세상에 오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15절) Therefore to prevent all mankind from rushing into hell, the Lord promised that he would come into the world (verse 15).

 

※ 뛰어들되 온몸으로(with the whole of its being) 뛰어드는 상황이었습니다.

 

 

237. 교회가 ‘여자’라는 표현으로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는데요, 이 교회는 자아 혹은 본성(the own)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진리를 파악할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비록 어떤 합리(a rational)가 그들에게 주어져 다스리도록 했어도 말입니다. (16절) The church is further described by the “woman,” which so loved self or the own as to be no longer capable of apprehending truth, although a rational was given them that should “rule” (verse 16).

 

※ 여기 ‘여자’는 교회의 더욱 심각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성을 사랑했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독립, 자신들의 자치권(autonomy)을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독립, 벗어나고자 하면 할수록 진리에 대해 어두워지는 이유는, 이런 상태에서는 빛 되신 주님의 입류(入流, influx)가 차단, 더 이상 유입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때 이 교회에게는 이미 이성적 사고 능력(the ability to reason)이 있었음에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이 주신 합리와 이성조차 역기능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38. 그 다음, 이성(합리, the rational)의 퀄리티(quality, 質) 설명입니다. 이성은 동의했고, 그 결과, 저주를 자초하였으며,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로 볼 때, 더 이상 이성은 사라지고 대신 추론(ratiocination)만 남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The quality of the rational is then described, in that it consented, and thus cursed itself, and became infernal, so that reason no longer remained, but ratiocination (verse 17).

 

※ ‘추론’이라 했지만, 사실은 왜곡에 가까운, 삐딱한 사고(skewed logic), 잔머리를 굴림 등과 같은 것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 주신 건강한 이성과 합리를 잃어버리면 남는 것이라고는 이런 류의 얄팍한 것들입니다. 북한, 중공을 비롯, 전 세계 소위 ‘민주’와 ‘인권’을 외치는 좌파들의 행태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239. 저주와 황폐함(vastation), 그리고 그들의 정처 없이 떠돌게(ferine) 된 본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18절) The curse and vastation are described, and also their ferine nature (verse 18).

 

※ 영어 ‘vastation’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대신 ‘ruination’(파괴, 파멸)을 씁니다. ‘ferine’ 또한 ‘animalistic’(짐승 같은)으로 대신 표현합니다. 인간은 주님의 입류를 통해 연결되어 있어야만 제정신일 수 있는데, 주님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여 이 입류가 차단되면 그때부터는 거의 짐승 같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에 빠지는 순간, 총명을 잃는 다음과 같은 장면처럼 말입니다.

 

29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31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34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5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36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37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단4:29-37)

 

 

240. 다음은, 신앙과 사랑에 속한 모든 것을 그들이 아주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였고(aversion), 그래서 사람인 상태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9절) Next, their aversion to everything of faith and love; and that thus from being man they became not men (verse 19).

 

※ 인간을 포함, 모든 피조물은 주님과 항상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어서 존재 및 존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산소호흡기를 떼는 순간, ‘삐’ 소리가 나며, 사망하는 것처럼, 주님을 미워하며, 주님의 인도를 혐오할 정도로 싫어하면, 사람은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살아도 산 게 아니며, 오히려 그 달갑지 않은 지옥을 살아서 미리 사는 참 딱한 처지가 됩니다...

 

 

THE INTERNAL SENSE

 

241. 태곳적 사람들은, 천적 인간들이었는데요,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실제로 두 눈으로 보면서도, 그 사물들이 상징하거나 표현하는 하늘의 것, 주님의 것들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being celestial men, were so constituted that every object they beheld in the world or upon the face of the earth, they indeed saw, but they thought about the heavenly and Divine things the objects signified or represented.

 

※ 이런 걸 ‘상응’(相應, correspondence)이라 하며, 오늘날 현대인들에겐 사라진 이 능력이 그들에겐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시력은 그저 일종의 대행 도구(an instrumental agency)였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중요한 건 그들의 말이었습니다. Their sight was merely an instrumental agency, and so consequently was their speech.

 

※ 눈에 보이는 사물 그 자체보다는 그 사물로 상징되는, 그 사물이 상응하는 천국의 어떤 것을 생각하듯, 귀에 들리는 말 그 자체보다는 그 말이 의미하는, 가리키는 숨은 의미를 깨닫는 걸 말하며, 이런 방식의 언어생활이 태고인들의 일상 스피킹 매너(their manner of speaking)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창세기 본문도 태고인들의 이런 언어 스타일로 기록된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걸 알 수 있는데요, 만일 누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에 깊이 동의가 되면, 그는 실제로 그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말보다는 말에 담긴 취지만 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심지어 그 말의 뜻, 취지보다 보편적인 의미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Anyone may know how this was from his own experience, for if he attends closely to the meaning of a speaker’s words, he does indeed hear the words, but is as if he did not hear them, taking in only the sense; and one who thinks more deeply does not attend even to the sense of the words, but to a more universal sense.

 

※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 사람들과의 대화를 잘 관찰하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 후손들은 그들의 선조들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땅 위 온 세상 모든 사물을 보면서, 그것들을 사랑했고, 마음은 거기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그것들에 관해 생각했고, 그것들을 가지고 천국과 주님께 속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But the posterities that are here treated of were not like their fathers, for when they beheld the objects in the world and on the face of the earth, as they loved them, their minds cleaved to them, and they thought about them, and from them about things heavenly and Divine.

 

※ 눈에 보이는 그 너머의 것을 향해야 할 내적 시야가 눈에 보이는 사물에 갇혀 그만 외적 시야로 전락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천국과 주님에 관한 것을 세속적 관점에서만 출발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감각적인 것이 원리(the principal)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선조들에게는 도구(the instrumental)였던 것들이 말입니다. Thus with them what is sensuous began to be the principal, and not as with their fathers the instrumental.

 

※ 정반대, 주종이 바뀌며, 수단이 원리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속한 것들, 땅에 속한 것들이 원리가 되면, 사람들은 천국에 속한 것들을 이 원리를 가지고 추론(reason)하며, 그래서 그렇게 자신들을 소경으로 만들어갑니다. And when that which is of the world and of the earth becomes the principal, then men reason from this about the things of heaven, and so blind themselves.

 

※ 이런 게 영적 소경입니다. 어떤 것의 내적 의미를 볼 줄 모르는 상태,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 역시, 각자의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서 정작 그 말의 뜻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에서 건지는 게 거의 없고, 더 나아가 보편적인 의미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때로는 사람이 하는 모든 말을 단어 하나 가지고, 심지어 문법적 특이점 하나를 가지고 일일이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How this is may also be known by anyone from his own experience; for he who attends to the words of a speaker, and not to the sense of the words, takes in but little of the sense, and still less of the universal import of the sense, and sometimes judges of all that a man says from a single word, or even from a grammatical peculiarity.

 

※ 디.엘. 무디(1837-1899)의 설교를 듣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회개의 몸부림을 치며 주님을 향해 돌이키는 중에, 어느 문법학자는 고작 한다는 말이, “당신은 방금 설교에서 스물세 번이나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을 사용했소.” 했다는 것과 유사합니다. 무디가 초등교육 밖에 받지 않은 것을 은근 조롱하면서 말이지요...

 

https://youtu.be/kcCl29ZOHk8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8-25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And Jehovah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I will make him a help as with him.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And Jehovah God formed out of the ground every beast of the field, and every fowl of the heavens, and brought it to the man to see what he would call it; and whatsoever the man called every living soul, that was the name thereof. 20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And the man gave names to every beast, and to the fowl of the heavens, and to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but for the man there was not found a help as with him.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And Jehovah God caused a deep sleep to fall upon the man, and he slept; and he took one of his ribs, and closed up the flesh in the place thereof.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And the rib which Jehovah God had taken from the man, he built into a woman, and brought her to the man. 23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And the man said, This now is bone of my bones, and flesh of my flesh; therefore she shall be called wife, because she was taken out of man [vir].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Therefore shall a man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shall cleave unto his wife, and they shall be one flesh. 25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And they were both naked, the man and his wife, and were not ashamed.

 

 

내용

The Contents

 

131. 여기서부터는 태고교회의 후손, 후대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본성(本性, own, 라 proprium)을 향해 기울어진 사람들입니다.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nclined to their own,3 is here treated of.

 

※ 여기 ‘자신들의 본성을 향해 기울어진’의 의미는, 자치(自治, autonomy)를 얻고자 분투했다(strive for autonomy)는 뜻으로, 주님에게서 벗어나 독립하고자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웠다는 것입니다. 아이고... 분투할 게 따로 있지!

 

※ 아주 중요한 주석 #3.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은 여기 이 본문과 다른 여러 곳에서 ‘오운’(own)이라는 표현으로 번역되어온, 원전(the original text)에 사용된 용어입니다. Critical Notes 3. The Latin word proprium is the term used in the original text that in this and other places has been rendered by the expression “own.

 

프로프리움의 사전적 의미는, 형용사로서, ‘아무개의 것, 소유’(one’s own), ‘적절한’(proper), ‘아무개 자신에게만 속한’(belonging to one’s self alone), ‘특별한’(special), ‘특정한’(particular), ‘특유한’(peculiar) 등입니다. The dictionary meaning of propius, as an adjective, is “one’s own,” “proper,” “belonging to one’s self alone,” “special,” “particular,” “peculiar.

 

이 프로프리움이라는 말이 중성(neuter) 명사로 사용되었을 때의 의미는, ‘소유’(possession), ‘재산’(property), 또 ‘어떤 특이점’(a peculiarity), ‘특징점’(characteristic mark), ‘구별점’(distinguishing sign), ‘특징’(characteristic) 등입니다. The neuter of this which is the word proprium, when used as a noun means “possession,” “property”; also “a peculiarity,” “characteristic mark,” “distinguishing sign,” “characteristic.”

 

영어 형용사 ‘오운’(own)을 웹스터에서 보면 그 의미를 ‘...에 속한’(belonging to), ‘...에 독점적으로 혹은 특별하게 속한’(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특유한’(peculiar) 등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운’이야말로 ‘프로프리우스’(proprius, 형, 고유한)에 딱 맞는 번역이지 싶고요, 라틴어 ‘프로프리움’(proprium)에 맞는 말을 찾기 위해, 이 ‘오운’을 명사로 쓰면, 그거야말로 정말 가장 근접한 최상의 번역이 아닐까 합니다. [편집자역] The English adjective “own” is defined by Webster to mean “belonging to,” “belonging exclusively or especially to,” “peculiar”; so that our word “own” is a very exact equivalent of proprius, and if we make it a noun in order to answer to the Latin proprium, we effect a very close translation. [Reviser]

 

 

132. 인간은 주님의 인도로는 만족하지 않고, 대신 자신과 세상, 혹은 자신의 본성으로 인도받기를 원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여기서는 그런 인간에게 환영받는 인간 자신의 본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18절) Since man is such as not to be content to be led by the Lord, but desires to be led also by himself and the world, or by his own, therefore the own which was granted him is here treated of (verse 18).

 

※ 즉, 이 절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며, 인류에게 생겨난 자율성(自律性), 곧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대신 자신이 세운 원칙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경향을 다루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33. 그래서 먼저 그로 하여금 알게 하시려고, 그에게 선에 관한 애정들과 진리에 관한 지식들이 주어지는데, 이것들은 주님이 그에게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19-20절) And first it is given him to know the affections of good and the knowledges of truth with which he is endowed by the Lord; but still he inclines to his own (verses 19–20).

 

※ 선과 진리 및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주님의 신성, 곧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인간에게 주님 자신을 주시지만, 그러나 인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를 향해 고개를 돌립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본성이며, 심지어 천국 천사들마저 그래서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만큼 천사다’ 할 정도입니다. 자기 본성을 향해 기운다는 것은,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성향, 자치, 자율 성향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134. 이런 이유로, 인간은 자기 본성에 속한 어떤 상태 안으로 들어가고(let into), 다른 본성(an own)이 그에게 주어지는데, 이것이 여자(a woman)로 빚어진 갈빗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21-23절) Wherefore he is let into a state of his own, and an own is given him, which is described by the rib built into a woman (verses 21 to 23).

 

※ 즉, 일종의 자치 상태(a state of self-governance)로 옮겨지고, 어떤 자율성(a sense of autonomy)이 주어지는데, 이걸 여자로 빚어진 갈빗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135. 천적, 영적 생명과 인간의 본성(the man’s own)은 서로 인접, 아주 밀접하게 붙어 있습니다. 마치 하나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24절) Celestial and spiritual life are adjoined to the man’s own, so that they appear as a one (verse 24).

 

※ ‘인간의 본성’은 독립성(獨立性, the sense of independence)을 말합니다.

 

 

136.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이노센스(innocence, 純眞)가 이 본성 안으로 스며듭니다.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25절) And innocence from the Lord is instilled into this own, so that it still might not be unacceptable (verse 25).

 

※ 무례한 존재, 불쾌한 존재가 되지 않도록 하신다는 뜻으로, 인간이 그 본성상, 독립하고자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주님 앞에 무례하고 불쾌한 존재가 되는 것은 막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시고, 끝까지 살피시며, 배려하십니다.

 

 

속뜻

The Internal Sense

 

 

137. 창세기의 첫 세 장은 대체로 태고교회(太古敎會, the most ancient church)를 다루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첫 시기부터 끝에 가서 사라지게 될 때까지, 이 교회를 가리켜 ‘사람’(man, homo, 천적 인간)이라고 했는데요, 이 장의 전반부에서는 이 태고교회가 가장 융성했던 상태, 곧 천적 인간이었던 상태를 다루었다면, 이제 여기 후반부에서는 자신의 본성으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그들의 후손을 다루고 있습니다. The first three chapters of Genesis treat in general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is called “man” [homo] from its first period to its last, when it perished; the preceding part of this chapter treats of its most flourishing state, when it was a celestial man; here it now treats of those who inclined to their own, and of their posterity.

 

※ 자기 사랑, 곧 주님에게서 독립하고자 하는 태도가 모든 악과 거짓,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https://youtu.be/gSH2dMR1pa4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26.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Verse 17. Bu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scientia] of good and evil, thou shalt not eat of it; for in the day that thou eatest thereof, dying thou shalt die.

 

지금까지 설명된 내용과 함께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곧, 주님으로 말미암은 모든 퍼셉션(perception)으로 진리와 선에 익숙해져 가는 것은 괜찮지만, 자아와 세상으로는 안 된다는 것, 즉, 우리가 신앙의 신비(the mysteries of faith)를 감각과 지식에 관한(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것으로 탐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랬다가는 신앙의 천적인 것(the celestial of faith)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These words, taken together with those just explained, signify that it is allowable to become acquainted with what is true and good by means of every perception derived from the Lord, but not from self and the world; that is, we are not to inquire into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per sensualia et scientifica], for in this case the celestial of faith is destroyed.

 

 

127. 신앙의 신비를 감각과 지식에 관한 것을 가지고 조사하고자 함, 이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 다루고 있는, 태고교회 후손의 몰락의 원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모든 교회가 몰락하는 원인입니다. 여기서 거짓들뿐 아니라 삶의 악들 또한 나오기 때문입니다. A desire to investigate the mysteries of faith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and of the memory was not only the cause of the fall of the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as treated of in the following chapter, but it is also the cause of the fall of every church; for hence come not only falsities, but also evils of life.

 

※ 목회의 성공을 교인 수와 헌금 수입으로 가늠하고자 하는 일련의 세속적 태도는 뭐 말할 것도 없고, 말씀 풀이를 비록 ‘창조’라는 표현을 덧댔지만 어쨌든 ‘과학’으로 풀려는 시도 및 원어 연구를 통해 접근하려는 일련의 노력 등도 사실은 안전하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계시보다는 감각과 세상 지식을 더 의존하려는 경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128. 세속적이고 육적(肉的)인(worldly and corporeal) 사람은 속으로 말하길, ‘만일 내가 신앙과 신앙 관련 모든 것에 관해, 감각적인 것(the things of sense)을 가지고, 그래서 내가 눈으로 볼 수 없거나, 그리고 지식적인 것(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을 가지고,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으면, 나는 안 믿을 거야.’라고 말이지요. 이런 사람은 자연적인 것들과 영적인 것들이 서로 반대될 리 없다는 생각으로 더욱 굳어집니다(confirms himself).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says in his heart, If I am not instructed concerning the faith, and everything relating to it, by means of the things of sense, so that I may see, or by means of those of the memory [scientifica], so that I may understand, I will not believe; and he confirms himself in this by the consideration that natural things cannot be contrary to spiritual.

 

※ 사실, 이런 태도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태도 중 하나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은 오직 1단계, 즉, 자연적인 단계만 열렸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건 ‘열렸다’ 하기도 좀... ) 영적, 천적인 선택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려면, 2단계, 3단계가 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사람은 천적이며 신적인(celestial and Divine, 天的, 神的) 것을 감각적인 걸 가지고 접근하고자 아주 간절해지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이런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겠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더 지혜로워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는 사실은 자신을 더욱더 소경이 되게 할 뿐이며, 그는 결국에는 아무것도, 심지어 영적인 어떤 것이 존재한다, 혹은 영생의 존재까지도 믿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Thus he is desirous of being instructed from things of sense in what is celestial and Divine, which is as impossible as it is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for the more he desires to grow wise by such means, the more he blinds himself, till at length he believes nothing, not even that there is anything spiritual, or that there is eternal life.

 

이런 건 처음에 그가 가정했던 원리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This comes from the principle which he assumes.

 

이런 것이 바로 ‘선악 관련 지식의 나무를 먹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먹으면 먹을수록, 먹는 그는 죽게 됩니다. And this is to “eat of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of which the more anyone eats, the more dead he becomes.

 

그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그리고 세상으로는 아닌 사람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곧 말씀(the Word)에서 주님이 말씀하신(has spoken) 것들은 진리이므로 반드시 믿어야 해.’ 그리고 이걸 원리 삼아 그는 자기의 생각을 조정합니다(regulates). But he who would be wise from the Lord, and not from the world, says in his heart that the Lord must be believed, that is, the things which the Lord has spoken in the Word, because they are truths; and according to this principle he regulates his thoughts.

 

그는 이성(reason, 합리), 지식, 감각, 그리고 본능에 관한 것을 가지고 점점 더 확신 가운데 거하며, 확신을 주지 못하는 것들을 그는 버립니다(casts aside). He confirms himself by things of reason, of knowledge, of the senses, and of nature [per rationalia, scientifica, sensualia et naturalia], and those which are not confirmatory he casts aside.

 

 

129. 사람들은 다 아는 건데요, 인간은 자기가 가정한 원리들(the principles he assumes)에 의해 다스려지며, 자기의 모든 지식과 이성(reasoning)은 이 원리들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걸 말입니다. 어쩌면 이 원리들 자체가 몹시도 거짓된 것일 수 있는데도 말이죠. 인간이 이토록 어처구니없을 수 있는 이유는, 이 원리들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무수한 생각들(considerations)이 그의 마음에 계속되면서 그는 드디어 거짓된 것(what is false) 안에서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Everyone may know that man is governed by the principles he assumes, be they ever so false, and that all his knowledge and reasoning favor his principles; for innumerable considerations tending to support them present themselves to his mind, and thus he is confirmed in what is false.

 

※ 분명히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하셨고, 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하셨으며, 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6:63) 등등 정말 많은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먹고 사는 것이다!’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런 거짓된 가정을 자신의 중심 원리로 세운 사람은 다른 모든 권면이 다 쇠귀에 경 읽기가 되고 맙니다.

 

이런 이유로, ‘두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걸 하나의 중심 원리로 정한 사람은 결코 믿음이라는 것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영적, 천적인 것들은 결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무슨 마음속으로 상상, 그려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He therefore who assumes as a principle that nothing is to be believed until it is seen and understood, can never believe, because spiritual and celestial things cannot be seen with the eyes, or conceived by the imagination.

 

반면, 참된 질서, 올바른 순서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즉 말씀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후 모든 것이 뒤를 따르며, 이 사람은 눈이 밝아지는데 심지어 이성(reason) 및 그동안 습득한 지식(memory-knowledge)의 일들에서도 그렇게 됩니다. But the true order is for man to be wise from the Lord, that is, from his Word, and then all things follow, and he is enlightened even in matters of reason and of memory-knowledge [in rationalibus et scientificis].

 

※ 즉, 그동안 역기능을 하며, 잘못된 쓰임새로 쓰임 받던 이성과 지식이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사람이 세상이 아닌,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혜로워지기를 선택하면 더욱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성적 사고를 하게 되며, 그동안 학습하여 습득한 세상 지식 역시 그 쓰임새가 180도 달라져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위해 쓰임 받게 됩니다.

 

이것은 과학을 배우는 것 금지가 결코 아닙니다. 과학은 인간의 삶에 유익하며, 아주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이 신앙 안에 있다고 해서 세상 학자들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 금지도 아닙니다. 대신 다음의 원리, 곧 ‘주님 말씀을 믿음’이라는 원리로 해야 하는데요, 그래서 가능한 한, 자연적 진리들을 가지고 영적, 천적 진리들을 확증하되 학자들에게 친숙한 그런 용어들을 써서 해야 합니다. For it is by no means forbidden to learn the sciences, since they are useful to his life and delightful; nor is he who is in faith prohibited from thinking and speaking as do the learned of the world; but it must be from this principle—to believe the Word of the Lord, and, so far as possible, confirm spiritual and celestial truths by natural truths, in terms familiar to the learned world.

 

※ 주님은 세상에 계실 때, 바리새 및 사두개 등 당시 종교 엘리트들의 지독한 지적, 교리적 논쟁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셨습니다.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매번 그들로 하여금 유구무언(有口無言,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음) 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습니다. 주님의 지혜, 천국 지혜는 다른 차원의 지혜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요셉도, 다니엘도 왕들과 나라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주님 편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오히려 어깨를 펴고 당당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그의 모든 출발점은 주님이셔야 합니다.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고요. 전자는 생명이지만, 후자는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Thus his starting point must be the Lord, and not himself; for the former is life, but the latter is death.

 

 

130. 세상으로 지혜로워지기를 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동산’을 위해 감각 및 지식과 관련된 것들을 추구합니다.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이 그에게는 ‘에덴’이며, 그에게 있어서 ‘동쪽’은 서쪽, 혹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의 ‘유브라데 강’은 그가 가진 모든 세상 지식인데, 이것은 비난을 받게 되며, 그의 ‘두 번째 강’, 거기가 ‘앗수르’인데, 거짓을 지어내느라 정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의 ‘세 번째 강’, 거기는 ‘에디오피아’인데, 이것은 여기서 나오는 악과 거짓의 원리들로서, 그가 가진 신앙 관련 지식입니다. 그의 ‘네 번째 강’은 거기서 나오는 지혜인데, 말씀에서는 이걸 ‘마술’이라 부릅니다. He who desires to be wise from the world has for his “garden” the things of sense and of memory-knowledge [sensualia et scientifica]; the love of self and the love of the world are his “Eden”; his “east” is the west, or himself; his “river Euphrates” is all his memory-knowledge, which is condemned; his “second river,” where is “Assyria” is infatuated reasoning productive of falsities; his “third river,” where is “Ethiopia” is the principles of evil and falsity thence derived, which are the knowledges of his faith; his “fourth river” is the wisdom thence derived, which in the Word is called “magic.”

 

그래서 ‘애굽’은, 이것은 기억-지식을 상징하며, 이 지식이 나중에 마술이 되었지요. 애굽은 이런 사람을 상징하는데, 말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사람은 자아(self)로 지혜로워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And therefore “Egypt”—which signifies memory-knowledge—after the knowledge became magical, signifies such a man, because, as may be seen from the Word, he desires to be wise from self.

 

이와 관련, 에스겔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Of such it is written in Ezekiel:

 

3너는 말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애굽의 바로 왕이여 내가 너를 대적하노라 너는 자기의 강들 가운데에 누운 큰 악어라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나를 위하여 만들었다 하는도다 9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 (겔29:3, 9) Thus hath said the Lord Jehovih, Behold, I am against thee, Pharaoh king of Egypt, the great whale that lieth in the midst of his rivers, who hath said, My river is mine own, and I have made it for myself. And the land of Egypt shall be for a solitude, and a waste, and they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because he hath said, The river is mine, and I have made it. (Ezek. 29:3, 9)

 

이 선지자는 또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지하에 있는 에덴의 나무들’ 이라 하는데, 같은 선지서에서 바로(Pharaoh), 혹은 애굽인이 다음과 같은 말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Such men are also called “trees of Eden in hell,” in the same prophet, where also Pharaoh, or the Egyptian, is treated of in these words:

 

16내가 그를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스올에 떨어뜨리던 때에 백성들이 그 떨어지는 소리로 말미암아 진동하게 하였고 물을 마시는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 18너의 영광과 위대함이 에덴의 나무들 중에서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의 나무들과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에서 할례를 받지 못하고 칼에 죽임을 당한 자 가운데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겔31:16, 18) When I shall have made him descend into hell with them that descend into the pit; to whom art thou thus made like in glory and in greatness among the trees of Eden? yet shalt thou be made to descend with the trees of Eden into the lower earth, in the midst of the uncircumcised, with them that be slain by the sword. This is Pharaoh and all his crew, (Ezek. 31:16, 18)

 

여기 ‘에덴의 나무들’은 말씀으로 말미암는 지식을 가리키는데, 이 지식을 저들은 이성으로 모독하는(profane by reasonings) 것입니다. where the “trees of Eden” denote knowledges [scientifica et cognitiones] from the Word, which they thus profane by reasonings.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7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속뜻)

주님의 신비는 오직 퍼셉션으로만 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적인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D3UJ9RxLdko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25. 16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Verse 16. And Jehovah God commanded the man, saying, Of every tree of the garden, eating thou mayest eat.

 

각종 나무를 먹는 것’, 퍼셉션(perception, 知覺)으로 선한 것과 참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앞서 관찰한 것처럼(AC.103), ‘나무’는 퍼셉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To “eat of every tree” is to know from perception what is good and true; for, as before observed, a “tree” signifies perception.

 

태고교회 사람들은 참된 신앙에 관한 지식을 계시(啓示, revelations)로 얻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대화하였고, 천사들하고도 그랬으며, 또한 비전과 꿈으로(by visions and dreams) 인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그들에게 정말 기쁘고 행복한 천상 낙원의 경험과 같은(most delightful and paradisal) 것들이었습니다. The me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ad the knowledges of true faith by means of revelations, for they conversed with the Lord and with angels, and were also instructed by visions and dreams, which were most delightful and paradisal to them.

 

※ 계시,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함’이며, 묵시(默示)라고도 합니다. 주님에 관한 것을 세상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니라, 주님의 것, 곧 퍼셉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에게서 퍼셉션을 지속적으로 받았고, 그래서 고이 간직하고 있던 어떤 기억이 떠오를 때면, 그들은 그 기억이 참되고 선한지를 즉각적으로 지각했으며, 만일 그 가운데 어떤 거짓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들은 그것을 피할 뿐 아니라 몸서리를 쳤습니다. 이런 게 또한 천사의 상태이기도 합니다. They had from the Lord continual perception, so that when they reflected on what was treasured up in the memory they instantly perceived whether it was true and good, insomuch that when anything false presented itself, they not only avoided it but even regarded it with horror: such also is the state of the angels.

 

※ 퍼셉션에 관한 이전 글들(AC.104)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태고교회의 이런 퍼셉션이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는 참되고 선한 것에 관한 지식(knowledge [cognitio])으로 대체되어 계승되었는데, 이 지식은 앞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 나중에 말씀에 계시된 것에서 나온 것입니다. In place of this perception of the most ancient church, however, there afterwards succeeded the knowledge [cognitio] of what is true and good from what had been previously revealed, and afterwards from what was revealed in the Word.

 

※ 쉽게 말씀드리면, 퍼셉션으로 직접 접하던 것을, 문자와 언어, 기록된 말씀으로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어려워졌고, 더 미개해진 것인데, 이것은 그만큼 우리가 더 어두워지고, 더 감각의 사람, 겉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6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속뜻)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퍼셉션을 늘 공급하셔서 그로 하여금 이 퍼셉션으로 주님, 곧 주님의 신성인 선과 진리를 알게, 직관하게 하셨습니다.

 

 

※ 우리말 번역은 원문에도 없는 ‘열매’를 추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라 함으로써 아케이나가 더욱 흐릿하게, 안 보이게 하는 아주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말씀을 속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18B1v-90wK0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22.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Verse 15. And Jehovah God took the man, and put him in the garden of Eden,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에덴동산’, 이미 설명한 대로, 천적 인간의 모든 것을,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그가 그 모든 것을 누리게는 하셨으나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것은 금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임을 각각 상징합니다. By the “garden of Eden” are signified all things of the celestial man, as described; by to “till it and take care of it” is signified that it is permitted him to enjoy all these things, but not to possess them as his own, because they are the Lord’s.

 

※ 여기 ‘그 모든 것’(all things, all these things)이란 천적 인간이 주님에게 받은 모든 것, 곧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주신 모든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퍼셉션을 비롯,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종류의 강으로 표현된 천적 지성의 모든 것, 곧 지혜와 지성, 합리와 지식을 말합니다. 주님의 나라는 내적(內的, internal) 나라라 모든 가치가 내적이기 때문이며, 만일 그가 아직 생전(生前, 살아있는 동안, 죽기 전)이라면 주님의 복이 자연계의 형태로 표현된, 기타 삶 가운데 필요한 모든 형통과 부요, 영육 간 강건 등은 당연한 것이지요. 천사의 반열에 이른 것입니다.

 

 

123. 천적 인간은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그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가 그것을 지각하기(perceive) 때문입니다. The celestial man acknowledges, because he perceives, that all things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are the Lord’s.

 

영적 인간 역시 그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입으로만 합니다. 영적 인간은 말씀에서 배운 것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The spiritual man does indeed acknowledge the same, but with the mouth, because he has learned it from the Word.

 

※ 군대도 안 갔다 온 사람이 군대 다녀온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가지고는 마치 자기가 군대 다녀온 양 군대는 이렇다 저렇다 몇 시간씩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 방언이나 신유(神癒, 병 고침), 기적 등 어떤 신령한 은사를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상적이지만 않을 뿐 결국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 믿겠다 하는 입장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살아있는 동안은 그런 걸 안 구할 수는 없겠으나,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님을 사랑하여 그 증거를 구하는 정도로 그쳐야지, 자칫 그 열심이 지나쳐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되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내면의 나라, 내적 가치의 나라, 속 사람의 나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속적이고 육적(肉的, corporeal)인 인간은 그 사실을 인정(acknowledge)도, 마지못한 시인(admit)도 안 합니다. 자기가 가진 건 뭐든지 ‘이건 내 꺼야’라 하며, 만일 그걸 잃게 되면, 자기는 완전 죽을(perish) 것처럼 생각합니다. The worldly and corporeal man neither acknowledges nor admits it; but whatever he has he calls his own, and imagines that were he to lose it, he would altogether perish.

 

※ 겉의 것으로만 사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문제는 기독교인, 개신교인 안에 이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하신 주님 말씀에도 불구, ‘예수 믿어 천당도 가고, 이왕이면 이 세상 살 때, 부자로도 살면 꿩 먹고 알 먹고 좋지 않느냐? 너는 부자로 사는 게 싫으냐?’ 하는 기독교인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곧,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부는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것, 곧 오늘 말씀처럼 ‘누리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림’과 ‘소유’를 정말 잘 구분해야 합니다.

 

 

124. 지혜, 지성, 합리(reason, 理性), 그리고 지식은 사람의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자신을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농부들에게 세로 준’ 집주인으로 비유하십니다. That wisdom, intelligence, reason, and knowledge [scientia] are not of man, but of the Lord, is very evident from all that the Lord taught; as in Matthew, where the Lord compares himself to a householder who planted a vineyard, and hedged it round, and let it out to husbandmen (21: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마21:33)

 

요한복음입니다. and in John: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16:13-14) The Spirit of truth shall guide you into all truth; for he shall not speak of himself, but what things soever he shall hear, he shall speak; he shall glorify me, for he shall receive of mine, and shall declare it unto you. (John 16:13–14)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요3:27) A man can receive nothing except it be given him from heaven. (John 3:27)

 

이것이 정말 그렇다는 것은 천국 아케이나에 관하여 아주 조금만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 That this is really so is known to everyone who is acquainted with even a few of the arcana of heaven.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5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주신 모든 것은 소유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천적 인간은 누림의 사람입니다.

 

https://youtu.be/Qr-wZm9cVZA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18. 14절,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Verse 14. And the name of the third river is Hiddekel; that is it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and the fourth river it is Phrath.

 

‘힛데겔 강’은 사유(思惟, reason), 혹은 사유의 명석함(clearsightedness)입니다. The “river Hiddekel” is reason, or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 영어 reason의 사전적 의미는 이유, 까닭, 사유(思惟), 근거, 이성, 사고력, 제정신, 사리(事理) 등입니다.

 

‘앗수르’는 합리적인 마인드(the rational mind)입니다. ‘앗수르 동쪽으로 흐르는 강’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통해 합리적인 마인드로 흐르는 사유의 명석함을 상징합니다. 이 마인드는 겉 사람에게 속합니다. “Asshur” is the rational mind; the “river which goeth eastward toward Asshur” signifies that the clearsightedness of reason comes from the Lord through the internal man into the rational mind, which is of the external man;

 

※ 영어 rational의 사전적 의미는 합리적인, 이성적인 입니다.

 

‘프라’, 혹은 ‘유브라데’는 기억-지식인데, 종단(終端, the ultimate), 바운더리(boundary)를 말합니다. “Phrath,” or Euphrates, is memory-knowledge, which is the ultimate or boundary.

 

 

 

119. ‘앗수르’가 합리적인 마인드, 혹은 인간의 합리적인 면을 상징하는 것은 선지서들, 가령, 에스겔을 보면 아주 분명합니다. That “Asshur” signifies the rational mind, or the rational of man, is very evident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3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겔31:3-4) Behold, Asshur was a cedar in Lebanon, with fair branches and a shady grove, and lofty in height; and her offshoot was among the thick boughs. The waters made her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Ezek. 31:3–4)

 

합리적인 사람을 ‘레바논 백향목’이라 합니다.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굵은 가지들 중에 있는 分枝’)은 기억에 속한 지식들을 상징하는데, 바로 이 언약(plight)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The rational is called a “cedar in Lebanon”; the “offshoot among the thick boughs,” signifies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which are in this very plight.

 

이것은 이사야에서 여전히 더 분명합니다. This is still clearer in Isaiah: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19:23-25) In that day shall there be a path from Egypt to Asshur, and Asshur shall come into Egypt, and Egypt into Asshur, and the Egyptians shall serve Asshur. In that day shall Israel be the third with Egypt and with Asshur, a blessing in the midst of the land, that Jehovah Zebaoth shall bless, saying, Blessed be Egypt my people, and Asshur the work of my hands, and Israel mine inheritance. (Isa. 19:23–25)

 

이 구절과 다른 여러 구절에서, ‘애굽’은 기억-지식(memory-knowledges)을, ‘앗수르’는 합리(reason)를, ‘이스라엘’은 지성(intelligence)을 각각 상징합니다. By “Egypt” in this and various other passages is signified memory-knowledges, by “Asshur” reason, and by “Israel” intelligence.

 

 

120. ‘애굽’은, 또 ‘유브라데’ 역시, 기억-지식들 및 또한 감각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이 감각적인 것들에서 이런 지식들이 나옵니다. As by “Egypt,” so also by “Euphrates,” are signified memory-knowledges, and also the sensuous things from which these knowledges come.

 

이런 사실은 말씀 가운데 가령, 미가 같은 선지서를 보면 분명합니다. This is evident from the Word in the prophets, as in Micah: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7:10-12) My she-enemy hath said, Where is Jehovah thy God? The day in which he shall build thy walls [macerias], that day shall the decree be far removed; that day also he shall come even to thee from Asshur, and to the cities of Egypt, and to the river [Euphrates]. (Micah 7:10–12)

 

그렇게 선지자들은 주님의 오심(the coming of the Lord)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사 천적 인간처럼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So did the prophets speak concerning the coming of the Lord who should regenerate man so that he might become like the celestial man.

 

예레미야입니다. In Jeremiah: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렘2:18)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Egypt, to drink the waters of Sihor? Or what hast thou to do in the way of Asshur, to drink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Jer. 2:18)

 

여기 ‘애굽’과 ‘유브라데’는 같이 기억-지식을, ‘앗수르’는 거기서 나오는 합리적인 것을 상징합니다. where “Egypt” and “Euphrates” likewise signify memory-knowledges, and “Asshur” reasonings thence derived.

 

시편입니다. In David: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80:8, 11) Thou hast made a vine to go forth out of Egypt; Thou hast cast out the nations; Thou hast planted her; Thou hast sent out her shoots even to the sea, and her twigs to the river (Euphrates), (Ps. 80:8, 11)

 

여기 ‘유브라데 강’은 감각적인 것(what is sensuous)과 기억에 속한 것(what is of the memory)을 상징합니다. where also the “river Euphrates” signifies what is sensuous and of the memory [sensuali et scientifico].

 

기억에 속한 지식이 영적, 천적 인간의 지성과 지혜의 경계이듯, 유브라데가 앗수르를 향한 이스라엘 영토의 경계였기 때문입니다. For the Euphrates was the boundary of the dominions of Israel toward Assyria, as the knowledge of the memory is the boundary of the intelligence and wisdom of the spiritual and celestial man.

 

아브라함이 들은 말씀 또한 같은 걸 상징합니다. The same is signified by what was said to Abraham: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15:18) Unto thy seed will I give this land, from the river of Egypt unto the great river, the river Euphrates. (Gen. 15:18)

 

위 두 경계는 같은 걸 상징합니다. These two boundaries have a like signification.

 

 

121. 천적 질서의 본성, 혹은 생명에 관한 것들의 진행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이들 강들, 곧 ‘동’(東, East)이신 주님에게서 시작, 주님에게서 지혜(wisdom)가 나오고(proceed), 지혜를 통해서(through) 지성(intelligence)이, 지성을 통해서 합리(reason)가, 그리고 그렇게 합리를 통해서(by means of) 기억에 속한 지식들(the knowledges of the memory)이 생기를 얻는 그런 순서로 진행합니다. The nature of celestial order, or how the things of life proceed, is evident from these rivers, namely, from the Lord, who is the “East,” and that from him proceeds wisdom, through wisdom intelligence, through intelligence reason, and so by means of reason the knowledges of the memory are vivified.

 

이것이 생명의 순서이며, 이런 사람들이 천적 인간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천적 인간들을 표현하였고, 그래서 그들을 일컬어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받는 자들’(신1:13, 15)이라 한 것입니다. This is the order of life, and such are celestial men; and therefore, since the elders of Israel represented celestial men, they were called “wise, intelligent, and knowing” (Deut. 1:13, 15).

 

13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인정 받는 자들을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수령을 삼으리라 한즉 15내가 너희 지파의 수령으로 지혜가 있고 인정 받는 자들을 취하여 너희의 수령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조장을 삼고 (신1:13, 15)

 

그래서 법궤를 짠 브살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Hence it is said of Bezaleel, who constructed the ark, that he was: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출31:3)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35:31)

 

1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2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부터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출36:1-2) Filled with the spirit of God, in wisdom, in understanding, and in knowledge [scientia], and in all work. (Exod. 31:3; 35:31; 36:1–2)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4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세 번째, 네 번째 특징은, 각각 합리와 이성의 명석함 및 감각을 통해 수집하는 지식입니다.

 

 

※ 주님으로 말미암는 질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주님에게서 지혜가, 이 지혜를 통해 지성이, 지성을 통해 합리가, 끝으로 이 합리를 통해 지식이 생명을 얻는 순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몸을 입고 습득 및 학습하는, 즉, 감각을 통해 오는 모든 세상, 세속 지식들은 이처럼 주님으로 말미암은 질서에 편입되어야 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생명의 세례를 받아야 비록 그 출발이 세상, 세속이었어도 주님을 위해 쓰임 받는 산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https://youtu.be/2rcgFU8vksE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16. 13절,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Verse 13. And the name of the second river is Gihon; the same is it that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Cush.

 

기혼’이라 하는 ‘두 번째 강’은 선과 진리, 혹은 사랑과 신앙에 속한 모든 지식(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을, ‘구스 땅’은 마음(the mind) 혹은 역량(faculty)을 각각 상징합니다. The “second river,” which is called “Gihon,” signifies the knowledge [cognitio] of all things that belong to the good and the true, or to love and faith, and the “land of Cush” signifies the mind or faculty.

 

마음은 의지와 이해(the understanding)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강에 관해 말한 것이 의지에 관한 것이라면, 이 두 번째 강에 관한 것은 이해에 관한 것인데, 선과 진리의 지식(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에 속한 것이 바로 이 이해입니다. The mind is constituted of the will and the understanding; and what is said of the first river has reference to the will, and what of this one to the understanding to which belong the knowledges [cognitiones] of good and of truth.

 

 

117. 게다가 ‘구스 땅’ 혹은 이디오피아는 금, 보석, 그리고 향신료들로 풍부했습니다. 이들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선, 진리,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것들을 상징하는데, 사랑과 신앙의 지식에서 나오는 것들처럼 참 고맙고 감사한(grateful) 것입니다. The “land of Cush,” or Ethiopia, moreover, abounded in gold, precious stones, and spices, which, as before said, signify good, truth, and the things thence derived which are grateful, such as are those of the knowledges of love and faith.

 

이런 사실은 위 113번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인 사60:6, 마2:1, 11, 시72:15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This is evident from the passages above cited (n. 113) from Isa. 60:6; Matt. 2:1, 11; Ps. 72:15.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말씀에서, ‘구스’ 또는 ‘이디오피아’, 그리고 ‘시바’ 또한 유사한 것을 의미함은 선지서들, 가령 스바냐에서, ‘구스의 강들’이 언급되는 데를 보면 분명합니다. That similar things are meant in the Word by “Cush” or “Ethiopia,” and also by “Sheba,” is evident from the prophets, as in Zephaniah, where also the “rivers of Cush” are mentioned:

 

5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9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습3:5, 9-10) In the morning he will give his judgment for light; for then will I turn to the people with a clear language, that they may all call upon the name of Jehovah, to serve him with one shoulder; from the passage of the rivers of Cush my suppliants shall bring mine offering. (Zeph. 3:5, 9–10)

 

다니엘에서도 북방 왕과 남방 왕에 관해 말하면서 And in Daniel, speaking of the king of the north and of the south:

 

그가 권세로 애굽의 금은과 모든 보물을 차지할 것이요 리비아 사람과 구스 사람이 그의 시종이 되리라 (단11:43) He shall have power over the treasures of gold and of silver, and over all the desirable things of Egypt; and the Lybians and the Ethiopians shall be under his steps, (Dan. 11:43)

 

하였는데, 여기서 ‘애굽’은 기억-지식을, ‘구스 사람’은 지식을 각각 가리킵니다. where “Egypt” denotes memory-knowledges, and the “Ethiopians” knowledges.

 

[2] 에스겔에서도 그렇습니다. So in Ezekiel:

 

스바와 라아마의 상인들도 너의 상인들이 됨이여 각종 극상품 향 재료와 각종 보석과 황금으로 네 물품을 바꾸어 갔도다 (겔27:22) The merchants of Sheba and Raamah, these were thy merchants, in the chief of all spices, and in every precious stone, and in gold, (Ezek. 27:22)

 

상인들 역시 같은 식으로, 신앙 관련 지식을 상징합니다. by whom in like manner are signified knowledges [cognitiones] of faith.

 

시편에서도 그런데요, 주님에 관하여, 결과적으로는 천적 인간에 관하여 말하면서, So in David, speaking of the Lord, consequently of the celestial man:

 

7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10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조공을 바치며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 (시72:7, 10) In his days shall the righteous flourish, and abundance of peace until there shall be no moon; the kings of Tarshish and of the isles shall bring presents; the kings of Sheba and Seba shall offer a gift. (Ps. 72:7, 10)

 

이 말씀들은, 그 앞뒤 이어지는 연결 구절들을 보면 명백한 것처럼, 신앙에 속한 천적인 것들을 상징합니다. These words, as is plain from their connection with the preceding and subsequent verses, signify celestial things of faith.

 

스바의 여왕에 의해서도 유사한 것들이 상징되었는데요, 그녀는 솔로몬을 찾아와 어려운 질문들을 하면서 그에게 향신료, 금, 그리고 보석들을 주었습니다. Similar things were signified by the queen of Sheba, who came to Solomon, and proposed hard questions, and brought him spices, gold, and precious stones. (1 Kings 10:1–2)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왕상10:1-2)

 

선지서 뿐만 아니라 말씀의 역사적 파트에 들어있는 모든 것은 아케이나를 상징, 표현 및 포함합니다. For all things contained in the historical parts of the Word, as well as in the prophets, signify, represent, and involve arcana.

 

※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선지서 뿐 아니라, 위 열왕기 기록 같은, 곧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왔던 역사적 기록들도 그 안에 아케이나가 들어 있어, 속뜻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3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두 번째 특징은,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에 관한 모든 지식 또한 그 안에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의 마음의 역량은 이런 천적인 것을 능히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위 여러 본문을 통해 확인했듯, 금과 보석, 향품 등이 뒤따라오는 모든 상황엔 반드시 먼저 주님의 선과 진리, 사랑과 신앙이 있습니다. 즉, 이런 것들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주님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질서요, 이것이 다음과 같은 주님 말씀의 참뜻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https://youtu.be/kltONFx59Oo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10. 11, 12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Verses 11, 12. The name of the first is Pishon; that is it which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 where there is gold; and the gold of that land is good; there is bdellium and the onyx stone.

 

첫 번째’ 강, 혹은 ‘비손’은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the intelligence of the faith)을, ‘하윌라 땅’은 마음(the mind)을, ‘’은 선을, ‘베델리엄과 호마노’는 진리를 각각 상징합니다. The “first” river, or “Pishon,” signifies the intelligence of the faith that is from love; “the land of Havilah” signifies the mind; “gold” signifies goo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truth.

 

’이 두 번 언급되는 이유는, 금이 사랑의 선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선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베델리엄과 호마노’가 언급되는 이유는, 하나는 사랑의 진리를, 다른 하나는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의 진리를 각각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Gold” is mentioned twice because it signifies the good of love and the good of faith from love; and “bdellium and the onyx stone” are mentioned because the one signifies the truth of love, and the other the truth of faith from love.

 

이런 것이 천적 인간입니다. Such is the celestial man.

 

※ 천적 인간은 지성, 신앙, 선, 진리 등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111. 하지만 이런 것들은 속뜻(the internal sense)으로 있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랑에서 나온다는 신앙(faith from love)이 뭔지, 또 그런 신앙에서 나온다는 지혜와 지성(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이 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It is however a very difficult matter to describe these things as they are in the internal sense, for at the present day no one knows what is meant by faith from love, and what by the wisdom and intelligence thence derived.

 

※ 여기서 말하는 ‘오늘날’은 1750년대 유럽을 말하지만, 270여 년이 지난 지금(2022년 대한민국)도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악화되었지 싶습니다.

 

그 이유는, 겉 사람들이 아는 거라곤 거의 기억-지식밖에 없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기억-지식을 가지고 지성이다, 지혜다, 신앙이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For external men scarcely know of anything but memory-knowledge, which they call intelligence and wisdom, and faith.

 

※ 이 문맥에서 말하는 겉 사람(external man)이란, 겉의 일들에 모든 가치를 두는 사람, 곧, 물질, 몸, 육체, 감각 등, 더 나아가 재산, 소유, 부와 명예, 지위, 신분, 권력 등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인간은 영과 육(肉)으로 되어 있는데, 겉 사람은 여기서 오직 육만 추구하는 사람, 겉에만 올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사랑이라는 게 뭔지 조차 모릅니다. 많은 사람이, 의지와 이해(the will and understanding)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마음(one mind)을 구성한다는 걸 모릅니다. They do not even know what love is, and many do not know what the will and understanding are, and that they constitute one mind.

 

그렇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다 또렷합니다. 네, 정말 가장 또렷하지요. 온 천국은 주님에 의해 가장 또렷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랑과 신앙의 그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차이점들만큼이나 말입니다. And yet each of these things is distinct, yea, most distinct, and the universal heaven is ordinated by the Lord in the most distinct manner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love and faith, which are innumerable.

 

※ 천국 전체가 주님의 신성으로 충만합니다. 피조 세계 그 어느 것 하나, 심지어 세균과 박테리아 및 분자, 원자의 세계까지도 주님이 정말 진심을 다하시지 않은 곳, 주님이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주님의 이런 성심과 지혜는 겉 사람, 육의 사람이 이런 내적, 영적인 것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다고 해서 뭐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주님은 영원히 성실하시며, 영원히 신성으로 만물을 붙드십니다.

 

 

112. 게다가 천국 전체에 알려진 사실은, 사랑에서 나온 게 아닌 지혜, 그러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지혜는 없으며,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지성(intelligence), 그러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지성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 사랑에서 나온 게 아닌 선, 그러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선은 없으며,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진리, 그러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진리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Be it known moreover that there is no wisdom which is no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nor any intelligence except from faith, thus also from the Lord; and that there is no good except from love, thus from the Lord; and no truth except from faith, thus from the Lord.

 

사랑과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그러니까 주님으로 말미암지도 않았으면서 실제로는 사랑이다, 신앙이다 하는 것들이 있는데요, 이런 것들은 다 가짜입니다. What are not from love and faith, and thus from the Lord, are indeed called by these names, but they are spurious.

 

※ 어떤 사랑, 어떤 신앙, 어떤 선이 주님으로 말미암았으면 거기엔 분명 천국의 이노센스(innocence, 순진무구, 천진난만)가 들어있습니다. 이노센스가 없는 사랑, 신앙, 선 등은 주님으로 말미암은 게 아닙니다.

 

 

113. 말씀에서 지혜 또는 사랑에 속한 선을 상징하고 표현하는데 ‘’보다 더 일반적인 것은 없습니다. Nothing is more common in the Word than for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to be signified and represented by “gold.

 

법궤, 성전, 금상, 촛대, 대접들 및 아론의 예복 등 이 모든 것에 있는 금은 지혜 또는 사랑에 속한 선을 상징했고 표현했습니다. All the gold in the ark, in the temple, in the golden table, in the candlestick, in the vessels, and upon the garments of Aaron, signified and represented the good of wisdom or of love.

 

선지서들에서도 그랬는데요, 에스겔입니다. So also in the prophets, as in Ezekiel: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겔28:4) In thy wisdom and in thine intelligence thou hast gotten thee riches, and hast gotten gold and silver in thy treasures. (Ezek. 28:4)

 

여기 보면, 분명 ‘금과 은’, 혹은 선과 진리가 지혜와 총명(wisdom and intelligence)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법궤와 성전에서처럼, ‘’은 여기서도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where it is plainly said that from wisdom and intelligence are “gold and silver,” or the good and the true, for “silver” here signifies truth, as it does also in the ark and in the temple.

 

이사야입니다. In Isaiah:

 

허다한 낙타, 미디안과 에바의 어린 낙타가 네 가운데에 가득할 것이며 스바 사람들은 다 금과 유향을 가지고 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할 것이며 (사60:6) The multitude of camels shall cover thee, the dromedaries of Midian and Ephah; all they from Sheba shall come, they shall bring gold and incense, and they shall show forth the praises of Jehovah. (Isa. 60:6)

 

그래서 또한 Thus also: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2:1, 11) The wise men from the east, who came to Jesus when he was born, fell down and worshiped him; and when they had opened their treasures, they presented unto him gifts; gold, and frankincense, and myrrh. (Matt. 2:1, 11)

 

여기서도 ‘황금’은 선을, ‘유향과 몰약’은 사랑과 신앙으로 말미암은, 그래서 정말 감사한(grateful) 것을, 그래서 이를 가리켜 ‘여호와의 찬송’이라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Here also “gold” signifies good; “frankincense and myrrh,” things that are grateful because from love and faith, and which are therefore called “the praises of Jehovah.

 

그런 이유로, 시편에서도 이르기를 Wherefore it is said in David: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시72:15) He shall live, and to him shall be given of the gold of Sheba; prayer also shall be made for him continually, and every day shall he bless him. (Ps. 72:15)

 

 

114. 신앙에 속한 진리는 말씀에서 ‘보석’(precious stones)으로 상징되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론의 에봇 판결 흉패와 두 어깨 위에 있는 보석들처럼 말입니다. The truth of faith is signified and represented in the Word by precious “stones,” as by those in the breastplate of judgment, and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판결 흉패에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은 사랑에 속한 것들을, ‘보석’은 그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속한 것들을 표현합니다. 에봇 두 어깨 위 ‘기념 보석’, ‘호마노’이지요, 금장식으로 마감하게 될 ‘기념 보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In the breastplate, “gold, blue, bright crimson, scarlet double-dyed, and fine-twined linen,” represented such things as are of love, and the precious “stones” such as are of faith from love; as did likewise the two “stones of memorial” on the shoulders of the ephod, which were onyx stones, set in ouches of gold (Exod. 28:9–22).

 

9호마노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10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11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12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13너는 금으로 테를 만들고 14순금으로 노끈처럼 두 사슬을 땋고 그 땋은 사슬을 그 테에 달지니라 15너는 판결 흉패를 에봇 짜는 방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만들되 16길이와 너비가 한 뼘씩 두 겹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17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18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19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20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릴지니 21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22순금으로 노끈처럼 땋은 사슬을 흉패 위에 붙이고 (출28:9-22)

 

보석들에 대한 상징은 에스겔에서도 또한 분명한데요, 거기서 하늘의 부, 곧 지혜와 지성을 소유한 사람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This signification of precious stones is also plain from Ezekiel, where, speaking of a man possessed of heavenly riches, which are wisdom and intelligence, it is said:

 

12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슬픈 노래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도장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15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 (겔28:12-13, 15) Full of wisdom, and perfect in beauty, thou hast been in Eden, the garden of God; every precious stone was thy covering, the ruby, the topaz, the diamond, the beryl, the onyx, and the jasper; the sapphire, the chrysoprase, the emerald, and gold; the workmanship of thy tabrets and of thy pipes was in thee; in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they were prepared; thou wast perfect in thy ways from the day that thou wast created, (Ezek. 28:12–13, 15)

 

이 말씀들은 돌들이 아닌, 신앙에 속한 천적, 영적인 것들을 상징하는 말씀이며, 그래서 여기 각각의 돌들은 신앙 관련 어떤 필수요소들을 표현한 것임은 누가 보더라도 확실할 것입니다. which words it must be evident to everyone do not signify stones, but the celestial and spiritual things of faith; yea, each stone represented some essential of faith.

 

 

115. 태고적 사람들은 ‘’을 말할 때, ‘’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이해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가나안 땅과 시온산은 천국을 상징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장소들이 언급될 때마다 천국을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spoke of “lands,” they understood what was signified by them, just as those at the present day who have an idea that the land of Canaan and Mount Zion signify heaven, do not so much as think of any land or mountain when these places are mentioned, but only of the things which they signify.

 

이런 게 본문 ‘하윌라 땅’에도 해당됩니다. 이 하윌라는 창세기 25장 18절에도 다시 나오는데요, It is so here with the “land of Havilah,” which is mentioned again in Genesis 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25:18)

 

이 구절은 이스마엘의 자손들 이야기인데, 거기서 그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거주하였더라’ 적혀 있습니다. where it is said of the sons of Ishmael, that they “dwelt from Havilah even unto Shur, which is before Egypt, as thou goest toward Assyria.

 

어떤 천국적 아이디어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들을 만나면 오직 지성과 지성에서 흘러나오는 것들만 지각합니다. Those who are in a heavenly idea perceive from these words nothing but intelligence, and what flows from intelligence.

 

그래서 ‘비손이라는 강이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에 나오는 ‘두르다’ 역시 그들은 흘러들어오는 걸로 지각합니다. 출애굽기 28장 11절에 나오는, 금 테로 물린 아론의 에봇 두 어깨의 호마노 역시, So by to “compass”—as where it is said that the river Pishon “compasseth the whole land of Havilah”—they perceive a flowing in; as also in the onyx stones on the shoulders of Aaron’s ephod being encompassed with ouches of gold (Exod. 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 테에 물리고 (출28:11)

 

그들은 사랑에 속한 선이 신앙에 속한 진리 안으로 흘러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지각합니다. they perceive that the good of love should inflow into the truth of faith.

 

다른 많은 경우들도 같습니다. And so in many other instances.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1, 12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속뜻)

주님이 천적 인간에게 수여하시는 지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 지성이라는 것입니다. 천적 인간의 마음은 주님의 선과 진리로 충만합니다.

 

 

※ 참된 회심, 진정한 거듭남의 사람들은 그가 거듭남 이전에 소유하였던 모든 세상 지식과 경험, 그리고 세상 지성 또한 거듭납니다. 그의 내면이 열려 천국이 흘러들어오며, 특히 퍼셉션의 유입이 다시 재개됩니다. 그래서 그는 전에는 무엇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는 주님을 사랑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전에는 내키지 않아도 겉으론 괜찮은 척 선과 진리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제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사랑으로 합니다. 이것이 아직 영적 인간인 사람과 이미 천적 인간인 사람의 차이입니다. 천적 인간은 천국의 빛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창세기 2장 첫 번째 본문은 천적 인간의 창조에 관한 본문입니다.

 

https://youtu.be/ETJiNgpxq24

 

Posted by bygracetistory
,

창2:1-17

 

107. 10절,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Verse 10. And a river went out of Eden, to water the garden, and from thence it was parted, and was into four heads.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wisdom from love)를 의미합니다. ‘에덴’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동산을 적시고’, 지성을 주심(to bestow intelligence)을,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이어지는 네 강(the four rivers)으로 하는 지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A “river out of Eden” signifies wisdom from love, for “Eden” is love; “to water the garden” is to bestow intelligence; to be “thence parted into four heads” is a description of intelligence by means of the four rivers, as follows.

 

※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 주님의 지혜의 특징입니다. 세상 지혜는 그 정체, 그 근원이 자기 사랑이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는 사랑, 주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108. 태고인들(太古人, the most ancient people)은 사람을 일종의 ‘동산’(a garden)에 비유하면서, 또 지혜에도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지혜에 관계된 것들은 ‘’(rivers)에 비유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비유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불렀는데, 그것은 그런 언어생활이 그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when comparing man to a “garden,” also compared wisdom, and the things relating to wisdom, to “rivers”; nor did they merely compare them, but actually so called them, for such was their way of speaking.

 

후대의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선지자들도 종종 그렇게 비유했고, 그렇게 불렀습니다. It was the same afterwards in the prophets, who sometimes compared them, and sometimes called them so.

 

이사야입니다. As in Isaiah:

 

10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11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58:10-11) Thy light shall arise in darkness, and thy thick darkness shall be as the light of day, and thou shalt be like a watered garden, and like an outlet of waters, whose waters lie not. (Isa. 58:10–11)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다루면서 Treating of those who receive faith and love.

 

※ 여기 ‘신앙과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신앙 따로, 사랑 따로인 사람들이 아니라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주님 비유하신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사람입니다.

 

다시, 거듭난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Again, speaking of the regenerate: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심으신 침향목들(주2)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민24:6) As the valleys are they planted, as gardens by the river’s side; as lignaloes(주2) which Jehovah hath planted, as cedar trees beside the waters. (Num. 24:6)

 

※ 주2. 라틴 텐토리아, ‘텐트’(tents), 얼핏 santalos에 대한 미스프린트 같음 [편집자 주] The Latin is tentoria, “tents,” seemingly a misprint for santalos. [Reviser]

 

예레미야에서는 In Jeremiah: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렘17:7-8) Blessed is the man who trusteth in Jehovah; he shall be as a tree planted by the waters, and that sendeth forth her roots by the river. (Jer. 17:7–8)

 

에스겔에서는 거듭난 사람들을 동산과 나무에 비유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부르고는 있습니다. In Ezekiel the regenerate are not compared to a garden and a tree, but are so called:

 

4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7그 뿌리가 큰 물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 8하나님의 동산의 백향목이 능히 그를 가리지 못하며 잣나무가 그 굵은 가지만 못하며 단풍나무가 그 가는 가지만 못하며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나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내가 그 가지를 많게 하여 모양이 아름답게 하였더니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기하였느니라 (겔31:4, 7-9) The waters made her to grow, the deep of waters uplifted her, the river ran round about her plant, and sent out its channels to all the trees of the field; she was made beautiful in her greatness, in the length of her branches, for her root was by many waters. The cedars in the garden of God did not hide her; the fir trees were not like her boughs, and the plane trees were not like her branches, nor was any tree in the garden of God equal to her in her beauty; I have made her beautiful by the multitude of her branches, and all the trees of Eden that were in the garden of God envied her. (Ezek. 31:4, 7–9)

 

이들 본문에서 분명한 것은, 태고인들이 사람이나 사람 관련 일들을 하나의 ‘동산’(a garden)에 비유할 때, 그들은 ‘물들’(waters)과 ‘강들’(rivers)이라는 표현을 추가로 사용하여 동산, 곧 사람을 적실 수 있게 했으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의 성장에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From these passages it is evident that when the most ancient people compared man, or the things in man, to a “garden,” they added the “waters” and “rivers” by which he might be watered, and by these waters and rivers meant such things as would cause his growth.

 

 

109. 비록 지혜와 지성이 사람한테 속한 것처럼 보여도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오직 주님으로만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래 에스겔 본문에서는 비슷한 표상(representatives)으로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That although wisdom and intelligence appear in man, they are, as has been said, of the Lord alone, is plainly declared in Ezekiel by means of similar representatives: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겔47:1, 8-9, 12) Behold, waters issued out from under the threshold of the house eastward; for the face of the house is the east; and he said, These waters issue out to the border toward the east, and go down into the plain, and come to the sea, which being led into the sea, the waters shall be healed;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every living soul which creepeth, whithersoever the water of the rivers shall come, shall live. And by the river upon the bank thereof,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there come up all trees for food, whose leaf shall not fade, neither shall the fruit thereof be consumed; it is born again in its months, because these its waters issue out of the sanctuary, and the fruit thereof shall be for food, and the leaf thereof for medicine. (Ezek. 47:1, 8–9, 12)

 

여기서 주님은 ‘’(東, east)으로, 그리고 물과 강물이 발원하는 ‘성소’(sanctuary)로 상징되십니다. Here the Lord is signified by the “east,” and by the “sanctuary,” whence the waters and rivers issued.

 

계시록에서도 그렇습니다. In like manner in John:

 

1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22:1-2) He showed me a pure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going forth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st of the street thereof, and of the river on this side and that, was the tree of life, which bare twelve [manner of] fruits, and yielded her fruit every month; and the leaf of the tree was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Rev. 22:1–2)

 

 

※ 이상으로, 오늘 본문 창세기 2장 10절과 그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문)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속뜻)

사랑의 주님은 천적 인간에게 주님의 지혜와 지성을 주십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성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습니다.

 

 

※ 지혜와 지성 또한 그 근원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부모로부터 받으며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영유아들처럼, 또한 모든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천사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https://youtu.be/Gc3yIKHHkFs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