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54.심화

 

2. ‘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단순한 혈통이나 육체적 후손이 아니라 ‘거짓과 불신에서 나온 영적 산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 표현은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과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성경에서 ‘(seed, 후손)를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은 신앙과 진리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하고, 반대로 ‘뱀의 후손’은 악과 거짓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간음(adultery)은 문자적 의미의 음행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내적 의미에서 간음은 진리와 선을 버리고, 거짓과 악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된 교리와 왜곡된 신앙에서 나온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는 표현은 AC.254의 주제를 거의 직접적으로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뱀의 후손’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자기 사랑과 감각적 자기 지혜에서 출발한 거짓, 그리고 그 거짓에서 태어난 불신과 왜곡된 사고 전체를 의미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패역의 자식(children of transgression)도 같은 맥락입니다. 패역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주님과 진리를 거스르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패역의 자식은 패역을 삶의 원리로 삼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또한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한다’는 표현 역시 영적으로는 참된 예배와 진리를 왜곡하고 파괴하는 상태를 묘사합니다. 특히 ‘자녀를 도살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야 할 진리와 선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seed, 후손)라는 표현이 혈통이 아니라 영적 기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합니다. 악에서 나오면 ‘행악의 종자’가 되고, 거짓에서 나오면 ‘거짓의 후손’이 되며, 간음된 교리에서 나오면 ‘간음자의 자식’이 됩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57:3-5가 인용된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이 곧 거짓과 불신의 계열 전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모두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상징이며, 자기 사랑에서 시작된 거짓이 결국 불신과 영적 파괴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 것입니다.

 

 

 

AC.254, 심화 1, ‘사1:4’

AC.254.심화 1.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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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심화

 

1.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여기서는 성경이 악한 상태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 doers)라고 부르는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씨)’(seed)은 단순한 육체적 후손이 아닙니다.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 곧 그 원리가 낳는 생각과 의지,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행악의 종자’는 악한 사람의 자녀라는 뜻이 아니라, 악을 근원으로 삼고, 악에서 나온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행악의 종자’라는 말 다음에 곧바로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악의 씨는 결국 불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이 악을 사랑하게 되면 주님에게서 멀어지고, 주님에게서 멀어지면 신앙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행악의 종자’와 ‘불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마지막의 ‘멀리하고 물러갔도다(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AC.248에서 이미 설명되었듯이, ‘뒤로 물러간다(backward)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과 천국을 향하던 상태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향하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1:4는 단순히 도덕적 타락을 책망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적 의미에서는 교회가 악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주님을 버리게 되었으며, 결국 신앙을 잃고 불신 속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AC.254에서 이 구절은 ‘뱀의 후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됩니다. 뱀의 후손은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악에서 비롯된 불신과 주님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합니다. ‘행악의 종자’라는 표현은 바로 그러한 상태를 가리키며, 악이 결국 불신을 낳고, 불신이 다시 더 큰 악을 낳는 영적 순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C.254, 심화 2, ‘사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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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창3:15, ‘뱀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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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4

뱀의 후손(seed of the serpent)이 모든 불신(infidelity)을 의미한다는 것은, ‘(serpent)이 모든 악을 의미한다는 사실로부터 분명합니다. ‘후손(seed)이란 낳는 것과 낳아진 것, 곧 출산하는 것과 출산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교회에 관하여 말하고 있으므로, 그 씨는 불신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왜곡된 상태에 있는 유대 교회를 가리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 ‘간음자의 자식(seed of the adulterer), ‘거짓의 후손(seed of falsehood)이라고 합니다. That by the “seed of the serpent” is meant all infidelity,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a “serpent,” as being all evil; “seed” is that which produces and is produced, or that which begets and is begotten; and as the church is here spoken of, this is infidelity. In Isaiah, in reference to the Jewish church in its perverted state, it is called a “seed of evil doers,” a “seed of adultery,” a “seed of falsehood”: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1:4) Woe to the sinful nation, a people laden with iniquity, a seed of evil doers, sons that are destroyers; they have forsaken Jehovah, they have provoked the holy one of Israel, they have estranged themselves backward (Isa. 1:4).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후손이 아니냐 5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도살하는도다 (57:3-5) Draw near hither, ye sons of the sorceress, the seed of the adulterer. Are ye not children of transgression, a seed of falsehood (Isa. 57:3–5)?

 

또한 이사야는 또는 (dragon)을 가리켜 루시퍼(Lucifer)라 합니다. And again, speaking of the “serpent” or “dragon,” who is there called Lucifer: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해설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려는 핵심은 창3:15의 ‘뱀의 후손’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AC.250에서 ‘뱀의 후손(씨)은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후손(seed)은 단순히 후손을 뜻하지 않습니다. 후손, 곧 씨는 어떤 원리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물, 곧 그 원리가 낳는 사상과 신념, 그리고 삶 전체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씨)’이 주님께 대한 신앙과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선과 진리를 의미하듯이,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합니다.

 

왜 하필 ‘불신(infidelity)일까요? 스베덴보리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악의 시작은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주님을 신뢰하지 않게 되고, 결국 신앙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의 열매는 결국 불신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뱀의 씨’, ‘뱀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1:4를 인용합니다. 여기서 ‘행악의 종자(seed of evildoers)는 단순히 악한 사람들의 자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악을 원리로 삼고, 악에서 나온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어지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라는 말은 그 씨가 결국 불신으로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57:3-5의 ‘간음자의 자식’, ‘거짓의 후손’도 같은 의미입니다. 스베덴보리의 해석에서 영적 간음은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간음자의 자식’은 거짓 교리와 불신에서 태어난 모든 것을 의미하며, ‘거짓의 후손’은 거짓 자체를 생명의 원리로 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사14:19-20에서는 루시퍼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루시퍼를 단순한 개인으로 보기보다,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교만과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은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곧 악에서 나온 모든 거짓과 불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이 세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에서 ‘후손(씨)’(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뱀의 후손’은 자기 사랑과 악에서 나오는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하며,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주님께 대한 신앙과 끊임없이 대립하게 된다는 것이 창3:15의 핵심 의미인 것입니다.

 

 

심화

 

1. ‘1:4

 

 

AC.254, 심화 1, ‘사1:4’

AC.254.심화 1.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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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7:3-5

 

 

AC.254, 심화 2, ‘사57:3-5’

AC.254.심화 2. ‘사57:3-5’ 3무당의 자식, 간음자와 음녀의 자식들아 너희는 가까이 오라 4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거짓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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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19, 20

 

19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뭇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 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러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20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으므로 그들과 함께 안장되지 못하나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은 영원히 이름이 불려지지 아니하리로다 할지니라 (사14:19, 20) Thou art cast out of thy sepulcher like an abominable shoot, because thou hast corrupted thy land, thou hast slain thy people; the seed of evildoers shall not be called to eternity (Isa. 14:19–20).

 

 

AC.254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seed) 또는 ‘후손(seed)이 단순한 혈통이 아니라 어떤 영적 원리에서 나온 결과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그는 창3:15의 ‘뱀의 후손’을 ‘모든 불신(all infidelity)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1:4의 ‘행악의 종자’, 사57:5의 ‘거짓의 후손’을 인용하였으며, 여기서는 다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표현을 제시합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또는 루시퍼(Lucifer)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단순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여기서 루시퍼를 자기 사랑과 교만,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악의 원리로 이해합니다.

 

특히 ‘네가 네 땅을 망하게 하였고 네 백성을 죽였다’는 표현은 악이 교회와 인간의 영적 생명을 파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land)은 흔히 교회를, ‘백성(people)은 교회 안의 진리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seed of evildoers)이라는 말이 AC.254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체적 자손이 아니라 악에서 태어난 모든 것, 곧 악한 생각, 악한 의지, 악한 교리, 악한 삶을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통해 ‘(seed)가 영적 기원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거짓의 후손’은 거짓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고, ‘행악의 종자’는 악에서 나온 것을 의미하며,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창3:15의 ‘뱀의 후손’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뱀의 후손, 뱀의 씨란 어떤 특정 혈통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악이라는 뿌리에서 자라난 모든 불신과 거짓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4에서 사14:19-20을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반복적으로 ‘(seed)를 영적 원리의 산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은 곧 창세기의 ‘뱀의 후손’과 같은 계열의 개념으로서, 악에서 나온 모든 불신과 거짓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된 것입니다.

 

 

 

AC.253, 창3:15, ‘여자’(the 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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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심화

 

4. ‘21:2, 9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bride)와 ‘아내(wife)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후, 성경 전체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여러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가운데 ‘신부’와 ‘아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은 단순한 미래의 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교회(New Church)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신앙, 그리고 새로운 삶을 가진 교회의 출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부가 혼인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듯이, 교회도 진리와 선으로 준비되어 주님과 결합하게 됩니다.

 

또한 9절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the bride, the Lamb's wife)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 양(the Lamb)은 주님을 의미하므로, ‘어린 양의 아내’는 곧 주님과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결혼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과 진리의 결합, 사랑과 신앙의 결합, 주님과 교회의 결합을 나타내는 가장 깊은 상응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신부나 아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AC.253에서 이 구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앞서 이사야와 말라기에서는 교회가 ‘아내’로 불렸지만, 여기서는 ‘신부’와 ‘아내’라는 두 표현이 함께 사용됩니다. 이는 교회가 주님과 결합을 준비하는 상태에서는 ‘신부’이며, 실제로 결합된 상태에서는 ‘아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계21:2, 9를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와 ‘아내’라고 명백히 부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주님과 결합하는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교회를, 신부는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교회를, 어린 양의 아내는 주님과 실제로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여자 = 교회’라는 AC.253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53, 창3:15, ‘여자’(the 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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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 심화 3, ‘말2:14’

AC.253.심화 3.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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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심화

 

3. ‘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아내(wife)로 부른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예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성경 여러 곳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결혼 언약을 저버린 유다 백성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더 깊은 교회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히 젊은 시절의 배우자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 사이의 처음 사랑과 순수한 결합을 상징합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신다’는 말씀은 이 결합이 단순한 인간적 계약이 아니라 신성한 언약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라는 표현은 교회가 주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부부 불화가 아니라,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와 선에서 떠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간음(adultery)은 흔히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AC.253 바로 앞에서 인용된 사54:5-6과 연결해 보면, ‘젊은 시절의 아내(wife of youth)라는 표현은 특별히 초기 교회들, 곧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연상시킵니다. 그 교회들은 주님과 가장 순수하고 친밀한 결합 속에 있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점차 타락하고 언약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2:14를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교회가 반복적으로 ‘아내’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아내’는 교회를, ‘남편’은 주님을, 그리고 ‘거짓을 행함’은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결혼의 언어로 표현한 대표적인 구절 가운데 하나로 AC.253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253, 심화 4, ‘계21:2, 9’

AC.253.심화 4. ‘계21:2, 9’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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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 심화 2, ‘사54:5-6’

AC.253.심화 2. ‘사54:5-6’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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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심화

 

2. ‘54:5-6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54:5, 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여자(woman)뿐 아니라 ‘아내(wife)로도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창3:15의 ‘여자’가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네 남편(thy husband)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만일 이 말씀이 단순히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런 표현은 사용될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주님은 남편이고, 교회는 아내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과 결합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AC.253에서 스베덴보리는 ‘너를 지으신 이(maker)가 ‘남편(husband)이라고 불리는 것은 주님께서 교회의 own과 결합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own은 더 이상 인간의 악한 own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천적, 천사적 own입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주님과 교회의 영적 결합을 나타냅니다.

 

또한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라는 표현은 교회가 한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황폐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아내를 다시 부르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타락한 교회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려 하시는 자비를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어릴 때의 아내(a wife of youth)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젊은 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고대교회(Ancient Church)와 태고교회(The Most Ancient Church)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즉 주님과 가장 순수하고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초기 교회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3에서 사54:5-6을 인용한 이유는, 교회가 말씀에서 ‘여자’와 ‘아내’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주님과 결합된 교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편은 주님이고, 아내는 교회이며, 그들의 결합은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AC.253, 심화 3, ‘말2:14’

AC.253.심화 3.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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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 심화 1, ‘계12:1, 4-5, 13’

AC.253.심화 1. ‘계12:1, 4-5, 13’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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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심화

 

1. ‘12:1, 4-5, 13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woman)가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교회(church)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의 흐름을 보면, AC.250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은 악과 자기 사랑’, ‘여자는 교회’, ‘여자의 씨, 곧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왜 여자가 교회를 의미하는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필요하였고, 그 대표적인 예로 계12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 ‘해를 옷 입은 여자’는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본문에서 직접 ‘여자’는 교회, ‘(sun)는 사랑(love), ‘(moon)은 신앙(faith), ‘열두 별(twelve stars)은 신앙의 모든 진리들(the truths of faith)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사랑과 신앙과 진리를 갖춘 참된 교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해를 입고 있다는 것은 사랑 안에 있음을 의미하고, 달이 발 아래 있다는 것은 신앙이 그 삶의 기초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열두 별의 관은 교회가 모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용(dragon)은 앞의 AC.251에서 설명된 것처럼 악과 거짓, 특히 자기 사랑과 그것에서 나오는 거짓 교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용이 여자를 박해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악과 거짓이 언제나 참된 교회를 공격한다는 영적 현실을 나타냅니다.

 

특히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전체 신학 체계에서 이것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진리와 교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용은 그 아이를 삼키려 합니다. 악과 거짓은 언제나 교회 안에 나타나는 참된 진리를 파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253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성경 자체가 교회를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창3의 ‘여자’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따라서 ‘여자와 뱀의 원수 됨’은 단순히 하와와 뱀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와 악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의미하게 됩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에게 계12의 여자는 창3의 여자를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여자는 교회이며, 해는 사랑이고, 달은 신앙이며, 별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용은 그것들을 파괴하려는 악과 거짓의 세력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여자 = 교회’라는 AC.250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53, 심화 2, ‘사54:5-6’

AC.253.심화 2. ‘사54:5-6’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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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3, 창3:15, ‘여자’(the 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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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3

교회를 여자(woman)라 하는 것은 교회가 천적, 천사적 own, 곧 주님께로부터 받은 선과 사랑의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아내(wife), ‘신부(bride), ‘처녀(virgin), ‘(daughter)이라고도 합니다. ‘여자라 하는 게 계시록에 나옵니다. It is by virtue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tha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a “bride,” a “virgin,” and a “daughter.” She is called a “woman” in Revelation: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sun)는 사랑을, ‘(moon)은 신앙을, ‘(stars)은 앞에서처럼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악한 영들이 극도로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들입니다. 이사야에도 보면 교회를 여자라고도 하고, ‘아내라고도 합니다. In this passage by a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un,” love; by the “moon,” faith; by “stars,” as before, the truths of faith, all of which evil spirits hate, and persecute to the utmos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in Isaiah: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54:5, 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여기 지으신 이(maker)남편(husband)이라 하는 이유는 그분이 교회의 own과 결합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버림받은 여자(woman forsaken)젊은 시절의 아내(wife of youth)는 특별히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말라기에서도요. where the “maker” is called also the “husband,” because united to the own; and a “woman forsaken” and a “wife of youth” signify specifically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Likewise in Malachi: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아내신부로 부르고 있습니다. She is called a “wife” and a “bride” in the Revelation: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그리고 선지서들 전반에 걸쳐 교회를 처녀이라고도 합니다. The church is called a “virgin” and a “daughter” throughout the prophets.

 

 

해설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긴 설명을 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woman)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AC.250에서 ‘여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해석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가 ‘여자’로 불리는 이유는,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결합하는 성격 때문에 말씀은 교회를 여성적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교회를 ‘여자’, ‘아내’, ‘신부’, ‘처녀’, ‘’ 등으로 반복해서 부릅니다.

 

특히 계12의 ‘해를 옷 입은 여자’는 스베덴보리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는 사랑, ‘’은 신앙, ‘열두 별’은 모든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과 진리를 가진 참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용이 그 여자를 박해하는 것은 악과 거짓이 언제나 참된 교회를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54에서 교회는 ‘남편을 가진 아내’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남편은 주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주님의 관계는 단순한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결합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주 말하는 선과 진리의 결합, 사랑과 신앙의 결합과도 연결됩니다.

 

21에서 새 예루살렘이 ‘신부’와 ‘어린 양의 아내’로 불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교회를 의미하며, 신부라는 표현은 그 교회가 주님과 결합할 준비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AC.253의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창3:15의 ‘여자’는 하와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는 이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은 단순히 어떤 인간 후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과 진리를 의미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가리키게 되는 것입니다.

 

 

심화

 

1. ‘12:1, 4-5, 13

 

 

AC.253, 심화 1, ‘계12:1, 4-5, 13’

AC.253.심화 1. ‘계12:1, 4-5, 13’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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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4:5-6

 

 

AC.253, 심화 2, ‘사54:5-6’

AC.253.심화 2. ‘사54:5-6’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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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4

 

 

AC.253, 심화 3, ‘말2:14’

AC.253.심화 3.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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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1:2, 9

 

 

AC.253, 심화 4, ‘계21:2, 9’

AC.253.심화 4. ‘계21:2, 9’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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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4, 창3:15, ‘뱀의 후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4‘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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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2, 창3:15, ‘여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2‘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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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2

여자(woman)가 교회(the church)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AC.155) 천국 결혼(the heavenly marriage)에 관하여 설명한 내용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천국 결혼의 본질은 이와 같습니다. 천국(heaven), 곧 교회(the church)는 자신의 own을 통하여 주님(the Lord)과 결합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own 안에 있으며,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own 없이는 결합(union)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비로 그 own 안에 순진(innocence)과 평화(peace), 그리고 선(good)을 불어넣으시면,own은 여전히 자신의 own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천적인 것(celestial)이 되며, 더없이 행복한 것이 됩니다 (AC.164 참조).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천사적 own,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own, 곧 지옥적, 마귀적 own 사이의 차이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는 천국(heaven)과 지옥(hell) 만큼이나 큽니다. That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bove (n. 155) concerning the heavenly marriage. Such is the nature of the heavenly marriage, that heaven, and consequently the church, is united to the Lord by its own, insomuch that these are in their own, for without their own there can be no union. When the Lord in mercy instills innocence, peace, and good into this own, it still retains its identity, but becomes heavenly and most happy (as may be seen at n. 164). The quality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from the Lord, and the quality of an own, which, because from self, is infernal and diabolical, cannot be told.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heaven and hell.

 

 

해설

 

AC.252는 스베덴보리의 인간론 가운데 가장 깊고도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는 글입니다. 특별히 ‘own’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 구절은 쉽게 모순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own은 악하며, 자기 사랑과 교만의 근원이라고 반복해서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교회가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결합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 두 말이 모두 참일 수 있을까요?

 

먼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인간 안에 새롭게 주시는 own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은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기 사랑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창3에서 계속 설명된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사람 안에 새로운 own을 형성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참되게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순진(innocence), 평화(peace), 사랑(love), 선(good)이 사람 안에 자리 잡으면, 사람은 여전히 ‘’이지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own 없이는 결합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자아도, 아무런 자유도, 아무런 개성도 없는 존재라면, 그는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기계나 인형처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그 자유 안에서 사랑의 결합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때문에 거듭남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된 own이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own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성격이며, 같은 개성이지만, 그 중심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향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주님과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AC.16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own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선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사랑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것이 주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자유와 개성을 없애지 않으시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십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own은 인간의 own과 전혀 다릅니다. 천사들도 자신을 ‘’라고 말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안의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own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own이며, 자기 만족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즐거워하는 own입니다.

 

반대로 지옥적 own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 집중시킵니다. 사랑도, 지식도, 권세도, 신앙도 결국 자기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 중심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두 own의 차이를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결국 AC.252는 참된 거듭남이란 자기 자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받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참된 own은 주님을 떠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가장 깊이 결합될 때 비로소 형성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인 것입니다.

 

 

 

AC.253, 창3:15, ‘여자’(the church)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3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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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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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Apocalypse Revealed 관련 글인 AR.842에 대한 번역 및 해설입니다.

 

 

천 년 동안 결박하여라는 말씀은, 여기서 으로 뜻하는 자들이 영들의 세계에서 다른 영들로부터 거두어져 따로 떼어 놓였으며, 얼마 동안 그들과의 교통이 없도록 하셨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결박하다가 영들의 세계에서 그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떼어 놓아 교통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항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천 년이 문자 그대로 천 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뜻하는 이유는, 영계에서는 다른 수가 함께 붙지 않은 이라는 수가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천 년을 문자 그대로 천 년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말씀 속 모든 수가 어떤 사물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수들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등 수많은 숫자가 나오는데,이러한 수들에서 은 단지 일정한 의미를 더해 주는 요소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수와 함께 시간을 나타낼 때에는 다소 긴 기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처럼 단독으로 사용될 때에는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천국에서 저에게 알려진 바입니다. 그곳의 말씀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뜻하는 사물을 읽으며,  대신에 얼마 동안이라는 뜻을 읽습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교회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처럼 많은 숫자들이 반드시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천년왕국설(Chiliasm)이나 밀레니엄설(Millennialism)의 추측을 고집하여, 교회의 마지막 상태에 관하여 헛된 생각으로 마음을 사로잡히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깁니다. And bound him a thousand years signifies that they who are here meant by “the dragon,” were withdrawn and torn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that for some time there might be no communication with them. That by “binding” is here signified to withdraw and tear them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in order to prevent communication with them, will be seen in the next article. The reason why by “a thousand years” are not meant a thousand years, but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is because “a thousand,” without other numbers added to it, in the spiritual world has that signification; he who believes that “a thousand years” signify a thousand years does not know that all numbers in the Word signify things, and thus may be misled, especially in Revelation, with respect to the sense of the things, where numbers are read, as where the numbers,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 and many others occur; in which latter numbers “a thousand” only signifies a certain adjunct, and when a thousand is used to designate times, it signifies somewhat more; but when it is used by itself, as here, it signifies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that this is so has been told me from heaven, where in the Word which is there no number is read, but instead of a number the thing, and instead of a “thousand” for a while; they are surprised there that when the men of the church have seen in Revelation so many numbers, which cannot but signify things, they should still adhere to the conjectures of the chiliasts and millennialists, by which their minds are impressed with vain things concerning the last state of the church. (AR.842)

 

 

해설

 

이 글은 계20 천 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 년’은 시간의 길이를 예언하는 숫자가 아니라, 영적 상태와 섭리의 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천 년 동안 결박되었다는 것은 악한 영들이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감금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는 동안 그들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선한 영들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 교통이 차단되는 기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결박’의 의미입니다. 결박은 쇠사슬로 묶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영적 교통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가까이 있음과 멀리 있음이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사상의 일치 여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을 결박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영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그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과 섭리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또한 말씀의 모든 숫자가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숫자는 단순히 양을 나타내는 기호가 아니라, 상태와 질을 나타내는 상응입니다. 그래서 7은 거룩함과 완전함, 12는 교회의 모든 구성 요소, 144는 그 충만함, 666은 진리의 철저한 왜곡 등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시 절대적인 수량이 아니라 충만한 정도나 일정한 기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천 년’을 문자 그대로 계산하는 것은 말씀의 상응 성격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천년왕국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역사 속 어느 시점에 문자적인 천 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정치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기대는, 계시록 숫자를 자연적 의미로만 읽은 결과라고 봅니다. 계시록은 미래의 연대표를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역사와 인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변화를 묘사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천국의 말씀 읽는 방식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천국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담고 있는 영적 의미를 직접 지각한다고 증언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을 읽지만 천사는 곧바로 얼마 동안’, 또는 섭리가 허락한 일정한 기간’이라는 상태를 지각합니다. 이는 천사들의 사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태와 사랑의 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스베덴보리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 이 글의 핵심은, 계시록을 이해하려면 문자적 계산보다 상응의 원리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 년’은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악의 영향력을 제한하시는 섭리의 기간입니다. 그 기간의 길이는 인간의 연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필요한 만큼 지속되는 영적 상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계20은 미래의 정치적 왕국을 예언하는 책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영계와 교회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주는 계시가 됩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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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심화 5, ‘계20:2’

AC.251.심화 5.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뱀’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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