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3

교회를 ‘여자’(woman)라 하는 것은 교회가 천적, 천사적 own, 곧 주님께로부터 받은 선과 사랑의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이유로 ‘아내’(wife), ‘신부’(bride), ‘처녀’(virgin), ‘딸’(daughter)이라고도 합니다. ‘여자’라 하는 게 계시록에 나옵니다. It is by virtue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tha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a “bride,” a “virgin,” and a “daughter.” She is called a “woman” in Revelation: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 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여기서 ‘여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해’(sun)는 사랑을, ‘달’(moon)은 신앙을, ‘별’(stars)은 앞에서처럼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악한 영들이 극도로 미워하고 박해하는 것들입니다. 이사야에도 보면 교회를 ‘여자’라고도 하고, ‘아내’라고도 합니다. In this passage by a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un,” love; by the “moon,” faith; by “stars,” as before, the truths of faith, all of which evil spirits hate, and persecute to the utmost. The church is called a “woman,” and also a “wife,” in Isaiah: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54:5, 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여기 ‘지으신 이’(maker)를 ‘남편’(husband)이라 하는 이유는 그분이 교회의 own과 결합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버림받은 여자’(woman forsaken)와 ‘젊은 시절의 아내’(wife of youth)는 특별히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의미합니다. 말라기에서도요. where the “maker” is called also the “husband,” because united to the own; and a “woman forsaken” and a “wife of youth” signify specifically the ancient and most ancient churches. Likewise in Malachi: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말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아내’와 ‘신부’로 부르고 있습니다. She is called a “wife” and a “bride” in the Revelation: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그리고 선지서들 전반에 걸쳐 교회를 ‘처녀’와 ‘딸’이라고도 합니다. The church is called a “virgin” and a “daughter” throughout the prophets.

 

 

해설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긴 설명을 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woman)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미 AC.250에서 ‘여자는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하였는데, 여기서는 그 해석의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교회가 ‘여자’로 불리는 이유는,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결합하는 성격 때문에 말씀은 교회를 여성적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교회를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 등으로 반복해서 부릅니다.

 

특히 계12의 ‘해를 옷 입은 여자’는 스베덴보리 해석에서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해’는 사랑, ‘달’은 신앙, ‘열두 별’은 모든 신앙의 진리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사랑과 신앙과 진리를 가진 참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용이 그 여자를 박해하는 것은 악과 거짓이 언제나 참된 교회를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54에서 교회는 ‘남편을 가진 아내’로 묘사됩니다. 여기서 남편은 주님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주님의 관계는 단순한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결합으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스베덴보리가 자주 말하는 선과 진리의 결합, 사랑과 신앙의 결합과도 연결됩니다.

 

계시록 21장에서 새 예루살렘이 ‘신부’와 ‘어린 양의 아내’로 불리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교회를 의미하며, 신부라는 표현은 그 교회가 주님과 결합할 준비가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AC.253의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창3:15의 ‘여자’는 하와 개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는 이 사실을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후손’은 단순히 어떤 인간 후손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앙과 진리를 의미하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가리키게 되는 것입니다.

 

 

심화

 

1. ‘계12:1, 4-5, 13’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13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계12:1, 4-5, 13) A woman clothed with the sun, and the moon under her feet, and upon her head a crown of twelve stars. And the dragon persecuted the woman who brought forth the man child (Rev. 12:1, 4–5, 13).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15의 ‘여자’(woman)가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교회’(church)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까지 설명의 흐름을 보면, AC.250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은 악과 자기 사랑’, ‘여자는 교회’, ‘여자의 씨, 곧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 자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왜 여자가 교회를 의미하는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필요하였고, 그 대표적인 예로 계시록 12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 ‘해를 옷 입은 여자’는 한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상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본문에서 직접 ‘여자’는 교회, ‘해’(sun)는 사랑(love), ‘달’(moon)은 신앙(faith), ‘열두 별’(twelve stars)은 신앙의 모든 진리들(the truths of faith)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여자는 사랑과 신앙과 진리를 갖춘 참된 교회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해를 입고 있다는 것은 사랑 안에 있음을 의미하고, 달이 발 아래 있다는 것은 신앙이 그 삶의 기초가 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열두 별의 관은 교회가 모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용(dragon)은 앞의 AC.251에서 설명된 것처럼 악과 거짓, 특히 자기 사랑과 그것에서 나오는 거짓 교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용이 여자를 박해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악과 거짓이 언제나 참된 교회를 공격한다는 영적 현실을 나타냅니다.

 

특히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전체 신학 체계에서 이것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는 진리와 교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적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용은 그 아이를 삼키려 합니다. 악과 거짓은 언제나 교회 안에 나타나는 참된 진리를 파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C.253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직접적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성경 자체가 교회를 ‘여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창세기 3장의 ‘여자’도 같은 의미로 이해해야 하며, 따라서 ‘여자와 뱀의 원수 됨’은 단순히 하와와 뱀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와 악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의미하게 됩니다.

 

결국 스베덴보리에게 계시록 12장의 여자는 창세기 3장의 여자를 해석하는 열쇠입니다. 여자는 교회이며, 해는 사랑이고, 달은 신앙이며, 별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용은 그것들을 파괴하려는 악과 거짓의 세력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여자 = 교회’라는 AC.250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2. ‘사54:5-6’

 

5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사54:5, 6) Thy maker is thy husband, Jehovah of armies is his name, and thy redeemer the holy one of Israel, the God of the whole earth is he called; for as a woman forsaken and afflicted in spirit hath Jehovah called thee, and as a wife of youth [adolescentiarum] (Isa. 54:5–6),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여자’(woman)뿐 아니라 ‘아내’(wife)로도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창3:15의 ‘여자’가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여호와는 ‘네 남편’(thy husband)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만일 이 말씀이 단순히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런 표현은 사용될 수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주님과 교회의 관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주님은 남편이고, 교회는 아내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과 결합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AC.253에서 스베덴보리는 ‘너를 지으신 이’(maker)가 ‘남편’(husband)이라고 불리는 것은 주님께서 교회의 own과 결합하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own은 더 이상 인간의 악한 own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천적, 천사적 own입니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주님과 교회의 영적 결합을 나타냅니다.

 

또한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라는 표현은 교회가 한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황폐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 아내를 다시 부르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타락한 교회도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려 하시는 자비를 보여줍니다.

 

스베덴보리는 특별히 ‘어릴 때의 아내’(a wife of youth)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것이 단순히 젊은 아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고대교회(Ancient Church)와 태고교회(Most Ancient Church)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즉 주님과 가장 순수하고 친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던 초기 교회의 상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3에서 사54:5-6을 인용한 이유는, 교회가 말씀에서 ‘여자’와 ‘아내’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주님과 결합된 교회를 의미한다는 점을 증명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편은 주님이고, 아내는 교회이며, 그들의 결합은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말2: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말2:14) Jehovah hath borne witness between thee and the wife of thy youth (Mal. 2:14).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아내’(wife)로 부른다는 사실을 또 하나의 예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뒤, 성경 여러 곳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결혼 언약을 저버린 유다 백성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그 안에 더 깊은 교회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the wife of thy youth)는 단순히 젊은 시절의 배우자를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 사이의 처음 사랑과 순수한 결합을 상징합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신다’는 말씀은 이 결합이 단순한 인간적 계약이 아니라 신성한 언약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라는 표현은 교회가 주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단순한 부부 불화가 아니라,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와 선에서 떠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간음(adultery)은 흔히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AC.253 바로 앞에서 인용된 사54:5-6과 연결해 보면, ‘젊은 시절의 아내’(wife of youth)라는 표현은 특별히 초기 교회들, 곧 고대교회와 태고교회를 연상시킵니다. 그 교회들은 주님과 가장 순수하고 친밀한 결합 속에 있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점차 타락하고 언약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말2:14를 인용한 이유는, 말씀에서 교회가 반복적으로 ‘아내’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교회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뒷받침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이 구절에서 ‘아내’는 교회를, ‘남편’은 주님을, 그리고 ‘거짓을 행함’은 교회가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진리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결혼의 언어로 표현한 대표적인 구절 가운데 하나로 AC.253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4. ‘계21:2, 9’

 

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9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21:2, 9) I saw the holy city new Jerusalem coming down from God out of heaven, prepared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come hither, I will show thee the bride, the lamb’s wife (Rev. 21:2, 9).

 

 

AC.253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bride)와 ‘아내’(wife)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창3:15의 ‘여자’가 교회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후, 성경 전체에서 교회가 여자, 아내, 신부, 처녀, 딸로 불리는 여러 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가운데 ‘신부’와 ‘아내’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새 예루살렘’(New Jerusalem)은 단순한 미래의 도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교회(New Church)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신앙, 그리고 새로운 삶을 가진 교회의 출현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부가 혼인을 위해 자신을 단장하듯이, 교회도 진리와 선으로 준비되어 주님과 결합하게 됩니다.

 

또한 9절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the bride, the Lamb's wife)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어린 양’(the Lamb)은 주님을 의미하므로, ‘어린 양의 아내’는 곧 주님과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스베덴보리의 신학에서 결혼은 단순한 사회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선과 진리의 결합, 사랑과 신앙의 결합, 주님과 교회의 결합을 나타내는 가장 깊은 상응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신부나 아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AC.253에서 이 구절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앞서 이사야와 말라기에서는 교회가 ‘아내’로 불렸지만, 여기서는 ‘신부’와 ‘아내’라는 두 표현이 함께 사용됩니다. 이는 교회가 주님과 결합을 준비하는 상태에서는 ‘신부’이며, 실제로 결합된 상태에서는 ‘아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가 계21:2, 9를 인용한 이유는, 성경이 교회를 ‘신부’와 ‘아내’라고 명백히 부르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창3:15의 ‘여자’ 역시 단순한 하와가 아니라 주님과 결합하는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증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교회를, 신부는 주님과의 결합을 위해 준비된 교회를, 어린 양의 아내는 주님과 실제로 결합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여자 = 교회’라는 AC.253의 핵심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 가운데 하나로 인용된 것입니다.

 

 

 

AC.252, 창3:15, ‘여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2‘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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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2

여자(woman)가 교회(the church)를 의미한다는 것은 앞에(AC.155) 천국 결혼(the heavenly marriage)에 관하여 설명한 내용으로부터 분명합니다. 천국 결혼의 본질은 이와 같습니다. 천국(heaven), 곧 교회(the church)는 자신의 own을 통하여 주님(the Lord)과 결합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의 own 안에 있으며,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왜냐하면 own 없이는 결합(union)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비로 그 own 안에 순진(innocence)과 평화(peace), 그리고 선(good)을 불어넣으시면,own은 여전히 자신의 own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천적인 것(celestial)이 되며, 더없이 행복한 것이 됩니다 (AC.164 참조). 주님으로부터 오는, 천적, 천사적 own,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own, 곧 지옥적, 마귀적 own 사이의 차이는 이루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차이는 천국(heaven)과 지옥(hell) 만큼이나 큽니다. That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is evident from what was said above (n. 155) concerning the heavenly marriage. Such is the nature of the heavenly marriage, that heaven, and consequently the church, is united to the Lord by its own, insomuch that these are in their own, for without their own there can be no union. When the Lord in mercy instills innocence, peace, and good into this own, it still retains its identity, but becomes heavenly and most happy (as may be seen at n. 164). The quality of a heavenly and angelic own from the Lord, and the quality of an own, which, because from self, is infernal and diabolical, cannot be told. The difference is like that between heaven and hell.

 

 

해설

 

AC.252는 스베덴보리의 인간론 가운데 가장 깊고도 중요한 교리를 담고 있는 글입니다. 특별히 ‘own’이라는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이 구절은 쉽게 모순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own은 악하며, 자기 사랑과 교만의 근원이라고 반복해서 말해 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교회가 바로 그 own을 통해 주님과 결합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 두 말이 모두 참일 수 있을까요?

 

먼저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own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인간 안에 새롭게 주시는 own입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own은 자신을 삶의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기 사랑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창3에서 계속 설명된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거듭나는 사람 안에 새로운 own을 형성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개성과 인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참되게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순진(innocence), 평화(peace), 사랑(love), 선(good)이 사람 안에 자리 잡으면, 사람은 여전히 ‘’이지만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가 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own 없이는 결합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자아도, 아무런 자유도, 아무런 개성도 없는 존재라면, 그는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은 사람을 기계나 인형처럼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인격으로 창조하시고, 그 자유 안에서 사랑의 결합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때문에 거듭남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과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된 own이 물러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own이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성격이며, 같은 개성이지만, 그 중심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향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주님과 이웃을 향하게 됩니다.

 

AC.164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것처럼, 주님께서 주시는 own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선을 행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사랑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것이 주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자유와 개성을 없애지 않으시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생명과 사랑을 흘려보내십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own은 인간의 own과 전혀 다릅니다. 천사들도 자신을 ‘’라고 말하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안의 모든 선과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own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기뻐하는 own이며, 자기 만족이 아니라 이웃의 행복을 즐거워하는 own입니다.

 

반대로 지옥적 own은 모든 것을 자기에게 집중시킵니다. 사랑도, 지식도, 권세도, 신앙도 결국 자기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 중심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두 own의 차이를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결국 AC.252는 참된 거듭남이란 자기 자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받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참된 own은 주님을 떠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가장 깊이 결합될 때 비로소 형성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비로소 참된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람인 것입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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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Apocalypse Revealed 관련 글인 AR.842에 대한 번역 및 해설입니다.

 

 

천 년 동안 결박하여라는 말씀은, 여기서 으로 뜻하는 자들이 영들의 세계에서 다른 영들로부터 거두어져 따로 떼어 놓였으며, 얼마 동안 그들과의 교통이 없도록 하셨음을 뜻합니다. 여기서 결박하다가 영들의 세계에서 그들을 다른 이들로부터 떼어 놓아 교통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음 항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천 년이 문자 그대로 천 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뜻하는 이유는, 영계에서는 다른 수가 함께 붙지 않은 이라는 수가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천 년을 문자 그대로 천 년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말씀 속 모든 수가 어떤 사물과 상태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수들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등 수많은 숫자가 나오는데,이러한 수들에서 은 단지 일정한 의미를 더해 주는 요소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다른 수와 함께 시간을 나타낼 때에는 다소 긴 기간을 의미하지만, 여기처럼 단독으로 사용될 때에는 얼마 동안’, 또는 어떤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은 천국에서 저에게 알려진 바입니다. 그곳의 말씀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뜻하는 사물을 읽으며,  대신에 얼마 동안이라는 뜻을 읽습니다. 천국의 천사들은 교회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그처럼 많은 숫자들이 반드시 어떤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여전히 천년왕국설(Chiliasm)이나 밀레니엄설(Millennialism)의 추측을 고집하여, 교회의 마지막 상태에 관하여 헛된 생각으로 마음을 사로잡히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깁니다. And bound him a thousand years signifies that they who are here meant by “the dragon,” were withdrawn and torn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that for some time there might be no communication with them. That by “binding” is here signified to withdraw and tear them away from the rest in the world of spirits, in order to prevent communication with them, will be seen in the next article. The reason why by “a thousand years” are not meant a thousand years, but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is because “a thousand,” without other numbers added to it, in the spiritual world has that signification; he who believes that “a thousand years” signify a thousand years does not know that all numbers in the Word signify things, and thus may be misled, especially in Revelation, with respect to the sense of the things, where numbers are read, as where the numbers, 5, 7, 10, 12, 144, 666, 1200, 1600, 12,000, 144,000, and many others occur; in which latter numbers “a thousand” only signifies a certain adjunct, and when a thousand is used to designate times, it signifies somewhat more; but when it is used by itself, as here, it signifies for a while or for some time; that this is so has been told me from heaven, where in the Word which is there no number is read, but instead of a number the thing, and instead of a “thousand” for a while; they are surprised there that when the men of the church have seen in Revelation so many numbers, which cannot but signify things, they should still adhere to the conjectures of the chiliasts and millennialists, by which their minds are impressed with vain things concerning the last state of the church. (AR.842)

 

 

해설

 

이 글은 계20 천 년’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를 제시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천 년’은 시간의 길이를 예언하는 숫자가 아니라, 영적 상태와 섭리의 한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천 년 동안 결박되었다는 것은 악한 영들이 문자 그대로 천 년 동안 감금된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는 동안 그들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선한 영들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적 교통이 차단되는 기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결박’의 의미입니다. 결박은 쇠사슬로 묶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영적 교통을 끊는 것을 말합니다. 영계에서는 가까이 있음과 멀리 있음이 공간이 아니라 사랑과 사상의 일치 여부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을 결박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영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그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심판과 섭리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또한 말씀의 모든 숫자가 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숫자는 단순히 양을 나타내는 기호가 아니라, 상태와 질을 나타내는 상응입니다. 그래서 7은 거룩함과 완전함, 12는 교회의 모든 구성 요소, 144는 그 충만함, 666은 진리의 철저한 왜곡 등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역시 절대적인 수량이 아니라 충만한 정도나 일정한 기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천 년’을 문자 그대로 계산하는 것은 말씀의 상응 성격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스베덴보리는 천년왕국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역사 속 어느 시점에 문자적인 천 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정치적으로 통치하신다는 기대는, 계시록 숫자를 자연적 의미로만 읽은 결과라고 봅니다. 계시록은 미래의 연대표를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 교회의 영적 역사와 인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변화를 묘사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스베덴보리가 천국의 말씀 읽는 방식을 소개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천국에서는 숫자를 숫자로 읽지 않고, 숫자가 담고 있는 영적 의미를 직접 지각한다고 증언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을 읽지만 천사는 곧바로 얼마 동안’, 또는 섭리가 허락한 일정한 기간’이라는 상태를 지각합니다. 이는 천사들의 사고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태와 사랑의 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스베덴보리의 일관된 가르침과도 정확히 일치합니다.

 

결국 이 글의 핵심은, 계시록을 이해하려면 문자적 계산보다 상응의 원리를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 년’은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악의 영향력을 제한하시는 섭리의 기간입니다. 그 기간의 길이는 인간의 연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 경륜 안에서 필요한 만큼 지속되는 영적 상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계20은 미래의 정치적 왕국을 예언하는 책이 아니라, 주님께서 새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영계와 교회를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주는 계시가 됩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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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영적 원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계12:9에서는 ‘큰 용’이 곧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직접 설명되었습니다. 여기 계20:2에서도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통해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이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창세기의 뱀, 계시록의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은 모두 서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동일한 영적 실재를 가리키는 다양한 표현들입니다. 그 실재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evil)이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과 불신입니다.

 

그래서 AC.251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의 뱀은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을 의미합니다. 그 악은 인간 역사 속에서 계속 활동하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그것이 ‘큰 용’, ‘옛 뱀’, ‘마귀’,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처음과 끝은 같은 영적 원리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서 ‘결박하여(bound)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문자적인 쇠사슬이나 감옥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악과 거짓의 세력이 더 이상 이전처럼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도록 제한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AC.25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주된 목적은 ‘천 년’이나 ‘결박’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곧 계시록이 직접 ‘ = 옛 뱀 = 마귀 =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매우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귀’는 어떤 특정한 악령의 이름이 아닙니다. 지옥 전체를 통치하는 한 명의 절대적 악의 군주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마귀’는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계20:2는 창세기의 뱀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해석을 뒷받침하는 증거 구절로 사용됩니다. 곧 성경의 ‘’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을 주님에게서 떼어 놓고,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만드는 모든 악과 거짓의 원리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은 그 사실을 ‘옛 뱀’, ‘마귀’, ‘사탄’, ‘’이라는 여러 이름으로 다시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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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2:9)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악과 거짓의 원리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성경 스스로가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이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이 직접 ‘큰 용’을 ‘옛 뱀(the old serpent)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합니다. 창세기에 등장한 뱀과 계시록에 등장한 큰 용이 동일한 영적 실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영적 실체는 무엇일까요?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evil),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과 불신, 그리고 증오가 바로 ‘온 천하를 꾀는 자’로 표현됩니다.

 

또한 이 구절은 ‘옛 뱀’, ‘마귀(devil), ‘사탄(satan)이라는 세 이름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이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성경의 여러 표현들이 결국 같은 원리를 가리킨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마귀’와 ‘사탄’을 어떤 한 인격적 존재, 곧 모든 악령들을 통치하는 지옥의 왕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AC.251에서 그는 분명히 말합니다.

 

마귀란 다른 악령들 위에 군림하는 어떤 특정한 마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한다.’

 

즉 스베덴보리에게 마귀는 하나의 개체라기보다 집합적 이름입니다. 마치 ‘인류’라는 말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것처럼, ‘마귀’는 모든 악한 영들과 그들 안에 있는 악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사탄’ 역시 비슷하게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스베덴보리는 ‘마귀’는 악(evil)과 관련되고, ‘사탄’은 거짓(falsity)과 관련된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악과 거짓이 결합하여 세상을 미혹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라는 표현은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는 주님의 진리 앞에서 악과 거짓이 더 이상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심판과 질서 회복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AC.251에서 계12:9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옛 뱀, 큰 용, 마귀, 사탄이 모두 같은 영적 원리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곧 그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과 거짓, 특별히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악의 세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베덴보리는 창3의 뱀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과 교회 안에서 역사하는 악의 보편적 원리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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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12:3)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과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이 본질적으로 같은 영적 실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창세기의 뱀을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모든 악, 특히 자기 사랑(love of self)과 그로부터 나오는 거짓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악이 역사 속에서 더욱 거대하고 조직적인 형태로 나타난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구절을 인용한 뒤 곧이어 계12:9 20:2를 연결하여, 이 용이 바로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불린다고 설명합니다. 즉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은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원리를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붉은(red)이라는 표현은 말씀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색이지만, 악한 의미에서는 자기 사랑과 그로부터 나오는 파괴적인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큰 붉은 용’은 자기 사랑이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또한 ‘머리가 일곱’이라는 것은 거짓과 악이 완전한 형태로 조직되어 있음을 뜻하며, ‘뿔이 열’이라는 것은 그것이 행사하는 힘과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물론 AC.251에서는 아직 이 세부 상응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 = 옛 뱀’이라는 연결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베덴보리가 여기서 ‘마귀(devil)를 어떤 특정한 인격체나 지옥의 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곧이어 ‘마귀란 다른 악령들을 지배하는 어떤 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큰 붉은 용도 어떤 한 괴물이 아니라, 주님과 진리에 반대되는 모든 악과 거짓의 집합적 세력을 의미합니다. 창세기의 뱀이 한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자기 사랑과 감각적 거짓을 상징한다면, 계시록의 용은 그것이 교회 전체와 인류 역사 속에서 거대한 세력으로 나타난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1에서 계12:3을 인용한 이유는, 창세기의 뱀과 계시록의 용이 동일한 영적 원리, 곧 자기 사랑과 악, 그리고 거짓의 세력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처음에 등장하는 ‘’은 성경의 마지막에 가서는 ‘큰 붉은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는 주님과 대적하는 악의 본질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C.251, 심화 4, ‘계12:9’

AC.251.심화 4.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AC.251에서 스베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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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심화 2. ‘사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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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악과 거짓이 처음에는 작은 씨앗이나 알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치명적인 영적 독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사14:29에서는 ‘뱀의 뿌리  독사  날아다니는 불뱀’이라는 악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였다면, 여기서는 그 악이 어떻게 인간 안에서 잉태되고 자라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독사의 알(cockatrice's eggs)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거짓의 씨앗과 악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알은 아직 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미 독사가 들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잘못된 원리나 거짓된 생각도 처음에는 무해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품고 키우면 결국 악한 삶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즉 거짓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기 삶의 양식으로 삼으면 신앙과 사랑의 생명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한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알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결국 밖으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생각 속에만 있던 거짓과 악이 시간이 지나면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마침내 인간의 성품 자체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거미줄을 짠다(weave the spider's web)는 표현은 거짓된 사고 체계를 의미합니다. 거미는 자기 실로 그물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지혜를 신뢰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으로 논리의 그물을 짜서 거짓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미줄은 보기에는 정교하지만 옷이 될 수 없고, 사람을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표현을 통해 인간이 자기 지혜로 만들어 낸 거짓된 교리와 논증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AC.251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악과 거짓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알처럼 잉태되고, 점차 자라며, 결국 독사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자기 사랑과 자기 지혜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사59:5는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뱀은 단순히 하나의 악이 아니라, 거짓된 원리가 잉태되고 성장하여 마침내 인간의 삶 전체를 물들이는 과정을 상징하며, 독사의 알은 바로 그 시작 단계의 악과 거짓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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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4: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악이 어떻게 점차 발전하고 심화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 구절을 단순한 국가들 사이의 예언으로 보지 않고,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먼저 ‘뱀의 뿌리(the serpent's root)는 감각(senses)과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에 기초한 원리를 의미합니다. 원래 감각과 기억 지식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주님과 말씀보다 위에 놓이게 되면, 인간은 영적 진리를 감각과 자기 판단으로 재단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상태가 ‘뱀의 뿌리’입니다.

 

그다음 ‘독사(cockatrice)가 나옵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독사는 그 감각적 원리에서 나온 거짓으로부터 생겨난 악을 의미합니다. 즉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 판단을 신뢰하는 정도였지만, 점차 진리를 왜곡하고 거부하는 상태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아다니는 불뱀(flying fire serpent)이 나옵니다. 이것은 자기 사랑(love of self)에서 나오는 강렬한 정욕(cupidity)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fire)은 사랑을 뜻하지만, 악한 의미에서는 자기 사랑의 불타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또한 ‘날아다닌다(flying)는 것은 그 악이 더욱 빠르고 넓게 퍼지며, 인간 전체를 지배하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악의 성장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감각과 자기 지혜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원리가 생깁니다 (뱀의 뿌리). 그다음에는 거짓과 악이 생겨납니다 (독사). 그리고 마침내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강력한 욕망과 정욕이 인간을 지배하게 됩니다 (날아다니는 불뱀).

 

이 점은 AC.229-233에서 스베덴보리가 설명한 태고교회 후손들의 타락 과정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극악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감각을 지나치게 신뢰했고, 다음에는 신앙의 진리를 의심했으며, 그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마침내 악과 거짓이 그들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C.251에서 사14:29는 단순한 예언 구절이 아니라, 악의 영적 계보를 보여주는 말씀으로 인용됩니다. 뿌리는 감각적 자기 신뢰이고, 줄기는 거짓과 악이며, 열매는 자기 사랑의 불타는 정욕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모두 ‘’이라는 하나의 상징 안에 포함되는 다양한 단계들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AC.251, 심화 2, ‘사59:5’

AC.251.심화 2. ‘사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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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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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5)



AC.251

(serpent)이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을,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을 의미하는 이유는, 모든 악이 처음에는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와 기억 지식(memory-knowledge)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감각 파트와 기억 지식이 처음에는 으로 표상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은 모든 종류의 악을 의미하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 곧 이웃과 주님에 대한 증오를 의미합니다. 사실 자기 사랑과 이웃 및 주님에 대한 증오는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악과 증오는 매우 다양하여 수많은 종류(genera)와 그보다 더 많은 종(species)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말씀에서는 여러 종류의 뱀으로 묘사됩니다.(snakes), ‘독사(cockatrices), ‘아스프(asps), ‘살무사(adders), ‘불뱀(fiery serpents), ‘날아다니는 뱀(serpents that fly), ‘기어다니는 뱀(that creep), ‘독사(vipers) 등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모두 증오(hatred)라는 독(poison) 차이에 따른 것입니다. The reason why the “serpent” means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is that all evil has had its rise from that sensuous part of the mind and also from that memory-knowledge which at first were signified by the “serpent”; and therefore it here denotes evil of every kind,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or hatred against the neighbor and the Lord, which is the same thing. As this evil or hatred was various, consisting of numerous genera and still more numerous species, it is described in the Word by various kinds of serpents, as “snakes,” “cockatrices,” “asps,” “adders,” “fiery serpents,” “serpents that fly” and “that creep,” and “vipers,”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the poison, which is hatred.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3:3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8:17)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맹독이라 (32:33)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140:3)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21:6)

 

 

그래서 이사야는 Thus we read in Isaiah: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tia, because the rod which smiteth thee is broken, for out of the serpents root shall go forth a cockatrice, and his fruit shall be a flying fire serpent (Isa. 14:29).

 

여기 뱀의 뿌리(serpent’s root)는 감각과 기억 지식에 연결된 정신의 원리를 의미하고, ‘독사(cockatrice)는 거기서 나온 거짓으로부터 생겨난 악을 의미하며, ‘날아다니는 불뱀(flying fire serpent)은 자기 사랑에서 나오는 정욕(cupidity)을 의미합니다. 같은 선지자는 또 The “serpent’s root” denotes that part of the mind, or that principle, which is connected with the senses and with memory-knowledge; the “cockatrice” denotes evil originating in the falsity thence derived; and the “flying fire serpent,” the cupidity that comes from the love of self. By the same prophet also similar things are elsewhere thus described: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he that eateth of their eggs dieth, and when it is crushed there cometh out a viper (Isa. 59:5).

 

창세기에서 묘사된 이 뱀은 요한계시록에서는 큰 붉은 용(great and red dragon), ‘옛 뱀(old serpent), ‘마귀(devil), ‘사탄(satan), 그리고 온 천하를 미혹하는 자(deceives the whole world)라고 불립니다 (12:3, 9; 20:2).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마귀(devil)는 다른 악령들을 지배하는 어떤 특정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의 전체 무리와 악 자체(evil itself)를 의미합니다. The serpent described here in Genesis is called in the Revelation the “great and red dragon,” and the “old serpent,” and also the “devil and satan,” that “deceives the whole world” (12:3, 9; 20:2), where, and also in other places, by the “devil” is not meant any particular devil who is prince over the others, but the whole crew of evil spirits, and evil itself.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12:3)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2)

 

 

해설

 

이 글은 지금까지 설명되어 온 ‘’의 의미를 한층 더 확대하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AC.250에서 스베덴보리는 뱀을 일반적으로 모든 악, 특별히 자기 사랑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왜 뱀이 그런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왜 성경에 그토록 많은 종류의 뱀이 등장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모든 악은 처음부터 자기 사랑에서 나옵니다. 교만, 탐욕, 시기, 복수심, 지배욕, 증오, 멸시 등은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려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사랑과 이웃 및 주님에 대한 증오를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 주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이웃보다 자신을 우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뱀들은 서로 다른 악의 형태들을 상징합니다. 독이 강한 뱀일수록 더욱 깊고 악의적인 형태의 거짓과 증오를 의미합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뱀의 독(poison)을 ‘증오(hatred)에 대응시킵니다. 육체의 생명을 죽이는 독이 영적으로는 사랑과 신앙을 죽이는 증오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14:29의 ‘뱀의 뿌리 독사 날아다니는 불뱀’이라는 순서는 악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먼저 감각과 자기 판단에 의존하는 원리가 생기고(뱀의 뿌리), 거기서 거짓이 나오며(독사), 마침내 자기 사랑의 강렬한 정욕과 욕망이 생겨납니다(날아다니는 불뱀).

 

또한 사59:5의 ‘독사의 알’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거짓과 악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알이 부화하면 독사가 나오듯이, 잘못된 원리와 거짓된 생각을 품고 있으면, 결국 악한 삶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스베덴보리는 요한계시록의 ‘큰 붉은 용’, ‘옛 뱀’, ‘마귀’, ‘사탄’을 모두 창세기의 뱀과 연결합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곧 ‘마귀’란 어떤 한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악 자체와 악한 영들의 전체 집단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AC.251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창세기의 뱀은 단순한 동물도 아니고 단순한 유혹자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서 주님과 반대되는 모든 악의 원리를 의미하며, 그 중심에는 자기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뱀들은 모두 그 악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모습을 묘사하는 상징들인 것입니다.

 

 

심화

 

1. ‘14:29

 

 

AC.251, 심화 1, ‘사14:29’

AC.251.심화 1. ‘사14: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사14:29) Rejoice not thou, whole Phi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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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9:5

 

 

AC.251, 심화 2, ‘사59:5’

AC.251.심화 2. ‘사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사59:5) They hatch cockatrice’s eggs, and weave the spider’s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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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2:3

 

 

AC.251, 심화 3, ‘계12:3’

AC.251.심화 3. ‘계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계12:3)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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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2:9

 

 

AC.251, 심화 4, ‘계12:9’

AC.251.심화 4.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12:9) AC.251에서 스베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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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

 

 

AC.251, 심화 5, ‘계20:2’

AC.251.심화 5.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AC.251에서 스베덴보리가 이 구절을 인용하는 이유는, 창3의 ‘뱀’이 단순한 뱀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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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AC.251, 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AC.251.심화 6. ‘천 년 동안 결박하여’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계20:2) 아래는 스베덴보리의 ‘Apocalypse Revealed’ 관련 글인 AR.842에 대한 번역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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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2, 창3:15, ‘여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2‘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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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50,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AC.250-260)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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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 he shall trample upon thy head, and thou shalt bruise his heel. (3:15)



AC.250

이것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예언한 최초의 예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말씀 자체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며, 유대인들도 이 말씀과 예언자들의 글을 통하여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여기서 말하는 (serpent), ‘여자(woman), ‘뱀의 후손(serpent’s seed), ‘여자의 후손(woman’s seed),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그리고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것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여기서 은 일반적으로는 모든 악을 의미하며, 특별히는 자기 사랑(love of self)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교회(church)를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infidelity)을 의미합니다. ‘여자의 후손은 주님에 대한 신앙(faith in the Lord)을 의미합니다. ‘(he)는 주님 자신(the Lord Himself)을 의미합니다. ‘뱀의 머리는 일반적으로는 악의 지배(dominion of evil), 특별히는 자기 사랑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상하게 하다(trample upon)는 그것을 낮추고 억누르는 것(depression)을 의미하며, 그 결과 뱀은 배로 기어가고 흙을 먹게됩니다. 그리고 발꿈치는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the lowest natural), 곧 육체적인 것(the corporeal)을 의미하는데, 뱀은 바로 이것을 상하게(bruise) 할 것입니다. Everyone is aware that this is the first prophecy of the Lord’s advent into the world; it appears indeed clearly from the words themselves, and therefore from them and from the prophets even the Jews knew that a messiah was to come. Hitherto however no one has understood what is specifically meant by the “serpent,” the “woman,” the “serpent’s seed,” the “woman’s seed,” the “head of the serpent which was to be trodden upon,” and the “hee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They must therefore be explained.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all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e love of self; by the “woman” is meant the church; by the “seed of the serpent,” all infidelity; by the “seed of the woman,” faith in the Lord; by “he,” the Lord himself; by the “head of the serpent,” the dominion of evil in general, and specifically that of the love of self; by to “trample upon,” depression, so that it should “go upon the belly and eat dust”; and by the “heel,” the lowest natural (as the corporeal), which the serpent should “bruise.”

 

 

해설

 

AC.250은 창3:15 전체에 대한 스베덴보리의 핵심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뱀의 저주와 감각적 인간의 타락을 설명해 왔지만, 이제는 이 말씀이 단순한 타락의 기록이 아니라 장차 오실 주님에 대한 최초의 복음임을 밝힙니다.

 

특히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역사 속의 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영적 역사와 주님의 구속 사역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따라서 여기 등장하는 모든 표현은 상응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모든 악, 특히 자기 사랑을 의미합니다. 왜 자기 사랑이 특별히 언급되는가 하면, 지금까지 AC.229-243에서 계속 설명된 것처럼 태고교회 후손들의 근본적인 타락 원인이 바로 자기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인간을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고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게 만듭니다.

 

여자’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진리와 선을 받아들이고 주님과 결합하는 존재로 묘사되기 때문에 종종 여성으로 상징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여자는 단순히 하와 개인이 아니라, 장차 주님을 받아들일 교회를 의미합니다.

 

뱀의 후손’은 모든 불신을 의미합니다. 불신은 단순히 믿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주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뱀의 후손, 곧 뱀의 씨는 자기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거짓과 불신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대로 ‘여자의 후손’, 곧 ‘여자의 씨’는 주님에 대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주님 자신이시므로, 스베덴보리는 이어서 ‘(he)가 곧 주님 자신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여자의 씨는 단순한 인간적 신앙이 아니라, 장차 세상에 오실 주님과 그분에게서 나오는 참된 신앙을 가리킵니다.

 

뱀의 머리’는 악의 지배를 의미합니다. 특히 자기 사랑이 인간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머리는 지배와 통치를 상징하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악의 통치권을 깨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상하게 하다(trample upon)는 완전히 없애 버린다는 뜻보다 억누르고 복종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그것을 ‘낮추고 억압하는 것(depression)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뱀은 더 이상 높이 들리지 못하고, ‘배로 기어가며 흙을 먹는’ 상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발꿈치(heel)는 인간의 가장 낮은 자연적 차원, 곧 육체적 차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바깥 부분입니다. 따라서 뱀이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악이 인간의 외적 삶과 자연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공격과 시험을 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AC.250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창3:15은 단순히 뱀과 여자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과 주님 사이의 영원한 싸움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뱀은 악과 자기 사랑을, 여자는 교회를, 여자의 씨는 주님과 그분에게서 오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결국 악의 머리, 곧 악의 지배 자체를 꺾으실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악은 인간의 가장 바깥 차원인 ‘발꿈치’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베덴보리에게 이 구절은 성경 전체에서 처음 나타나는 메시아 예언일 뿐 아니라, 인류 구원의 역사 전체를 압축하여 보여주는 위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AC.251, 창3:15, ‘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AC.251‘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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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9, 창3:14, ‘흙’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창3:14)AC.249‘평생 흙을 먹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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