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And the man knew Eve his wife, and she conceived, and bare Cain, and said, I have gotten a man [vir], Jehovah. (창4:1)
AC.338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man and Eve his wife)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처럼 태고교회를 말합니다. 그 교회의 첫 번째 자손, 곧 처음 난 것을 신앙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가인’(Cain)이라 합니다. 하와가 말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I have gotten a man, Jehovah)라는 건, ‘가인’이라 하는 사람들한테 있어서는 신앙이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인식되고, 인정되었다는 말입니다. By the “man and Eve his wife”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as has been made known; its first offspring, or firstborn, is faith, which is here called “Cain”; her saying “I have gotten a man, Jehovah,” signifies that with those called “Cain,” faith wa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
해설
AC.338부터 스베덴보리는 창4:1의 각 표현을 본격적으로 풀이하기 시작합니다. 앞의 AC.324-337이 창4 전체의 개요였다면, 이제부터는 본문을 한 구절씩 따라가며 그 속뜻을 밝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를 다시 개인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태고교회를, 그들에게서 태어난 ‘가인’은 그 교회 안에서 처음 생겨난 어떤 교리적 변화를 나타냅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스베덴보리가 가인을 태고교회의 ‘첫 번째 자손, 곧 처음 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설명한다는 점입니다. 이것만 보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가인을 계속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가인을 단순히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문제는 신앙 자체가 태어났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태고교회 안에도 당연히 신앙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신앙을 사랑 안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사랑과 구별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AC.338의 핵심 표현인 ‘faith was recognized and acknowledged as a thing by itself’입니다. 이를 직역하면 ‘신앙이 그 자체로 하나의 것으로 인식되고 인정되었다’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뜻을 풀면 ‘신앙을 사랑과 별개로 독립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AC.337에서 살펴본 ‘가인의 분리’가 바로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됩니다. 처음부터 누군가가 ‘사랑은 필요 없다’고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 들어 있던 신앙을 따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미세한 변화처럼 보입니다. 태고교회 사람들에게 신앙은 본래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 있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이 선이고 진리인지 퍼셉션으로 알았으며, 그러므로 신앙을 사랑과 별개의 무엇으로 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랑’과 ‘신앙’을 구별하여 바라보고, 신앙을 하나의 독립된 실재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이 단계에서는 체어리티를 노골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바로 이 작은 분리에서 이후의 모든 문제가 시작될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부부간 준수 사항’의 비유가 여기에도 잘 들어맞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에게 존중과 배려와 약속은 원래 사랑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들을 사랑에서 떼어 ‘부부생활 준수 사항’이라는 독립된 체계로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당장 사랑을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차 독립적인 중요성을 갖고, 나중에는 ‘사랑이 없어도 이 규칙만 지키면 좋은 부부다’라는 데까지 나아간다면 본래의 질서는 완전히 뒤집힙니다. 가인의 시작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체어리티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신앙을 사랑에서 떼어 하나의 독립된 것으로 바라본 데서 시작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하와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영어 번역은 ‘I have gotten a man, Jehovah’라고 되어 있는데, 스베덴보리는 이 표현을 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새롭게 나타난 신앙을 하나의 중요한 실재로 ‘인식하고 인정했다’는 것을 읽어 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신앙을 거짓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되고 중요한 것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가인의 위험성은 처음부터 명백한 거짓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신앙에 속한 것을 사랑에서 떼어 내어 그 자체로 세운 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단’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이단은 언제나 처음부터 모든 진리를 부정하면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것 가운데 하나를 떼어 내어 전체보다 높이고, 본래 그것이 연결되어 있어야 할 다른 진리들과 분리하면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참된 것입니다. 교리도 필요합니다. 진리를 알고 고백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하여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만드는 순간, 참된 것이 오히려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AC.338에서 ‘처음 난 것’이라는 표현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인이 시간적으로 태고교회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한 개인이었다는 식으로만 이해하기보다, 태고교회로부터 처음 갈라져 나온 교리의 성격을 보여 주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우리가 앞에서 계속 확인했듯 창4와 창5의 계보를 단순한 시간표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의 관심은 ‘몇 년 뒤에 누가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태고교회의 생명에서 어떤 교리의 흐름이 생겨났으며, 그것이 어떤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앙을 구별하는 것’과 ‘신앙을 분리하는 것’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사랑과 신앙을 개념적으로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히려 그렇게 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AC.337에서 스베덴보리도 오늘날에는 신앙이 먼저이고, 주님께서 그 신앙으로 체어리티를 심으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구별된 신앙을 사랑 없이도 참된 신앙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데 있습니다. ‘구별’이 ‘분리’가 되고, 분리된 것이 마침내 자신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높일 때, 그것이 가인의 길이 됩니다.
따라서 AC.338은 가인의 타락이 이미 완성된 상태를 보여 주는 글이라기보다, 그 타락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변화였습니다. 사랑 안에 살아 있던 신앙을 따로 떼어 바라보고, 그것을 ‘그 자체로 하나의 것’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분리가 계속 진행되면, 신앙이 체어리티보다 자신을 높이고, 마침내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AC.338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믿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도 물어야 합니다. 아무리 참된 교리라도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서 분리되어 자기 확신과 자기 우월성을 강화하는 데 사용된다면, 그 진리는 본래의 질서를 잃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앙이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악을 버리게 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게 한다면, 그 신앙은 체어리티와 결합하면서 자신의 참된 생명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AC.338의 핵심은 ‘가인은 신앙이다’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가인은 사랑 안에 있어야 할 신앙을 그 자체로 독립된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상태다’라는 데 있습니다. 가인의 ‘분리’는 어느 날 갑자기 체어리티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였던 것을 둘로 떼어 바라보는 작은 변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베덴보리는 바로 그 미세한 시작점에서부터 교회의 쇠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이제 창4 본문을 따라 하나씩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AC.337, 창4, ‘배경’ - ‘참된 교회가 어떠했는지를 먼저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
AC.337 이 장은 태고교회의 퇴보, 곧 그 교리가 왜곡된 것과, 그 결과 생겨난 이단들과 분파들을 가인과 그의 후손들의 이름 아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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