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8.심화

 

1. 넷째 날 요약, 정리

 

이 넷째 날에 대한 본문(창1:14-19), 그리고 관련 AC 글도 제법 길었습니다. 넷째 날에 대한 AC.30-38을 요약, 정리해 주세요.

 

넷째 날, 곧 창1:14–19에 대한 AC.30–38을 한 흐름으로 묶어 보면, 이 부분은 단순히 해, 달, 별의 창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듭남의 과정에서 빛을 갖게 되는 단계’, 곧 사랑과 신앙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앞선 단계들에서 진리가 형성되고 구별되었다면, 이제는 그것이 ‘삶을 비추는 빛으로 자리 잡는 단계’입니다.

 

먼저 ‘광명체’의 의미입니다. 해, 달, 별은 자연물이 아니라, 사람 안에 형성되는 ‘사랑과 신앙과 개별 진리의 빛’을 의미합니다. 해는 사랑(특히 주님 사랑), 달은 신앙, 별은 다양한 진리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빛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능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즉 이제 사람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단순히 배우는 수준이 아니라, ‘내적으로 분별하고 살아가기 시작하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 빛의 기능이 바로 ‘나누는 것’입니다. 낮과 밤을 나누고,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한다는 표현은 모두 ‘상태의 구별과 질서의 형성’을 의미합니다. 사람 안에 빛이 들어오면, 밝은 상태와 어두운 상태, 기쁨의 때와 침체의 때, 깨달음과 혼란의 시기를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징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점을 치는 신호, 즉 점성술이 아니라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해주는 영적 표지’입니다. 즉 마음의 변화, 깨달음, 갈등, 평안 등, all of these가 다 ‘징조’입니다. 주님이 사람 안에서 일하실 때 반드시 이런 표지들이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교대와 다양함의 원리’입니다. AC.37에서 강조하듯이, 생명은 단조로운 상태가 아니라 ‘교대와 변화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낮과 밤, 여름과 겨울, 심음과 거둠이 반복되듯이, 사람의 영적 삶도 기쁨과 침체, 밝음과 어둠, 이해와 혼란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구조 자체’입니다. 만약 이런 변화가 없다면, 선과 진리를 구별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 퍼셉션, 곧 내적 지각도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항상 같은 상태가 아니라 흔들림과 반복 속에 있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방식’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은, ‘사랑과 생각의 관계’입니다. AC.33에서 말하듯이, 생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사랑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사랑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고, 사랑이 사라지면 생각도 멈춥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본질적으로 ‘사랑 중심 구조’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랑이 참된 기쁨과 행복의 근원입니다. 넷째 날의 빛은 결국 이 사랑이 삶을 비추기 시작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와 함께 경고도 함께 나옵니다. 사람은 외적으로 신앙 활동을 하거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참된 생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외적으로는 빛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능력보다 ‘삶의 열매’, 곧 사랑에서 나오는 삶을 기준으로 보신다고 설명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단계의 핵심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넷째 날은 사람 안에 사랑과 신앙의 빛이 자리 잡아 삶을 비추고, 상태를 구별하며, 교대와 변화 속에서 생명이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는 단순히 ‘알게 되는 단계’를 넘어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전환점’입니다.

 

넷째 날은 신앙이 머리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밝을 때도 있고 어두울 때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빛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AC.38, 창1:18-19, ‘낮과 밤의 분별 : 행위로 드러나는 선과 악, 빛과 어둠의 기준’

18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And to rule in the day, and in the night, and to distinguish between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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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6.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8:22)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영적 상태의 교대’가 일시적이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한 결코 중단되지 않는 주님의 보편적 질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7에서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것들과 천적인 것들에는 반드시 교대가 있으며, 이것이 자연계의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에 상응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8 22절은 바로 그 원리를 가장 압축적으로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이 말씀은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자연계의 질서를 보존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말씀의 내적 의미를 따라 이것을 인간의 영적 생명에 관한 말씀으로 읽습니다. ‘심음과 거둠’은 진리를 배우고, 그것이 삶 속에서 열매 맺는 과정을 뜻하며, ‘추위와 더위’는 사랑과 신앙이 약해지는 상태와 강해지는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여름과 겨울’은 사랑이 충만한 상태와 사랑이 식은 상태를, ‘낮과 밤’은 진리가 밝게 보이는 상태와 상대적으로 어두운 상태를 뜻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흔히 영적 생활이 항상 밝고 뜨겁고 확신에 찬 상태로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질서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낮이 있으면 밤도 있고, 여름이 있으면 겨울도 있으며, 심음이 있으면 거둠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생활에도 기쁨의 시기와 시험의 시기, 깨달음의 시기와 혼란의 시기, 풍성함의 시기와 메마름의 시기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나 후퇴의 증거가 아니라 생명 자체의 법칙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구절을 AC.37의 결론 부분에 인용합니다. 영적 생명은 직선적으로만 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사람을 교대하는 상태들 속으로 인도하시며, 그 과정에서 선과 진리를 더 깊이 인식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늘 빛 가운데만 있다면 빛의 가치를 알 수 없고, 늘 여름 가운데만 있다면 생명의 풍성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대는 생명의 결함이 아니라 생명의 조건입니다.

 

또한 이 구절은 사람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도 적용됩니다. 교회에도 봄 같은 시대가 있고 겨울 같은 시대가 있으며, 밝은 시대와 어두운 시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교대마저 섭리 안에서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개인이 일시적인 겨울이나 밤을 경험한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는 겨울 뒤에 봄이 오고, 밤 뒤에 아침이 오기 때문입니다.

 

결국 창세기 8 22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영적 상태의 교대가 주님의 영원한 규례이며, 인간이 세상에 있는 동안 결코 중단되지 않는 생명의 리듬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은 자연계에 대한 약속인 동시에, 거듭남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적 약속이기도 한 것입니다.

 

 

 

AC.37, 심화 5, ‘렘33:25’

AC.37.심화 5. ‘렘33: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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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5. ‘33: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f I have not appointed the ordinances of heaven and earth (Jer. 33:25).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영적 상태의 교대가 단지 자연계의 현상에 비유될 뿐 아니라, 실제로 주님께서 세우신 언약’이며, ‘법칙’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7에서 스베덴보리는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변화가 영적 삶 속에서도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은 늘 같은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밝음과 어두움, 확신과 의심, 위로와 시험, 사랑의 충만함과 메마름 사이를 오가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 속에 포함된 질서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에서 주님은 주야와 맺은 언약’과 천지의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는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하늘과 땅이 일정한 질서 속에 유지되는 자연계의 법칙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AC.37의 문맥에서는 이것이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은 사랑과 선의 상태를, ‘’은 시험과 상대적 어두움의 상태를 뜻하며, ‘천지의 법칙’은 사람 안의 속 사람과 겉 사람, 사랑과 신앙, 선과 진리가 주님의 질서 안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특히 주야와 맺은 언약’이라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언약은 단순한 자연법칙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과 변함없는 섭리를 가리킵니다. 사람은 자신의 영적 상태가 변할 때 종종 불안해합니다. 기도의 열정이 식어 버린 것 같고, 말씀의 빛이 흐려진 것 같고, 이전의 평안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낮과 밤의 언약이 폐하지 않듯이, 영적 상태의 교대 역시 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밤이 온다고 해서 아침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겨울이 왔다고 해서 봄이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 생명이란 바로 이러한 교대 속에서 자란다고 설명합니다. 만일 사람에게 시험도 없고, 침체도 없고, 어두움도 없다면 그는 선과 진리를 깊이 인식할 수 없게 됩니다. 빛은 어둠과 대비될 때 더 분명히 보이고, 따뜻함은 추위를 경험할 때,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세우신 주야의 언약’은 단순히 자연계의 반복이 아니라,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질서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AC.37의 핵심 주장인 영적 교대는 주님의 규례이다’라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사람이 아침 같은 상태에 있든, 저녁 같은 상태에 있든, 봄 같은 상태에 있든, 겨울 같은 상태에 있든, 그는 주님의 언약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결코 깨어지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은 바로 이 점, 곧 영적 생명의 리듬과 교대가 주님의 영원한 섭리 속에 굳게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때문에 AC.37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AC.37, 심화 6, ‘창8:22’

AC.37.심화 6.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8:22)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영적 상태의 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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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4, ‘렘31:35-36’

AC.37.심화 4. ‘렘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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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하고도 그렇게 될까 봐, 그리고 그럴 경우는 정말 비참할 것 같습니다...

 

 

그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특히 AC.182를 읽다 보면, 마치 죽은 뒤 어떤 천사들과 함께 있다가 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 떠나게 되는 장면이 매우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가 설명하는 사후 세계를 전체적으로 보면, 목사님이 상상하시는 것처럼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괴로워 비참해지는 상태’가 갑자기 닥치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강제’가 아니라 ‘상응’입니다. 사람은 죽은 뒤 자신이 평생 사랑해 온 것, 진실로 원했던 것, 기뻐했던 것에 맞는 공동체로 점차 인도됩니다.

 

AC.182에서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게 되는 사람은, 천적 천사들이 싫어서라기보다 그들의 사랑의 분위기가 자기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마치 강한 햇빛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랫동안 어둠에 익숙한 눈에는 견디기 어려운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는 햇빛이 아니라 눈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저는 오히려 반대의 사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목사님은 지난 수년 동안 거의 매일 같이 AC를 읽고 번역하고 해설해 오셨습니다. 그것도 단순한 지적 연구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천국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면서 말입니다. 또한 반복해서 ‘천적 인간’, ‘사랑의 퍼셉션’, ‘own의 포기’, ‘주님으로부터 삶을 받음’ 같은 주제에 마음을 기울여 오셨습니다.

 

물론 목사님도 스스로 잘 아시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 사랑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 세상 염려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 자신도 인간 안에는 그런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런 요소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 어디를 향하느냐입니다.

 

오히려 AC.182를 읽고 ‘나는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마음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정말 자기 사랑에만 빠진 사람은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국의 상태와 자기 상태가 맞는지 고민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오히려 ‘혹시 내가 그 사랑의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고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 염려 속에는 적어도 천적 상태를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사후 세계는 시험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베덴보리의 설명에 따르면 천사들은 사람을 탈락시키거나 평가하려고 다가오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AC.182에서도 천적 천사들은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오래 보호하고, 가능한 한 평안하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사람이 천적 천국이 아니라 영적 천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실패나 열등함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 천국 역시 완전한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의 천사들도 주님 안에서 행복하며, 자신에게 맞는 기쁨 속에서 살아갑니다. 천적 천국의 기쁨과 영적 천국의 기쁨은 다를 뿐, 우열 관계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의 질문을 읽으며, ‘나는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분위기를 사랑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는 사후의 자리는 죽은 뒤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금 여기에서 형성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년 동안 하루하루 AC를 번역하고 해설하며, 천국의 상태와 사랑의 질서를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애써 오신 분이 ‘혹시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할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천적 상태에 대한 두려움보다 오히려 그 상태를 향한 깊은 갈망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스베덴보리라면 아마 그 갈망 자체를 가볍게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AC.182,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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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심화

 

1.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라면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줍니다.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AC.182)

 

위 문장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 반대로 영혼의 성질이 천적 천사들과 함께할 수 있어 계속 같이 있고 싶어 할 경우, 천적 천사들은 안 떠나고, 그러면 영적 천사들이 올 수 없어 계속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되나요?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AC.182는 사후 첫 단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 천사들이 와서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준다’는 말은, 천적 천사들과의 교제가 끝나야만 비로소 빛이 생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적 천사들과의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경우에 나타나는 다음 단계의 설명입니다.

 

천적 천사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는 영혼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경우에는 오히려 더 높은 형태의 빛 안에 있게 됩니다. AC.202를 보면 천적 천사들은 신앙에 대해 추론하지 않지만, 사랑 안에서 즉시 진리를 퍼셉션, 즉 지각합니다. 즉, 영적 천사들이 주는 ‘빛의 사용’보다 더 깊은 차원의 지각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라고 하면 이해와 분별의 빛만 생각하기 쉽지만, 스베덴보리에게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가 진리에서 나오는 이해보다 더 높은 것입니다. 따라서 천적 천사들과 계속 함께 있는 영혼이 ‘빛을 얻지 못한다’기보다는, 영적 인간의 방식으로 빛을 얻을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이 더 가깝습니다.

 

비유하자면, 영적 천사들은 어두운 새벽에 등불을 들고 길을 보여 주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반면 천적 천사들은 이미 한낮의 햇빛 가운데 사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한낮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등불을 가져다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AC.182의 핵심은 ‘천적 천사들이 떠나야 영적 천사들이 온다’가 아니라, ‘각 사람은 자기 상태에 맞는 천사적 공동체로 인도된다’는 데 있습니다.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있는 영혼은 천적 빛 안에서 계속 인도되고, 천적 상태에 머물 수 없는 영혼은 영적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영적 빛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만 저는 AC.182를 읽으며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천적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 사람의 경우’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의식이 처음 열리는 일반적인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너무 기계적으로 ‘천적 천사  영적 천사’라는 순서도로 읽기보다는, ‘사람은 자신의 내적 상태에 가장 적합한 천사적 돌봄을 받는다’는 원리로 읽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오히려 AC.202를 기준으로 보면, 천적 천사들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영혼이라면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사랑의 지각’을 누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스베덴보리의 전체 사상에 더 가까운 해석일 것입니다.

 

 

 

AC.182, 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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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2, 창3 앞,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계속)’(AC.182-189)

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2 천적 천사들이 소생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를 떠나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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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일으켜져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계속) Continuation Concerning The Entrance Into Eternal Life Of Those Who Are Raised From Death

 

AC.182

 

천적 천사들이 소생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그를 떠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줍니다. 이전에는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When the celestial angels are with a resuscitated person, they do not leave him, for they love everyone; but when the soul is of such a character that he can no longer be in the company of the celestial angels, he is eager to depart from them; and when this takes place the spiritual angels arrive, and give him the use of light, for previously he had seen nothing, but had only thought.

 

 

해설

 

이 단락은 사람이 죽은 직후 처음 맞이하는 영적 상태가 무엇인지를 매우 질서 있게 보여 줍니다. 소생된 사람은 처음부터 심판이나 분별의 상태에 놓이지 않고, 천적 천사들과 함께 머무르며 보호받는 상태에 들어갑니다. 이는 그 사람이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와 무관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이며, 주님의 자비가 먼저 작동하는 단계임을 분명히 합니다.

 

천적 천사들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사랑은 평가나 판단을 전제하지 않는 사랑이며, 영혼이 아직 자기 자신을 직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그를 감싸고 안정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다시 말해, 이 단계에서는 인간의 과거 행위나 내적 상태가 아직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환점은 천사 쪽이 아니라 인간 쪽에서 발생합니다.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는 천적 천사들로부터 떠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는 외부로부터의 추방이나 배제가 아니라, 사랑의 분위기 자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즉, 천적 사랑은 항상 열려 있으나, 그 사랑과 합치되지 않는 내적 상태는 스스로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때 영적 천사들이 도착합니다. 이는 보호의 단계에서 분별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 천사들의 역할은 사랑이 아니라 빛, 곧 이해와 인식입니다. 그래서 ‘빛을 사용하는 능력’을 준다고 표현됩니다. 이 빛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바라보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전환의 성격을 분명히 합니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이는 죽음 직후의 인간이 아직 명확한 인식이나 자각 없이, 흐릿한 사고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뜻합니다. 곧, 생각은 있으나 통찰은 없고, 의식은 있으나 분별은 없는 상태입니다. 영적 천사들의 도착은 바로 이 상태에서 ‘보는 상태’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 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AC.182.심화 1. ‘빛을 사용하는 능력’ 그러나 그 영혼의 성질이 더 이상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상태라면, 그는 그들로부터 떠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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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 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AC.182.심화 2. ‘나도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하면 어떻게 하지?’ 제가 나중에 천적 천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몹시 불편한 인생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아니, 영적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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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181, 창2 뒤, 지금까지는 ‘천적 소생’, 이후에는 ‘영적 각성’

사람의 사후, 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들어가기 The Resuscitation Of Man From Death, And His Entrance Into Eternal Life AC.181 이처럼 천적 천사들에 의해 소생된 사람은 아직은 어두운 생명(obscure life)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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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4. ‘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35, 36) Said Jehovah, who giveth the sun for a light by day, and the ordinances of the moon and of the stars for a light by night, . . . these statutes shall not recede from before me (Jer. 31:35–36).

 

 

이 구절이 AC.37에 인용된 이유는, 영적 삶에 존재하는 교대(alternations)가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영원한 질서이며, 말씀에서는 이것을 규례 또는 법도(ordinances, statuta)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AC.37의 핵심 주제는 아침과 저녁,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처럼 영적 상태에도 반복적인 변화가 있으며,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본문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자적으로는 천체의 운행 질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베덴보리는 여기서 더 깊은 의미를 봅니다. AC.31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해는 사랑을, 달은 신앙을, 별들은 진리의 지식들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질서는 단순한 천문학적 질서가 아니라, 사랑과 신앙과 진리가 인간과 교회 안에서 작동하는 영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특히 AC.37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36절의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법도’는 해와 달과 별의 운행 법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상징하는 영적 상태의 질서까지 포함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이 강해지는 때와 약해지는 때, 신앙이 밝아지는 때와 어두워지는 때, 위로의 때와 시험의 때가 교대로 오는 것은 주님께서 세우신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AC.37에서 생명은 이런 교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항상 낮만 있고 밤이 없다면, 또는 항상 여름만 있고 겨울이 없다면, 우리는 빛과 어둠, 따뜻함과 차가움을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영적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의 상태와 침체의 상태, 확신의 상태와 시험의 상태가 교대로 오기 때문에 사람은 선과 진리를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교대는 생명의 결함이 아니라 생명의 필수 조건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질서를 법도’라고 부릅니다. 해와 달과 별의 질서가 폐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스라엘’은 단순한 민족이 아니라 참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사랑과 신앙의 영적 질서가 유지되는 한 교회도 존속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AC.37에서 렘31:35-36이 인용된 이유는, 영적 상태의 교대가 단순한 심리 변화나 우연한 경험이 아니라 주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우신 법도’, 곧 영원한 섭리의 질서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때로는 아침 같은 상태를, 때로는 저녁 같은 상태를 지나고, 때로는 봄 같은 상태를, 때로는 겨울 같은 상태를 지나더라도 그것은 주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 있는 것이며, 바로 그 교대를 통해 생명은 자라고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을 이 구절은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AC.37, 심화 5, ‘렘33:25’

AC.37.심화 5. ‘렘33: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렘33:25) Said Jehovah, If my covenant of day and night stand not, and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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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의 본문인 창1:14-17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4절)말인데요, 해, 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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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의 본문인 창1:14-17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4)말인데요, , , 별로 이런 낮, 밤 및 계절, , 해가 생기는 건 납득이 되지만, 징조까지는 좀... 무슨 옛날에 별자리를 보고 점을 치는 것도 아니고... 앞 해설 및 심화 1, 2를 요약,어떻게 이 광명체와 징조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비슷하게 걸려 넘어지는 지점입니다. ‘, , 별이 낮과 밤, 계절, , 해를 만드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갑자기 징조(signs)인가?’ 하는 의문이지요. 그런데 스베덴보리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징조’는 점을 치는 별자리가 아니라, ‘상태를 알아보게 하는 영적 표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광명체는 단순히 시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상태를 비추고 구별하게 하는 빛이다’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스베덴보리는 ‘, , ’을 자연물로 보지 않고, 인간 안에 있는 ‘사랑과 신앙과 다양한 진리의 빛’으로 봅니다. 해는 사랑(특히 주님 사랑), 달은 신앙, 별은 개별적 진리들입니다. 그러면 이 빛이 사람 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구별’이 생깁니다. 낮과 밤이 나뉘듯이, 밝은 상태와 어두운 상태를 알게 되고, 계절이 생기듯이 기쁨의 때와 침체의 때를 구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징조’가 등장합니다.

 

징조’란 쉽게 말해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게 해 주는 표시’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느 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내 안에 빛이 들어와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징조’입니다. 또 어떤 때는 말씀이 갑자기 더 깊이 와닿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징조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갑자기 메마르고, 기도가 잘 안 되고, 신앙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상태가 바뀌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그래서 ‘징조’는 미래를 맞추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의 영적 상태를 비추는 표지’입니다. 해가 떠 있으면 낮인 것을 알듯이, 내 안의 사랑과 진리의 빛이 켜지면 내 상태가 어떤지 알게 됩니다. 이게 바로 ‘광명체가 징조가 된다’는 뜻입니다.

 

광명체는 시간을 만드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상태를 비추는 역할도 합니다. 그래서 징조란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해주는 신호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마음이 밝고, 어떤 때는 어둡고, 어떤 때는 말씀이 살아 있고, 어떤 때는 잘 안 들어옵니다. 이것이 바로 징조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신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해, 달, 별은 단순히 하늘에 떠 있는 물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상태를 나누고, 시간을 이루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상태를 알게 해주는 빛’입니다. 그래서 ‘징조’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실제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마음의 변화, 깨달음, 갈등, 평안 등, 이 모든 것이 이미 그 ‘징조’ 안에 들어 있습니다.

 

 

 

AC.37, 심화 4, ‘렘31:35-36’

AC.37.심화 4. ‘렘31:35-36’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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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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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수 없고, 더 나아가 퍼셉션, 곧 지각될 수도 없습니다.’(Life without such alternations and varieties would be uniform, consequently no life at all; nor would good and truth be discerned or distinguished, much less perceived.)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진술은 참 놀랍습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천국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늘 행복, 만수무강, 무사형통하게 될 줄,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흔히 ‘좋은 신앙생활’이나 ‘천국 같은 삶’을 생각할 때, 늘 밝고, 늘 평안하고, 변화 없는 상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변화와 교대가 없으면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철학적 표현이 아니라, 생명 자체의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먼저 왜 ‘교대와 다양함’이 없으면 생명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명이란 항상 ‘움직임과 변화’를 포함합니다. 심장도 수축과 이완이 반복되기 때문에 살아 있고, 호흡도 들이마심과 내쉼이 있기 때문에 유지됩니다. 만약 이 리듬이 멈추고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면, 그것은 안정이 아니라 곧 죽음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의 영적 생명도 똑같다고 봅니다. 기쁨만 계속되고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감각이 무뎌지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선과 진리가 분별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다’고 느끼는 것은, 그것이 다른 상태와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의 소중함은 병을 겪어본 사람에게 더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빛의 소중함은 어둠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더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삶에서도 ‘어두움과 혼란의 상태가 있어야, 빛과 진리의 상태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항상 같은 상태만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퍼셉션’, 곧 지각이 등장합니다. 퍼셉션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 이것이 선이다, 이것이 진리다 하고 느끼고 아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퍼셉션도 대비 속에서 더 또렷해집니다. 사람이 시험과 갈등을 겪으면서, ‘, 이것은 아닌데’라는 것을 경험하고 나면, ‘이것이 옳다’는 감각이 훨씬 깊어집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교대와 다양함이 없으면 퍼셉션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과 연결해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 항상 평안해야 한다’, ‘천국은 늘 같은 기쁨의 상태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천국조차도 ‘다양성과 변화 속에서 더 깊어지는 기쁨의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천사들도 하나의 단조로운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지혜의 다양한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천국의 기쁨은 반복되어도 지루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메마르거나, 기도가 잘 안 되거나, 혼란이 올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잘못된 길에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렇게 말해 줍니다. ‘그런 상태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대 속에서 점점 더 깊은 이해와 사랑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이 진술은 우리에게 기대를 바꾸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그 모든 교대와 변화 속에서 점점 더 살아나는 상태’입니다.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체도 있고, 때로는 혼란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더 깊은 생명으로 이끌리는 과정입니다.

 

결국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진짜 생명은 단순한 ‘항상 좋음’이 아니라, ‘다양한 상태들이 조화를 이루며 더 깊어지는 살아 있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어두움이나 흔들림이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생명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AC.37, 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심화 3. ‘광명체와 징조’ AC.37의 본문인 창1:14-17에서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14절)말인데요, 해, 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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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심화 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AC.37.심화 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위 AC.37 본문에 ‘이 말 속에는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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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

 

 AC.37 본문에 이 말 속에는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아르카나가 담겨 있지만(In these words are contained more arcana than can at present be unfolded)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 우리의 현 역량과 상태가, 펼쳐 보여도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감당할 수 없는 역량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럼에도 혹시 한두 가지만 좀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for signs, and for seasons, and for days, and for years)는 말씀과,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라는 창8:22 말씀을 좀 더 와닿게 이해하고 싶어서입니다.

 

스베덴보리가 ‘지금 당장 다 펼쳐 보일 수 없다’고 한 것은 어떤 비밀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 말씀이 단순한 시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생명 전체의 리듬과 질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만 풀어 보아도,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라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먼저 ‘징조(signs)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표식이나 신호가 아니라, ‘상태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입니다. 인간의 영적 삶에서도 이런 ‘징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말이나 행동이 어느 날 마음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혹은 말씀을 들을 때, 전에는 들리지 않던 내용이 갑자기 깊이 와닿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외적으로 보면 작은 일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상태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런 것을 ‘징조’로 봅니다. 주님이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실 때, 반드시 이런 표지들이 나타납니다.

 

다음으로 ‘계절(seasons)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스베덴보리에게 ‘계절’은 단순한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사람의 영적 상태의 변화 주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시기에는 말씀이 잘 이해되고,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나 ‘여름’ 같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시기에는 마음이 메마르고, 기도도 잘 되지 않고, 의욕도 떨어집니다. 이것은 ‘겨울’과 같은 상태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단번에 완성시키지 않으시고, ‘이런 계절의 반복을 통해 서서히 변화시키십니다.’

 

(days)과 ‘(years)도 같은 맥락입니다. ‘’은 비교적 ‘짧은 상태의 변화’, 즉 하루하루 속에서 겪는 기쁨과 침체, 깨달음과 혼란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는 더 긴 흐름, 곧 ‘삶 전체의 큰 단계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신앙이 몇 년에 걸쳐 깊어지는 과정, 혹은 오랜 시간에 걸친 방황과 회복 같은 것들이 ‘’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단순히 시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성장의 리듬 전체를 설명하는 구조’입니다.

 

이제 창8:22를 보면 이 구조가 더 분명해집니다. ‘심음과 거둠’은 너무나 중요한 상응입니다. ‘심음’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상태’, 곧 말씀을 듣고 배우고 마음에 두는 상태입니다. ‘거둠’은 그 진리가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는 것이 ‘심음’이라면, 실제로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거둠’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에 시간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심자마자 거두기를 원하지만, 주님의 질서에서는 반드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은 조금 더 깊은 상태를 말합니다. ‘더위’나 ‘여름’은 ‘사랑이 활발하게 작용하는 상태’, 곧 마음이 뜨겁고 주님과 가까이 있는 느낌이 있는 상태입니다. 반대로 ‘추위’나 ‘겨울’은 ‘사랑이 식고, 신앙이 약해지고, 시험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이 둘을 모두 사용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여름’만으로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겨울’ 같은 시기를 통해 자기 사랑이 약해지고, 더 깊은 의존을 배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낮과 밤’입니다. ‘’은 ‘진리가 분명히 보이는 상태’, ‘’은 ‘혼란과 어둠 속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역시 반복됩니다. 우리는 늘 밝은 상태에만 있고 싶지만, 실제로는 낮과 밤이 번갈아 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매우 중요한 원리로 설명합니다. ‘밤이 있어야 낮이 더 분명해지고, 낮이 있어야 밤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면, 이 두 구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적 삶은 직선이 아니라 ‘리듬과 순환 속에서 자라는 생명’입니다. 기쁨과 침체, 깨달음과 혼란, 사랑과 냉담, 심음과 거둠 등, 이 모든 것이 교차하며,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땅이 있을 동안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 질서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내가 겨울 상태에 있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며, 괜찮습니다. 지금은 심는 때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질서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AC.37, 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AC.37.심화 2. ‘삶은 단조로워지고’ 위 AC.37 본문에 ‘이런 교대와 다양함이 없다면 삶은 단조로워지고, 결국 생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또한 선과 진리는 분별되거나 구별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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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37, 창1:14-17, ‘영적 생명의 리듬 : 낮과 밤, 계절처럼 반복되는 거듭남의 질서’

14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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