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
AC.50
태고교회는 ‘주의 형상’(image of the Lord)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천사들과 영들에 의해 주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들을 통해 사람은 영계와 소통하고, 천사들을 통해서는 천국과 소통하는 것이지요. 영계를 통한 소통과, 천국을 통한 소통, 그리고 그 천국을 통해 주님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전혀 살 수 없는 구조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이 결합에 전적으로 달려 있어서, 만일 영들과 천사들이 물러난다면 그는 즉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The most ancient church understood by the “image of the Lord” more than can be expressed. Man is altogether ignorant that he is governed of the Lord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that with everyone there are at least two spirits, and two angels. By spirits ma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angels with heaven. Without communication by means of spirits with the world of spirits, and by means of angels with heaven, and thus through heaven with the Lord, man could not live at all; his life entirely depends on this conjunction, so that if the spirits and angels were to withdraw, he would instantly perish.
[2] 사람은 거듭나기 전과 후에 있어 다스림을 받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이 사람과 함께 있으며, 그들이 사람을 강하게 지배합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천사들은 함께 있으나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만 사람이 가장 극단적인 악으로 떨어지지만 않도록 막아 주며, 그의 본성적 욕구를 통해서는 선으로, 감각의 오류를 통해서는 진리 쪽으로 향하게 할 뿐입니다. 이때 사람은 함께 있는 영들을 통해 영계와는 소통하지만,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천사들이 그 지배를 겨우 막고 있는 상태이므로, 천국과의 소통은 매우 미약합니다. While man is unregenerate he is governed quite otherwise than when regenerated. While unregenerate there are evil spirits with him, who so domineer over him that the angels, though present, are scarcely able to do anything more than merely guide him so that he may not plunge into the lowest evil, and bend him to some good—in fact bend him to good by means of his own cupidities, and to truth by means of the fallacies of the senses. He then has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of spirits through the spirits who are with him, but not so much with heaven, because evil spirits rule, and the angels only avert their rule.
[3]그러나 사람이 거듭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제는 천사들이 주도적으로 다스리며, 사람에게 모든 선과 진리를 불어넣고, 악과 거짓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혐오를 일으키게 합니다. 물론 천사들이 이끌기는 하지만, 그것은 봉사의 방식일 뿐이며, 실제로 사람을 다스리는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천사들과 영들의 사역을 통해 사람을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서는 먼저 복수형으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Let us make man in our image)라고 하고, 곧이어 단수형으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셨다’(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일하시지만, 다스림과 창조의 주체는 오직 주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도 이 점을 이사야에서 분명히 밝히십니다. But when the man is regenerate, the angels rule, and inspire him with all goods and truths, and with fear and horror of evils and falsities. The angels indeed lead, but only as ministers, for it is the Lord alone who governs man through angels and spirits. And as this is done through the ministry of angels, it is here first said, in the plural numb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yet because the Lord alone governs and disposes, it is said in the following verse, in the singular number, “God created him in his own image.” This the Lord also plainly declares in Isaiah: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사44:24) Thus saith Jehovah thy redeemer, and he that formed thee from the womb, I Jehovah make all things, stretching forth the heavens alone, spreading abroad the earth by myself (Isa. 44:24).
천사들 자신도 자신들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으며, 오직 주님한테서 나오는 그분의 힘으로만 자기들은 일한다고 고백합니다. The angels moreover themselves confess that there is no power in them, but that they act from the Lord alone.
해설
이 글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인간의 외형이나 도덕성 차원이 아니라, ‘영적 통치 구조’의 관점에서 풀어 줍니다. 태고교회가 ‘주의 형상’을 매우 깊이 이해했다는 말은, 그들이 인간의 생명이 어디서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퍼셉션을 통해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주님–천국–천사–영계–인간’이라는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연결이 끊기면, 인간은 단순히 약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가 유지되지를 않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충격적인 진술 중 하나는, 사람이 자신에게 영들과 천사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신비주의적 주장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일상적인 구조’입니다. 인간은 감각적으로는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영계와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연결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생존 조건’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통치는 ‘악한 영들의 우세’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이 글은 인간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존재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이 강하게 작용할 때에도 천사들은 함께 있으며,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도록 사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때 천사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적 욕구와 감각의 오류를 통해서라도 선과 진리 쪽으로 굽힙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의 현재 상태를 무시하지 않고,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거듭남 이후에는 통치의 중심이 바뀝니다. 이제는 천사들이 주도적으로 작용하며, 인간 안에 선과 진리를 적극적으로 불어넣습니다. 특히 악과 거짓에 대해 ‘두려움과 혐오’가 생긴다는 설명은 중요합니다. 이는 외적 규율이나 공포심이 아니라, ‘내적 질서가 바뀌었음을 보여 주는 징표’입니다. 더 이상 악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거부감이 생기는 상태가 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천사들을 통치의 주체로 세우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철저히 ‘사역자’이며, 통치의 실제 주체는 오직 주님 한 분이십니다. 이것이 창세기에서 복수형과 단수형이 함께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형상대로’라는 표현은 천사들의 사역을 포함한 통치 구조를 드러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단수 표현은 ‘권능과 주권의 단일성’을 분명히 합니다.
이 글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완전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통치가 막힘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심화
1.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
위 AC.50본문은, 그러니까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악한 영들과 천사들이 와 있고, 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만 와 있다는 말인가요? 여기서 말하는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에서, 여기서 말하는 ‘두 영’은 악한 영들을 말하는 거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이해하신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조금 더 정확히 정리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항상 두 종류의 영적 존재, 곧 악한 영들과 천사들이 함께 있으며, 거듭남의 여부에 따라 이들의 ‘존재 여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과 영향력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두 영’은 일반적으로 ‘악한 영들’을 가리키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 ‘사람마다 적어도 두 영과 두 천사가 함께 있다’는 말의 구조를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인간이 결코 혼자 존재하지 않고, 항상 영계와 연결된 상태로 산다고 설명합니다. 이때 ‘두 영’은 지옥 쪽에서 오는 악한 영들, ‘두 천사’는 천국 쪽에서 오는 선한 영들입니다. 즉, 인간은 항상 ‘천국과 지옥 사이의 접점’ 위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때는 ‘악한 영들의 영향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천사들도 여전히 함께 있지만, 그들은 직접적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람을 완전히 버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시 말해, 천사들은 뒤에서 지키고 있고, 실제로 사람의 생각과 감정에 더 가까이 작용하는 것은 악한 영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됩니다.
반대로 거듭난 상태에서는 ‘천사들의 영향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악한 영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존재하며, 계속해서 자극하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중심이 아니라 ‘주변적 존재’가 됩니다. 사람은 더 이상 그들의 흐름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선과 진리, 곧 천사들과 연결된 흐름 속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흐름을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 안에 악한 영과 천사가 동시에 있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어떤 쪽에 동의하고 어떤 쪽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것이 곧 자유와 책임의 자리입니다.
이걸 조금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이 올라옵니다. 하나는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는 더 바르고 선한 방향입니다. 이 둘은 단순히 ‘내 안에서 생겨난 생각’이 아니라, 각각 다른 영적 근원에서 오는 흐름입니다. 이때 사람이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점점 그쪽과 더 깊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어느 쪽이 주도권을 갖는 상태’로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AC.50의 ‘홀로 하늘을 펴고 땅을 펼친다’는 말씀과 연결하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이 ‘주도권의 전환’입니다. 즉, 악한 영들이 중심이던 상태에서 천사들이 중심이 되도록, 사람의 속 사람과 겉 사람을 새롭게 질서 잡으시는 것입니다. 이 과정 전체가 바로 거듭남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두 영’은 맞습니다, 악한 영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그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이 중심에서 밀려나고 천사들의 영향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바뀌는 것입니다.’
2.영적 인간의 거듭남 여섯 상태 중 언제부터가 ‘거듭난 상태’인지?
거듭나지 않은 상태 때 사정과 거듭난 상태 때 사정이 이렇게 다르다면, 그러면 ‘거듭났다’는 상태가 정확히 영적 인간의 거듭남 여섯 상태 중 언제를 말하는 건가요? 어느 상태, 어느 단계부터 그 주도권과 영향이 악한 영들한테서 천사들로 바뀌는 건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도권이 악한 영들에서 천사들로 넘어간다’는 것은 어떤 한 시점에서 단번에 뒤집히는 사건이라기보다, ‘거듭남의 중간 지점에서 서서히 방향이 바뀌어,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확실히 자리 잡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여섯 상태로 나누어 본다면, 대체로 ‘셋째 상태를 지나 넷째 상태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전환이 실제로 시작되고, ‘다섯째와 여섯째 상태에서’ 비로소 안정적으로 천사 쪽이 주도권을 갖는다고 보시면 가장 정확합니다.
먼저 큰 틀을 보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거듭남의 여섯 상태는 단순한 단계 구분이 아니라, ‘진리가 중심이던 상태에서 선이 중심이 되는 상태로 이동하는 과정’입니다. 초반부(상태1-3)는 아직 ‘진리(이해)’가 앞서고, ‘선(의지)’은 따라오는 상태이고, 후반부(상태4-6)는 ‘선(의지)’이 중심이 되고, ‘진리(이해)’가 그에 맞게 정렬되는 상태입니다. 바로 이 중심축의 이동이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와 직결됩니다.
이제 상태별로 보면 이렇게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첫째와 둘째 상태에서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중심성과 세속적 애착 안에 깊이 묶여 있습니다. 이때도 천사들은 함께 있지만, 역할은 거의 ‘보호자’에 가깝고, 실제 생각과 감정의 흐름은 주로 악한 영들 쪽에서 강하게 들어옵니다. 셋째 상태에서는 ‘유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두 흐름이 강하게 충돌합니다. 이때는 아직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싸움의 한복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번번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는 상태를 반복합니다.
중요한 전환점은 넷째 상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을 넘어서, ‘선을 실제로 사랑하기 시작하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옳아서 했던 것이 이제는 ‘좋아서 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주도권이 서서히 이동합니다. 아직 유혹은 남아 있고 악한 영들의 작용도 계속되지만, 사람 안의 중심이 더 이상 그쪽에 있지 않게 됩니다.
다섯째 상태에 들어가면 이 변화는 훨씬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선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진리는 그것을 돕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천사들의 흐름이 실제로 사람의 의지와 생각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악한 영들은 여전히 접근하지만, 이제는 ‘외부에서 건드리는 수준’이지, 중심을 장악하지는 못합니다. 여섯째 상태에서는 이 질서가 거의 안정되어, 사람은 ‘천국의 질서 안에서 사는 상태’, 곧 내적 평안과 일치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질문하신 핵심에 정확히 답하면 이렇습니다. ‘주도권의 전환’은 셋째 상태의 유혹 가운데 준비되고, 넷째 상태에서 실제로 시작되며, 다섯째 상태에서 확실해지고, 여섯째 상태에서 안정됩니다. 즉, 한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유혹을 통과하며 서서히 이루어지는 방향 전환’입니다.
이걸 실제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이게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조금씩 선택이 바뀌고,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더 나은 쪽을 택하게 됩니다. 그때 이미 중심은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좋아하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선한 것이 더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천사 쪽이 주도권을 갖게 된 상태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거듭남에서 주도권의 전환은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셋째 상태의 유혹을 거쳐 넷째 상태에서 시작, 다섯째와 여섯째 상태에서 완전히 자리 잡는 점진적 변화입니다.’
AC.49, 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AC.49-52)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And God said, Le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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