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12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13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14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15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16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17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8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21:10-19)
운(運, fortune)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질서의 가장 마지막 부분으로 흘러들어와 그곳에서 일으키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그 섭리는 모든 개별적인 일 속에 존재한다. 그것에 대해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 6494, 이순철 역) and that what is called fortune is from the influx of providence in the ultimates of order, where it so comes forth; thus that providence is in the veriest singulars of all things, according to the Lord’s words, that not even a hair falls from the head without the will of God. (AC.6494)
※ 다음은 지난주 설교 부분 인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연장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세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주셨는데요, 우리는 그 대답을 계시록 12장 1절로 6절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6)
이 말씀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은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이 세우시는 새 교회를 뜻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낳는 아이는 새 교회의 교리를 나타냅니다. 그러면 용은 뭘까요? 새 교회의 진리를 말살하려 하는 기존 교회들을 뜻합니다. 새 교회가 처음 나타날 때는 이처럼 기존 교회들의 저항이 아주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교회는 주님의 보호 아래 천천히, 그러나 견실하게 성장합니다.
※ 다음은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마치 우리 한국 새 교회가 지난 60년 동안 더러는 시험도 있었지만, 아주 조금씩, 그러나 견실하게 성장해 온 것처럼 말입니다. 미국 새 교회의 경우는, 제가 알기로 1800년대 초인 1817년에 세워졌고, 그 후 70년쯤 지난 후인 1890년에 컨벤션 처치와 교리적인 견해 차이로 갈라졌으니까, 그렇게 보면 대략 130년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 갈 때마다 느끼는 건, 그래서인지 미국 새 교회는 교리적으로 아주 안정되어 있고, 교리에 대한 이해가 바르고 깊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새 교회는 천천히 그러나 견실하게 발전합니다. 말씀에서 천이백육십일 동안 여자가 주님에 의해 양육된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말세라고 하면, 보통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세상의 종말이 오는 걸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세는 성경에서 비롯한 개념으로 교회의 마지막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홍수로 인해 땅이 모두 물에 잠겼던 노아 홍수 시대나,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유대인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매단 후에 예루살렘 성전이 이교도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던 때가 모두 영적으로는 말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말세의 징조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0절, 11절입니다.
10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라는 영어로 nation을 번역한 것으로, 속뜻으로는 악을 뜻합니다. 그리고 민족은 people을 번역한 것이고, 진리를 뜻하며, 반대로는 거짓을 말합니다. 따라서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한다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는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악한 사람들끼리, 또는 거짓된 사람들끼리 서로 싸운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말세에는 교회가 타락해 세상에 선과 진리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것은 몸의 심장과 폐가 장기와 손발에 깨끗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세에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말씀에서는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기근은 교회 안에서 사랑이나 선이 사라지는 것을 나타내고, 전염병이 발발하는 것은 교회 안에 거짓 진리가 만연하여 교회가 병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들이 그렇게 영적으로 무너질 때, 주님께서는 기존 교회를 대신할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는데, 그 교회가 계시록 12장에서 아이를 낳는 여자로 표현된 새 교회입니다.
새 교회가 나타날 때, 기존의 교회들은 어떻게 할까요? 교리가 이단적이라거나 하면서 자기들의 잣대로 새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합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 12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2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여기서 내 이름은 주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속뜻으로는 새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의 진리와 체어리티(charity)를 뜻합니다. 말세에 교회들은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새 교회에서는 체어리티가 없는 믿음, 신앙은 죽은 신앙이며, 그러므로 신앙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교회들이 새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 주님은 한 번도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 가르치신 적이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나, 등불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들의 이야기는 모두 체어리티가 없는 믿음, 신앙은 구원의 신앙이 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고 회당과 옥에 갇히는 것은 체어리티의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새 교회인들이 핍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들이 새 교회를 박해할 때 새 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그와 관련해 14절과 15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14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15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사전에 이런저런 궁리를 합니다. 자칫 상대가 놓은 덫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미리 궁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미리 궁리하는 것은 주님의 지혜에 기대지 않고, 인간의 지혜에 기대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 이순철 목사님의 에피소드입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처음 안수받고 제너럴 처치 목회자 회의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댁에 식사 초대를 받아 대접을 잘 받았는데, 식사를 마치고 어떤 장로님이 저희 새내기 목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들은 성경책과 성문서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읽으십니까?”
※ 성(聖)문서란, 주님이 스베덴보리를 통해서 남기신 모든 기록을 말합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가 주님의 몸에 해당한다면, 성문서에서 밝히는 말씀의 내적 의미는 주님 안에 계신 신성에 해당합니다. 주님은 곧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과 성문서 중 어느 하나를 중히 여기고, 다른 것을 소홀히 하는 것은 주님의 인성과 신성 중 어느 하나를 중히 여기고, 다른 것을 경히 여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아마 이런 것이 주님이 주시는 구변과 지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 이런 것이 바로 퍼셉션(perception)입니다. 천국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인데요, 지상에서는 태고교회 때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신앙이 있다면 미리 염려하거나 궁리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7절에서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7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주님의 이름은 인애(仁愛), 곧 체어리티의 신앙을 뜻합니다. 그냥 신앙이 아니라 그 속에 체어리티라는 본질이 들어있는 신앙, 그것이 바로 주님의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인들이 주님을 부를 때는 체어리티의 신앙으로부터 불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체어리티 신앙으로 사는 걸까요? 일을 할 때, 자신의 이익보다는 주님과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 세상 것보다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 이런 것이 모두 체어리티의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어리티의 신앙으로 살고자 할 때,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밖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으며, 또한 각자의 내면에도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모든 이기적인 것들입니다. 이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시험을 당하여 싸울 때는 자신에게는 엄격히 하되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억울하거나 항변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침묵하신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침묵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내하고, 또 인내할 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살아난다는 건 우리에게 있는 진리 안에 이 체어리티라는 생명이 생기는 걸 의미합니다. 신앙인의 영혼은 곧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어느 때는 진리만 가지고 행동하고, 어느 때는 진리와 체어리티를 함께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살아나기 시작하면 언제나 체어리티가 있는 진리로부터 행동합니다. 그것이 인내로부터 얻는 결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의 인내로 영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에는 교회 안에 진리와 선이 점점 사라져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교회가 세상으로 선과 진리를 공급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이 진리이고 거짓인지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면 지성인이라는 사람들도 악을 선이라 하고, 거짓을 진실이라 주장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을 데리고 광야와 같은 세상에 새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새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는 시련과 고난이 많습니다. 새 교회 사람들도 처음에는 교회 밖의 사람들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진리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있을 뿐, 그렇게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새 교회인들에게 시험이 많은 건 그래서입니다. 각자 견뎌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공격할 때에도 인내하며, 주님께 엎드리면 주님께서 머리털 하나도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를 항상 외면하는 것만 같던 행운이 마치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새털구름과 같이 몰려옵니다.
이 운(運, fortune)이라는 것에 대해 새 교회 가르침 ‘천국의 비밀’ 6494번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질서의 가장 마지막의 것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곳에서 일으키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운이라는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개별적인 일들 속에 존재한다. 그것에 대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으리라 하셨다.’
머리털은 인체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뜻으로는 하나님의 질서의 가장 끝단에 있는 자연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뜻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행운이나 불운 같은,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사실은 주님의 섭리에서 비롯되는 일이라는 것과, 주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사람을 선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운처럼 보이는 일이 있더라도 주님을 바라보며,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주님의 구원의 섭리가 우리들의 영혼을 살리고, 자연적 삶의 끝에까지 흘러들어와 행운을 가져다 줍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이 진리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17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19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눅21:17, 19)
5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7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8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9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눅21:5-9)
사람이 주님과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주님을 인정하되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자신에게 나온다고 믿으며, 그러므로 의를 자기 자신에게 돌릴 때, 주님은 그에게 있는 진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 (천국의 비밀 8868, 이순철 역)
유럽 여행을 다녀온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 가는 곳마다 아름답고 웅장한 성당 건축물이 많았는데 정작 예배를 드리는 것 같지는 않았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드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교인들의 수가 그렇게 작으면 교회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고, 그래서 아마 유럽 교회가 점점 관광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이 온통 세상의 쾌락을 쫓아다니고, 영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교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교회는 비어갑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모두 교회의 마지막 때 징조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때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징조는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5절과 6절입니다.
5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6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 이때의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확장한 헤롯(BC.37-AD.4)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은 46년 동안 증축한 당대 최고의 건축물입니다.
말씀에서 ‘성전’은 보통은 교회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유대교회와 같은 외적인 교회를 뜻합니다. 외적인 교회란 믿음만 있고 삶은 없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면 ‘돌과 헌물’은 무슨 뜻일까요? 돌은 외적인 교회의 교리를 뜻하고, 헌물은 그 교리를 바탕으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성전 건물을 보고 감탄하는 것은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교회의 본질인 사랑의 삶보다는 믿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교회의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에 더 끌리는 걸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그런 그들을 보시고,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우리는 주님은 참으로 진리 그 자체이신 분이심을 느끼게 됩니다. 진리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질서는 단호한 것이며, 또한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말씀은 말세에는 교회 안에 진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뜻입니다. 돌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의 진리를 뜻하기 때문인데요, 주님 당시 유대교회나 오늘날의 교회나 교회들은 모두 나름의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유대교회에는 모세의 십계명을 포함한 각종 규례와 장로의 전통이라는 교리가 있었고,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는 삼위일체의 신앙과 믿음만의 교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그 교리들이 모두 진정한 진리가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의 생각으로 말씀을 임의로 해석해 만든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7장에서 주님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8절) 하시면서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진리가 아닌 교회의 교리에 대해 ‘천국의 비밀’ 8868항은 ‘사람이 주님과 주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주님을 인정하더라도 선과 진리가 주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믿을 때 주님은 그의 진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또 8868:2항은 ‘진리가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속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생명 없는 진리는 신앙의 진리가 아니며, 또한 생명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선을 통해 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진리 안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생명 없는 진리이고, 그러므로 진리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유대교회는 주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회들 역시 말로는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아버지의 신성과 아들의 신성을 구별, 한 분 주님의 존재를 사실상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진리 안에는 생명이신 주님이 계시지 않고, 그러므로 그것은 진리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님께 묻습니다. 7절입니다.
7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교회의 마지막 때 나타날 징조는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거나 천재지변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때 주님이 나타내 보여 주시는 계시를 뜻합니다. 주님의 사도 요한은 계시록 12장 1절 이하에 그 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2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3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4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2:1-6)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해 교회의 마지막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소상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계시의 내적 의미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여기 ‘하늘에 큰 이적’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의 마지막 때 주님이 나타내 보이시는 계시를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기존 교회를 대신할 새 교회에 대한 계시를 뜻합니다. ‘해를 옷 입고 그 발아래에는 달이 있는’ 여자는 그때 나타날 하늘의 새 천국과 그것과 통하는 땅의 새 교회를 뜻합니다. 여자가 새 교회를 뜻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여자는 보통 진리에 대한 애정을 뜻하며, 또한 교회는 진리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는 새 교회의 교리가 비로소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여자가 낳는 아이는 새 교회의 교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는 새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음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용으로 표현된 기존 교회들의 극렬한 저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한 큰 붉은 용이 있어’에서 붉은 용은 한 분 하나님을 셋으로 나누고, 사랑과 체어리티의 신앙을 믿음만의 신앙으로 변질시킨 교회들을 뜻합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는 새 교회가 처음 생길 때, 교회들이 새 교회의 교리를 말살하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이 말씀은 새 교회의 합리적인 교리가 체어리티가 없는, 죽은 신앙 안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철장은 새 교회의 합리적인 교리를 뜻하고, 만국은 체어리티가 없는, 그래서 죽은 신앙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는 새 교회의 교리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보호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는 처음 새 교회가 생길 때는 교인의 수가 별로 없는 것을 나타냅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황폐한 곳이기 때문이며, 이는 곧 새 교회의 처음 상태를 뜻합니다.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는 주님의 보호 아래 새 교회가 지속적으로 커지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완전하게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정도로 성장하는 게 완전하게 성장하는 걸까요? 새 교회를 통해 주님이 계획하셨던 일들이 완벽하게 실현될 때, 그때가 새 교회가 완전하게 성장한 때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밝히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8절입니다.
8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교회의 마지막 때에는 종말론 같은 거짓 진리를 퍼뜨리거나, 마치 자신이 재림 예수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바로 주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자들이며, 때가 가까이 왔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의 말에 속지 말라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또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하십니다.
난리와 소요는 새 교회와 기존 교회들 간의 교리적 다툼 같은 외부의 시험을 뜻하기도 하고, 또는 새 교회인들이 겪는 내면의 시험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험의 조짐이 있을 때, 새 교회인들은 어쩔 수 없이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시험에서 넘어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혹 시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시험에서 이기든 지든 그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새 교회의 신앙은 그냥 자라는 게 아닙니다.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든 외부에서 오는 것이든 시험과 연단을 통해 자랍니다. 그래서 주님은 난리와 소요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하시고, 그래야 끝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의 마지막 때 사람들은 감각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외적으로 크고 화려한 것에 끌립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건물이 크고 아름다워야 교인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교회당이 아무리 아름답고 예배 의식이 경건해 보이더라도 그 속에 내적인 것이 없으면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적인 것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체어리티입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천국의 비밀’ 8868:3항은, ‘살아있는 진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체어리티를 바탕으로 한 신앙의 진리이다. 살아있지 않은 진리는 진리가 아닌데, 그 이유는 그 진리 안에 자아와 세상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의 외적인 것에 미혹되는 대신 사랑과 체어리티라는 내적인 것에 끌려 새 교회로 왔습니다. 그런데도 사랑의 체어리티의 삶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새 교회는 우리만의 구원을 위한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을 통해 이웃과 사회와 지구 전체를 살리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과 체어리티의 신앙이 우리의 입술에 머물지 않고 입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손과 발끝까지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말씀의 진리를 배운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4...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