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303.심화
1. ‘사6:9-10’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6:9, 10) Go and tell this people, Hearing hear ye, but understand not, and seeing see ye, but know not. Make the heart of this people fat, and make their ears heavy, and smear their eyes, lest they see with their eyes, and hear with their ears, and understand with their heart, and be converted, so that they be healed (Isa. 6:9–10).
가이드 1.0에 따르면, AC.303에서 사6:9-10을 인용한 이유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완고함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오히려 AC.301부터 계속 설명해 온 ‘주님의 보호 섭리’를 성경적으로 증명하는 핵심 본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 구절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으셨다’는 뜻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사람들이 profanation에 빠지지 않도록 계시를 그들의 상태에 맞게 조절하신다’는 영적 법칙을 설명하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먼저 AC.301에서 스베덴보리는 가장 위험한 죄가 profanation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진리를 인정하고 믿은 뒤 다시 그것을 부인하고 악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AC.302에서는 바로 이 때문에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신앙의 신비를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설명하였고, 마13:13과 요12:40을 인용,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씀을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AC.303에서는 사6의 원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이것이 오래전부터 말씀 속에 계시된 하나의 섭리의 법칙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를 무겁게 하고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라’는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일부러 무지하게 만드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이드 1.0에 따르면, 주님은 누구도 악하게 만들지 않으시며, 누구의 자유도 빼앗지 않으십니다.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진리를 거부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더 깊은 진리를 억지로 열어 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눈을 감기게 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의 가장 깊은 진리까지 모두 열어 주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정한 후 다시 부인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profanation이 일어나며, 영적 상태는 훨씬 더 회복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진리를 감추심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AC.303은 바로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사6을 인용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마지막 말씀인 ‘그들이 돌이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당시 그들의 영적 상태에서는 더 깊은 진리를 받아 회개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다시 그것을 버리는 것이 훨씬 더 큰 영적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거짓된 회심’이나 ‘일시적인 깨달음’보다, 비록 더디더라도 사람의 자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회개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보면 AC.303에서 사6:9-10은 창3:22-24와도 정확히 연결됩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칼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킨 것처럼, 이사야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이 제한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는 길을 막고, 다른 하나는 눈을 막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 의미는 동일합니다. 둘 다 사람을 생명으로부터 내쫓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profanation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자비의 울타리입니다.
스베덴보리가 AC.303에서 사6:9-10을 인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의 계시는 언제나 사람의 영적 상태에 맞추어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양의 빛을 일률적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필요한 만큼만 진리를 열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는 말씀은 심판의 선언이라기보다, 사람을 더 깊은 영적 파멸에서 지키시는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를 드러내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이드 1.0에 가장 충실한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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