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들(, days), ‘해들(, years),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의 속뜻

 

4절,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nd the days of man after he begat Seth were eight hundred years; and he begat sons and daugh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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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들(, days)은 일반적으로, ‘해들(, years)은 구체적으로 때들과 상태들(times and states)을 의미하며, ‘자녀들(子女, sons and daughters)은 그들이 지각했던 진리들과 선들을 의미합니다. By “days” are signified times and states in general; by “years,” times and states in special; by “sons and daughters” are signified the truths and goods which they per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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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위 4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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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은 위 4장 25절의 ‘’과는 다른 교회라는 사실은 435번 글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교리가 다른 교회들을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은, 앞 장 17, 18절에 나오는 ‘에녹’과 ‘라멕’을, 여기 5장 21절과 30절에서는 다른 교회들인데 같은 이름인 ‘에녹’, ‘라멕’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That a different church is here meant by “Seth” from that which was described above (Gen. 4:25), may be seen at n. 435. That churches of different doctrine were called by the same name, is evident from those which in the foregoing chapter (Gen. 4:17–18) were called “Enoch” and “Lamech,” while here other churches are in like manner called “Enoch” and “Lamech” (Gen. 5:21, 30).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창4:25)

 

17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18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창4:17-18)

 

21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30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창5:2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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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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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h)이라는 교회는 태고교회와 아주 흡사했었다는 사실은 이 교회에 대하여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 하는 걸 보면 분명합니다. ‘모양’이라는 말은 신앙과, ‘형상’이라는 말은 사랑과 관련됩니다. 이 교회가 사랑과 사랑에서 나오는 신앙에 관하여 태고교회와 같지 않았다는 사실은, 방금 앞서 말씀드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하신 말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AC.476), 이 말씀은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이라는 의미인데요, 여섯째 날 상태에 있는 영적 인간, 즉 사랑이 주 원리라기보다는 여전히 신앙이 사랑과 결합된 상태가 바로 이 사람의 모양이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 church called “Seth” was very nearly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is evident from its being said that the man begat in his likeness, according to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the term “likeness” having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for that this church was not like the most ancient church with regard to love and its derivative faith, is plain from its being said just before,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by which is signified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as was said above, so that the likeness of this man was to the spiritual man of the sixth day, that is, love was not so much the principal, but still faith was conjoined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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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매우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는데, 그중 첫 번째, 제일의 교회를 사람이라 하였다. 이들 교회들의 가장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시절 교회들 간의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였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3

다음과 같은 이름들, 곧, ‘’,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므두셀라’, ‘라멕’, ‘노아’로 이어지는 이름들은 매우 많은 교회들을 의미하는데, 그중 첫 번째, 제일의 교회를 ‘사람’이라 하였습니다. 이들 교회들의 가장 주된 특징은 퍼셉션이었고, 그런 이유로, 그 시절 교회들 간의 차이는 주로 퍼셉션의 차이였습니다. 이쯤에서 퍼셉션에 관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천국 그 어디에서든 천국을 다스리는 건 선과 진리에 관한 퍼셉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퍼셉션은 어느 두 커뮤니티도 유사한 퍼셉션을 누리고 있지 않을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며, 도저히 설명 불가한 것인데요, 그 이유는 천국에 존재하는 퍼셉션들은 (Genus) 종(, Species)으로 분류되며, 속만으로도 셀 수가 없는데, 그 각각의 속에 속하는 종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주님의 신적 자비, 곧 주님의 허락을 받아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AC.1383-1400, 1504-1520) By the names which follow: “Seth,” “Enosh,” “Kenan,” “Mahalalel,” “Jared,” “Enoch,” “Methuselah,” “Lamech,” “Noah,” are signified so many churches, of which the first and principal was called “man.” The chief characteristic of these churches was perception, wherefore the differences of the churches of that time were chiefly differences of perception. I may here mention concerning perception, that in the universal heaven there reigns nothing but a perception of good and truth, which is such as cannot be described, with innumerable differences, so that no two societies enjoy similar perception; the perceptions there existing are distinguished into genera and species, and the genera are innumerable, and the species of each genus are likewise innumerable; but concerning these, of the Lord’s Divine mercy hereafter.

 

셀 수 없이 많은 속이 존재하고, 그 각 속에 딸린 종 또한 셀 수 없이 많으며, 더욱이 개별 종 안에서도 셀 수 없는 다양함이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천적, 영적인 것들에 관해 오늘날 세상이 알고 있다는 게 얼마나 미미한지, 미미하다 못해 거의 없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퍼셉션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며, 만일 들어도 무슨 그런 것이 존재하느냐 하며 안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태고교회는 주님의 천적 나라를 표현했습니다. 퍼셉션의 일반적, 구체적 아주 미세한 차이들에서조차 말이지요. 하지만 오늘날은 퍼셉션의 본성에 관해 가장 대충으로도 전혀 알려진 바 없기 때문에, 이들 교회들의 퍼셉션 그 속과 종 어떤 경우에 대해서도 그저 어둡고 이상하게만 보일 것입니다. 그 시절 그들은 가족, 가문 및 민족들로 구분되었으며, 결혼도 가족과 가문 내에서만 했습니다. 퍼셉션의 속, 종의 보존 및 종족 고유특성의 대물림처럼 부모를 통한 정확한 대물림을 위해서였지요. 이런 이유로, 과거 태고교회였던 사람들은 지금도 천국에서 함께 지냅니다. Since then there are innumerable genera, and innumerable species in each genus, and still more innumerable varieties in the species, it is evident how little—so little that it is almost nothing—the world at this day knows concerning things celestial and spiritual, since they do not know even what perception is, and if they are told, they do not believe that any such thing exists; and so with other things also. The most ancient church represented the celestial kingdom of the Lord, even as to the generic and specific differences of perception; but whereas the nature of perception, even in its most general aspect, is at this day utterly unknown, any account of the genera and species of the perceptions of these churches would necessarily appear dark and strange. They were at that time distinguished into houses, families, and nations, and contracted marriage within their houses and families, in order that genera and species of perceptions might exist, and be derived from the parents precisely as are the propagations of native character; wherefore those who were of the most ancient church dwell together in hea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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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years), 몇 세를 살고(the numbers of years)의 속뜻, 본 장부터 십이 장까지는 겉뜻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들이 들어있다.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482

본 장에 나오는 ‘(, the years)와 ‘몇 세를 살고(the numbers of years)의 속뜻이 무엇인지가 지금까지는 알려진 적이 없습니다. 겉뜻에 머무르시는 분들은 세속적, 즉 시간과 관련된 년 수들로 생각하시겠습니다만, 본 장부터 십이 장까지는 겉뜻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실제 역사적으로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대신 일반적으로는 모든 것,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다른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들뿐 아니라(AC.470) 숫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서 자주 언급되는 숫자 삼(3, three)과 칠(7, seven)이 있는데요, 이 숫자들이 언급되는 곳마다 이 숫자들은 시간이나 다른 것들이 포함하거나 표현하는 상태들과 관련,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무언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숫자들은 가장 짧은 시간 간격들에서도 가장 긴 시간 간격들과 같은 걸 의미합니다. 부분들이 전체에 속하듯 가장 작은 것들은 가장 큰 것에 속하기 때문인데, 전체가 부분들에서, 가장 큰 것이 가장 작은 것들에서 제대로 나올 수 있으려면 반드시 닮음(a likeness)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에서 What the “years” and the “numbers of years,” which occur in this chapter, signify in the internal sense, has hitherto been unknown. Those who abide in the literal sense suppose them to be secular years, whereas from this to the twelfth chapter there is nothing historical according to its appearance in the literal sense, but all things in general and every single thing in particular contain other matters. And this is the case not only with the names, but also with the numbers. In the Word frequent mention is made of the number three, and also of the number seven, and wheresoever they occur they signify something holy or most sacred in regard to the states which the times or other things involve or represent; and they have the same signification in the least intervals of time as in the greatest, for as the parts belong to the whole, so the least things belong to the greatest, for there must be a likeness in order that the whole may properly come forth from the parts, or the greatest from its leasts. Thus in Isaiah: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해와 같이 삼 년 내에 모압의 영화와 그 큰 무리가 능욕을 당할지라 (사16:14) Now hath Jehovah spoken, saying, Within three years, as the years of a hireling, and the glory of Moab shall be rendered worthless. (Isa. 16:14)

 

주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정한 기한 같이 일 년 내에 게달의 영광이 다 쇠멸하리니 (사21:16) Thus hath the Lord said unto me, Within a year, according to the years of a hireling, and all the glory of Kedar shall be consumed, (Isa. 21:16)

 

이 본문들에 나오는 기간들은 가장 작은 간격들과 가장 큰 간격들 둘 다를 의미합니다. 하박국에서 where both the least and the greatest intervals are signified. In Habakkuk: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합3:2) Jehovah, I have heard thy renown, and was afraid; O Jehovah, revive thy work in the midst of the years, in the midst of the years make known, (Hab. 3:2)

 

수년 내에(the midst of the years)는 주님의 강림을 의미합니다. 보다 작은 간격들의 경우, 사람이 거듭나고 있을 때처럼 모든 주님의 오심(every coming of the Lord)을 의미하며, 보다 큰 간격들의 경우는 주님의 교회가 새롭게 일어나는 걸 의미합니다. 이사야에서 ‘구속할 해(the year of the redeemed)라 하신 경우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where the “midst of the years” signifies the Lord’s advent. In lesser intervals it signifies every coming of the Lord, as when man is being regenerated; in greater, when the church of the Lord is arising anew. It is likewise called the “year of the redeemed,” in Isaiah: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사63:4) The day of vengeance is in my heart, and the year of my redeemed is come. (Isa. 63:4)

 

그래서 사탄이 결박되어 있었던 천 년(계20:2, 7)과 첫째 부활 관련 천 년(계20:4-6) 역시 결코 천 년(1,000년)이 아닌, 그들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위에서 보여드린 것처럼(AC.23), ‘’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곤 하며, ‘’ 또한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년 수, 햇수로 상태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 장에 나오는 시간들 역시 상태들을 포함함이 틀림없습니다. 모든 개 교회는 선천적, 후천적 재능 차이에 따라 퍼셉션(perception)의 상태가 나머지 교회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So also the thousand years in which Satan was to be bound (Rev. 20:2, 7), and the thousand years of the first resurrection (Rev. 20:4–6), by no means signify a thousand years, but their states; for as “days” are used to express states, as shown above, so also are “years,” and the states are described by the number of the years. Hence it is evident that the times in this chapter also involve states; for every church was in a different state of perception from the rest, according to the differences of genius, hereditary and acquired.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7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계20:2, 7)

 

4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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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십 세’,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의 속뜻

 

3절,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And man lived a hundred and thirty years, and begat into his likeness, after his image, and called his name 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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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십 세’는 하나의 새 교회, 즉 태고교회와 아주 다르지는 않으면서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는, 그런 교회가 일어나기까지 걸린 시간을 말합니다. ‘모양’은 신앙, ‘형상’은 사랑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일컬어 ‘’이라 하였습니다. By a “hundred and thirty years” there is signified the time before the rise of a new church, which, being not very unlike the most ancient, is said to be born “into its likeness, and after its image”; but the term “likeness” has relation to faith, and “image” to love. This church was called “Se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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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뜻, 여섯째 날 끝에 나오며, 이것은 안식일 저녁과 상응하거나 안식일이나 일곱째 날이 시작된 때에 상응, 안식일은 천적 인간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80

그들이 창조되던 날, 그들을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사실 역시 1장, 즉 여섯째 날 끝에 나오는데요, 이것은 안식일 저녁과 상응하거나 안식일이나 일곱째 날이 시작된 때에 상응합니다, 위에서(AC.85-87) 보여드린 대로 일곱째 날, 즉 안식일은 천적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That they were called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ppears also from the first chapter (Gen.1:26–27), that is, at the end of the sixth day, which answers to the evening of the sabbath, or when the sabbath or seventh day began; for the seventh day, or sabbath, is the celestial man, as was shown above.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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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부르기’의 속뜻, 관련 대상의 퀄리티, 즉 그 대상의 어떠함에 관해 아는 것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79

이름 부르기’나 ‘이름으로 불리기’는 말씀에서는 위에서(AC.144, 145) 보여드린 것처럼 관련 대상의 퀄리티, 즉 그 대상의 어떠함에 관해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경우에는 태고교회의 퀄리티, 즉 태고교회는 사람이 흙, 여기 ‘아담’이라는 말이 ‘(ground)을 의미하는데, 흙에서 취함을 입고, 즉 주님으로 말미암아 거듭나는 교회이며, 그리고 나중에 그가 천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주님 사랑에서 비롯되는 신앙으로 가장 놀랍게 ‘사람’이 되는 그런 교회입니다. By “calling a name,” or “calling by name,” is signified in the Word to know the quality of things, as was shown above, and in the present case it has relation to the qual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denoting that man was taken from the ground, or regenerated by the Lord, for the word “Adam” means “ground”; and that afterwards when he was made celestial he became most eminently “man,” by virtue of faith originating in love to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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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고교회와 모든 참 교회, 그리고 그래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나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과 주님 신앙(faith in him)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특별히 사람(man)이라고 합니다.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78

그를 ‘아담(Adam)이라고 하는 이유는 히브리어 ‘아담’이 ‘사람(man)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아담’이라고 하는 건 정말 아니고, 대신 ‘사람’이 맞는데요, 이것은 이 구절과 앞에 나온 구절들을 보면 분명합니다. 몇몇 케이스에서 그는 단수가 아닌 복수로 거론된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이 용어는 남자와 여자 둘 다를 ‘사람’이라고 할 때 쓰는 용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은 둘 다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들 때문인데요,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2)와, 1장에서도 같은 방식인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게 하자’(창1:26, 27, 28)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지금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인류 최초의 사람이었던 어떤 한 사람의 창조가 아닌, 태고교회라는 사실 또한 보이실 수도 있습니다. The reason why he is called “Adam” is that the Hebrew word “Adam” signifies “man”; but that he is never properly called “Adam” by name, but “man,” is very evident from this passage and also from former ones, in that [in some cases] he is not spoken of in the singular number, but in the plural, and also from the fact that the term is predicated of both the man and the woman, both together being called “man.” That it is predicated of both, everyone may see from the words, for it is said, “He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that they were created”; and in like manner in the first chapter: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nd let them have dominion over the fish of the sea.” (Gen. 1:26) Hence also it may appear that the subject treated of is not the creation of some one man who was the first of mankind, but the most ancien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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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교회와 모든 참 교회, 그리고 그래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나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과 주님 신앙(faith in him)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특별히 사람(man)이라고 합니다.

 

2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and blessed them, and called their name man, in the day when they were created.

 

477

사람(man)이 태고교회임은 그동안 위에서(AC.277, 288) 종종 말씀드렸고, 또 보여도 드렸습니다. 가장 높은 뜻으로는 주님 자신 홀로 사람이시기(AC.49)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천적 교회를 사람이라 합니다. 천적 교회가 주님의 모양(a likeness)이기(AC.50, 51) 때문이며, 역시 같은 이유로, 영적 교회도 나중에 그렇게 부릅니다. 영적 교회는 주님의 형상(an image)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모두를 가리켜 인간의 이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이해가 있어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이해, 곧 지적 능력(the intellect)이 더 우월할수록 그에 따라 이 사람을 저 사람보다 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 간 차이는 주님 사랑에 기반한 그의 신앙에 따라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That “man” is the most ancient church has been often said and shown above; for in the supreme sense the Lord himself alone is man. From this the celestial church is called man, as being a likeness, and from this the spiritual church is afterwards so called because it was an image. But in a general sense everyone is called a man who has human understanding; for man is man by virtue of understanding, and according thereto one person is more a man than another, although the distinction of one man from another ought to be made according to his faith as grounded in love to the Lord.

 

[2] 태고교회와 모든 참 교회, 그리고 그래서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나 주님 사랑(love to the Lord)과 주님 신앙(faith in him)으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특별히 ‘사람(man)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에스겔처럼 말입니다. That the most ancient church, and every true church, and hence those who are of the church, or who live from love to the Lord and from faith in him, are especially called “man,” is evident from the Word, as in Ezekiel:

 

10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11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주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우하리니 12내가 사람을 너희 위에 다니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겔36:10-12) I will cause man to multiply upon you, all the house of Israel, all of it; I will cause to multiply upon you man and beast, that they may be multiplied and bear fruit; and I will cause you to dwell according to your antiquities; and I will do better unto you than at your beginnings and I will cause man to walk upon you, my people Israel, (Ezek. 36:10–12)

 

전 지위(antiquities)는 태고교회를, ‘처음(beginnings)은 고대교회를, ‘이스라엘 온 족속(the house of Israel), ‘내 백성 이스라엘(people Israel)은 초대교회나 이방인들의 교회를 의미하며, 이 모든 교회를 ‘사람(man)이라 하는 것입니다. where by “antiquities” is signified the most ancient church; by “beginnings,” the ancient churches; by the “house of Israel” and “people Israel,” the primitive church, or church of the Gentiles; all which churches are called “man.”

 

[3] 그래서 신명기에 So in Moses: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8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신32:7-8) Remember the days of eternity, understand ye the years of generation and generation; when the most high would give the nations an inheritance, when he would set apart the sons of man, he set the bound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Deut. 32:7–8)

 

옛날(the days of eternity)은 태고교회를, ‘역대(generation and generation)는 고대교회를, ‘인종(the sons of man)은 주님 신앙(faith toward the Lord) 안에 있었던 사람들을 의미하며, 이 신앙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입니다. 거듭난 사람을 ‘사람(man)이라고 하는 것은 예레미야에 나옵니다. where by the “days of eternity” is meant the most ancient church; by “generation and generation,” the ancient churches; the “sons of man” are those who were in faith toward the Lord, which faith is the “number of the sons of Israel.” That a regenerate person is called “man,” appears from Jeremiah:

 

23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25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렘4:23, 25) I beheld the earth, and lo it was empty and void; and the heavens, and they had no light; I beheld, and lo, no man, and all the birds of the heavens were fled, (Jer. 4:23, 25)

 

(earth)은 겉 사람을, ‘하늘(heaven)은 속 사람을, ‘사람(man)은 선에 속한 사랑을, ‘공중의 새(the birds of the heavens)는 진리에 속한 이해를 의미합니다. where “earth” signifies the external man; “heaven” the internal; “man” the love of good; the “birds of the heavens” the understanding of truth.

 

[4] 다시 Again: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렘31:27) Behold the days come that I will sow the house of Israel, and the house of Judah, with the seed of man, and with the seed of beast, (Jer. 31:27)

 

사람(man)은 속 사람을, ‘짐승(beast)은 겉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입니다. where “man” signifies the internal man, “beast” the external. In Isaiah: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사2:22) Cease ye from man in whose nostrils is breath, for wherein is he to be accounted of, (Isa. 2:22)

 

인생(man)은 교회에 속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 where by “man” is signified a man of the church. Again: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사6:12) Jehovah shall remove man far away, and many things shall be left in the midst of the land, (Isa. 6:12)

 

사람의 황폐함을 말씀하시면서, 거기에는 더 이상 선도 진리도 없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speaking of the vastation of man, in that there should no longer exist either good or truth. Again: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사24:6)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shall be burned, and man shall be left very little, (Isa. 24:6)

 

남은 ‘(man)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다시 where “man” signifies those who have faith. Again:

 

8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어지며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사람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9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사33:8-9) The paths have been desolated, the farer on the path hath ceased, he hath made vain the covenant, he hath despised the cities, he hath not regarded man, the earth mourneth and languisheth, (Isa. 33:8–9)

 

히브리어로 ‘에노스(Enosh)라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다시 denoting the man who in the Hebrew tongue is “Enosh.” Again:

 

12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13그러므로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 (사13:12-13) I will make a man more precious than fine gold, and a man than the gold of Ophir; therefore I will shake the heavens, and the earth shall be moved out of her place, (Isa. 13:12–13)

 

첫 번째 나오는 사람에 대한 말은 ‘에노스(Enosh), 두 번째는 ‘아담(Adam)입니다. where the word for man in the first place is “Enosh,” and in the second is “Adam.”

Posted by bygracet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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