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의 속뜻,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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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심지어 그렇게 분리되었을지라도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분명한 것은 ‘가인’이 체어리티로부터 분리된 신앙이라는 의미인 것과, ‘칠’(7, seven, 일곱)이 신성하다(sacred) 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숫자 ‘칠’은 잘 알려진 대로 아주 거룩하게 여겨졌습니다. 육일간의 창조에 이은 일곱 번째 날, 그 자체가 곧 천인(天人, the celestial man)이요, 그 안에 평화와 쉼, 그리고 안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유대 교회의 예전에서 아주 자주 나오며, 이 숫자가 나오는 곳마다 신성함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이 아주 길든지 짧든지 둘 다 ‘칠’(7, seven)로 구별하였으며, 아래 다니엘 본문처럼 메시아의 오심을 가리키는 아주 장구한 시간 간격을 가리켜 ‘이레’(weeks, 일곱 날, 일곱째 날)라 하였습니다. (단9:24-25) 라반과 야곱은 칠 년이라는 기간을 ‘칠 일’이라 하였습니다. (창29:27-28) 같은 이유로 어디서든 이 ‘칠’(7)이라는 숫자는 거룩 혹은 신성불가침(inviolable)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시편을 보면 That the words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signify that to do violence to faith even when thus separated would be sacrilege, is evident from the signification of “Cain,” which is faith separated from charity, and from the signification of “seven,” which is what is sacred. The number “seven” was esteemed holy, as is well known, by reason of the six days of creation, and of the seventh, which is the celestial man, in whom is peace, rest, and the sabbath. Hence this number occurs so frequently in the rites of the Jewish church, and is everywhere held sacred, and hence also both greater and less periods of time were distinguished into sevens, and were called “weeks,” such as the great intervals of time to the coming of the messiah; (Dan. 9:24–25) and the time of seven years called a “week” by Laban and Jacob. (Gen. 29:27–28) For the same reason, wherever it occurs, the number seven is accounted holy or inviolable. Thus we read in David: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119:164) Seven times a day do I praise thee. (Ps. 119:164)
이사야에서 In Isaiah: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사30:26) The light of the moon shall be as the light of the sun, and the light of the sun shall be sevenfold, as the light of seven days, (Isa. 30:26)
여기 ‘해’는 사랑을, ‘달’은 사랑으로 말미암은 신앙을 가리키는데, 사랑처럼 될 신앙입니다. 사람의 거듭남의 기간이 일곱 번째 날, 곧 천인이 되기 전, 숫자 ‘육’(6, six)으로 구별되듯, 그가 황폐해지는 기간, 곧 천적인 것이 전혀 남지 않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 또한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여러 번 포로 생활과, 마지막 혹은 바벨론 유수(幽囚, captivity), 곧 십 년씩 일곱 번, 혹은 칠십 년간 지속된 기간은 이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땅은 안식년을 가져야 한다 여러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에 나오는 느부갓네살 역시 같은 내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where the “sun” denotes love, and the “moon” faith from love, which should be as love. As the periods of man’s regeneration are distinguished into six, before the seventh arrives, that is, the celestial man, so also are the periods of his vastation, up to the time when nothing celestial remains. This was represented by the several captivities of the Jews, and by the last or Babylonish captivity, which lasted seven decades, or seventy years. It is also said several times that the earth should rest on its sabbaths. The same is represented by Nebuchadnezzar, in Daniel:
16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23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어 없애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풀 가운데에 두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들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였나이다,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단4:16, 23, 32) His heart shall be changed from man, and a beast’s heart shall be given unto him, and seven times shall pass over him. (Dan. 4:16, 23, 32)
그리고 계시록, 마지막 때의 황폐함에 관하여 And in John, concerning the vastation of the last times:
1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6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7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8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계15:1, 6-8) I saw another sign in heaven, great and marvelous, seven angels, having the seven last plagues; (Rev. 15:1, 6–8)
그리고 계속해서 and that: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1:2) The gentiles should tread the holy city under foot forty and two months, or six times seven. (Rev. 11:2)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계5:1) I saw a book written within and on the back, sealed with seven seals. (Rev. 5:1)
같은 이유로 징벌의 가혹함과 더함을 모세의 책에서처럼 숫자 ‘칠’(7)로 표현했습니다. For the same reason the severities and augmentations of punishment were expressed by the number seven; as in Moses:
18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일곱 배나 더 징벌하리라, 21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4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칠 배나 더 치리라, 28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칠 배나 더 징벌하리니 (레26:18, 21, 24, 28) If ye will not yet for all this obey me, then I will chastise you sevenfold for your sins. (Lev. 26:18, 21, 24, 28)
그리고 시편에서 And in David: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비방한 그 비방을 그들의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 (시79:12) Render unto our neighbors sevenfold into their bosom. (Ps. 79:12)
자, 정리하자면, 신앙을 범하는 것, 신앙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sacrilege)이었기 때문에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십니다. 그동안 말씀드린 것처럼 신앙은 예배에 속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Now as it was a sacrilege to do violence to faith—since as has been said it was to be of service—it is said that “whosoever should slay Cain, vengeance should be taken on him sevenfold.”
24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광장과 거리가 세워질 것이며 (단9:24-25)
27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창29: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