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캐릭터 상 예견된 미래, 곧 주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한 다음, 그 신앙으로 교리화를 할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신 주님의 대안, 그 신앙으로 결국 체어리티의 삶을 살게 하자!
15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And Jehovah said unto him, Therefore whosoever slayeth Cain, vengeance shall be taken on him sevenfold. And Jehovah set a mark upon Cain, lest any finding him should smite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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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이 말씀들의 속뜻 설명을 더 깊이 계속하기에 앞서 먼저 이 경우가 어떻게 신앙과 연결되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태고교회는 사랑의 신앙 말고는 그 어떤 신앙도 인정하지 않는, 신앙이라는 걸 심지어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에 속한 모든 걸 주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지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앞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천적 천사들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캐릭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주님 사랑에서 신앙을 분리하려 할 것이고, 그 다음엔 그 신앙을 가지고 독립적인 무슨 일종의 교리화를 할 것이다 라는 게 예견되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대안이 제공되었는데요, 그것은, 그들 사랑과 신앙은 실제로 분리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이런 식, 곧 신앙, 즉 신앙의 지식을 통해 사람들이 주님의 체어리티를 받게 하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저 지식이나 들음이 오고, 그다음 그걸 통해 체어리티, 즉 이웃을 향한 사랑 및 자비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올 수 있도록 하자는 말입니다. 이때 이 체어리티는 신앙과 분리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신앙의 원칙이 되게 하자는, 이런 식의 대안이 주어졌습니다. Before we proceed to elucidate the internal sense of the words before us, it is necessary to know how the case is with faith. The most ancient church was of such a character as to acknowledge no faith except that which is of love, insomuch that they were unwilling even to mention faith, for through love from the Lord they perceived all things that belong to faith. Such also are the celestial angels of whom we have spoken above. But as it was foreseen that the human race could not be of this character, but would separate faith from love to the Lord, and would make of faith a doctrine by itself, it was provided that they should indeed be separated, but in such a way that through faith, that is, through the knowledges of faith, men might receive from the Lord charity, so that knowledge [cognitio] or hearing should come first, and then through knowledge or hearing, charity, that is, love toward the neighbor, and mercy, might be given by the Lord, which charity should not only be inseparable from faith, but should also constitute the principal of faith.
※ 모든 걸 다 구비하여 놓으시고, 그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여 그 지혜 안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다 누리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거절, 자기가 땀흘려 벌거나 책과 씨름하는 등 온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이라야만 참 진리요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라며, 부득불 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나름 책임감 있어 보이고,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자 애쓰는 듯하여 건실한 듯하나... 그럼,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지혜 안에 머물기를 힘쓰는 사람들은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사람들일까요? 오히려 더 아름답고 진실, 성실, 세상 속에서 주님 안에 머물고자 속으로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둘의 차이는 전자는 쉽고 가벼운 삶을 사는 한편, 후자는 어렵고 무거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전자가 어린아이같이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머리가 커져버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를 따르려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아버지 집을 박차고 나가 그 생(生) 고생 통해 겨우 가장 기초적 고백의 자리에 섰던 둘째 아들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 집에 머무르면 되었을 것을 말입니다.
태고교회 시절 그들에게 있었던 퍼셉션 대신 이제 그 자리를 양심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양심은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와 결합된 신앙을 통해 얻는 것인데요, 어떤 참된 것을 예전처럼 딕테이션으로 직관하는 게 아니라 단지 그것이 참이라 하니, 말씀에서 주님이 참이라 하시니 참인 줄 아는, 그런 것입니다. 홍수 후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캐릭터였으며, 주님 초림 후 첫 교회인 초대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영적 천사들이 천적 천사들로부터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And then instead of the perception they had in the most ancient church, there succeeded conscience, acquired through faith joined to charity, which dictated not what is true, but that it is true, and this because the Lord has so said in the Word. The churches after the flood were for the most part of this character, as also was the primitive or first church after the Lord’s advent, and by this the spiritual angels are distinguished from the celes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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