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창4:19)
라멕은 가인이라는 교회의 6대손으로, 사람, 곧 신앙을 죽였다, 소년, 곧 체어리티(charity, 이웃 사랑, 선행, 인애 등)를 죽였다, 라멕의 벌은 칠십칠 배, 곧 지옥 상태다 하는 걸로 보아 더이상 황폐할 수 없는, 즉 더이상 교회 안에 신앙이라는 게 없고, 오히려 신앙을 부인하기에 이른 교회였습니다.
주님은 이런 황폐한 상태에 도달해야 새 일을 시작하시는데 그 이유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처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가 황폐해져야 주님을 모독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 없는 자, 믿지 않는 자는 모독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라멕의 상태 때 아다와 씰라, 곧 새 교회, 새 신앙을 일으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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