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2023/8/20, 눅12:22-34),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번역/Arcana Coelestia (7차, 최종) 2023. 8. 20. 09:531. 설교 원고 및 유튜브 (성찬, 찬양 및 축도 포함)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12:22-34)
주님의 섭리(Providence) 가운데 있는 만큼 그는 평안하며, 또한 신앙의 선에서 오는 평안 가운데 있는 만큼 그는 주님의 신성하신 섭리(the Divine Providence)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또한 아셔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주님의 신성하신 섭리(the Divine Providence of the Lord)는 일반적으로나 특별히, 아니 가장 작은 것 안에도 있으며, 그러면서도 영원한 것에 관한 것임을 알고 믿습니다. (AC.8478:4) Be it known also that insofar as anyone is in the stream of Providence, so far he is in a state of peace; also that insofar as anyone is in a state of peace from the good of faith, so far he is in the Divine Providence. These alone know and believe that the Divine Providence of the Lord is in everything both in general and in particular, nay, is in the most minute things of all, and that the Divine Providence regards what is eternal.
출애굽기 16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생활 사십 년 동안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신 만나에 관한 장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22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23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24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25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26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27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29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30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31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2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33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34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35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36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
아멘, 여기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오늘 본문에 비추어 한 가지 질문을 한다면 바로 이것인데요, 주님은 왜 만나를 그날 먹을 만큼만 거두라고 하신 걸까요? 만나를 미리 거둬 쌓아두는 것은 주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다음은 주님의 섭리에 대한, 스베덴보리를 통해 알려주신 주님의 가르침 중 하나인데요, 바로 스베덴보리 저, ‘하나님의 섭리’(Divine Providence) 세 번째 주제인 ‘주님의 신성하신 섭리는 범사에 무한하고 영원한 것을 바라보신다’(In All That It Does the Lord’s Divine Providence Looks to What Is Infinite and Eternal)입니다. 즉 우리의 일상 범사 모든 일이 사실은 주님의 신성하신 섭리 가운데 있으며, 비록 우리는 모르고 무심코 살고 있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의 무한하고 영원한 결과를 주님은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 섭리의 법칙을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시고 말입니다. 이 사실, 이 명제를 깊이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결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 하나까지도 함부로 아무렇게나 선택하거나 하지 않고, 대신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가운데 참된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아멘
이러한 주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으로부터 끊어지지 않고 만나가 흘러들어옵니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만나를 거둬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이 선이고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믿을 때,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선과 진리들이 자아에서 나오는 악하고 거짓된 것들에 의해 더럽혀지는데요, 그것이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일용할 만큼만 만나를 거두라 하시고요, 기도할 때에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라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주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내용입니다. 22절입니다.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여기서 목숨과 몸은 사람의 진정한 생명인 영적인 생명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염려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염려한다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낸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들은 주어진 몫에 만족하지 않고, 늘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진리를 깨우치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점을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기보다는 자신의 머리에 쌓아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진리는 머리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적극 활용, 영적 생명인 의지와 사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리가 실천된 게 선이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생명이 될 때, 기억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말과 행동을 통해 진리가 흘러나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삶으로 옮기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진리의 깨달음이 없다고 조바심을 내거나, 많은 지식을 쌓아두려 하는 것은 좋지 않은데요, 주님은 각자의 믿음에 따라 필요한 만큼만 진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신 것은 바로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24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말씀에서 까마귀는 보통 거짓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앞에서 말한,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믿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스스로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거짓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는 마음만이 존재하며, 능력이 있는 마음입니다. 즉 전자는 허상이지만, 후자는 실체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믿는 것이 현실적으로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아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거짓이며, 진리 앞에서 발붙일 수 없습니다. 모든 거짓은 어둠과 같아서 진실이 없는 곳에 잠시 나타났다가 진실의 빛이 비치면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그럼에도 거짓이 스스로 존재하며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주님이 그것을 허락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까마귀를 기르신다고 했는데, 이것은 거짓은 주님이 허락하실 때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왜 거짓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실까요? 인간의 거듭남을 위해서입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험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때 시험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자아와 세상으로부터 오는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거짓을 허용하시는 것은 너희 인간을 위해서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까마귀를 기르시는 것은 인간의 거듭남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까마귀에 대해 말씀하시더니 이번에는 백합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27절과 28절의 말씀입니다.
27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28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말씀에서 백합화는 신앙의 진리를 뜻합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밝혀 주시는 내적 진리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아름답고 진실합니다. 솔로몬의 옷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다 하나 내적 진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내적 진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아름답고 진실하며 깊이가 있습니다. 말씀에는 왜 그렇게 고귀한 진리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에 비유했을까요? 여기서 백합화는 앞에서 말한 만나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신앙의 진리이며 선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일용할 만큼만 만나를 거두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은 지금 이 백합화에도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백합화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이라 한 것은 일용할 만큼만 거둔 진리는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내일까지 쌓아두기만 하는 진리는 들풀과 같이 생명 없는 지식에 불과해지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백합화에 대해 오늘은 존재하지만 내일은 아궁이에 던져진다 하신 것입니다. 아궁이에 던져진다는 것은 내일까지 쌓아두는 진리는 생명 없는 지식에 불과하므로 지옥에 던져진다는 뜻입니다. 세상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쌓아두기만 하려 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절로 31절입니다.
29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31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은 영적인 것이든 세상 것이든 각자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염려를 한다면 주님의 섭리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입을 것이 마땅치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삶 전체를 놓고 보면 그런 고통은 잠시뿐이고, 주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앞이 안 보이고 마치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 같았을 때도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섭리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주님의 나라를 구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선순위의 문제, 주객이 전도되는 문제인데요, 세상 사는 동안에는 의식주를 위한 것이나 그 밖에 재물이나 적당한 지위가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어디까지나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어야 하며, 그러한 물질들은 그것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구할 때 주님께서는 영적인 것과 더불어 육신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것에 늘 감사하면서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매일 먹을 만큼만 거두라 하셨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만나를 내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들은 내일 일을 걱정하였고,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서둘러 여러 날 먹을 만나를 한꺼번에 쌓아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만나에 벌레가 생기고 부패해 버렸습니다.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늘 내일 일을 걱정합니다.
※ 다다음 주인 9월 3일, 9월 첫 주는 저희 한결같은교회 창립 10주년 되는 날입니다. 참고로 오늘 예배는 이 거실에서 2,500번째 드리는 예배입니다. 10년 전인 2013년 9월 1일 주일, 집 이 거실에서 저와 아내, 그리고 큰애 우석이, 이렇게 세 사람이 모여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작은애 준석이는 군입대를 하여 함께할 수 없었지요. 이 자리에선 잠시 경제적인 부분, 생활 면에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목회의 동기가 그러면 안 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몇 해 동안은 생활이 문제이기도 하여 전도를 비롯, 어떻게 하면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자립, 곧 십일조 하는 가정이 열 가정만 있어도... 하는 고민이 많았고, 그래서 이런저런 무슨 전도세미나다 부흥세미나다 하는 데를 많이 쫓아다녔고, 또 목회와 더불어 잠시 부업도 하는 등 좀 기웃거리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그 모든 시도 가운데 주님은 그런 곁눈질을 기뻐하지 아니하셨고, 오히려 점점 더 영의 일과 영성, 그리고 천국 사모함의 마음을 주셔서 갈수록 영적 체험과 수도원, 그리고 현재는 스베덴보리에 전념케 하셨습니다. 스베덴보리에 전념한다는 것은 주님이 그를 통해 알리신 일련의 계시를 쉬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 모든 지난 10년 세월 동안 그러나 주님은 참 많은, 소위 까마귀들을 통해 아침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 저희로 굶지 않게, 오히려 배부르게 하셨고, 있어도 없어도, 부하고 빈해도 그저 덤덤, 천사들처럼 모든 걸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가장 기뻐하는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 년 동안 아침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거두러 나갔던 것처럼 지난 세월 한결같이 저희의 만나를 위해 수고한 저희 사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이 모든 일들이 주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스베덴보리 저, 창세기, 출애굽기 속뜻 주석인 ‘천국의 비밀’ 8478번 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은 음식이나 의복을 걱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을 위해 미리 대비하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일을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것이고, 천국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이 세상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땅끝에서부터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아 당신의 교회를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대해 지나친 걱정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늘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몫에 만족하며,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진하게 믿고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그런 은혜가 오늘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모든 성도와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12:33)
아멘
원본
2020-07-12(D1)
서울 새 교회 이순철 목사
설교
2023-08-20(D1)
한결같은 교회 변일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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