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4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이때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을 더욱 경배하고 숭배했던 태고교회에 관해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아벨이 양 떼의 첫 새끼를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에서 충분히 분명해집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는 것은 ‘가인’(Cain)과 ‘라멕’(Lamech)이라 불리는 자들에 의해 이전 교회가 소멸된 후에 등장한 새 교회의 예배를 의미하는 것 말고는 아무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That the invocation of the name of Jehovah did not commence at this time is sufficiently evident from what has already been said above in regard to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more than any other adored and worshiped the Lord; and also from the fact that Abel brought an offering of the firstlings of the flock; so that in this passage by “calling upon the name of Jehovah” nothing else is signified than the worship of the new church, after the former church had been extinguished by those who are called “Cain” and “Lamech.”
해설
AC.441의 출발점은 분명합니다. 창4:26의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은, 역사적으로 그 시점에 처음 예배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이 충분히 오해될 수 있음을 알기에, 먼저 단호하게 부정합니다. 태고교회는 그 어떤 교회보다도 주님을 깊이 사랑하고 예배했던 교회였으며,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이때 처음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 증거로 스베덴보리는 두 가지를 듭니다. 첫째, 태고교회 자체가 사랑에 근거한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사랑에서 진리를 지각했고, 삶 전체가 예배에 가까웠습니다. 둘째, 아벨의 제사입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는 것은, 이미 체어리티에서 나온 참된 예배가 존재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창4:26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예배의 시작 시점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본문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시간적 최초가 아니라, 질적, 교회적 전환점을 뜻합니다. 즉, 이전의 교회가 완전히 무너진 뒤, 새 교회가 공식적으로 등장하여 참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음을 선언하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다시 시작되었다’는 뜻이지, ‘처음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AC.441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가 새롭게 언급되는 이유는, 이전 교회가 이미 소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멸은 자연재해나 외적 파괴가 아니라, 영적 소멸입니다. 가인과 라멕으로 표상된 흐름, 즉, 신앙이 체어리티와 분리되고, 마침내 신앙마저 부정되는 상태 속에서 이전 교회는 내적으로 죽었습니다.
가인은 사랑에서 분리된 신앙을, 라멕은 그 신앙마저 부정한 상태를 표상합니다. 이 지점에 이르면, 더 이상 교회라고 부를 만한 내적 실체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외적 형식이나 기억 지식은 남아 있을지라도, 주님과의 내적 결합은 끊어진 상태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켜 스베덴보리는 ‘이전 교회가 소멸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전 교회가 이렇게 소멸된 후, 주님은 셋과 에노스로 표상된 새 교회를 일으키십니다. 이 교회는 신앙을 통해 체어리티를 회복하고, 체어리티를 신앙의 주된 것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이 교회의 예배는 다시 여호와, 곧 사랑과 자비의 주를 향한 예배가 됩니다. 이때 성경은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말합니다. 이는 새 교회의 예배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경 전반에서 반복됩니다. 어떤 상태가 끝나고, 전혀 다른 질서의 상태가 시작될 때, 성경은 종종 ‘그때 비로소’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연대기의 표시가 아니라, 영적 시대의 구분선입니다. AC.441은 바로 이 서술 방식을 해명해 줍니다.
이 해설은 오늘의 교회와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형식은 남아 있으나 체어리티가 사라진 상태에서는, 예배가 계속되는 것처럼 보여도 내적으로는 예배가 중단된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체어리티가 회복될 때, 성경적 의미에서의 예배는 다시 ‘시작’됩니다. AC.441은 이 점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AC.441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창4:26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은 예배의 역사적 최초가 아니라, 이전 교회가 소멸된 뒤 새 교회의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선언이다.
이로써 창세기 4장은, 교회의 붕괴와 보존, 그리고 체어리티에 기초한 예배의 재개라는 완결된 구조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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