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And he called his name Noah, saying, He shall comfort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창5:29)
AC.528
‘노아’(Noah)는 고대교회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라는 말은, 왜곡되었던 것을 회복하게 하는 교리를 의미합니다. By “Noah” is signified the ancient church. By “comforting us from our work and the toil of our hands, out of the ground which Jehovah hath cursed,” is signified doctrine, whereby what had been perverted would be restored.
해설
이 글은 태고교회가 끝난 뒤, 인류 영적 역사에서 전혀 다른 성격의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는 핵심 문장입니다. 앞서 라멕이라 이름한 교회는 퍼셉션이 거의 사라진 상태, 곧 황폐화에 이르렀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노아’는 같은 방식의 회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의 보존과 회복’을 맡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스베덴보리는 ‘노아’를 고대교회로 규정합니다. 이 고대교회는 태고교회처럼 선과 진리를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퍼셉션의 교회가 아닙니다. 대신 이 교회는 ‘교리를 통해’ 선과 진리를 배우고, 그 교리를 기준 삼아 삶을 정돈해 가는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 노아의 교회는 ‘직접 아는 교회’가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아는 교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라는 표현은, 더 이상 퍼셉션에 의해 자연스럽게 선을 행하지 못하게 된 인간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선을 행하는 일이 더 이상 기쁨과 생명에서 흘러나오지 않고, 노력과 부담, 그리고 분투가 된 상태입니다. 이는 타락의 결과라기보다는, 인식 방식이 바뀐 이후의 필연적인 인간 조건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라는 표현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땅은 물질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외적 차원, 곧 자연적 마음의 영역을 뜻합니다. 이 영역은 더 이상 내적 빛에 의해 곧바로 질서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왜곡과 혼탁이 쉽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주’라는 표현은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상태의 결과를 말하는 언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위로’는 감정적 위안이 아닙니다. 스베덴보리가 말하는 위로는 ‘교리를 통해 질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교리는 인간이 다시 선과 진리의 방향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외적 기준입니다. 퍼셉션이 사라진 자리에서 교리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가 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교리가 ‘왜곡되었던 것을 회복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노아의 교회가 새로운 진리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태고교회와 그 뒤를 잇는 교회들에서 이미 주어졌으나, 인간의 상태 변화로 인해 뒤틀리고 흐려졌던 선과 진리를 ‘바르게 정돈하여 다시 제자리에 놓는 역할’을 맡았다는 뜻입니다.
설교자의 관점으로 보면, 이 대목은 오늘날 교회의 정체성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노아교회의 후손입니다. 퍼셉션으로 즉각 분별하지 못하고, 말씀과 교리,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신앙을 배웁니다. 이는 열등한 상태가 아니라, 주님의 섭리 안에서 허락된 새로운 질서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심판의 상징이기 전에, ‘보존과 회복의 상징’입니다. 방주는 파괴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다음 시대를 위한 저장고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여기서 말하는 교리는 생명을 억압하는 규칙이 아니라, 왜곡된 상태 속에서도 신앙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 주는 도구입니다.
이 글을 이렇게 읽으면, 창세기에서 노아가 차지하는 위치가 훨씬 또렷해집니다. 그는 태고교회의 영광을 되살리는 인물이 아니라, 퍼셉션 이후의 인간을 위해 준비된 ‘새로운 교회 질서의 대표자’입니다. 그리고 AC.528은 그 전환의 의미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요약해 주는 구절입니다.
AC.527, 창5:28, ‘라멕이 태고교회의 끝인 이유’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창5:28) AC.527 여기서 ‘라멕’(Lamech)이, 진리와 선에 대한 퍼셉션이 너무나 일반적이고 흐릿하여 거의 없는 상태의 교회를 의미하며, 그 결과 황폐화된 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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