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439 심화

1. ‘왜 홍수 전 에노스가 벌써 영적 인간인가?’

 

AC.439를 읽다 보면 한 가지 뜻밖의 표현을 만나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에노스’(Enosh)라는 이름 역시 ‘사람’(man)을 뜻한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천적 인간’(celestial man)이 아니라 ‘영적 인간’(spiritual man)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창1과 창2를 따라온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일으킵니다. 창1에서는 거듭남의 여섯 날을 거쳐 영적 인간이 형성되고, 창2에서는 일곱째 날과 함께 천적 인간이 다루어지며, 그 천적 상태가 태고교회의 고유한 상태로 설명되었습니다. 반면 홍수 후에 나타나는 고대교회는 영적 성격의 교회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직 홍수 이전인 창4에서 에노스가 벌써 ‘영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영적 인간’이라는 표현을 곧바로 ‘홍수 후 고대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는 역사적 명칭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적’과 ‘영적’은 서로 다른 교회 시대를 가리킬 때도 사용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서로 다른 질서와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나 교회가 홍수 이전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 상태가 언제나 천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영적 인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고 해서 곧 홍수 후 고대교회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AC.439 자체도 에노스의 교회를 ‘영적 교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에노스라는 이름이 나타내는 ‘사람’을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 구별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태고교회의 시대 안에서 이런 영적 상태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창2에서 보았던 태고교회의 처음 상태와 창4에서 다루는 상태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2의 태고교회는 사랑이 먼저이고 그 사랑으로부터 신앙과 진리를 지각하는 천적 질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3과 창4로 진행하면서 인간은 점차 자기 자신에게 기울었고, 마침내 가인으로 나타나는 신앙은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아벨이 나타내는 체어리티가 소멸된 뒤에도 주님께서는 신앙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 않으시고 ‘가인의 표’를 통해 보존하셨으며, 이후 라멕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보존되어 있던 신앙마저 황폐해지는 상태가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창4 마지막의 회복은 창2의 최초 천적 상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되돌아오는 장면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셋과 에노스가 중요해집니다. AC.436에 따르면 셋은 ‘체어리티가 심어지는 신앙’을 뜻하고, 에노스는 ‘신앙을 통해 심어진 체어리티’를 뜻합니다. AC.438에서는 이를 교회의 차원에서 다시 설명하여, 셋은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을, 에노스는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창2의 천적 인간과는 다른 질서가 보입니다. 최초의 천적 상태에서는 사랑과 체어리티로부터 신앙이 나왔지만, 여기서는 이미 무너진 상태 가운데 보존된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가 다시 심어지는 회복의 과정이 나타납니다. 따라서 에노스를 ‘영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적어도 이 새로운 상태가 최초 태고교회의 천적 상태와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과 잘 맞습니다.

 

이 때문에 ‘셋은 신앙, 에노스는 체어리티’라는 표현도 조심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인간의 정상적인 영적 질서가 언제나 ‘먼저 신앙을 얻고 그다음 체어리티를 얻는 것’이라는 보편 공식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는 이미 사랑과 체어리티에서 분리된 신앙이 발생했고, 체어리티가 소멸되었으며, 그 가운데 주님께서 신앙을 보존하신 뒤 그것을 통하여 다시 체어리티를 심으시는 특별한 회복의 과정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셋에서 에노스로 이어지는 ‘신앙을 통한 체어리티’는 태고교회 본래의 천적 질서를 설명한다기보다, 그 질서가 무너진 뒤 주님께서 다시 교회를 일으키시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에노스에서 이미 영적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도 현재 본문보다 앞서 나갑니다. AC.439가 분명히 말하는 것은 에노스로 나타나는 사람이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AC.438은 에노스를 체어리티를 신앙의 으뜸으로 여긴 교회라고 하며, AC.441은 이전 교회가 소멸된 뒤 나타난 ‘새 교회’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새 교회를 훗날 홍수 후에 나타나는 고대교회와 같은 의미의 ‘영적 교회’라고 AC.439가 직접 규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영적 인간’이라는 표현과 ‘영적 교회’라는 역사적·교회적 구분을 성급하게 하나로 합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주님의 회복이 언제나 과거 상태의 단순한 복원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창2의 천적 상태가 무너진 뒤 주님께서는 인간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남아 있는 것을 보존하시며 그 상태에서 다시 체어리티를 심으십니다. 에노스는 바로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홍수 전에 ‘영적 인간’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를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영적’이라는 말이 반드시 홍수 후의 특정 교회 시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영적 상태를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왜 스베덴보리가 이 시점의 에노스를 특별히 ‘영적 인간’이라고 규정했으며, 이것이 이후 홍수와 고대교회의 영적 질서와 정확히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AC.439만으로 모두 밝혀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설명 안에서 가장 안전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에노스가 홍수 전에 ‘영적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홍수 후 고대교회가 벌써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창2에서 나타난 태고교회 본래의 천적 상태가 이미 크게 무너진 뒤, 주님께서 보존하신 신앙을 통하여 체어리티를 다시 심으시는 새로운 회복의 상태가 나타났으며, 에노스는 그 과정에서 ‘천적 인간이 아니라 영적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창4 마지막은 단순히 최초의 천적 상태로 되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깊이 무너진 인간을 그 상태에 맞게 다시 붙드시고 새로운 교회를 일으키시는 주님의 섭리를 보여 줍니다. 이후 AC에서 이 영적 상태의 성격이 더 구체적으로 밝혀진다면, 그때는 여기서 확인한 기초 위에서 한 단계 더 깊이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AC.439 심화 1)

 

 

 

AC.439, 창4:26, ‘에노스는 왜 천적 인간이 아닌 영적 인간을 의미하는가?’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26) AC.439‘셋’(Seth)이 체어리티로 이어지는 신앙을 뜻한다는 것은 앞 절에서 설명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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