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 AC.29, 창1:11-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11-13절, 11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And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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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최초의 형제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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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운동의 요람이 된 이 뽀르치운꼴라는 프란치스코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장소였다. 프란치스코 운동의 참된 요람이 된 이곳은 그 후 이탈리아 반도를 휩쓴 혁명과 지진의 재난 속에서도 용케 잘 보존되어 오늘날도 남아있다. 이곳은 그의 벧엘, 하나님의 집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신비스런 사다리가 확고히 선, 세계에서 드문 성지이다. 여기에서 인류의 고통을 덜게 하는 가장 고상한 꿈이 꾸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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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년 2월 24일, 그날은 성 맛디아 첨례일, 축일이었다. 그날 뽀르치운꼴라 성당에서 아침 미사의 예배 인도는 수바시오 산 베네딕트회 수도사가 했던 것 같다. 그는 마태복음 10장 6절로 15절을 낭독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사제가 이 말씀을 읽으면서 프란치스코 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신비스런 영감의 물결을 느끼면서 깊은 마음의 격동과 압박감을 느꼈다. 그것은 2년 전, 산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듣던 영음보다 더 새롭고 명확한 예수님의 분부였다. 지금 자기 눈 앞에 서있는 사람은 사제가 아니라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이 그 순간 직접 프란치스코에게 너는 복음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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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가면서 방금 들은 분부대로 지팡이도, 자루도, 지갑도 내던졌다. 신고 있던 신도 벗어 버렸다. 추워서 몸에 두르고 있던 외투도 벗어 버리고, 성당 수축 공사 때, 마당 구석에 버린 새끼줄을 주워다가 허리에 맸다. 즉석에서 낡은 옷 한 벌을 얻어 수도복을 삼아 입었다. 그것은 시골 사람들이 입는 긴 갈색 겉옷인데 두건이 달린 옷이었다. 옷 모양이 마치 긴 마대자루를 뒤집어 쓰고, 머리만 밖으로 내민 것 같아서 볼꼴이 우스운 것으로 아무도 입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순례자처럼 나섰다. 감격이 새로왔다. 이같은 수도복 차림은 그날 이후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모든 프란치스코의 제자들의 옷차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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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스베덴보리를 하다 보니 주님이 이 피조세계에 심으신 여러 원리 중 하나로서 ‘서로 상태가 비슷해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라는 게 있는 것 같구나.

 

가령,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신 말씀처럼, 생전에 그 속 사람의 상태가 천국 상태인 사람이라야 사후에도 그에게 맞는, 즉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씀인데...

 

천사들이 그토록 지혜와 능력이 사람보다 수천수만 배 뛰어난 이유도 이 원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천사들의 상태가 주님을 닮아 자신의 역량 한도 내에서 주님이 주시는 모든 걸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복음서 여러 병 고침 받은 사람들의 경우도, 그리고 현재도 그런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지 싶은데...

 

우리 역시 만일 주님의 이 병 고치시는 능력을 경험하고 싶으면, 저들처럼 먼저 우리 내면의 상태가 주님의 능력, 곧 주님의 신성(神性)이 흘러들어오실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참고로, 천국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일어난다고 하니, 우리도 일상 중에 수시로 마음을 다해 주님을 바라보자.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그때 주님의 모든 능력이 우리의 수용 능력에 맞춰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흘러들어오실 수 있게 하자. 주님의 능력은 제한이 없으시나 다만 피조물인 나의 역량, 내 믿음의 그릇 사이즈 때문에 제약받으심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

 

아버지는 주님이나 주님의 제자들이 감기 걸렸다는 걸 읽어본 적이 없구나. 그리고 이런 일이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날 줄 아버지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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