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196,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과학과 철학이 발전할수록 더욱 더 눈먼 상태가 되는 이유'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96

고대에 계시보다는 감각과 관련된 것들을 더 확신하며 살던 사람들을 가리켜 ‘(serpents)이라고 했습니다. 1750년대 중반인 오늘날 유럽은 사정이 더욱 안 좋은데요, 지금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없는 건 무엇이든 안 믿을 뿐 아니라,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과학) 지식이라는 걸 가지고 더욱 자신들을 그런 불신 가운데 있게 하며, 그 결과 자신들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눈먼 상태 가운데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과 관련된 것들에 대한 결론을 감각과 기억-지식, 그리고 철학을 가지고 내리는 사람들, 즉 말씀에서 자주 ‘귀머거리 뱀(deaf serpents)이요, ‘날아다니는 뱀(the flying serpents)으로 언급되는 사람들인데요, 저런 것들이 훨씬 더 치명적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눈멀게 하는지, 그 결과 나중에는 어떻게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듣게 하는지 하는 실상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영에 대해 사람들이 믿는 한 가지 예를 들고자 합니다. In ancient times those were called “serpents” who had more confidence in sensuous things than in revealed ones. But it is still worse at the present day, for now there are persons who not only disbelieve everything they cannot see and feel, but who also confirm themselves in such incredulity by knowledges [scientifica] unknown to the ancients, and thus occasion in themselves a far greater degree of blindness. In order that it may be known how those blind themselves, so as afterwards to see and hear nothing, who form their conclusions concerning heavenly matters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and who are not only “deaf serpents,” but also the “flying serpents” frequently spoken of in the Word, which are much more pernicious, we will take as an example what they believe about the spirit.

 

[2] 감각적인 사람, 즉 오직 감각의 증거만을 믿는 사람은 영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그가 영을 볼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 게, 내가 그걸 느낄 수 없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거라야 존재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It is nothing because I do not feel it: that which I see and touch I know exists.)라면서 말이지요. 기억-지식의 사람, 곧 과학 지식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는 사람은 말하기를, ‘영이라는 게, 말하자면 눈앞에서 허공 중에 사라지는 수증기나 열기, 혹은 그 밖의 무슨 과학적 실체가 아니면, 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동물에게도 일종의 몸, 감각 및 이성과 유사한 뭔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동물은 죽지만, 인간의 영은 산다고들 하네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영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The sensuous man, or he who only believes on the evidence of his senses, denies the existence of the spirit because he cannot see it, saying, “It is nothing because I do not feel it: that which I see and touch I know exists.” The man of memory-knowledge [scientificus], or he who forms his conclusions from memory-knowledges says, What is the spirit, except perhaps vapor or heat, or some other entity of his science, that presently vanishes into thin air? Have not the animals also a body, senses, and something analogous to reason, and yet it is asserted that these will die, while the spirit of man will live. Thus the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3] 철학자들의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인류보다 훨씬 예리한 이들 철학자들도 영에 대해 말할 때는 결과적으로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말하는데요, 이들은 서로 논쟁하기를, 물질이나 유기물, 혹은 그 밖의 것들에 관한 그 어떤 하나의 표현으로도 이 영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투며, 또 이들은 영에 대해 머리를 쥐어짜 너무 추상화한 나머지 내놓는 무슨 장황한 설명이라는 게, 결국은 그냥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그중에서 좀 나은 사람은 영은 생각(thought)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생각에 대한 그들의 소위 이성적이라는 주장을 보면, 생각에서 모든 실재(substantiality), 알맹이를 다 분리하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은 결국 몸이 끝나면 영도 사라져야 하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결국 감각에 속한, 기억-지식에 속한, 그리고 철학에 속한 걸 가지고 이성적 사고를 한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영의 존재를 부인하며, 영과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하는 모든 말을 전혀 믿지 않지요. 마음이 단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요, 그들은 영이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그게 존재한다는 걸 안다고 해요. 주님 말씀하시기를, 자기들은 사후에도 살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소멸시키는 대신, 주님의 말씀으로 그것을 생생하게 하지요. Philosophers also, who would be more acute than the rest of mankind, speak of the spirit in terms which they themselves do not understand, for they dispute about them, contending that not a single expression is applicable to the spirit which derives anything from what is material, organic, or extended; thus they so abstract it from their ideas that it vanishes from them, and becomes nothing. The more sane however assert that the spirit is thought; but in their reasonings about thought, in consequence of separating from it all substantiality, they at last conclude that it must vanish away when the body expires. Thus all who reason from the things of sense, of memory-knowledge, and of philosophy, deny the existence of the spirit, and therefore believe nothing of what is said about the spirit and spiritual things. Not so the simple in heart: if these are questioned about the existence of spirit, they say they know it exists, because the Lord has said that they will live after death; thus instead of extinguishing their rational, they vivify it by the Word of the Lord.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95,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뱀, 사람 안에 있는 감각 파트'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95

태고인들은 사람의 모든 걸 짐승과 새에 단지 비유하는 대신 실제로 그렇게 명명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스피킹 관습은 홍수 후 고대교회에까지도 이어졌고, 이후 선지자들 가운데에도 보전, 전해졌지요. 사람 안의 감각적인 걸 그들은 ‘(serpents)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뱀이 땅에 가까이 붙어 지내는 것처럼, 감각적인 것들 역시 사람 몸하고 그렇게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신앙의 신비를 감각적 증거를 가지고 접근하려는 일련의 이성적 활동, 즉 이성질을 ‘뱀의 독(the poison of a serpent)이라고 했으며,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많은 걸 감각, 즉 보이는 걸 (이 보이는 거는 땅에 속한 거, 육적인 거, 일상적인 거, 자연적인 거를 말합니다.) 가지고 하기 때문에, 이르기를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라고 하는 것입니다. The most ancient people did not compare all things in man to beasts and birds, but so denominated them; and this their customary manner of speaking remained even in the ancient church after the flood, and was preserved among the prophets. The sensuous things in man they called “serpents,” because as serpents live close to the earth, so sensuous things are those next the body. Hence also reasonings concerning the mysteries of faith, founded on the evidence of the senses, were called by them the “poison of a serpent,” and the reasoners themselves “serpents”; and because such persons reason much from sensuous, that is, from visible things (such as are things terrestrial, corporeal, mundane, and natural), it is said that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 주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이성(理性)을 오히려 이렇게 못되게, 즉 교만하여 자신을 높이고자 자랑질하는 데 쓰는 걸 가리켜 특별히 '이성질'이라는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갑질, 자랑질, 도둑질같은 뉘앙스로 말이지요.

 

[2] 그리고 시편에도 보면, 이성 놀이를 통해 사람을 유혹하는 자들에 대해 이르기를, And so in David, speaking of those who seduce man by reasonings: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나이다 (시140:3) They sharpen their tongue like a serpent; the poison of the asp is under their lips. (Ps. 140:3)

 

3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주1)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시58:3-5) They go astray from the womb, speaking a lie. Their poison is like the poison of a serpent, like the deaf poisonous asp that stoppeth her ear, that she may not hear the voice of the mutterers, of a wise one that charmeth charms [sociantis sodalitia]1. (Ps. 58:3–5)

 

현자(賢者)가 하는 말이나 목소리에 귀조차 기울이려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이성 놀이, 이성질을 가리켜 여기서는 ‘뱀의 독’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고대인들 사이에서 ‘뱀이 귀를 막는다(The serpent stoppeth the ear)는 말은 하나의 속담이 되었습니다. 아모스입니다. Reasonings that are of such a character that the men will not even hear what a wise one says, or the voice of the wise, are here called the “poison of a serpent.” Hence it became a proverb among the ancients, that “The serpent stoppeth the ear.” In Amos:

 

19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20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 (암5:19-20) As if a man came into a house, and leaned his hand on the wall, and a serpent bit him. Shall not the day of Jehovah be darkness and not light? even thick darkness, and no brightness in it? (Amos 5:19–20)

 

손을 벽에 대는 것(The hand on the wall)은 자신한테서 나오는 힘과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안 보임'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The “hand on the wall” means self-derived power, and trust in sensuous things, whence comes the blindness which is here described.

 

[3] 예레미아입니다. In Jeremiah: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 (렘46:22-24) The voice of Egypt shall go like a serpent, for they shall go in strength, and shall come to her with axes as hewers of wood. They shall cut down her forest, saith Jehovah, because it will not be searched; for they are multiplied more than the locust, and are innumerable. The daughter of Egypt is put to shame; she shall be delivered into the hand of the people of the north. (Jer. 46:22–24)

 

애굽(Egypt)은 신성한 것들, 곧 주님께 속한 일들을 감각적인 것들과 기억-지식, 곧 세상에서 학습한 지식들을 가지고 이성질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런 이성질을 일컬어 ‘뱀의 소리(the voice of a serpent)라고, 그리고 그로 인해 앞을 못 보게 된 것을 ‘북쪽 백성(the people of the north)이라고 합니다. 욥기입니다. Egypt” denotes reasoning about Divine things from sensuous things and memory-knowledges. Such reasonings are called the “voice of a serpent”; and the blindness thereby occasioned, the “people of the north.” In Job:

 

16그는 독사의 독을 빨며 뱀의 혀에 죽을 것이라 17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 (욥20:16-17) He shall suck the poison of asps; the viper’s tongue shall slay him. he shall not see the brooks, the flowing rivers of honey and butter. (Job 20:16–17)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Rivers of honey and butter)은 영적이고 천적인 것들인데, 이는 단지 이성적이기만 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성질을 일컬어 ‘독사의 독(the poison of the asp), ‘뱀의 혀(the viper’s tongue)라고 합니다. 뱀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14절, 15절에서 보세요. Rivers of honey and butter” are things spiritual and celestial, which cannot be seen by mere reasoners; reasonings are called the “poison of the asp” and the “viper’s tongue.” See more respecting the serpent below, at verses 14 and 15.

 

※ 주1, '계시록 풀이' 462번 글 e항에는, sociantis sodalitia ('능숙한 술객의 요술') 대신 incantatoris incantationum ('마법을 거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In Apocalypse Revealed (n. 462e), instead of sociantis sodalitia (one that charmeth charms) there is incantatoris incantationum (enchanter of enchantments). [Reviser]

Posted by bygracetistory
,

 AC.194,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AC.194-197) - '', '들짐승', '여자', 그리고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의 속뜻

 

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And the serpent was more subtle than any wild animal of the field which Jehovah God had made; and he said unto the woman,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of the garden?

 

194

여기 ‘(the serpent)은 사람이 신뢰하는 감각 파트를 말합니다. 여기 ‘들짐승(the wild animal of the field)은 앞에서처럼 겉 사람의 모든 어펙션(affection)을, ‘여자(the woman)는 사람의 오운(own)을, 뱀의 말,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는 그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태고교회의 세 번째 후손인데, 그들은 계시된 것들이 과연 그런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어야만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상태, 일종의 의심하는 상태에 대한 설명이 본 절과 다음 절에 계속 이어집니다. By the “serpent” is here meant the sensuous part of man in which he trusts; by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as before, every affection of the external man; by the “woman,” man’s own; by the serpent’s saying, “Yea, hath God said, Ye shall not eat of every tree?” that they began to doubt. The subject here treated of is the third posterity of the most ancient church, which began not to believe in things revealed unless they saw and felt that they were so. Their first state, that it was one of doubt, is described in this and in the next following verse.

Posted by bygracetisto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