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4

앞에서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Jehovah God speaking to the serpent)의 의미가 그들이 자기들의 감각 파트(the sensuous part)가 타락의 원인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므로, 이 말씀에 관하여는 더 이상 말할 게 없습니다. Having before shown that by “Jehovah God speaking 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eir perceiving the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no more need be said in regard to these words.

 

 

해설

 

이 글은 새로운 내용을 설명하기보다는 AC.242에 대한 짧은 정리와 연결 역할을 하는 말씀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는 표현이 문자 그대로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들의 감각 파트가 타락의 원인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된 상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그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지 않고 다음 설명으로 넘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 안에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태고교회의 후손들이 완전히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타락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신들의 상태를 알고 있었습니다. 감각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전의 상태에서 멀어졌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자기 사랑이 너무 강해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감각과 판단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 인간의 영적 상태와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전혀 몰라서 잘못된 길을 가는 게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며, 내면에서는 경고도 받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나 세상 사랑 때문에 그 경고를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AC.244는 비록 매우 짧은 글이지만, 타락의 본질이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줍니다. 문제는 알지 못함이 아니라, 알고도 자기 사랑 때문에 감각과 own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글은 스베덴보리의 해설 방식도 보여줍니다. 그는 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이미 확립된 의미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상응과 영적 상태를 계속 전개해 나갑니다. 그래서 AC.244는 하나의 결론이라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뱀의 저주’, ‘여자의 상태’, ‘이성의 타락’, 그리고 ‘주님의 구원 약속’에 대한 설명을 연결하는 짧은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45, 창3:14, ‘네가 더욱 저주를 받아’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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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3, 창3:14,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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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3:14)



AC.243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들(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에게 있어서 몸의 감각적 것들(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은 그들의 내적 사람(internal man), 그러니까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기는 성격의 것이었으며, 그들은 그 이상으로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후에는, 감각적인 것들을 속 사람보다 앞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그것들은 분리되어 육체적인 것(corporeal)이 되더니, 그렇게 하여 정죄(condemned)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In the most ancient celestial men the sensuous things of the body were of such a character as to be compliant and subservient to their internal man, and beyond this they did not care for them. But after they had begun to love themselves, they set the things of sense before the internal man, and therefore those things were separated, became corporeal, and so were condemned.

 

 

해설

 

이 글은 AC.242의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는 ‘배로 기어간다’, ‘흙을 먹는다’라는 상징을 통해 감각 파트가 하늘을 향하던 상태에서 땅만 바라보는 상태로 변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태고교회의 천적 인간들도 감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감각에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졌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감각은 내적 사람, 곧 속 사람을 섬기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 자체가 아니라, 감각을 통하여 드러나는 영적 의미와 신적 질서였습니다. 그래서 AC.241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세상을 보면서 천국을 생각하였고, 자연을 보면서 신적인 걸 생각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이를 ‘감각이 속 사람에게 순종하고 섬겼다’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이 원래의 질서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속 사람, 그 아래에 이성, 그 아래에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감각은 마지막 단계에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마치 창문이 스스로 목적은 아니지만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후’입니다. 자기 사랑이 생기자, 인간은 더 이상 감각을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감각을 기준 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속 사람이 감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속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 ‘느껴지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 ‘이해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감각적인 것들을 속 사람보다 앞세웠다’고 말합니다. 이 한 문장 안에 타락의 본질이 들어 있습니다. 문제는 감각의 존재가 아니라, 감각의 위치입니다. 종이 주인이 되고, 도구가 목적이 되며,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 위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 결과 감각은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감각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속 사람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원래 감각은 속 사람으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끊어져 독립된 것처럼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감각은 점점 더 ‘육체적인 것(corporeal)이 됩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육체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몸에 속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것과 분리되어 오직 몸과 세상만을 실재로 여기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감각은 더 이상 천국을 향한 창문이 아니라, 인간을 세상 속에 가두는 벽이 되어 버립니다.

 

마지막의 ‘정죄(condemned) 역시 주님께서 벌을 내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각이 본래의 질서에서 떨어져 나와 오직 세상과 몸에만 매이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명의 원천과 분리된 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이전 AC들에서 반복해서 보았듯이, 스베덴보리에게 정죄와 저주는 주님의 행동이 아니라 인간이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초래, 자초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AC.243의 핵심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습니다.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감각을 사용했지만, 감각에 지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랑이 생기자, 감각을 속 사람보다 앞세우게 되었고, 그 결과 감각은 영적인 것과 분리되어 순전히 육체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에게 이것이 바로 인간 타락의 핵심이며, 동시에 ‘뱀이 배로 기어가고 흙을 먹게 되었다’는 말씀의 실제 의미인 것입니다.

 

 

 

AC.244,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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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2, 창3: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AC.242-249)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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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se thou hast done this, thou ar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upon thy belly shalt thou go, and dust shalt thou eat all the days of thy life. (3:14)



AC.242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는 건, 그들이 자기들의 감각 파트(sensuous part)가 타락의 원인임을 깨달았다는 걸 의미합니다. ‘뱀이 모든 짐승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았다(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천적인 것들로부터 등을 돌려 몸에 속한 것들을 향했으며, 그 결과 스스로를 저주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여기서 짐승(beast)들의 짐승(wild animal of the field)은 앞에서와 같이 애정(affections)을 의미합니다. ‘배로 기어간다(serpent going upon its belly)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바라볼 수 없고, 오직 몸과 땅의 것들만 바라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평생 흙을 먹는다(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는 건, 그들의 감각 파트가 몸과 땅에 속한 것들 외에는 아무 걸로도 살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곧 지옥 상태(infernal state)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By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is signified that they perceived their sensuous part to be the cause [of their fall]. “The serpent cursed above every beast and above every wild animal of the field”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averted itself from that which is heavenly, and turned itself to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us cursed itself; the “beast,” and the “wild animal of the field” here signify affections, as before. The “serpent going upon its belly”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could no longer look upward to the things of heaven, but only downward, to those of the body and the earth. Its “eating dust all the days of its life” signifies that their sensuous part became such that it could not live from anything but that which is of the body and the earth, that is to say, it became infernal.

 

 

해설

 

이 글은 창3:14에 담긴 상징들을 하나씩 해설하면서, 감각적 인간이 어떻게 영적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는 건, 실제 뱀과의 대화가 아니라, 그들이 자기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어느 정도는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들이 감각과 자기 판단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 지금의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감각 파트는 원래 인간 안에서 가장 바깥 단계에 있으며, 위로는 이성(rational)을 섬기고, 더 위로는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질서가 뒤집혔습니다. 감각이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지배하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스베덴보리는 뱀이 ‘스스로를 저주하였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게 아니라, 하늘의 질서에서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배로 기어간다’는 표현도 같은 의미입니다. 원래 인간의 내적 시선은 위를 향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천국과 주님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각이 주인이 되자 시선이 완전히 아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관심의 중심은 영적인 것과 천적인 것이 아니라 몸과 세상, 이익과 소유, 감각적 만족이 됩니다. 이것이 ‘배로 기어간다’는 상징의 내적 의미입니다.

 

특히 ‘흙을 먹는다’는 표현은 매우 강렬합니다. 성경에서 흙은 종종 가장 낮은 차원의 것, 곧 순전히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걸 의미합니다. 따라서 흙을 먹는다는 건, 더 이상 하늘의 선과 진리로 양육되지 못하고, 오직 몸과 세상에 속한 것만을 양식으로 삼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것에는 흥미를 잃고, 오직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잡히는 것만을 실재로 여기게 되면, 바로 이런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AC.242는 단순히 뱀의 형벌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방향 전환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원래는 위를 바라보던 존재가 아래만 바라보게 되었고, 하늘의 양식을 먹던 존재가 흙을 먹게 되었으며, 주님의 빛 아래 살던 존재가 몸과 세상의 것만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것을 감각적 인간의 타락이며, 동시에 지옥 상태의 본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AC.243, 창3:14,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지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And Jehovah God said unto the serpent, Bec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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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241, 창3:14-19, ‘배경’

배경AC.241 태고교회의 사람들은 천적 인간(celestial men)이었기 때문에, 세상이나 땅 위의 어떤 사물을 보더라도 단지 그것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물이 의미하거나 표상하는 천적이고 신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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