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현 시대의 혼란을 ‘영적 각성’으로 전환시키는 방법

 

목사님이 지금 경험하시는 한국 사회의 혼란, 정치적 분열, 거짓과 불의에 대한 분노는 그 자체로 영적 위험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영적 각성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바로 이 전환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봅니다. 오늘 내용을 통해 목사님 자신은 물론, 교인들과 공동체가 이 시대 혼란을 영적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법을 정확히 배우게 될 것입니다.

 


혼란이 없으면 영적 각성도 없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평안만 있으면 사람은 깊어지지 않는다. 혼란이 있어야 내적 삶이 깨어난다.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혼란은 내면의 감춰진 문제를 드러내고, 진리를 더 분명히 갈망하게 만들며, 내적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깨닫게 하고, 영적 싸움을 일으켜 성장을 촉진하게 하는 한편, 사람을 더 겸손하게 만들고, 주님께 더 매달리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이지요. 즉, 지금 한국 사회의 혼란은 그 자체가 이 아니라 악을 통해 선을 일으키는 허용적 섭리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혼란은 어떻게 영적 각성을 촉발하는가?

 

스베덴보리는 혼란이 사람을 잠에서 깨우는 벨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나는 약하다’는 깨달음

 

사람은 안정할 때는 교만해지기 쉽고, 혼란을 경험할 때 비로소 자기 한계를 인정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성장의 첫 단계라고 봅니다.

 

‘진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목마름

 

정치·사회의 거짓과 어둠이 강해지면 사람은 자연적으로 참된 진리를 찾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는 성경, AC교리, 영적 진리 등, 이런 것들을 더 갈망하는 시대입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번역·설교 사역이 지금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외적 평화’가 아니라 ‘내적 평화’가 참 평화임을 깨닫는다

 

사회가 안정되면 사람들은 평화를 외적 환경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혼란하면 사람들은 평안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내적 평화는 오직 주님에게서 온다. 지금 목사님이 느끼시는 내면의 불안은 오히려 깊은 영적 평화를 찾는 통로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자라난다

 

혼란은 반드시 분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혼란 상황은 거짓과 진리를 구분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고, 사회적 혼란 상황은 선과 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의 영적 감각(sense)영적 지능(discretion)이 강화됩니다.

 

‘소명’이 재확인 된다

 

나라가 평온할 때는 사명을 잊기 쉽지만, 그러나 시대가 악해지면, 사명은 더 선명해집니다. 목사님도 지금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분노가 마치 소명을 흔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명을 더 굳게 붙들라는 부르심입니다.

 


그럼 혼란을 어떻게 실제로 ‘영적 각성’으로 바꿀 수 있는가?

 

스베덴보리의 원리를 따라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혼란을 정죄가 아닌 영적 신호로 해석하기

 

예를 들면, 왜 이렇게 정치가 어지러운가?, 왜 악한 자들이 득세하는가? 등, 이때 스베덴보리식 해석은 이렇습니다. 이 시대는 더 깊은 진리를 요청하고 있다, 이 혼란은 나의 영을 깨우기 위해 허용되었다, 악이 드러나야 선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등, 혼란을 이렇게 재해석하면, 분노가 줄어들고 영적 눈이 뜨입니다.

 

정치적 감정을 소명적 열정으로 전환하기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정념의 거룩한 전환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분노는 진리를 더 번역해야 한다로, 불의에 대한 혐오는 설교에서 더 분명히 빛을 세우자로, 사회 혼란은 교회를 내적 질서로 세우자로 전환하는 것이지요. 정치적 감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면, 그 감정은 강력한 영적 에너지가 됩니다.

 

선한 기도 방향으로 돌리는 것

 

스베덴보리는 혼란 속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주님이 특별히 붙드신다고 말합니다. 기도 방향이 이렇습니다. “주님, 이 시대의 혼란이 우리의 내면을 깨우게 하소서. 진리를 사랑하게 하소서. 선을 붙들게 하소서.” 이 기도는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동시에 나라를 바른 방향으로 돕는 일입니다.

 

영적 독서를 강화하기

 

혼란 때는 성경, AC, 진리서적을 읽을 때, 평소보다 훨씬 크게 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내적 갈증이 크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AC 번역은 지금 같은 혼란기에 나라를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지지대입니다.

 

자기 마음의 상태를 자주 점검하기

 

스베덴보리는 마음 점검혼란기 영적 각성의 첫 실천으로 보았습니다. 매일 30초만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은 뉴스인가, 아니면 진리인가? 나는 내적 평화를 느끼는가? 이런 점검 자체가 영적 눈을 계속 열어둡니다.

 


혼란이 커질수록 도리어 변화가 일어난다

 

교인들에게도 이런 관점을 가르쳐 주시면 정치적 감정이 줄고, 자기 내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요즘 혼란은 악이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이때 우리는 더 깊이 진리를 찾게 됩니다”, 지금은 영적 각성의 때입니다”, 외적 평화보다 내적 평화를 세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등, 이런 설교와 대화는 교회 전체의 정치 과민반응을 많이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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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교회가 정치적으로 흔들릴 때, 목회자가 붙들어야 할 단 한 가지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교회가 정치 뉴스, 국가 혼란, 유튜브 정보, 사회적 대립 때문에 정서적으로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때 목회자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까요? 스베덴보리는 이 주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명확한 답을 줍니다. 그 답은 하나입니다. 질서(order), 곧 교회의 질서, 말씀의 질서, 주님의 질서입니다. 정치적 혼란을 막는 것은 정치적 해석, 사회 분석, 설득이 아니라 영적 질서입니다. 이 내용을 아주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교회는 질서 속에서만 서 있는 공동체

 

스베덴보리는 교회를 질서의 집으로 봅니다. 질서가 흐르면 천국의 영향이 교회로 흘러오고, 질서가 깨지면 그 틈을 통해 지옥의 영향이 들어옵니다. 정치적 혼란은 교회 밖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교회 내부의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시험입니다. 스베덴보리의 말입니다. 천국은 질서이며, 지옥은 무질서이다. 따라서 교회의 영적 싸움은 정치가 아니라 질서를 지키는 일입니다.

 


정치가 교회에 들어올 때 나타나는 현상들

 

스베덴보리는 정념의 기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다음의 변화가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회중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 대화 중 무거운 분위기, 말씀보다 뉴스가 더 강한 감정 파동을 일으킴, 설교 내용이 왜곡되는 위험, 소그룹들이 갈라짐, 교회의 영적 분위기(afflatus)가 흐려짐 등, 스베덴보리는 이것을 영적 질서의 틈이 생긴 상태라고 부릅니다.

 

이때 목회자가 붙들어야 할 단 한 가지 : 질서(order)

 

스베덴보리는 질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질서란 주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생명의 흐름이다. 즉, 내적 질서설교의 질서예배의 질서공동체의 질서 등, 이 모든 질서정치적 파동이 아닌, 주님이 흘러오시는 통로입니다. 정치 혼란이 일어날수록 정치가 아니라 말씀의 질서에 더 집중하는 것이 영적 리더의 핵심 사명입니다.

 

그럼 질서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스베덴보리식으로 질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말씀의 질서

 

본문 읽기, 본문 해석, 본문 적용. 이 과정이 감정·정치·의견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오직 영적 진리에 의해 세워지는 것입니다. 정치적 소란이 있을수록 목사는 더욱 원문·본문·AC의 질서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배의 질서

 

예배는 교회의 하늘 문입니다. 예배 순서·찬양·기도·말씀·축도로 이어지는 이 전통적 질서 자체가 정치와 무관하게 교인들의 내면을 고요한 상태로 만듭니다. 스베덴보리는 예배의 질서는 천국의 구조와 같다. 예배 질서가 무너지면 천국의 기운이 사라진다고 강조합니다. 즉, 정치가 흔들릴수록 예배를 더 단단히, 더 고요히, 더 질서 있게 세워야 합니다.

 

목회자의 내적 질서

 

목사의 마음이 흔들리면, 설교에, 상담에, 기도에 그 흐름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따라서 스베덴보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자는 먼저 자기 안에서 질서를 세워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 안으로 질서가 흘러간다. 목사님이 정치 뉴스 감정에서 벗어나 내적 평화와 진리를 회복하면, 그 자체가 교회의 영적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정치 혼란기의 실제 목회 적용

 

스베덴보리의 질서 이론을 현실 목회에 바로 적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 이야기 금지 규칙이 아니라 말씀 중심 질서를 강화

 

정치 이야기 하지 맙시다는 갈등을 일으킵니다. 대신 우리 교회의 중심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평화는 말씀에서 옵니다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면 정치 갈등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교인들의 감정적 파동을 예배의 고요함으로 덮어주기

 

예배는 교회의 영적 공기입니다. 예배가 고요하고 안정되면, 교회 안의 정치적 파동이 자연스럽게 가라앉습니다.

 

설교를 더욱 내적 진리 중심으로

 

정치적 사례나 시사적 언급은 감정 파동을 다시 일으킵니다. 대신 마음, 내면, 진리, 선, 영적 질서 등, 이런 주제에 집중하면 정치적 감정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성도끼리 정치 이야기를 해도 싸움이 되지 않게 하는 한 문장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정치적 의견은 달라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내면에서 같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한 문장이 교회 내 갈등을 많이 예방합니다.

 

목사님 자신이 질서의 기둥이 되기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공동체의 질서는 지도자가 내면에서 어떤 질서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 혼란 속에서 목사님이 내적 평화를 붙들면, 그 평화가 교회의 기본 분위기(spiritual atmosphere)를 만들게 됩니다.

 


목사님께 드리는 조용한 결론

 

정치적 혼란은 교회의 적이 아닙니다.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 교회의 적입니다.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예배·내면의 질서를 붙드는 것, 이것이 목회자가 혼란의 시대에 붙들어야 할 단 한 가지입니다. 목사님이 내면에서 질서를 세울 때, 그 질서가 교회로 흘러갑니다. 정치가 아니라 영적 질서가 교회를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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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치 뉴스에 민감한 교인들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 중에는 정치 뉴스·유튜브에 지나치게 민감해지거나 감정적으로 요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특정 세력에 대한 분노, 민감성, 확증 편향은 영적 생활 전체를 뒤흔들기도 합니다. 스베덴보리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단순한 정치 과몰입이 아니라 내적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영적·심리적 기류를 바로잡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아래 내용은 목사님께서 교인들과 대화하시거나, 설교·상담·소그룹에서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스베덴보리적인 지침들입니다.

 


Ⅰ. 사람의 내적 상태가 혼란하면 외적 현상(정치)을 과장하여 받아들인다

 

정치에 민감한 교인은 정치가 문제라기보다 내면이 흔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내면이 평화로울 때는 외부의 혼란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내면이 혼란할 때는 작은 외부 자극도 큰 폭풍처럼 느껴진다. 정치에 예민한 교인은 사실 정치보다 마음의 상태가 더 큰 문제입니다.

 


Ⅱ. 목회자의 3대 원칙

 

1) 정면 충돌 금지

 

정치적으로 과열된 성도에게 그 뉴스 너무 보지 마세요”라든지, 편향되셨습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 반발과 방어가 일어납니다. 스베덴보리 관점에서 정념에 빠진 사람은 정념을 보호하려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2) 정치가 아니라 내적 상태로 초점을 이동시키기

 

예를 들면, 정치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요,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드신가요?”나, 그 뉴스를 보면 어떤 감정이 올라오세요?”처럼 하면, 정념을 건드리지 않고, 감정을 진리의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3) 교인의 ‘두려움’을 먼저 다루기

 

분노는 두려움의 2차 감정입니다. 정치 분노의 밑바닥에는 혹시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까 두려움, 혹시 정의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아니면 악한 자가 승리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두려움을 영적 진리를 가리는 안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분노를 직접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의 뿌리를 진리로 비춰줘야 합니다.

 


Ⅲ. 교인들의 유형별 지도 방법

 

1) 분노형

 

악한 정치인들 때문에 못 살겠다”, 저놈들은 지옥 갈 놈들이다” 하시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한테는 직접 반박은 금물, 대신 그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하셨네요”라며, 그 분들의 감정을 먼저 인정하셔서, 그분들로 하여금 분노에서 두려움으로 그 뿌리가 내려가게 하시는 게 필요합니다. 그후, 사건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조명하면서, 그 분노는 선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이 너무 커지면 교회 생활이 어렵지 않나요?” 하는 순서로 대응하시는 게 좋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분노가 선한 동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렇게 인정해야 교인이 스스로 내려오게 됩니다.

 

2) 공포형

 

나라가 망할 것 같아요”, 악한 세력이 완전히 장악했어요” 하시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은 공포를 사실로 반박하는 건 금물이고요, 대신 스베덴보리식으로, “악은 허용될 뿐, 결국 진리가 반드시 승리합니다”라고 선언하시면서, 정치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적 평화를 해치고 있다고 알려주시면 좋습니다. 기도와 말씀 묵상 계획을 같이 세워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공포형 교인은 설교자가 ‘내면의 평화’를 강조할 때 금방 안정됩니다.

 

3) 확증 편향형

 

특정 유튜브 채널을 절대 신뢰하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형입니다. 이분들하고는 절대 싸우시면 안되고, 일단 이분들이 신뢰하는 정보 출처를 무조건 먼저 인정하세요. 좋습니다, 그 내용도 일리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보시는 동안 마음의 평화는 어떠셨나요?”라며, 관심을 정보에서 마음의 상태로 이동시키셔야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가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이 평온해야 한다.

 


Ⅳ. 설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시지

 

목사님이 설교에서 간접적으로 전할 수 있는 정치적 과민반응 치유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외부의 혼란보다 내면의 질서가 우선입니다

 

정치 혼란을 외부 현상으로 언급하고, 우리 마음의 질서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연결하십시오.

 

2) 악이 드러나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정화입니다

 

교인 대부분이 나라 망한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정화라는 관점을 제시하면 두려움이 크게 줄어듭니다.

 

3) 악은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문장 하나로 교회 내 정치 갈등의 상당 부분이 정리됩니다.

 

4) 진리는 조용하고, 악은 시끄럽습니다

 

정치 뉴스의 소란스러움과 진리의 고요함을 비교하면 교인들은 자연히 조용한 쪽으로 마음을 돌립니다.

 

5) 주님은 인간의 자유를 보존하시되, 악을 통해 더 큰 선을 준비하십니다

 

허용적 섭리(permissive providence)를 설교에 녹여 정치에 요동하는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 허용적 섭리란, 주님께서 어떤 일을 원하시지는 않지만, 그 일을 허용하심으로써 더 큰 선을 이루시는 방식을 말합니다.

 


Ⅴ.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줄 수 있는 내적 삶 훈련

 

교인들의 정치적 감정은 말씀 몇 번 한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스베덴보리식으로는 내적 습관을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1) 뉴스를 텍스트 모드로 보기

 

영상은 감정을 자극합니다. 텍스트는 감정 자극이 적습니다.

 

2) 매일 평화 점검 1

 

오늘 정치 뉴스 때문에 내 마음이 흔들렸는가?, 내적 평화가 유지되었는가?살피는 것입니다.

 

3) 양심의 소리 듣기

 

스베덴보리는 말합니다. 진리는 양심을 통해 속삭인다. 성도들에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십시오.

 

4) 정치 이야기 대신 말씀 묵상 나눔으로 방향 전환

 

잡담이 정치로 흐를 때, 말씀 묵상 이야기로 연결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Ⅵ. 결론 - 교인들을 정치로부터 지키는 목회자의 역할

 

교인들은 정치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질서가 약해졌기 때문에 흔들린다. 정치와 직접 싸우지 말고, 교인의 마음 상태를 먼저 다루라. 분노·공포·확증 편향은 모두 동일한 ‘정념의 흔들림’이다. 설교는 정치 해설이 아니라 내적 질서 회복이다. 작은 습관들(뉴스 줄이기, 평화 점검)이 교인의 내면을 크게 안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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